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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이제는 정치혁신'] 한국은행, 민주주의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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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오르면 정부는 무엇을 하느냐고 국민들은 원성이지만, 사실 물가가 오르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때 가장 깊은 고민에 빠지는 곳은 다름 아닌 중앙은행이다. 과일 값이 오를 때 정부는 수입이나 대체과일, 정부지원 등 재정과 무역을 통해 물가를 잡으려고 하지만, 근본적으로 시중에 풀린 자금을 회수하고 푸는 것은 중앙은행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바라보는 경제상황에 대한 견해가 같거나 비슷하면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정반대의 입장일 때는 불편한 관계가 된다. 예를 들어 정부가 코로나 때와 같이 국민지원금이나 자영업자 지원 등으로 막대한 자금을 풀어 소비진작을 통한 경제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할 때,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걱정하면서 풀린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갑자기 올린다면 둘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둘의 관계는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는 자동차의 치킨게임처럼 비쳐지게 된다. 왜냐하면 정부가 지원한 생활비 지원자금은 외식, 국내여행, 쇼핑 등의 소비 활동진작에 쓰이지 못하고 가계부채의 높아진 이자비용만큼 은행으로 들어가게 되어 정책효과를 전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정부는 중앙은행장 해임을 고려할 수 있을까? 또한 중앙은행은 정부와 대척점을 이루며 정부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서라도 화폐조절을 통한 자신만의 정책기조를 고수해야 할까? 중앙은행이 정부의 정책에 사사건건 반기를 들고 엇박자가 되면 정부는 처음부터 고분고분하게 자신들의 말을 따를 수 있는 총재를 뽑아 애초부터 문제를 제거하려고 하지 않을까?

이 같은 가상적 상황은 결국 중앙은행이라는 국가기관의 독립성과 중립성 보장이라는 민주주의 문제로 귀착된다.

중앙은행이라는 제도는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중앙은행 고유의 역할은 무엇이며, 세계 각국에서는 정부로부터의 독립적 관계를 어떻게 보장되고 있을까? 각국의 독립성을 측정해 볼 수 있는 국제적 지표는 있을까.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 수준일가?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출처=블룸버그통신]

세계 제1위 권력자, 미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장

4명의 미국 대통령을 보좌하고 빌 클린턴 정부에서는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던 로버트 리치(Robert B. Reich) 교수는 세계 최고의 권력자는 미 대통령이 아닌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장이라고 그의 자서전에서 적고 있다. 정치 베테랑이었던 리치가 주목한 그린스펀은 1987년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후 2016년 직위에서 물러나기까지 조지 부시, 빌 클린턴 그리고 조지 W. 부시까지 4명의 대통령의 대통령과 함께 미 연방은행을 이끌어 온 수장이다.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사건은 바로 검은 월요일(Black Monday) 패닉사태다.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발생한 주가폭락사건은 1929년 발생한 두 번의 월스트리트 대폭락 수치보다 훨씬 파괴적이었다. 홍콩에서 시작해서 유럽으로 이어진 폭락사태가 대서양을 건너 미국까지 이르러 다우존스 지수가 22.61% 하락해 세계경제를 패닉상태로 몰아넣었을 때 그린스펀이 신속하게 금리를 낮추고 통화량을 대폭 증가시킴으로써 경제위기는 가까스로 수습되었다. 주가대폭락을 신속하게 대처한 그린스펀은 세계적 주목을 단숨에 받으며 스타덤에 뛰어올랐다.

그의 뒤를 이은 벤 버냉키(Ben Bernanke), 재닛 엘렌(Janet Yellen), 제롬 파월(Jerome Powel)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도 그린스펀 만큼 인지도는 없어도 세계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다. 자국의 중앙은행장 이름은 생소해도 미국 연준위의장의 이름이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은 아이러니다.

중앙은행의 역사

1401년에 설립된 바르셀로나 은행(Taula de canvi de Barcelona)은 지방 공립 은행의 첫 번째 사례다. 1407년 이를 모방해 제노바 공화국의 세인트 조지 은행(Bank of Saint George)이 설립되었고, 베니스에도 지로은행(Banco del Giro)이 설립되었다. 1609년 암스테르담 은행과 1619년 함부르크 은행이 차례로 설립되었다. 이 은행들은 국제 무역의 효율성을 높이고 통화 안정성을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며 지방 공공 은행으로 활동하며 중앙은행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했다.

