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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 단상] 일회용 종이컵에 담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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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흔히 보이는 것들로 뫼비우스적, 그 이상의 상상 여행을 하려 한다. 주변의 사물들엔 저마다 독특한 내력이 숨어 있고 어떻게 빚느냐에 따라 보석이 되기도 하고 나침판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출발한 여행의 과정에 어떤 빛깔의 풍경이 나타날지, 그 끝이 어디까지 다다를지 필자 자신도 설레인다. 인문학의 시대라고 하는데 인문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 메타적 성찰 역시 필요한 시점이다. 사물과 풍경, 시대와 인문을 두루 관통하면서 색다르면서도 유익한 여행을 떠나려 한다.

 

웃통을 벗은 사내가 불이 담긴 통을 들고 강가의 무대에 섰다. 통의 중심에 일 미터 정도의 쇠줄이 달려 있는데 그 끝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다. 갠지즈 강. 어머니 강이라고도 불리는 그 강이 흐르는 바라나시. 십 여년 전에 인도로 훌쩍 떠나 힌두교 성지인 그곳에서 본 그 풍경이 지금도 선연하다.

날이 저물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수백명의 관광객들이 강가의 그 퍼포먼스를 보려고 운집해 있었다. 주변은 종교 성지에 걸맞도록 고색창연했다. 유서 깊은 사원들과 낡은 건물들이 배경을 이루는 가운데 촛불과 꽃들로 장식된 무대 위에서 사내는 불통을 돌리기 시작했다. 평범하게 진행하다가 몸을 살그머니 숙였다. 그러자 쇠줄을 따라 위아래로 빙빙 돌던 불통이 강물에 닿을 듯 하다가 다시 솟구쳐 하늘로 향하곤 했다. 강물과 하늘 사이를 지름으로 삼고 자신의 몸이 중심점이 되어 원을 그리는 모양이 일품이었다. 너무 단순해서 처음엔 무료한 점도 있었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는 점점 몰입되어 갔다. 불통을 돌리는 사내의 곁엔 또다른 사내가 북을 두드려댔다. 북소리에 맞춰 하늘과 물 곧 하늘과 땅 사이로 불통을 돌리는 사내의 벗은 몸은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었다. 삼십분, 사십분이 지나도록 똑같은 반복이 이어졌다. 한 시간을 넘어 두 시간에 가까워지도록 동일한 반복에 있음에도 그의 얼굴은 고되다는 흔적 따윈 전혀 없이 합일의 경지에서나 나올 수 있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완전히 몰입되어 있는 그를 따라 나뿐 아니라 무수한 사람들이 함께 취한 듯 몰입되고 있었다. 아득한 신화의 세계 같은 곳으로 점점 빨려드는 기분이었다.

난 왜 그토록 강렬하게 빠져들었을까.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때의 생생함이 마음 속에 숨쉬고 있는데 왜 그럴까. 쥐불 놀이를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와 흡사하다고 할 수도 있는 그것에 아직도 사로잡혀 있는 걸까.
성지였고 이국적이어서만은 아닌 것 같다. 나는 그때 마음 깊은 곳이 자극을 받은 듯 했다. 도취나 카타르시스 이상이었다. 원형(原型)을 보았다고나 할까. 관광 상품에 불과한 것에 그런 거창한 이름을 다는 게 거북스럽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빠지면 푸욱 빠져드는 내 성격의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 무의식 깊은 곳의 불이 자극되어 혼융의 춤을 추는듯한 황홀이 느껴진 바 원형의 체험, 적어도 그에 버금가는 체험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일상에 휩쓸리다 보면 원형이 환기되는 체험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원형이 뭔지도 잘 모른다. 사람들은 대개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빛과 어둠의 저장소이자 무의식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원형에 대해, 무의식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모르는 게 당연한 듯 하지만 이보다 애석한 일이 또 있을까.

해가 뜨는 것을 느낄 겨를도 없이 출근하고 브리핑을 하거나 새로운 사업 구상을 한다. 펀딩을 걱정해야 하고 발주를 하겠다는 사람이 마음이 변하지 않을지 신경이 곤두세워진다. 하루라는 시간이 그런 스케쥴들로 꽉 차 빙빙 돌아간다. 저녁이면 술을 마실 때가 많고 귀가해서도 역시 일과로 가득찬 식솔들과 만난다. 각자의 고민거리나 티브이, 스마트폰이 중심이 되어 있기에 진솔한 대화가 오가는 것도 드문 풍경이 되었다.

