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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 단상] 부엌에 담겨 있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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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흔히 보이는 것들로 뫼비우스적, 그 이상의 상상 여행을 하려 한다. 주변의 사물들엔 저마다 독특한 내력이 숨어 있고 어떻게 빚느냐에 따라 보석이 되기도 하고 나침판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출발한 여행의 과정에 어떤 빛깔의 풍경이 나타날지, 그 끝이 어디까지 다다를지 필자 자신도 설레인다. 인문학의 시대라고 하는데 인문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 메타적 성찰 역시 필요한 시점이다. 사물과 풍경, 시대와 인문을 두루 관통하면서 색다르면서도 유익한 여행을 떠나려 한다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면 안된다”
어릴 적에 어머니께 듣던 말로 인해 부엌은 내게 실제적인 금기뿐 아니라 마음 속의 금기처럼 작용했었다. 결혼생활 중에 아내가 요리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파도 부엌 곧 주방에서 대신 일을 하는 게 내키지 않았다. 꼭 그런 이유는 아니지만 삶이 꼬이게 되어 혼자 사는 삶을 살게 되자 부엌 내지 주방은 내 삶의 한 부분으로 여지없이 들어왔다.
쌀을 씻는 것, 국을 끓이는 것, 설걷이를 하는 것 등등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었다. 내 일이 아닌 것 같아 하기도 성가시고 해나가는 동안에도 울적하곤 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색다른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부엌이야말로 인류문화사가 듬뿍 담긴 공간이다. 부엌을 빼놓고는 인류문화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
삶이 잘 풀릴 때건 어려울 때건 머리 속에 먹물이 들어가야 뭐라도 한듯한 쪼다 같은 내겐 그런 각성이 일어나야 모티베이션이 생겨 활력이 돌게 된다. 구석기니 청동기니 인류의 잡다한 자취들에 대한 책을 이것저것 소화해서인지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간 것이었다. 그 후로도 부엌 일이 꼭 즐거운 건 아니지만 매력이 생겨 있었다.

물이 담긴 냄비가 불 위에 올려진다. 나는 냄비 바닥에 된장을 짓이겨 바르고 이미 썰어놓은 두부를 넣는다. 그리곤 도마에 마늘을 올려 놓고 다다닥 썬다. 된장 찌개를 끓이는 것이다.
냄비, 저것은 철기 문명의 산물이다. 그것이 그보다 훨씬 더 까마득한 시대에 우연히 발견된 불 위에 올려 있는 것이다. 문명사적으로 동떨어져 있는 그 두 개 곧 불과 쇠가 내 눈 앞에 함께 있는 것이다. 그것들은 그 각각에 대한 몽상으로도 나를 이끌고 그 둘이 포개진 몽상으로도 이끈다.
불 위에 올려진 냄비 안의 물이 지글지글 끓는다. 물. 이는 또 어떠한가. 너무도 아득해서 기원을 알 수 없는 존재가 물이다. 물의 기원은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만 찾아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물은 우주적이다.

그런 면도 있고 불과 물은 동양철학에서도 아주 중요하다. 주역도 불과 물을 빼면 대들보 빠진 집처럼 무너져 버린다. 아무리 멋드러진 천원지방의 건축물도 불과 물을 빼면 성립 자체가 안된다. 천지 곧 건곤은 물과 불 곧 감리와 뗄레야 뗄 수가 없다. 철학적으로도 이처럼 중요하고 인류사적으로도 필수적인 불과 물이 자그마한 나의 노동 앞에서 태극춤을 춘다는 것은 비약이지만 하나가 되어 들끓고 있는 것이다.
칼은 또 얼마나 남성적인가. 도마 위를 다다닥 달릴 때의 소리는 알싸름한 마늘 내음 속에 얼마나 풍성한 세계로 나를 이끄는가. 대장간도 설핏 스치고 청동기를 지난 철기 시대의 사나운 제국의 시대로도 몽상의 한 자락을 피게 한다.

수저 역시 칼이 든 용기 안에 가지런히 들어 있다. 부엌에는 수저 뿐 아니라 물, 냄비, 도마, 불, 칼 등등과 그것들과 버무려진 찬연한 인류역사의 질료들이 함께 들어 있는 것이다.
집에서 핵심적인 것 두 개를 치라면 부엌과 화장실이라고 나는 말하겠다. 거실이나 세면장도 물론 중요하지만 부엌과 화장실에 비하면 부가적이다. 거실이 없다면 부엌 안에 침대를 갖다 놓고 잘 수 있다. 세면 역시 부엌에서 할 수 있다. 반면에 부엌이 없다면 삶에 필요한 음식의 공급 즉 에너지의 섭취가 불가능하다. 물론 매식으로 해결할 수도 있지만 그건 집의 원리로 볼 땐 부차적인 것이다. 부엌이 이처럼 음식의 공급과 관계가 있다면 화장실은 그것의 소화 후의 배설과 직결된다. 화장실이 없다면 집은 이삼일이 지나기도 전에 엉망이 되어버릴 것이다.

