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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주의 수선전도]영의정 아들이 불러온 '정권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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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남인 영수 허적..아들 허견 눈감다 정권교체 불러
340년전 조선 숙종 때 일화가 주는 교훈

[편집자] 수선전도(首善全圖)는 조선의 수도 한양을 목판본으로 인쇄한 지도입니다.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고산자(古山子) 김정호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쪽 도봉산부터 남쪽 한강에 이르기까지 당시 서울의 주요 도로와 동네, 궁궐 등 460여개의 지명을 세밀하게 묘사했습니다. 수선전도에 있는 지명들은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오승주의 수선전도'는 이 지도에 나온 동네의 발자취를 따라 지명과 동네에 담긴 역사성과 지리적 의미, 옛사람들의 삶과 숨결 등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오늘 숨가쁜 삶을 사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볼 계획입니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조선 숙종 5년(1679년) 음력 2월10일. 한 통의 상소가 왕에게 전달된다. 한성부 좌윤 남구만이 올린 상소다. 

'신이 맡고 있는 직책은 곧 서한 때 좌우내사와 경조윤이란 직책입니다. 대전(大典·경국대전)을 상고해 보면 한성부는 경도·사산의 싸움과 살인 등의 일을 관장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만약 이러한 일에서 금기 사항을 범하거나 월법한 자가 있으면 모름지기 귀천을 논할 것 없이 한결같이 율령으로 다스려야만, 비로소 사람들의 마음을 승복시키고 도성을 맑게 할 수 있거늘, 어찌하여 그 손을 올리고 내림에 따라 죄가 달라지겠으며, 힘이 있는 자는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 나가고 힘 없는 백성을 절절 매게 하십니까.

신은 항간에 파다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고(故) 청풍부원군의 첩의 동생은 곧 전(前) 교서정자 허견(許堅)의 아내인데, 부원군의 첩이 허견과 다툴 일이 있어 허견의 집에 갔다가 허견에 맞아 이가 부러지는 상처를 입고는 울부짖으며 귀가할 때 길에서 고래고래 지르는 고함 소리가 저자 거리를 크게 울렸으니, 누군들 그 소리를 듣지 못했겠습니까. 한성부에서는 대개 여염집 천한 부인네나 시정에서 품파는 종들이 사사로이 서로 치고 받거나 사소한 말다툼까지도 소송을 심리해서 처리함으로써 강한 자와 약한 자가 서로 능멸하는 폐단을 없애는 것인데, 유독 이번 일만은 법대로 추문하여 다스렸다는 말을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 부원군의 첩이 비록 천인이라고는 하지만 곧 자전(滋殿·왕의 어머니)의 서모(庶母)입니다. 허견이 감히 그렇게 구타하고 욕을 보였는데도 조신들은 전하를 위하여 말하는 자가 없으며, 본부(本府)에서는 법을 관장하는 곳으로 감히 따져 묻지 않으니, 이는 진실로 고금천하의 위태롭고 어지러운 그 어떤 나라에서도 있지도 않았고 들어본 적이 있지도 않았던 일입니다.'

요약하면 이렇다. 한성부 좌윤, 즉 요즘으로 치면 서울시에서 형벌을 조사하고 관장하는 관리 남구만이 '허견을 벌주라'는 상소를 올렸다. 조선시대에는 삼권분립 개념이 없어 한성부 좌윤이 서울시내 검사와 판사 역할을 겸임했다.

허견은 당시 영의정 허적(許積)의 서자다. 서자라고는 해도 아버지가 영의정이자 당시 권력을 쥔 당파인 남인(南人)의 수장이니 위세가 대단했던 모양이다. 청풍부원군의 첩이 무슨 일 때문인지 허견의 집에 따지러 갔다 두들겨 맞아 이가 부러졌다. 귀가하면서 온 한양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질러 도성에 그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런 큰 사건이 있었는데도 사건을 처리하는 관아에 고발장이나 고소장 하나 접수되는 일이 없었다. 성 안에서 사소한 싸움이라도 한성부 좌윤이 수사해 처벌하지만 이처럼 한양도성을 뒤흔든 사건이 발생했으나 본부(本府), 즉 한성부 내에서도 입과 귀를 닫고 모른척 했다. 세간이 떠들썩한 사안이었지만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없었다. 이에 참지 못한 한성부 좌윤 남구만이 영의정 서자인 허견을 처벌해 달라고 상소를 낸 것이다.