국가가 소유한 중앙은행은 1688년 스웨덴 신분의회가 소유한 국가은행(Riksens Ständers Bank)이 세계최초다. 안정적인 화폐보유를 통해 전쟁을 치를 수 있는 군대조직과 무기제작 등을 위해 설립되었기 때문에 국왕의 통치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이 때는 스웨덴이 30년전쟁의 승전국으로서 유럽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1899년 릭스방크법에 따라 스웨덴 릭스방크로 이름을 바꾸며 1931년부터 1975년까지 금본위제를 택해 국가가 보유한 금의 가치만큼만 지폐를 만들어 시중에 유통시켰다.

영란은행.[사진=로이터 뉴스핌] 2023.11.02 mj72284@newspim.com

스웨덴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1694년 설립된 영란은행은 주식회사형태의 특허회사로 출발했다. 1690년 프랑스 해군과의 전투에서 대패하면서 해군육성이 시급했던 영국은 런던정부의 낮은 국제신용과 자금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란은행법(The Bank of England Act)에 따라 은행을 설립했다. 골자는 런던과 웨스트민스터의 자본가들이 개인 최대 £10,000 투자를 유도해 함대를 건조할 수 있는 150만 파운드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즉 대주주들이 참여해 만든 주식회사와 같은 형태를 띤 은행으로 이 같은 형태는 1946년까지 유지되었다.

영란은행은 주주들이 소유한 주식회사 형태에서 국가가 국유화해 중앙은행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세계중앙은행 형성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첫 번째 계기는 월터 베이지호트(Walter Bagehot)가 쓴 '롬바르드가(街) (Lombard street: A Description of the Money Market, 1874)'에서 국가소유의 중앙은행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했다. 롬바르드 거리에서 활동했던 오버랜드 거니 은행(Overend, Gurney and Company)이 은행이 유동성 위기가 왔을 때 영란은행에 지불보증을 해 주지 않아 생긴 파산문제는 국가 중앙은행의 공공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주식회사였던 영란은행의 주주들은 자신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우량은행의 일시적 자금부족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중앙은행의 존재는 국가경제에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다.

두 번째 영란은행의 위상에 영향을 끼쳤던 문서는 맥밀란 보고서(Macmillan Report, 1931)다. 맥밀란 위원회는 뉴욕 주식의 폭락사태에 따라 얼어붙은 영국의 금융시장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이 위원회에는 존 메이나드 케인즈(John Meynard Keynes)도 조사위원으로 참가해 함께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이 위원회의 권고사항은 바로 영란은행의 국유화였다. 중앙은행의 개입 없이 국내 금융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는 보고서의 내용에 따라 1946년 국가가 소유하는 중앙은행으로 재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 번째 문서는 라드클립 보고서 (Radcliffe Report, 1959)다. 2차대전 이후 전후 복구를 위해 중앙은행이 개입하는 것보다 정부가 직접 개입해 영란은행을 지휘하고 통화정책과 경기관련 정책에 있어 정부가 우선권을 가지고 주도해야 한다는 권고안이 강력하게 제시되어 논란이 되었다. 중앙은행은 정부의 지휘와 감독 하에 운영되어야 한다는 권고안이었다. 2차대전 이후의 산업재건, 국가인프라건설, 그리고 주택건설 등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을 관리하고 마셜플랜으로 미국과 긴밀한 공조체제를 유지해야 했던 정부의 역할에 힘을 실어준 보고서였지만, 이후 영국에서는 영란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요구가 봇물을 이루며 중앙은행의 고유권한과 독립성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했다.

루이 14세 사후 존 로(John Law)가 설립한 일반민간은행(Banque Générale - Banque Générale Privée)은 1716년 5월 20년 인가를 받은 주식회사였다. 침체된 프랑스 경제를 활성화하고,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을 비롯한 루이 14세의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막대한 국가 부채를 청산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지만 중앙정부의 소유는 아니었다. 1800년 나폴레옹의 주도로 프랑스은행 (Banque de France)이 처음으로 설립되어 중앙은행으로서의 기능을 갖기 시작했다.

