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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환의 예술가 이야기] 세계 최고의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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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25)

‘세계 최고의 성악가’, ‘대중들에게 가장 친숙한 성악가’, ‘최고의 벨칸토 오페라 가수’, ‘최고 음역에서도 맑은 음색을 내는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 그는 이 많은 수식어들이 따라다니던 이 시대 최고의 성악가였다.
파바로티는 성악가로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였다. 파바로티 이전에 20세기 초 오페라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엔리코 카루소(Enrico Caruso)가 있지만, 그 당시는 파바로티처럼 대중매체를 활용할 수가 없었다. 파바로티의 최대 라이벌인 플라시도 도밍고 또한 파바로티의 대중적 성공에는 미치지 못했다. 사실 도밍고는 잘생긴 외모와 다양한 언어구사 능력 등 오페라가수로서 출중한 자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고음처리 능력과 대중을 압도하는 기량 면에서는 파바로티에 비해 다소 뒤처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파바로티는 여러 오페라무대에서 빼어난 가창력을 발휘함으로써 수많은 클래식 음악 팬들을 확보하였다. 그의 오페라 가수로서의 전성기는 1970~1980년대였다. 당시 함께 했던 최고의 소프라노 조앤 서덜랜드와 그녀의 남편인 지휘자 리처드 보닝, 이 세 명의 멤버로 이루어진 드림팀은 오페라 음반사에 길이 남을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특히 도니체티의 《연대의 딸(La Fille du Régiment)》의 토니오역은 파바로티에게 ‘하이 C의 제왕(King of the high C's)’이라는 영광스러운 별명을 안겨주었다. ‘하이 C’는 테너가 낼 수 있는 최고 음역으로 ‘가슴에서 나오는 가장 높은 도’ 음이라 불린다. 그것은 정상적으로는 특별한 능력이 없으면 도저히 낼 수 없는 음이었다.
그가 출연한 대표적인 오페라로는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과 《연대의 딸》, 베르디의 《리골레토》와 《가면무도회》, 푸치니의 《라 보엠》과 《투란도트》 등을 들 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사랑의 묘약》의 ‘남몰래 흘리는 눈물’과 《라 보엠》의 ‘그대의 찬손’, 《투란도트》의 ‘공주는 잠 못 이루고(네순 도르마, Nessun dorma)’는 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아리아이다. 그러나 그가 보다 폭넓게 대중들과 친숙해진 계기는 ‘쓰리 테너(Three Tenors) 콘서트’였다.

쓰리 테너 콘서트란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Plácido Domingo), 호세 카레라스(Jose Carreras) 등 소위 세계 3대 테너들이 함께 무대에 선 음악콘서트를 말한다. 이 콘서트가 개최된 배경이 상당히 흥미롭다. 1988년 도밍고의 도움으로 백혈병을 완치한 카레라스가 자신이 설립한 백혈병 재단 주최로 자선 콘서트를 개최했는데, 좋은 호응을 얻었다. 이후 도밍고와 파바로티는 카레라스의 재기를 축하하는 공연을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자신들이 함께 서기로 약속했고 마침내 약속은 현실이 되었다. 1990년 7월 7일 이탈리아 월드컵 결승전 전야제 날, 로마의 고대유적지 카라칼라 대목욕탕 터에서 주빈 메타의 지휘로 이들 쓰리 테너의 역사적 첫 공연이 이루어지게 된다.
세계 최정상의 테너 셋이 모인 이 공연은 엄청난 호응을 얻었고, 데카음반사에서 출시한 공연 음반은 클래식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된다. 이후 쓰리 테너 공연은 주빈 메타의 지휘로 월드컵 전야제마다 열리게 된다. 2002 한· 일 월드컵 때는 한국과 일본의 공동개최를 기념하여 2001년 서울에서, 2002년 전야제 날 일본 요코하마에서 공연을 가졌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는 파바로티의 사망으로 공연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2005년 멕시코 몬테레이에서의 공연이 마지막 ‘쓰리 테너 콘서트’로 기록된다.
이 쓰리 테너 콘서트는 클래식 음악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후 쓰리 테너 콘서트를 모방한 공연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클래식 음악이 일반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다.