실록에는 숙종이 '깜짝 놀라' 해당 부서로 엄격하게 조사해 조치토록 했다. 그러나 영의정 허적도 상소를 낸다. 요즘 흔히 듣는 '사실무근'이라고 맞받아 친다. 임금도 여당의 당수가 사실무근이라고 강하게 주장하니 한발 물러선다.

'허적이 상소하여 이가 부러진 일을 스스로 해명하고 그것은 사실무근(事實無根)한 말이라고 아뢰니, 임금이 따뜻한 내용으로 비답하였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숙종 때 남인의 영수 허적의 초상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1호다. <자료=문화재청> 2020.09.17 fair77@newspim.com

◆사실무근이라는데..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끝난 게 끝난 게 아니었다. 영의정 아들과 관련된 사건은 정치권의 핵심 이슈로 떠오른다. 집권 여당인 남인은 '허견 구하기'에 '올인'한다. 사흘 뒤 임금에게 남구만이 올린 상소에 관한 직강 김정태의 반박상소가 올라온다. 직강은 성균관 정5품 벼슬이다. 요즘으로 보면 친여당 서울대 교수가 상소를 전달한 셈이다.

'직강(直講) 김정태(金鼎台)가 상소하기를, 듣건대 남구만이 아뢴 세 건의 일을 모두 조사하라고 명하셨다는데, 허견은 곧 수상(首相) 허적의 서자입니다. 허적의 충성은 다른 사람과 비교도 되지 않거늘, 늙은 나이에 어찌 즐겨 서자를 위해 전하를 속이는 짓을 하겠습니까. 전하께서 남구만의 속임수에 넘어가서 천하 후세에 웃음거리가 될까 염려됩니다.'

다시 말하면 조선의 영의정인 허적의 충성심으로 볼 때 아들의 잘못을 국왕에게 '거짓보고'를 하겠느냐는 뜻이다. 영의정이 '사실무근'이라 하니 그대로 믿고, 임금이 남구만의 상소에 현혹돼 조사에 들어가거나 하면 후세에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쯤되면 당시 야당인 서인(西人)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남구만의 첫 상소가 오른 지 20일 뒤 남구만이 또다시 상소를 제기한다. 이번에는 허견의 '백주대낮 남의 아내 강탈 사건'이 보고된다.

'남구만이 상소하기를, 남의 아내를 빼앗은 사건이 발각돼 법조에서 추핵해보니, 이동귀의 딸 이차옥은 서억만의 아내였습니다. 남에게 빼앗긴 사건이 발각되었으나, 허적의 압력을 받아 일이 실없이 되겠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납치과정도 상세히 기록돼 있다.

'여종 숙지가 공술하기를, 이동귀의 서족이 차옥을 맞이하고 그 또한 차옥을 따라가는데, 저물녘에 어떤 사람이 안장 얹은 말 한 필을 몰고 와서 급히 이르기를, '서동지(서억만의 아버지) 아내가 갑자기 병이 위독해졌는데, 마침 집 안에는 심부름할 사람이 없어 나에게 마중을 부탁했다고 하였습니다. 차옥이 깜짝 놀라 황급히 그 말을 타고 갔는데 말을 모는 사람이 채찍을 쳐서 마구 달렸으나 미처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길에서 한 사람에게 물었더니, 머리가 헝클어진 한 여인이 급히 사직동으로 향했는데(허적의 집이 바로 이 동네에 있다) 그 사람이 아닌 지라고 했습니다. 5, 6일이 지난 어느날 황혼에 차옥은 서씨집 문밖에 버려졌습니다. 이동귀 등이 데리고 와서 납치당한 연유를 물으니, 사직동 오른쪽 가에 한 집이 있는데, 집이 높다랗고 크며 마당이 널찍하였다고 했습니다.'

해가 저물녘에 말을 몰고 달려온 누군가가 이차옥에게 '시어머니가 위독하니 빨리 가자'고 하면서 말에 태웠고, 총알처럼 말을 달려 가버려 여종이 따라갈 수 없었다. 주인이 사라진 뒤 여종 숙지가 여기저기 물어보니, 사직동 큰 기와집으로 간 듯하다는 말을 들었다. 약 5-6일 뒤 서억만의 아내 이차옥이 문 밖에 버려진 채 있었는데, 물어보니 허적의 집이어서 의금부가 조사해보니 허견이 납치한 것으로 판명났다는 것이다.