중앙은행의 역사 속에서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는 유럽의 중앙은행들보다 한참 늦은 1913년에야 설립되었다. 은행들은 평상시 예금자로부터 예치된 자금의 대부분을 투자에 쓰기 때문에 예금자들이 예치한 은행의 지불능력에 의구심을 갖고 일시에 현금을 찾으려고 할 때 발생하는 예금인출에 속수무책이 된다. 1930년대에 발생했던 대공황을 거치면서 위기상황에서 발생하는 뱅크런(Bankrun)에 대비하기 위해 연방준비제도에서 '부분 지급준비금제도'가 갖춰졌다. 또한 뱅크런이 발생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통화량을 재량껏 조절할 수 있게 하는 탄력적 통화정책을 통해 통화량을 늘렸다 줄였다 하는 역할도 포함되었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는 달러 발행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국가 소유의 중앙은행이 아닌 민간상업은행들(privately-owned commercial banks)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현재 미국 정부는 민간 기업인 연방준비제도로부터 대가를 지불하고 달러를 빌려오는 식으로 화폐를 조달하고 있는 형태다.

1971년 닉슨의 달러정책, 세계 중앙은행 화폐정책의 대변혁

2차대전이 끝나갈 무렵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체결한 조약은 본격적으로 1958년부터 가동되기 시작했다. 경쟁적 평가절하를 막아 세계 경제성장을 촉진하며 마셜플랜 하에 경제복구를 추진 중이었던 유럽과 일본은 미국산 제품을 수입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화폐는 자연스럽게 달러에 고정되었다. 금1온스 당 35달러의 고정환율로 자국의 화폐를 바꿀 수 있었다. 세계 금의 70%를 보유하고 있던 미국은 세계경제를 이끄는 단일 마차였기 때문에 브레튼우즈 체제는 잘 작동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1970년에 이르자 서독과 일본, 영국과 프랑스, 캐나다 등의 경제성장이 빠르게 이루어지면서 미국이 세계경제생산에 차지하는 비율은 27%까지 수직낙하했다. 베트남전쟁으로 늘어난 국가채무, 국제수지의 적자악화, 통화팽창 등의 결과가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1971년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5.84%, 그리고 8월 기준 실업률은 6.1%까지 치솟았다.

닉슨(Richard Nixon) 대통령은 급히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장, 재무장관, 재무부 국제담당재무 국장 핵심인물을 대통령 별장 캠프데이비드에 불러 비밀회합을 가졌다. 결국 달러와 금 사이의 태환제도를 중지하기로 결정했다. 임금과 가격을 한시적으로 90일 동안 동결하고,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을 낮추기 위해 수입품에 10%의 관세를 책정했으며, 이를 8월 15일 일요일 바로 발표했다.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미국은 임금과 가격을 통제한 것이다. 이를 역사는 1971년의 닉슨쇼크(Nixon shock)이라 부른다.

처음에는 국내외적으로 성공하는 듯했다. 8월 15일 발표한 다음 날인 월요일 다우존스는 일일 사상 최대 상승폭으로 올랐고, 뉴욕타임스도 긍정적 사설을 실었다. 1971년 12월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후속 조치도 이끌어 냈다. 독일의 마르크화, 일본의 엔화 등 각국 통화의 미국 달러화에 대한 평가 절상이 이루어졌다. 이를 스미소니언 협정(Smithsonian agreements)이라 한다.

1973년에는 3월에는 고정환율제를 변동환율제로 바꿔 무역수지에 따라 환율이 자동조절되는 시스템으로 전환했다. 모든 것이 미국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변동환율제는 라인강의 기적과 한국전쟁의 특수로 경제의 붐이 일고 있던 독일과 일본의 마르크와 엔화의 가치를 가파르게 상승하게 했지만, 달러화의 가치는 계속 줄어들어 두 화폐 대비 2분의 1의 가치로 계속 떨어졌다. 달러 가치의 지속적 폭락, 세경경제 2위와 3위 화폐의 가치상승은 스미소니언 합의도 폐휴지로 만들어 버렸다.

