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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변의 대통령들, 밑천은 독서와 철저한 준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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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대통령의 글쓰기> 펴내

[뉴스핌=김윤경 국제전문기자] 지난 2005년, 참여정부가 3년차에 접어들던 그 해 1월, 10년차였던 기자에게 "청와대를 출입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경제 분야 취재만 해봤고, 언론사 부장급들이 들어간다는 청와대에 평기자가 출입하라니. 당황스럽기만 했다.

취재 방법도 달라졌다. 취재원을 직접 만나기가 어려웠다. 출입기자들은 평소에도 청와대 본관에는 순번을 정해 취재하러 들어가고, 나머지 시간엔 기자들을 위한 공간인 춘추관에 머물러 있게 된다. 주요한 일정과 발표가 있으면 미리 예고를 듣고 사후에 관련 수석이나 비서관, 대변인 브리핑을 듣는데, 이것만으론 참 미흡하다.

2개월 남짓 출입했을 때 대통령의 독일과 터키 순방 일정이 잡혔다. 첫 순방 취재라 기대도 됐지만 우려도 그 만큼이었다. 뭘 어떻게 취재할 수 있을 것인지 몰라서였다. 게다가 독일은 우리나라처럼 분단됐던 나라. 혹시라도 통일과 관련한 특별 선언이라도 있으면 어쩌지 하면서 과거 자료들만 뒤졌다.

바로 그 무렵이다. 대통령의 말과 글을 책임지는 비서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유레카!"를 외쳤다. 연설문은 대통령이 생각하고 실행하려는 것의 정수(精髓) 아닌가.

수시로 전화도 걸고 독일에 도착해서도 마주치게 될 때마다 자꾸 키워드를 달라며 그 분을 괴롭혔다. 물론 비서관께선 "저도 잘 모릅니다"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같은 답변만 들려줬지만  '대통령의 심중을 아는' 존재를 알게 됐다는 것이 반가웠다. 무위로 끝날 걸 알면서도 대통령의 주요 일정에 앞서 정보를 꾸준히 구애(求愛)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말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 가끔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그러니까 연설문에 없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연설문 자체가 노 대통령의 말투, 표현에 맞추어 잘 작성돼 있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겐 대개 엠바고(일정 시간까지 취재한 사안에 대한 보도를 미루는 것)를 전제로 대통령의 주요 연설문을 건네주기 때문에 미리 볼 수 있는데, 소리내 읽어보면 진짜 대통령이 말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 말과 글을 썼던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책을 냈다. <대통령의 글쓰기(메디치)>가 그것이다.

제목이 많은 뜻을 담고 있다. 그것은 '대통령을 위한 글쓰기'이기도 하고 '대통령이 글을 쓰는 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연설문이란 곧 말이기 때문에 어떻게 말해야 하는 지에 대한 조언도 들어있고, 대통령은 그럼 어떤 식으로 말을 준비하는가를 알아볼 수도 있다.

강원국 전 비서관이 과민성대장증상을 떨치지 못하면서도 8년간 말과 글을 통해 함께 했던 두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모두 달변가들이었다. 그러나 그 달변은 하루아침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명료하고 정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으며 그것이 가능했던 건 철저한 준비와 열정적이고 성실한 독서 때문이었다. 그것이 대통령들이 말하고 쓴 비법이라면 비법이다.

노 대통령은 글을 많이 쓰고 좋아하면서도 글 쓰기를 힘들어했다고 한다. "양극화와 씨름하고 있습니다"란 문구를 써 놓고 '씨름'이란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몇 시간 '씨름'(고민)하기도 했다. 그래서 언론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 강 전 비서관은 이를 책에서 "(국민들에게) 편지를 썼는데 우체부(언론)가 전달을 잘 안해준다"고 했다 전한다.

이 책은 노 대통령이 강 전 비서관에게 임기 중 '명령(?)'한 책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글쓰기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고 특히 공직자들이 그래야 합니다. 글쓰기에 관한 책을 쓰세요. 연설비서실에서 일하면서 깨달은 글쓰기에 대한 노하우를 공유하는 책을 쓰세요."

노 대통령은 서거 이틀 전에도 책을 읽고 '사람 사는 세상' 사이트 자료 찾기 게시판에 메모를 남겼다. 메모 습관은 개인 차원을 넘어 국가 차원에서도 실천으로 이어졌고 대통령의 국정 기록과 청와대 내부 회의 등을 모두 담은 이지원 시스템을 구축시켰다.

물론 이 책은 전직 비서관이 쓴 두 대통령에 대한 연서(戀書)는 아니다. 두 대통령이 얼마나 말과 글을 잘 하려 노력했는지, 그것을 잘 전달하기 위해 어떻게 연설문을 써 왔는지 그 노하우가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진심을 말하고 쉽게 표현하고 자료과 관건이라는 조언들도 에피소드를 통해 생생히 보여준다. 특히 대통령이 직접 말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연설문을 쓸 수 있었던 건 대통령의 말투, 습관, 행동 등을 잘 관찰하고 직접 그 지방 언어를 쓰는 사람에게 읽혀보기까지 한 연설비서관의 노력에서 비롯됐다.

저자는 글쓰는 것을 잘 한 적이 없으며 두렵다고 아직도 엄살이지만 김우중 전 대우 회장 등 대기업 회장들과 두 대통령을 거치며 집중적으로 단련된 글쓰기 솜씨는 책장이 언제 넘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독자를 몰입시킨다. 행간에서 담담하게 유발되는 유머와 재치를 찾는 것 또한 재미다. 저자는 페이스북을 통해 그런 재기발랄한 글솜씨를 소개해 많은 '페친'을 두고 있기도 하다.

[뉴스핌 Newspim] 김윤경 국제전문기자 (s914@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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