이런 의미도 담을 수 있는 부엌은 집 바깥의 흙과 연결된다. 흙에서 나는 채소와 쌀, 땅 위에 나다니는 먹거리 동물들과 이어진다. 그런 것들이 문화가 이룩한 다채로운 경로들을 통해 집 안의 부엌으로 들어와 그곳에 갖추어진 인류문화적인 장비들을 통해 음식으로 가공되어 그 집의 구성원들의 몸 속으로 들어가 몸을 활성화시킨다. 그런 후 그 찌꺼기들이 화장실로 배출되는데 그 배설물들 역시 집 바깥의 땅 내지 물 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그런 긴 순환의 여정 속에 집이 있고 그 안의 부엌과 화장실을 통해 사람들은 소위 생명을 영위하고 경제활동과 문화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러한 부엌과 화장실은 우리 인체의 입과 배설기관과도 기능적인 면에서 동일하다. 말하자면 인체의 생리적 기능과 걸맞도록 집의 구조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엔 무수한 집들이 천태만상으로 지어지고 소멸되어 갔겠지만 이런 기본 구조에 있어선 대동소이할 것이다.

그처럼 집의 핵심 중의 하나인 부엌. 나는 거기서 음악을 틀어놓고 혼자 밥을 하고 국을 끓일 때도 있지만 때론 음악보다 크다고 여겨지는 것 즉 인류문화사가 용해되어 있는 듯한 밀도감의 향기에 휩싸여 거기에서 들려오는듯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모성적인 노동을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선물을 남자들이 어이없이 상실한 것이라고 생각하게까지 되었다. 남자들은 상실하고 여자들은 너무도 많이 받아서 이런 몽상을 할 여유가 없다. 남자나 여자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부엌은 인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것들이 한꺼번에 들어 있다. 곧 인류 문화사의 축소판이자 압축판이다. 몸소 체험을 할 수 있기에 박물관에 가서 간접 체험으로 그치는 것보다 훨씬 깊은 느낌을 안겨 준다.
고기나 생선을 대할 때는 수렵 문화가 내겐 어른거린다. 쌀을 씻고 상추나 시금치를 다듬을 땐 농경 문화가 어른거린다. 그 이질적인 문화들이 내 손 안에서 생생하게 어우러지며 거듭난다.

밥이 익어가는 냄새. 불이 지글거리며 물이 끓는 소리와 열기. 벽에 걸린 쇠붙이들과 나무 주걱 등등.
가족 해체가 나처럼 일어나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상실하지 않고도 아무 때나 곧장 얻을 수 있는 귀중한 자산이 바로 부엌이다.

아내를 위하여 부엌에 들어가지 않아도 좋다. 남성들이여. 유교 문화든 습관이든 그 어떤 탓이든 간에 상실하고만 그 인류 문화의 도가니 속으로 이제라도 들어가 보시라. 쌀을 씻을 때 손등에 감겨 오는 물의 촉감을 느껴보시라. 그 안에 또 얼마나 많은 정감과 사유의 촉진제와 그리운 밀물들이 섞여 있는지. 아주 먼 추운 겨울에 식솔들을 위해 쌀을 안칠 때 어머니의 손등에 스미던 시립도록 시린 찬물도 설핏 지나갈 것이다. 유년시절에 대해 잊고 있던 아스라한 추억들이 덩달아 따라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기이한 감동을 아이들에게 전해 보시라. 요리와 함께 그것을 둘러싼 풍요로운 문화 더미들에 대한 느낌을 사랑스런 자녀들과 함께 나눠 보시라.
사회 교육은 가정 교육부터. 가정 교육은 밥상 교육부터.

구한말까지 오백년간 한반도를 휘감은 유교는 거기까지였을 것이다. 유교의 명암이 있겠지만 그 암 즉 그늘만 본다면 그것이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의 사회와 가족, 개인 특히 기성 세대의 마음과 무의식까지 침범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밥상 교육은 부엌 교육을 통해 훌륭한 교육으로 재탄생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누군가에게 편중된 모성애적 노동은 남성들을 포함한 식구들 모두에게 평화적으로 분배될 때 인류사적 자산으로 거듭날 수 있다. 물론 실패한 사회주의처럼 경직된 방식은 또다른 병폐를 낳을 수도 있다. 사랑이 우선인 가족답게 지혜를 발휘해 부엌 안에 담긴 놀라운 보물들을 나눠 가진다면 그 풍성한 담론의 부엌 교육은 훌륭한 밥상 교육으로, 그것은 다시 훌륭한 가정 교육이 되어 사회의 바탕을 훈훈하고 기름지게 다지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남성들이여. 자칫하면 상실한채 한 생을 접어야 하는 부엌 노동을 이제라도 그 멋과 가치를 알아 끌어안아 보시라. 그 속에서 몸으로 느껴지는 작고 아름답고 풍성한 감각의 대화를 티브이건 스마트폰이건 끄고 가족들과 나누어 보시라.

남자들이 그렇게 부엌의 가치를 발견할 때 여자들은 부엌에 들어갈 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기에 부엌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부엌은 담론을 통해 재탄생할 것이다. 그것은 가족의 재발견, 가족과 사회의 재탄생으로 이어지지 않겠는가.

일반 주택이든 아파트든 부엌 내지 주방은 아주 놀라운 장소이다. 그것을 놓치는 것은 인류문화사의 절반을 놓치는 것이다. 부엌 내지 주방은 적어도 수십만년 이어온 인류 역사의 귀중한 것들이 자그마한 소품들로 응축된채 알록달록 모여져 있는 곳이다. 밥 해먹는 것이 귀찮아서 며칠 사 먹었는데 오늘은 쌀을 씻어 안치고 김치를 도마에 놓고 총총 썰어 김치 찌개를 끓여야겠다. 파를 총총 썰 때의 냄새는 마늘 냄새처럼 자극적이지만 푸른 초원의 냄새와 함께 색다른 후각의 세계, 그 아찔한 황홀감으로 나를 자빠뜨릴 것이다.

이명훈 (소설 ′작약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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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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