이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바로 플라자 합의(Plaza Accord)다. 1985년 9월 미국, 일본, 서독, 영국, 프랑스 재무장관들이 뉴욕 플라자호텔에 모여 합의한 환율조정에 따라 달러 대 엔환율을 1달러에 250엔에서 120엔으로 대폭 조정하여 일본의 수출 경쟁력을 낮추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결국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라는 긴터널이 시작된 것이 바로 플라자 합의라 할 수 있다. 잘 나가던 일본경제가 이 기점으로 경쟁력을 서서히 상실하면서 버블이 꺼져가지 시작했다. 플라자 합의 이후 반사이익을 본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1986년부터 3년 연속으로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12% 이상을 기록했을 정도였다.

한국의 경제성장률 [자료=한국은행]

중앙은행 독립성, 정치학 연구의 영역으로 들어오다

중앙은행의 위상이 정치학 연구의 한 영역으로 들어온 것은 온전히 리파르트(Arend Lijphart) 교수의 덕이다. 그의 저서 민주주의의 형태(Patterns of Democracy, 1999/2012)에서 중앙은행의 정부로부터의 독립정도는 민주주의의 작동방식과 매우 연관이 높다고 주장한다. 리파르트 교수는 세 가지의 변수에 주목하라고 주문한다. 첫째, 연방주의와 지방자치 수준이 높을수록 독립성은 올라가고, 단방형 중앙집권국가에서는 독립성이 침해된다고 주장한다. 이 모델에 따르면 독일, 스위스, 미국, 오스트리아, 캐나다 등이 이에 포함된다. 이들 국가들의 1945-94년 사이 중앙은행 독립성 지수는 상위그룹에 속해 이 상관성은 0.6 정도에 이른다. 둘째, 노사 간의 협조체제가 공고한 국가일수록 독립성이 높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노사 간의 공조체제가 안정적으로 작동되면 국가가 경기부양이나 실업률 통제를 위해 중앙은행이 덜 개입할 것이라는 가설이다. 하지만 상관관계는 0.10으로 매우 낮아 신빙성은 떨어진다. 셋째는, 비례대표제로 권력이 공유되어 있는 국가일수록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가설이다. 두 번째 논리와 마찬가지로 권력이 분산되어 중앙은행에 압력을 행사하는 경향이 줄어들 것이라는 가설이다. 하지만 이 모델은 0.06의 상관관계를 보여 거의 신빙성은 낮은 주장이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제, 단방제, 중앙집권제, 다수대표제를 적용하고 있는 국가로 대체로 위 3가지의 가설이 맞아 떨어진다. 1945-94년 사이 평균 0.27에 머물고, 1945-2010년까지의 평균도 0.36, 그리고 1995-2010년 기간 동안은 0.41로 대체로 최하위권에 있어 3개의 가설이 모두 해당되는 국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과 뉴질랜드, 노르웨이 등의 중앙은행 독립성 정도가 우리나라보다 낮게 나오기 때문에 전혀 설명력이 떨어진다. 위 세 나라는 단방제는 모두 동일하지만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고, 권력분산형 모델이라 우리나라와 비슷한 것이 많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이 결정적으로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까? 

미국과 우리나라 중앙은행의 독립적 위상을 훼손시킨 사례들

사례 1. 존슨 대통령과 윌리엄 마틴 위원장과의 갈등

미국에서 이와 비슷한 사례는 이미 1951년과 1970년 사이 의장이었던 윌리엄 마틴(William McChesney Martin Jr.)과 존슨(Lyndon B. Johnson) 대통령과의 갈등은 더 극적이다.

1965년 12월 5일의 존슨 대통령이 "위대한 사회"를 실천하기 위한 국내 프로그램 확대, 1964년 제정된 세금 감면,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 대한 지출 증가 등의 재정 부양책을 들고 나왔을 때, 연준의장이었던 마틴 주니어(William McChesney Martin Jr.)는 경제가 과열되는 조짐이 있다고 보고 기준금리 인상을 고려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은 금리 인상이 경제를 둔화시킬 것이라고 분노하며 연준의장과 경제 관료들을 텍사스 목장으로 불러 모았다. 그날 모임에서 존슨 대통령은 담낭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상태에서도 격정을 참지 못했다. 하지만 연준의장도 단호했다.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고 한다.