20여일 사이에 허견이 잇따라 사고를 치면서 조정은 여야간 힘겨루기에 들어간다. 영의정 아들이 연관된 데다, 영의정 허적이 비호한다는 의혹이 일면서 정국은 격랑에 휩싸인다.

여당인 남인은 허적을 보호하기 위해 당력을 집중한다. 야당 서인은 총공세를 펼치며 집권당의 부도덕성을 부각한다.

승자는 누굴까. 야당은 집권여당을 이길 수 없었다. 전적 한범제가 허견의 죄를 논하였다 파직을 당했다. 첫 상소를 올린 좌윤 남구만은 유배를 당한다.

남인 당수 허적의 승리다. 허적은 왕에게 이렇게 말한다. '신의 자식이 만약 남의 아내를 빼앗아 신의 집에 두었다가 돌려보냈다면, 어찌 신이 집에 있으면서 알지 못할 리가 있습니까. 만약 신이 알면서도 아뢰지 않았다면, 이는 신의 죄입니다. 성상께서 물불 가운데서 건지시어 편안한 자리에 놓아주시니, 신은 실로 죽을 곳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같은 당에 속한 남인 권대운도 허적을 거든다. '뜻을 잃은 무리들이 밤낮으로 원망하고 독을 품어 기어이 일을 저질러 교묘하게 맞추려고 하고 있습니다. 조정에 있는 여러 신하들은 일찌감치 물러나는 것이 좋으며, 신들도 돌아가 전리(田里)에서 죽도록 하여 주소서.'

허적은 자기 집에서 일어난 일을 왜 내가 모르겠느냐며 마음을 알아준 왕에게 경의를 나타냈다. 집권여당의 멤버 권대운은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야당(서인)이 떠들어 대니 차라리 여당 고위층이 다 물러나서 고향에 가겠다며 숙종을 은근히 협박한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조선 숙종의 친필 휘호. 보물 제 1630호 숙종어필 칠언시다. 2020.09.17 fair77@newspim.com

◆영의정 아들 사건 막았지만..결국 정권 종말

영의정의 아들이 친 사고는 여당의 완승으로 끝났다. 그러나 허적과 남인정권이 보인 행태는 같은 남인 내부에서도 분란을 일으킨다. 남인의 원로이자 판중추부사 허목은 집권여당의 당수인 허적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린다.

'백성은 괴로워하는데도 일에 부지런하다는 것으로 주상의 뜻을 현혹시켜 권력을 독차지하는가 하면, 그의 서자 허견은 하는 짓이 무례하지만 법을 맡은 자도 그것을 막지 못합니다. 남구만의 상소로 일이 비로소 발로되기는 하였으나, 비호하고 덮어버려 남구만은 귀양가고 허견은 끝내 무사하니, 인심이 더욱 불쾌해 하고 있습니다. 의리를 버리고 세리(勢利)를 좇는 무리가 안팎으로 늘어서서 문정이 저자와 같고 뇌물이 줄을 이으며, 귀척·환관과 깊이 관계 맺고 아첨하고 아양떠는 자와 친히 지내니, 주상께서 이 사람과 더불어 국사를 꾀한다면 나라가 잘 다스려지기 어려울 것입니다.'(숙종 5년(1679년) 6월 13일·판부사 허목이 영의정 허적의 죄를 논하는 차자를 올리다)

여당 내부에서도 허적의 잘못을 지적하는 '내부총질'이 일어났지만 허적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의 잘못을 묵인한다.

불과 1년 뒤, 천년만년 갈 듯 하던 허적의 권세는 몰락한다. 계기는 허적의 오만과 비호에 급급했던 아들의 역모사건이다. 숙종 6년(1680년) 3월28일. 임금은 갑자기 군부 수장에 대한 교체를 단행한다. 남인이 맡고 있던 군부의 핵심 훈련대장과 총융사를 서인 김만기와 신여철로 교체한다.

'아! 재앙과 변이가 거듭 이르고, 불안한 의심이 여러 가지가 있고, 거짓말이 떠들썩하니, 서울에 있는 친위병을 거느릴 장수의 임명은 국가와 지극히 친하고, 직위가 높은 사람으로 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광성 부원군 김만기를 훈련대장으로 삼으니 곧 이날에 병부를 받아서 임무를 살피라. 총융사는 신여철에게 제수하니 또한 당일에 병부를 받아서 공무를 집행하라.'