도밍고· 카레라스· 파바로티 ‘쓰리테너’의 공연 모습 <사진=이철환>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1935~ 2007)는 1935년 이탈리아 북부지방 모데나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빵을 굽는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시가 공장에서 일했다. 어린 시절부터 노래를 좋아했지만 대학에서는 교육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교육자와 가수의 길을 모두 걸을 수는 없다는 아버지의 충고로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마추어 테너로도 활동했던 아버지와 함께 고향 모데나에서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음악에 입문하였다. 이후 1961년 레조에밀리아 극장에서 《라 보엠》의 루돌프 역으로 오페라에 데뷔했다.
한편, 파바로티와 소프라노 가수 미렐라 프레니는 같은 모데나 출신이며, 둘은 소꿉친구 관계에, 같은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란 젖 남매간이다. 어린 시절 같은 스승에게 성악을 입문한 둘은 훗날 세계적인 성악가로 거듭난 뒤에도 호흡을 맞추는 일이 많았는데, 특히 《라 보엠》에서의 호흡은 역대 최고의 미미와 루돌포라는 찬사를 받는다. 《라 보엠》은 프레니와 파바로티가 가장 선호하는 레퍼토리인데다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사이였으니 환상의 조합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음악의 길로 들어선 파바로티에게는 여러 가지의 성공요인이 뒤따랐다. 우선 타고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아름다운 음색과 폭발적인 성량, 뛰어난 고음처리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파바로티는 ‘벨칸토 창법’을 구사했다. 파바로티 이전까지의 리릭 테너는 미성으로 그냥 듣기엔 좋으나 무엇인가 폭발력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남았었다. 반면에, 파바로티의 음성에는 아름다운 서정성뿐만 아니라 남성다운 우렁참과 웅장함이 공존하고 있다. 벨칸토(bel canto)란 ‘아름다운(bel) 노래(canto)’라는 뜻이다. 벨칸토 창법은 극적인 표현이나 낭만적인 서정보다도 자연스러움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소리, 부드러운 가락, 훌륭한 연주효과 등에 주안점을 둔다. 그래서 치밀한 성량 조절, 유연한 음 처리, 화려한 기교가 요구되었다.

파바로티의 성공 뒤에는 훌륭한 스승들과의 만남이 있었다. 대중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실력 있는 음악선생인 아리고 폴라, 에토레 캄포갈리아니와의 만남은 최고의 행운이었다. 물론 이런 스승들과의 만남보다도 더 중요한 파바로티의 성공 비결은 언젠가는 꿈이 이루어진다고 믿고 항상 밝게 생활하는 낙천적인 성격과 꾸준한 노력이었다. 낙천적인 성격이었던 파바로티는 연주회에서도 밝고 경쾌한 곡들을 주로 선곡해 불렀다. 한번은 쓰리 테너 공연 중 실수가 있었는데, 이를 재치있게 만회하는 기교를 보여 청중들은 물론 같이 공연을 했던 나머지 두 사람의 테너들마저 즐겁게 만들었다.
그가 대중스타로 부상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만의 독특한 개성과 스타일도 커다란 요인이 되었다. 그의 짙고 검은 수염과 눈썹과 머리카락, 목에 두르는 스카프, 그리고 검은 수염과 대비되는 흰 손수건은 대중들에게 그의 이미지를 각인 시키는 매력의 포인트가 되었다.
그러나 오페라 가수로서의 난관 또한 없지 않았다. 우선 연기력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사실 파바로티의 뚱뚱한 체구와 그에 따른 몸짓에서 나오는 연기는 뭔가 어설픈 면이 있었다. 확실히 무대 위에서의 그의 모습은 그가 노래하는 멋진 오페라 속 남자 주인공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게다가 극본을 잘 외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성악가로서 결정적 약점은 악보를 잘 읽을 줄 몰랐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음악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악보보다 청각과 목소리가 더 정확했기에 그 약점을 극복해나갈 수 있었다.

파바로티는 일과 더불어 자신의 인생을 사랑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해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겼다. 여자관계도 복잡했다. 오페라 상대 배역 여가수들과의 염문은 물론이고 자신주변 여성들과의 스캔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가 음악에 입문하던 해인 1961년, 당시 경제학을 공부하는 대학생이었던 아두아 베로니(Adua Veroni)와 결혼하였다. 아두아는 파바로티와 40여년을 함께한 오랜 동반자였다. 부부 사이에는 세 딸이 생겼다. 그녀는 매우 현명하였다. 어차피 남편의 바람기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적당히 눈감아주었다. 그러나 2003년 결국 이혼하게 된다. 이혼사유는 파바로티와 그의 비서 니콜레타와의 염문 때문이었다.
파비로티가 1993년 니콜레타 만토바니(Nicoletta Mantovani)를 처음 만났을 당시 그의 나이는 58세였다. 거장 파바로티의 개인비서로 일하게 된 니콜레타는 첫 만남에서 파바로티에게 공손히 인사했으나, 그는 인사를 제대로 받아주지 않았다. 사실은 수줍음 많은 니콜레타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 알아듣지 못한 것이었으나 그녀는 분노했다. 이후 파바로티가 친절하게 다가올 때 분노는 사랑으로 바뀌었다. 마침내 두 사람은 35살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2003년 12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파바로티는 말년에 대중가수들과의 연합을 시도했다. 그는 전쟁고아들을 위한 자선 콘서트 ‘파바로티와 친구들(Pavarotti & Friends)’을 열었다. 일종의 자선사업의 성격인 이 행사는 1992년부터 시작되어 2003년까지 매년 고향 모데나에서 개최되었다. 엘톤 존, 머라이어 캐리, 셸린 디온, 스티비 원더, 안드레아 보첼리 등 세계적인 대중가수들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2006년 2월 이탈리아 토리노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부른 것이 그가 대중들 앞에 선 마지막 공연이었다. 2006년 췌장암 수술을 받았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2007년 9월 6일 7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장례 미사는 그의 고향 모데나의 성당에서 집전되었다. 그가 죽기 전 남긴 마지막 말은 이러했다. “음악을 위한 삶은 환상적이었고, 그로인해 나는 인생을 음악에 바쳤다.”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전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문화와 경제의 행복한 만남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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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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