"제가 옳고 대통령이 틀린다는 것은 이야기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연방준비제도법이 금리에 대한 책임을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부여했다는 매우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결정이 최종적이어야 하는 몇 안 되는 경우 중 하나입니다." (리치몬드 연방준비제도 홈페이지. 1965: The Year the Fed and LBJ Clashed. https://www.richmondfed.org/publications/research/econ_focus/2016/q3-4/federal_reserve)

결국 존슨 대통령은 그의 뜻에 따라야 했다.

사례 2. 트럼프 대통령의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위원장 길들이기

2018년 12월 10일자 워싱턴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 임명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장을 향해 일련의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중앙은행을 '미쳤다'고 표현하며 '중국보다 훨씬 더 큰 문제'라고 파월의장을 길들이려 했다는 것이다. 또 기사에서 '제롬 파월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봅시다'라며 강제퇴임 조치까지 시사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꺼내며 압력을 가했다. (2018. 12. 10. 워싱턴 저널).

미국 민주주의의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사례 3. 박근혜 정부 시절 경제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와의 밀월관계

부동산 규제 및 대출규제 완화를 골자로 하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시절 정부 정책에 지나치게 순응하면서 중앙은행의 정치적 독립성이 훼손되었다는 비판이 거세게 제기된 적이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취임 이후 금리가 2.5%에서 1.25%로 내려 가계대출 비중이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국정감사에서 야당이 이를 따져 물었다. 2017년 10월 한국은행 국정감사장에서 당시 한 의원과 한국은행 총재와의 질의답변이다. "취임 당시 2.5%였던 기준금리가 1.25%로 반 토막이 됐다. 소신을 못 지킨 게 이해가 안 된다". 질의에 대해 총재는 "5차례에 걸친 금리인하는 경기흐름의 모멘텀을 살리는 데에 기여한 것이다. 통화정책은 그야말로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자율적, 중립적으로 결정되고 있다".

경제부총리와의 압력에 의한 결정인지, 자율적이며 독립적 판단인지 의문이 남는다.

사례 4. 문재인 정부시절 경제부총리의 한국은행 총재에 대한 압력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2019년 7월18일 기준금리를 1.75%에서 1.50%로 0.25%포인트 낮췄다. 2018년 11월 기준금리를 올렸다가 8개월 만에 돌려놓았다. 시장에서는 같은 해 7월에는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8월경 인하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당시 한국은행 총재는 "경기 회복을 뒷받침할 필요성이 한층 커졌다"며 정책공조 필요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여러 차례 한국은행에 간접적으로 금리인하를 요구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에 이 말의 신빙성을 의심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경제부총리는 2019년 5월 기자간담회, 7월 4일 라디오 인터뷰 등을 통해, "변화한 경제여건을 감안해 금통위가 합리적이고 적절한 판단을 할 것", "국제적으로는 전체적으로 금융정책과 재정정책을 같이 하는 폴리시 믹스(Policy Mix)가 고려된다" 등의 발언으로 한국은행의 7월 금통위를 앞둔 시점에서 지속적으로 압력 시그널을 보냈다.

이런 발언들을 두고 경제부총리의 지속적 압력이 금융정책에 영향을 미쳐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기도 했다.

[서울=뉴스핌] 사진공동취재단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한은 금통위는 연 3.50%인 기준금리를 12차례 연속 동결했다. 2024.07.11 photo@newspim.com

한국은행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면

우리나라의 국제적 평가는 냉정하다. 리파르트 교수가 제시한 국제비교에서 확인할 수 있듯 우리나라의 한국은행 독립지수는 하위권에 속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무리 한국은행이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정책을 펼친다고 해도 정부의 압력과 무관하게 완전히 정부의 의지와 단절될 수는 없다.

미국의 제롬 파월이 트럼프가 보란 듯 정부가 압력을 가하는 것과 반대로 금리인하를 끝까지 거부하고 반기를 들었던 사례나, 존슨 대통령의 엄포에도 당당하게 맞선 마틴 주니어의 한마디가 강하게 와 닿는다.

"나는 연방준비제도법이 금리에 대한 책임을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부여했다는 매우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결정이 최종적이어야 합니다".