이른바 서인에게 정권이 넘어가는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 경신환국의 시작이다. 숙종은 서인과 남인에 대한 견제와 숙청을 통해 왕권을 확립하는 환국정치에 능했다. 하지만 정권교체에는 명분이 필요했다.

이긍익이 지은 연려실기술에는 경신환국의 발단이 허적의 방자와 오만이라고 지적한다. 숙종은 허적의 할아버지 허잠에게 공로를 표하는 시호를 내렸다. 왕이 하사한 시호는 가문의 영광이다. 허적은 잔치를 열었는데, 이른바 유악(油幄)사건이 일어난다. 유악은 기름을 먹여 물이 새지 않도록 하는 천막이다. 허적의 잔칫날에 비가 오자 숙종은 왕이 궁중에서 쓰는 용봉차일을 보내도록 했다. 그런데 왕의 허락도 없이 허적이 이미 집으로 가지고 갔다.

허견의 사건으로 조정이 시끄러워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시점에 임금을 능멸하는 허적의 행동에 숙종은 남인을 몰아내고 서인을 등용한다.

여기에 허적의 아들 허견이 종지부를 찍는다. 허견이 종실인 복창군·복선군·복평군과 더불어 역모를 꾀한다고 정원로가 고변한 '3복의 변'이 터진다. 허적 일가와 남인의 실세 윤휴가 처형되고 관련된 남인들이 대거 축출됐다. 정권은 완전히 서인에게 돌아갔다.

한국고중세사 사전에 따르면 경신대출척은 조선의 정치사를 뒤바꾼다. 여러 당파가 야당과 여당으로 나뉘어 논쟁하면서도 때로는 협력하던 붕당정치에서 일당 전제의 형태로 바뀌었다.

이후 조선은 서인정권에서 서인 속에서도 하나의 가문인 안동김씨가 대대로 집권하는 세도정치로 변질된다. 사실상 일당독재가 수백년을 이어가면서 조선은 국력이 허약해져 결국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는 참화를 겪게 된다.

[서울=뉴스핌] 오승주 기자 = 조선 숙종초 정권을 이끈 남인의 영수 허적이 살던 서직단 일대(붉은 원표시)의 모습. <자료=수선전도> 2020.09.17 fair77@newspim.com

◆340년전인데 어디서 많이 본 모습

조선시대 남인정권은 소수파였다. 원래는 동인(東人)에서 갈라져 나왔다. 선조 때까지 정권은 동인들이 독식했다. 하지만 인조반정을 서인들이 주도하면서 조선후기는 서인천하로 바뀐다. 남인은 동인에 속했지만, 인조반정을 지지하고 가담하면서 정국의 파트너로 부각됐다. 숙종에 앞선 현종 때 정권을 잡아 숙종초까지 이어졌지만 경신대출척으로 철퇴를 맞고 세력이 약화됐다.

숙종15년(1689년) 장희빈 세력을 이용해 정국을 장악하기는 했지만 5년 뒤 장희빈이 몰락하면서 정계에서 멀어졌다. 영정조 시대 탕평책의 일환으로 어느 정도 역할을 다하긴 했지만, 서인 가운데 노론이 주도하는 판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정조 사후 중앙정계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340년전 조선 조정에서 벌어진 모습이 어딘가에서 많이 보던 모습이다. 현재 정치권과 판박이처럼 닮았다. 당시 소수정권이던 남인은 '밀리면 죽는다'라는 생각에서 무리한 방어를 했다. 그러나 그러한 오판이 종국에는 정권반납이라는 무리수의 단초가 됐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든 판단을 잘해야 하나 보다.

