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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D 폴리티션 스토리](상) 공직을 꿈꾼 이종배…학창시절부터 키운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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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송기욱 기자 = 국민의힘 4선 중진 이종배 의원이 정치인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는 뉴스핌 '폴리티션 스토리'에 출연해 정치 입문 전 삶을 소개했다.

이 의원은 2일 오후 '뉴스핌 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 스토리에서 '모범생' 이종배의 학창시절 꿈과 가족과의 관계를 비롯해 '리더'로서의 삶을 꿈꿔왔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 의원은 1957년생으로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났다. 충주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고려대학교 행정학과 학사 과정을 거쳤다.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 생활을 시작했으며 충주시장, 행정안전부 2차관, 음성군수 등을 지냈다.

2014년 재보궐선거를 통해 19대 국회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20~22대 총선에서 충주시에 출마해 내리 4선을 지냈다.

이종배 국회의원.[사진=뉴스핌DB]

다음은 이 의원과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송기욱 기자. 이하 송)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이종배 의원. 이하 이)22대 총선이 끝나서 원구성이 됐고 상임위도 배정이 됐습니다. 이제 정기국회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정기국회 준비도 해야 하고 또 상임위에서 활동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법안소위도 하고 전체회의도 하고 또 이제 결산해야지 될 때고요. 또 정기국회 앞두고 우리 당 워크숍 같은 것도 있고 그러니까 그런 것도 준비하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에 대정부 질문에 정기국회에서 참여하려고 그걸 준비하고 있는데 굉장히 바쁩니다.

-(송)본격적으로 지금 질문 이어가 볼게요. 충주에서 태어나셔서 충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거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혹시 어릴 적 의원님 꿈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이)제가 태어난 곳이 이제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면 산골짜기 입니다. 길 끝에 있는, 길이 가다가 더 이상 못 가는, 그런 동네에서 태어났고 충주에서 중학교 다니고 청주에서 고등학교, 대학은 서울. 이렇게 중학교 때까지는 충주에서 다녔습니다.
아버지께서 교육자였습니다. 7남매 되는데 그중에서 제가 어릴 때 공부를 잘하는 편에 들어가니까 7남매 중에서 한 명은 공무원을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가지셨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그런 꿈을 키워주셨어요. '공직자다. 넌 나중에 대통령 한다.' 그래서 어릴 때 다른 분들이 와서 네 꿈이 뭐냐 하면 어릴 때 아무것도 모를 때부터 대통령이다. 이렇게 얘기하면서 컸습니다.

-(최연혁 교수. 이하 최)학교에 다니시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으십니까.

▲(이)에피소드도 많겠죠.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교육자시니까 학교 부근에 사셔서 따라서 학교 부근에 살았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이제 학교 도서관에 가서 살고 학교 운동장에서 살고 그러면서 친구들하고 이제 같이 재미있게들 많이 운동도 하고 축구도 하고 그렇게 지냈고요.
중학교 때는 제가 충주중학교를 통학했습니다. 기차로 통학을 했는데요. 기차가 제 시간에 들어오는 때가 없습니다. 그래서 밤 11시에 집에 오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제 또 역 앞에서는 제가 자전거 타고 다니고 깜깜할 때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앞에서 어떤 분이 이 나무를 긴 나무를 지고 오는 걸 몰라서 그 나무가 제 이마를 쳐서 졸도를 해서 그 이튿날 깨어난 적도 있습니다.

-(최)그때는 가로등도 없었을 거고요. 칠흑같이 어두웠을 텐데

▲(이)고등학교 때는 제가 하숙을 했는데요. 하숙비가 이 쌀 일곱 말입니다. 집에서 그 쌀을 지고 다니던 생각도 나네요.

-(송)쌀 일곱 말이면 요즘 이제 기준으로 하면 어느 정도가 될까요

▲(이)요즘 요즘 기준으로 한 15만 원 정도 되죠. 식사까지 다 제공하고 그러니까 글쎄요. 지금 그렇게 비싸지는 않았습니다.

-(송)그렇네요. 이제 식사까지 된다고 하면 그렇게 엄청 비싼 편은 아닌 것 같아요. 요즘에 대학생들 자취하는 비용이 월 40~50만원 정도 하니까 이제 그건 식사 제외하고서도 이렇게 하니까 저렴한 편이네요.

▲(이)그거 따지면 저렴하죠. 그 당시에는 그렇게 물가도 비싸지 않았고 받는 것도 현금 없으면 이 쌀로 갖고 오라고 해서 쌀로 갖다 주기도 하고 오셨으니까.

-(송)이제 저희는 이제 보통 이제 자취라는 걸 본격적으로 하게 되는 시기가 대학교육 이후에 하다 보니까 사실 고등학교 때부터 당시에는 좀 이렇게 하숙이나 자취를 좀 많이 하면서 통학을 좀 많이 했었나요?

▲(이) 교통편이 좋지 않으니까 통학보다 자취, 하숙 그런 걸 많이 했죠.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많이 하셨구나 자취하시는 분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는 청주에 자취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 자취하는 친구를 위해서 누나가 와서 밥을 해준다든지 뭐 그렇게도 하더라고요.

-(송)상상하면 약간 아름다운 그림들인데요. 가족이 가족 챙겨주는 그런 모습.

▲(이)그렇긴 한데 이제 누나의 또 삶은 별로죠. 요즘 같으면 그렇게 그런 일이 있을 수가 없겠죠.