대통령과 경제부총리의 눈치보지 말고, 당당하게 통화안정과 물가안정, 그리고 경제성장의 큰 틀에서 자율적 결정의 잣대를 확실히 하고 국민만 바라보고 결정하는 한국은행이 되어 한국이 국제비교에서 당당히 세계 최고수준으로 소개되는 날이 하루 속히 오길 바란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최연혁 교수. 2024.01.15 mironj19@newspim.com

*필자 최연혁 교수는=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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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듀오 내년 1월까지 배송 지연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심재민 인턴기자 = 애플의 첫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 듀오'가 사전예약 직후 품귀 현상을 빚으며 배송 일정이 내년 1월까지 밀렸다. 이례적인 수요에 따른 흥행 신호로 해석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생산 수율 저하와 핵심 부품 공급 차질이 물량 부족을 심화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생산이 안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70여개국 동시 출시를 추진한 애플의 전략적 판단도 공급난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애플의 첫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 듀오' [사진=로이터 뉴스핌] ◆ 10대 중 4대 품질 기준 미달…증산에도 공급난 지속 21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아이폰 듀오는 지난 16일 사전예약을 시작한 지 30분 만에 일부 모델의 배송 예정일이 내년 1월로 미뤄졌다. 오는 23일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지만, 지금 주문하면 제품을 받기까지 약 3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애플은 사전예약 수요가 이례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실제 예약 건수와 초기 공급량이 공개되지 않은 만큼 장기간의 배송 지연을 수요 폭증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핵심은 생산 수율이다. 중국 경제매체 지몐신문은 지난달 21일 폭스콘 공급망 관계자를 인용해 아이폰 듀오의 완제품 조립 수율이 9월 17일 기준 60%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생산된 제품 10대 중 4대 가까이가 품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당시 공급망 관계자는 애플의 품질 기준을 유지할 경우 생산라인이 안정적인 수율에 도달하기까지 6개월에서 1년이 걸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수율 문제는 최근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메리츠증권은 지난 19일 보고서에서 외장 힌지와 초박형유리(UTG) 등 핵심 부품뿐 아니라 최종 조립 단계에서도 수율 부진이 발생해 생산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애플이 공급망 주문량을 늘리고 있지만 단기간에 물량 부족을 해소하기 어려운 이유다. 중국 증권시보는 지난 10일 애플이 아이폰 듀오의 부품 주문량을 기존보다 30% 늘렸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부품 확보량을 늘리더라도 최종 조립 수율이 개선되지 않으면 실제 출하량을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 애플의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듀오' [사진=블룸버그통신] ◆ 70여개국 동시 출시 강행…국내 초기 물량 3만대 공급 부족을 예상하고도 글로벌 동시 출시를 선택한 판단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블룸버그는 지난 18일 애플이 당초 미국과 중국에 먼저 출시한 뒤 판매 국가를 확대하려던 계획을 바꿔 70여 개 국에서 동시에 사전예약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제한된 초기 생산 물량을 여러 국가에 배분하면서 공급 부담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국내에서도 물량 부족이 현실화하고 있다. 통신업계가 파악한 아이폰 듀오의 한국 초기 공급 물량은 약 3만대 수준이다. 통신 3사의 일평균 스마트폰 개통량인 약 2만대와 비교하면 이틀 치에도 못 미친다. 통신사들은 첫 폴더블 아이폰 출시를 앞두고 고객 유치에 나섰지만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품 수령 지연에 따른 고객 문의와 불만까지 유통 현장에 집중되면서 정식 출시 이후에도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IT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품귀 현상을 폭발적인 수요에 따른 흥행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생산 차질이 장기화하면 출하 목표 달성이 어려워지고 삼성전자 등 경쟁사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flurry327@newspim.com 2026-10-2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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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사망설, 왜?