 

fair77@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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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골 잔치' 잉글랜드, 프랑스 6-4 제압 [서울=뉴스핌] 한지용 기자 = 잉글랜드 공격수 부카요 사카가 3·4위전에서 해트트릭(한 경기 3골 이상)을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프랑스의 주장 킬리안 음바페는 팀 패배 속에서도 멀티 골(한 경기 2골 이상)을 넣으며 이번 대회 및 월드컵 역사상 최다 득점자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잉글랜드는 19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3·4위전에서 프랑스를 5-3으로 눌렀다.  [플로리다 로이터=뉴스핌] 잉글랜드 부카요 사카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3·4위전에서 팀의 6-4 승리를 이끌었다. 2026.07.19 football1229@newspim.com 잉글랜드가 전반 3분 만에 앞서갔다. 해리 케인을 대신해 주장 완장을 찬 데클런 라이스가 상대 공격을 차단한 후 직접 공을 몰고가 중거리 슈팅을 날려 프랑스 골문을 열었다.  이후 라이스는 전반 18분 코너킥 상황에서 애즈리 콘사의 헤더 득점을 도우며 순식간에 공격 포인트 2개를 기록했다. 잉글랜드는 2-0으로 리드했다.  잉글랜드는 전반 37분 3-0을 만들었다. 잉글랜드 공격수 마커스 래시퍼드의 일대일 찬스가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이 루즈 볼을 부카요 사카가 잡자 골키퍼는 골문으로 복귀하지 못했다. 사카는 래시퍼드와 공을 주고 받은 후 비어 있는 골문을 향해 슈팅을 날려 세 번째 득점을 기록했다. 잉글랜드 수비가 발을 뻗어 공을 건드렸지만, 역부족이었다.  이후 전반 추가시간 사카가 날렵한 움직임을 통해 패스를 받은 후 왼발로 침착하게 마무리하며 멀티 골을 넣었다. 잉글랜드는 전반에만 네 골을 몰아쳤다.  [플로리다 로이터=뉴스핌] 프랑스 킬리안 음바페가 3·4위전서 대회 9·10호골을 기록, 득점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2026.07.19 football1229@newspim.com 후반전 프랑스는 교체 카드 4장을 꺼내들며 분위기 반전을 노렸다. 성공적이었다. 프랑스는 후반 주도권을 쥔 채 잉글랜드를 압박했다.  후반 3분 만에 음바페가 만회 골을 넣었다. 마이클 올리세가 침투하는 음바페를 향해 스루 패스를 찔러 넣었다. 음바페는 왼발로 볼을 밀어넣으며 대회 9호골을 기록했다.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8골)를 제치고 득점 단독 선두에 등극했다.  음바페는 도움도 기록했다. 후반 9 왼쪽 지역에서 침투하는 브래들리 바르콜라를 향해 좋은 패스를 넣어줬고, 바르콜라가 오른발로 마무리하며 2골 차로 추격했다. 후반 21분 음바페의 결정력이 다시 돋보였다. 페널티 박스 부근에서 올리세와 2대 1 패스를 주고 받은 음바페는 다시 왼발로 골문 구석에 공을 꽂으며 한 골차로 쫓아갔다.  [플로리다 로이터=뉴스핌] 잉글랜드 부카요 사카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3·4위전에서 팀의 6-4 승리를 이끌었다. 2026.07.19 football1229@newspim.com 동점 위기에 몰린 잉글랜드는 미드필더 주드 벨링엄과 엘리엇 앤더슨을 투입하며 에너지 레벨을 높였다. 이후 후반 42분 제드 스펜스가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사카가 키커로 나서 오른쪽 하단에 공을 차 넣으며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잉글랜드는 5-3으로 점수 차를 벌렸다.  이후 후반 추가시간 프랑스 우스만 뎀벨레가 한 골 더 만회하며 끝까지 추격 의지를 불태웠지만, 벨링엄이 추가골을 넣으며 경기를 끝냈다. 난타전이 펼쳐진 3·4위전에서는 양 팀 도합 10골이 터진 끝에 잉글랜드가 6-4로 승리했다.  한편 2012년부터 프랑스 대표팀을 맡았던 디디에 데샹 감독은 마지막 경기에서 패했지만, 웃으며 경기장을 떠났다. 데샹 감독은 2018 러시아 대회 우승, 2022 카타르 대회 준우승, 이번 대회 4위를 기록하며 프랑스 황금세대를 이끌었다.   또 이날 승리한 잉글랜드는 2900만 달러(약 432억 원), 4위 프랑스는 2700만 달러(약 402억 원)의 상금을 받는다. football1229@newspim.com  2026-07-19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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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넘 의원, 英 집권 노동당 새 대표로 [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북부의 왕'으로 불리는 앤디 버넘 의원이 17일(현지 시각) 영국 집권 여당인 노동당의 새 대표에 올랐다.  버넘 대표는 오는 20일 키어 스타머 총리를 이어 영국의 차기 총리 자리를 확정했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은 의회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집권당의 대표가 총리가 된다. 노동당은 이날 특별 당대회를 열고 버넘 의원을 당 대표로 공식 선출했다. 버넘은 전날 마감된 당 대표 경선 후보 등록에서 단독으로 등록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노동당 공보에 따르면 버넘은 노동당 소속 하원의원 379명과 노동조합·사회주의 단체 23곳의 지지를 받아 당 대표로 선출됐다"고 했다. 