이런 것들은 나은 경우이다. 카드 돌려 막기를 하거나 은행 부채를 꺼야 할 일로 시간과 마음이 타들어간다. 금슬 좋던 부부 관계에 금이 가거나 위험한 상태가 되어 있다. 술로도 진정이 안되고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것 같은 통제 불능에 가까운 심리가 되어 있다. 신경 치료를 받아야 할지 말지 그 서글픈 선택을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우리들의 삶이며 이런 것들 외에도 별의별 복잡한 상황들이 저마다 있을 것이다. 뭔가를 찾아 열심히 노력해 그 결과 얻은 것도 있겠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겠지만 상실감만큼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공통적으로 담겨 있을 것이다. 성취를 많이 한 사람도 왠지 가슴이 스산하며 몸부림을 쳤음에도 마이너스에 시달리는 사람은 이런 정신적 상실감 외에 물질적 상실감이 겹쳐 악순환의 굴레 속에 지쳐 간다.
이런 것들로 마음이 채워지다 보니 원형적인 체험을 하기가 어렵다. 이 도시와 문명 세계는 그런 것을 줄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 그런 것이 공급되면 사람들은 취한 듯 몰입하게 되어 생산성과 효율성이 올라가지 않는다. 사람들이 적당한 체험을 통해 스트레스나 풀고 적당한 카타르시스나 즐기며 생산성과 효율성에 다시 투여되는 일의 반복이 이 사회를 돌리는 힘이기에 사회는 그 정도의 체험의 하한선을 암암리에 두고 있다.

갠지즈 강가에서의 불의 축제는 그 하한선을 깨고 들어오며 그 아래의 심연을 내게 선사한 것이다. 강물과 하늘. 하늘과 땅, 그 광대한 스케일을 품은채 단순히 돌고 도는 순환이 내 마음의 사이즈를 점점 그 차원까지 몰고 가더니 저 너머에 있는 뜨거움을 만지게 해준 것이다. 수평선을 가르며 돌고 도는 불덩어리, 그 원대함에 나는 가슴이 저며들었고 그와 동시에 느껴졌다. 작은 자아를 깨고 들어오는 웅혼함. 가슴이 터질 듯 충일감의 바다가 되는 것. 그 총체성이 몸 속 가득 벅차게 번져왔다.

원형은 원(圓)과 통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물론 서로 다르다. 원형은 인류의 무의식에 잠재하는 근원적인 것이며 원(圓)은 글자 그대로 동그라미이다. 그럼에도 원(圓)은 천원지방(天圓地方)에서 보듯 하늘을 상징하며 그것은 곧 근원을 의미한다. 즉 그 두 개는 서로 닮아 있으며 인류 역사의 시원에서 만난다.
하늘도 원이고 태양도 원이다. 달도 원이다. 낮을 주관하는 태양이나 밤을 주관하는 달 모두 원이라는 극히 단순한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순은 복잡의 자궁이며 산모이다.
문명의 초기에 있는 이집트의 파라오도 태양과 관계되어 있으며 로마에서도 태양신을 숭배했다. 고구려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삼족오도 태양에 세 발 달린 까마귀를 그려넣은 것이다. 보름달은 고향을 생각하게 하고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원은 이처럼 인류 문명의 시원과 관계 깊은 원형을 담는 그릇이라고 볼 수 있다. 그로부터 멀어진 이 상실의 시대에선 그리로 회귀하고 싶은 그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자동차 핸들, 바퀴, 쟁반, 접시, 골프공, 동전, 화장품 용기 뚜껑, 민들레, 해바라기... 우리의 일상에도 원은 널려 있다. 원을 상상하며 하루를 즐긴다면 풍족감이 아마 오래 갈 것이다. 평생을 살면서 그런 하루를 살아봤는가. 그런 기획을 해보고 실천을 해보았는가.
사업을 구상하고 정치를 기획하고 여행을 꿈꾸고 사랑을 상상하는 것과는 또다른 벅찬 느낌이 가슴을 노크할 것이다. 그 감각 속에 잠기면 상실을 하기 이전의 상태 즉 원초적 뜨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후로 모든 것이 전혀 다르게 보일 것이다.

생각에 빠져들다보니 배가 고파져왔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집에서 빠져나와 걸어나갔다. 멀지 않은 동네 식당에 들어가 김치찌개를 시켰다. 맛있게 먹고는 자판기의 커피 버튼을 눌렀다. 커피 분출구 아래로 흰색의 종이컵이 쓰윽 내려왔다. 동그란 테두리의 일회용 종이컵을 식탁으로 들고 오는 동안 내 얼굴에 슬그머니 미소가 번졌다.

커피 맛이 더욱 달달한 느낌이었다. 마시면서 카톡방을 열자 친구들 사이에 잡담이 흐르고 있었다.
“원에 대해 상상해 보고 있네.”
겸연쩍음을 무릅쓰고 툭 적었더니
“뭘 원해?”
재치 있기로 유명한 친구가 퍼닝(말장난)을 했다. 교수로서 일본에 세미나 겸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인데 사진 한 장을 금세 띄웠다.

우에노 공원의 연지란다. 연꽃이 핀 연못. 푸르름이 난무하는 다리 위에 연인끼리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 모든 풍경을 은은하게 비춰주는 타원형의 수은등. 나와는 또달리 이색적인 상상이 풍부한 친구의 마음이 먼 곳에서 내게 탐스럽고 은은한 불빛을 보내주고 있었다.

이명훈 (소설 ′작약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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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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