…"독재 체제가 불러온 고질병"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42)이 뇌출혈로 쓰러져 중국 병원에서 숨졌다는 소문이 한반도를 넘어 지구촌을 뒤흔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사망설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가짜뉴스다. 의료기록이나 목격자, 하다못해 정황을 뒷받침할 만한 최소한의 방증이나 전언도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도 소문은 외신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는 물론 국내 언론과 증권가까지 순식간에 번졌다. 사망설 자체보다 이 소문 앞에서 우리 사회가 보인 허술한 대응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뉴스핌]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지난 19일 '전국 피복·신발전시회-2026' 전시장을 찾아 간부들에게 뭔가를 지시하고 있다. 김정은의 오른쪽은 딸 주애. [사진=북한매체 종합] 2026.10.20 ◆'중국 반체제 인사의 X 글'에 휘둘려 메가톤급 소문의 진원지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반체제 인사 셰완진(謝萬軍)이다. 그는 19일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전해지기로 김정은과 시진핑이 같은 병에 걸렸다. 김정은은 죽었고 시진핑은 죽음이 아직 멀었을까"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어 김정은이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의식을 잃었고 북한의 열악한 의료 여건 때문에 중국에 도움을 요청해 중국 의료진이 급파됐다고 주장했다. 베이징의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았으나 골든타임을 놓쳐 결국 사망했다는 얘기다 시신은 북한으로 비밀리에 운구됐고 북한은 이를 숨기고 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던지면서도 그는 어떤 출처나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셰완진이 중국에서 불법단체로 규정된 '중국민주당 주석'을 자처하며 시진핑 주석 사망설이나 대역설 같은 허위·날조 사실을 SNS에 올려온 인물이란 점에서 신빙성은 떨어진다.  그런데도 영국 더선 등 해외 매체들이 이를 받아 전하면서 소문은 증폭됐고 여기에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장의 권력 장악설이나 중국군 파병설까지 얹혔다. 근거 없는 이야기에 그럴싸한 살이 덧붙여지면서 가짜뉴스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사실 사망설이 한창 번지기 시작한 19일 김정은은 부인 이설주, 딸 주애와 함께 평양에서 열린 '전국 피복·신발 전시회-2026'을 참관했다. 이튿날 북한 관영매체들은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이를 보도했다. 하지만 집요한 가짜뉴스는 이를 견강부회식으로 해석했다. '사망 사실'이 퍼지니 북한 당국이 이를 은폐하고 기만하기 위해 거짓으로 김정은과 가족의 일정을 공개한 것이란 주장까지 내놓으면서 그럴듯하게 포장을 했다. ◆'뇌졸중 쓰러져 中병원 이송'…뻔하고 반복된 레퍼토리 눈여겨볼 대목은 김정은 사망설에서 드러나는 클리셰(Cliché)다. 뇌출혈로 쓰러졌다거나 북한 의료진이 속수무책이라 중국 병원으로 옮겼다, 혹은 시신은 몰래 평양으로 반입했다는 등의 레퍼토리는 과거 북한 지도자의 신변 이상설이 나올 때마다 되풀이된 판박이다. 과거 북한 최고지도자의 사망설 확산 사례를 돌아보면 그 패턴이 드러난다. 1986년 11월 김일성 주석 피격 사망설이 나왔다. 당시 외신과 국내에서 소문이 크게 부풀렸고 최전방 북측 지역에 조기가 걸렸다는 말까지 나왔다. 결국 김일성이 얼마 뒤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오보로 판명됐다. [서울=뉴스핌] 지난 2011년 12월 28일 평양 금수산태양궁전 앞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 장례식에서 아들이자 후계 최고권력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당시 직책은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운구차 옆을 걷고 있다. [사진=북한매체 종합] 2026.10.20 2008년 9월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권수립 60주년 행사에 불참하면서 와병설이 퍼졌다. 이 경우는 뇌졸중으로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망설과는 별개였고 김정일은 이후에도 3년 넘게 통치했다. 정작 2011년 12월 김정일의 실제 사망은 이틀 가까이 지난 뒤에야 공식 발표됐다. 김일성 주석 때도 1994년 7월 사망 후 하루 이상 지나서 발표됐다. 소문은 엄청나게 번지고 정작 진짜 사망 때는 깜깜무소식으로 있다가 북한 발표가 나오고서야 알게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이런 양상은 이어졌다. 2014년 9~10월 김정은이 약 40일간 공개 활동을 하지 않아 유고설이 불거졌지만 지팡이를 짚고 다시 나타났다. 과체중으로 추정되는 다리 혹은 관절 수술 때문으로 파악됐다. 2020년 4월에는 김일성 생일 참배 불참을 계기로 심혈관 수술 후 위중설, 사망설이 퍼졌다. 