현재 노동당은 전체 의석 650석 중 403석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중 94%가 버넘을 당 대표로 선택한 것이다.  앤디 버넘 영국 노동당 새 대표가 17일(현지 시각) 특별 당대화에서 대표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샤바나 마무드 내무장관의 새 대표 선출 결과 발표와 함께 무대에 오른 버넘은 일성으로 "국민에게 희망을 되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는 "저를 지지한 노동당 의원들이 모두 영국 곳곳의 잊혀진 지역을 위해 과거의 노동당을 되찾아 달라는 요구를 들었다"면서 "우리는 그 부름에 응답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오늘 하나로 뭉쳤고, 그 힘을 오랫동안 정치로부터 희망을 잃은 사람들과 지역을 위해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다섯 가지 변화와 약속을 실천하겠다고 했다. 노당동의 단결을 위해 '파벌 문화'를 종식하겠다고 했고, "이번이 바뀔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면서 비난보다 문제 해결의 정치를 추구하겠다고 했다. 그는 "영국 정치가 덜 독해졌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세번째 변화로는 노동당의 정치적 지향을 거론하며 노동당답게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녹색당보다 더 녹색당처럼 행동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고, 영국개혁당(Reform UK)보다 더 개혁당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과거처럼 보수당 옷을 너무 많이 입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담대하고 자신감 있게, 진정한 노동당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북부와 남부, 동부와 서부,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북아일랜드 모두를 위한 지도자가 되겠다"는 것이 네 번째 약속이고, 중앙정부가 독접하고 있는 권한을 웨스트민스터와 화이트홀에서 지역 사회로 되돌려주는 지방분권이 다섯 번째 약속이라고 했다.  버넘 대표는 자신이 친기업 노선을 취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그레이터맨체스터 시장 시절 친기업적인 시장이었듯이 노동당 대표가 된 뒤에도 친기업적인 지도자가 될 것"이라며 "우리는 기업과 함께 지역을 되살렸고 그 방식을 영국 전체로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1970년 1월 리버풀 북쪽 교외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15세 때 노동당에 가입했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영어를 전공한 뒤 의원 보좌관 등을 거쳐 2001년 총선에서 그레이터맨체스트의 리(Leigh) 선거구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16년간 하원의원을 지냈다.  이 기간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 정부에서 내무부·재무부 차관, 문화장관, 보건장관 등을 역임했다.  2010년과 2015년에 당 대표에 도전했지만 에드 밀리밴드와 제러미 코빈에서 패했다.  2017년 중앙정치를 떠나 새로 만들어진 그레이터맨체스터 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2021년과 2024년 선거에서도 내리 승리했다.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버스 공영화를 추진하고 통합 대중교통망 구축과 주택 공급 확대 등으로 시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중앙 정부에 맞서 북부 지역 지원 확대를 요구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이때부터 '북부의 왕(King of the North)'이라는 별명이 널리 퍼졌다. 버넘 시장 재임 시절 그레이터맨체스터는 전국 평균을 상회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버넘 대표는 당 대회 연설에 앞서 소셜미디어에 "앞으로 며칠은 영국을 누가 통치하느냐만 바꾸는 것이 아니며 영국이 어떻게 통치되는지를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권력을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릴 기회"라고 했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현 스타머 총리보다 더욱 왼쪽에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주택과 교통, 교육 등과 관련된 권한을 지방으로 분산해 각 지역에 맞는 경제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는 내용의 '맨체스터리즘'(Manchesterism)을 주장한다.  맨체스터에 제2 총리실을 둬 중앙정부와 효율적으로 업무를 조율하는 '북부 총리실(No. 10 North)' 구상도 밝혔다.  ihjang67@newspim.com   2026-07-17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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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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