일부 정치인이 "99% 확신한다"고까지 단언했지만, 김정은은 20일 만인 같은 해 5월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5월에도 원산에서 현지지도 중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는 소문이 외교가와 증권가를 중심으로 돌았다. 번번이 오보로 끝났지만 가짜뉴스와 소문은 '죽지 않는 각설이'처럼 주기적으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일단 베껴 쓰고 보자'…줏대 없이 흔들린 언론 이번 사태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은 언론의 대응이다. 유력 외신뿐 아니라 우리 언론도 줏대 없이 흔들렸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확산일로를 걸으니 '일단 베끼거나 받아쓰고 보자'는 심리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남이 쓰니 나도 쓰고, 안 쓰면 낙종이 될까 불안해 쓰는 식이다. 그 결과 독자와 시청자, 국민은 전례 없는 혼란을 겪었다. 소문이 가장 먼저 들이닥친 주식시장은 출렁였고, 포털과 SNS에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넘쳐났다. 유튜브 일부 채널과 콘텐츠는 한술 더 떴다. 자극적인 제목과 섬네일을 앞세워 사망설을 기정사실처럼 다루며 혼란을 부채질했다. 조회수와 수익이라는 상업적 계산 앞에서 최소한의 사실 확인 의무는 실종됐다. 필자 또한 이번 사태의 한복판에서 적지 않은 시달림을 겪었다. 수많은 지인과 독자들로부터 '정말 사망한 것이냐', '평양이 지금 난리라는 데 파악해 볼 수 있냐'는 문의 전화와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지난 34년간 북한 취재 현장에서 여러번의 '사망·유고설'을 겪었지만 이번은 유독 파장이 크다. 최근의 남북관계와 북한 김정은과 김여정 남매의 비정상적이고 호전적인 도발 상황이 국민이 불안감을 키운 것이란 생각도 든다. ◆'강 건너 불구경'식 정부 대응도 문제 정부 대북부처의 대처도 비판받을 소지가 많다. '가짜뉴스 엄정 대응'을 공언해 왔지만 이번엔 사실상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30일 국회에 김정은의 체중이 약 140kg에 이르러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높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소문이 돌 때 더욱 신속하고 구체적인 사실관계 설명이 필요했다. 책임 있는 당국자가 직접 나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설명하고 소문을 일찍 진화했어야 했다. 국회 정보위원회의 대응도 도마에 오른다. 정보위가 국정원 긴급보고를 받아 사망설이 가짜라는 점을 확인하고, 즉각 공개했더라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란을 차단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일수록 정보위가 정치적 계산을 앞세우지 않고 사실을 확인해 국민에게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본부 청사와 원훈석 [뉴스핌 자료사진] ◆전문성 키우지 못한 언론도 책임 느껴야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북한 체제의 폐쇄성에 있다. 더구나 김정은 한 사람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수령 유일지배 독재체제다. 김정은이 유고상황에 빠지면 대책이 없어진다. 이런 사정에 있다보니 '사망설'을 비롯한 소문의 파괴력은 클 수밖에 없고, 거짓인 줄 알면서도 시장과 사회가 뒤흔들리는 기형적인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정보의 불투명성과 체제의 취약성이 만나 만든 구조적 고질병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우리 언론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북한 보도가 지라시 수준의 글에 휘둘리는 이유는 전문성을 갖춘 저널리스트를 제대로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때 언론사들이 전문기자를 두고 연구소 등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경영 논리와 남북관계 경색에 밀려 유명무실해졌다. 북한 정보의 진위를 가려낼 안목과 취재 네트워크를 갖춘 기자가 줄어들면서 확인되지 않은 SNS 글 한 줄에 증시와 언론, 여론이 함께 휘청이는 모습이 연출됐다. '김정은 사망' 같은 민감한 대북 정보는 우리의 안보와 남북관계, 한반도 정세에 미칠 파장이 크다. 이번 일을 일과성의 해프닝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제대로 된 진단과 대책마련이 없으면 김정은은 앞으로도 몇 번이고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때마다 우리는 휘둘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정부 대북 부처와 유관기관, 언론, 학계 등이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yjlee@newspim.com 2026-10-21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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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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