-(송)공부를 잘하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이제 학창 시절에 공부를 잘한 학생들은 목표들이 다 있잖아요. 반 1등을 넘어서 전교 1등. 다들 꿈꾸고 하는데 혹시 의원님 학창 시절 최고 성적은 어느 정도셨는지 궁금해요.

▲(이)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잘했어요. 상위 1, 2등 또는 전체에서 한 5등 안에 저희들이 현재 중학교 고등학교는 한 400~500명 되거든요. 한 학년이 그때 5등 안에 들었던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우리 고등학교 다닐 때는 이 벽에다가 쭉 붙여놔요. 1등서부터 꼴찌까지 쭉 붙여놓습니다.

-(송)대학생으로 넘어가 보면 고려대학교에 진학하셨잖아요. 서울로 올라오셨는데 대학교 시절에는 어떤 삶을 사셨는지.

▲(이)대학을 입학할 때도 제가 행정학과를 가겠다 이렇게 했습니다. 공무원 꿈이 머릿속에 있어서 그 행정학과를 가려고 했는데 서울대 행정학과가 좀 제 실력으로는 좀 어려워서 우리 상담하시는 선생님이 그래도 다음 두 번째가 고려대학교 행정학과인데 이제 법대 안에 법학과와 행정학과가 있었거든요. 그래도 고대법대면 괜찮다. 사회적으로도 명망도 있고 괜찮다고 해서 제가 고려대학교 행정학과를 가게 됐습니다. 제 꿈이 계속 이어진 거죠.

저는 어릴 때부터 리더 기질이 있었습니다. 제가 좀 키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남의 어려운 사정도 제가 잘 살펴주기도 하고 잘 이렇게 친구들하고 잘 어울리기도 하고 또 공부 잘했긴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좀 잘못하는 학생이 가르쳐달라고 그러면 제가 잘 가르쳐 주고 집에도 놀러가서 같이 공부도 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리더로서의 그런 역할을 많이 해왔던 것 같아요.

제가 1학년 때는 그냥 그대로 지냈지만 2학년 때부터 전공 과목 들어갈 때는 과대표도 하고 그랬습니다. 과대표하다 보니까 그때 1975년도 그때 데모를 많이 했습니다. 그때 긴급 조치가 떨어지고 막 그랬거든요. 그래서 고려대학교 안에 탱크가 들어오고 그랬는데 제가 과대표를 하다 보니까 항상 앞장서서 뛰어다녀야 되잖아요. 그래서 성북경찰서까지도 끌려다녔고 저는 뭐 재판까지 받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앞장서 봤기도 했고 그러다가 제가 제 정체성을 좀 고민을 했습니다. 그래서 1년간 휴학을 하고 집에 와서 철학 책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많이 보고 다시 복학해서 그때서부터는 고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한 2년 만에 제가 합격을 했습니다.

-(송)2년이라는 기간은 남들보다 빨리 합격하신 그런 걸까요?

▲(이)네 그냥 중상 정도 그렇게 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군대에 가는데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장교로 가는 게 좋겠다 소대장을 해보겠다. 그래서 제가 지망을 해서 가서 전방에 가서 소대장 까지 훈련 기간만 합쳐서 한 39개월, 3년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그 기간이 저에게는 상당히 의미 있는 그런 기간이 아니었나 지금 생각합니다.

-(송)혹시 군 생활은 좀 어떠셨어요? 어디서 근무하셨나요?

▲(이)홍천 11사단 홍천 훈련 많은 곳으로 유명하죠. 11사단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하면서 보람 있게 지냈던 시간이었습니다.

-(송)혹시 군생활 에피소드는 좀 있으신가요? 이제 다들 남자라면 이제 하나씩 갖고 있는 게 있잖아요.

▲(이)군대 있을 때 제가 잘했던 것들이 숫자를 보고 문자로 바꾸고 문자를 숫자로 바꾸고 이런 음어거든요. 대표를 지냈기도 했고 저희가 이제 조금 영어를 한다고 해서 미군하고 같이 합동으로 상황실에 근무하면서 미군들하고 아주 한 1~2개월 동안 지냈던 것이 뜻깊다 생각하고요. 요즘도 군대에서 같이 있던 그런 사병들 또는 다른 부대에 있던 장교들하고도 모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송)벌써 알겠는 게 학창시절 때도 그렇고 대학교 생활하실 때도 그렇고 군 생활도 마찬가지고 리더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오신 것 같아요.

▲(이)그래서 제가 행정고시 합격하고 어느 부처를 갈 것인가 자기가 희망을 하거든요.희망을 할 때 제가 내무부로 가서 군수시장을 해야 하겠다 그래서 내무부를 지망했습니다.그 당시에 제일 커트라인이랄까 경쟁이 센 데가 이제 경제기획원, 예산실이 좀 셌고, 내무부도 센 편이었습니다. 군수도 한번 해보고 싶은 게 많은 분들의 소망이었거든요. 합격생들보다 이제 부모님이 와서 고향에 와서 군수 한번 하라 이런 걸 자꾸 요구했기 때문에 더 많은 분들이 신청을 했던 것 같은데 제가 다행히 돼서 저는 그 젊은 나이에 충북 음성군수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최)그때가 몇 살 때십니까?

▲(이)그때가 39살입니다.

-(최)그럼 39살에 이제 군수로 가셨을 텐데 그러면 나이 훨씬 더 많으신 분들이 말하자면 이제 같이 일하시는 분일 텐데 어떻게 융합을 하셨어요?

▲(이)저는 어릴 때부터 그렇지만 리더라는 것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줘야 되거든요. 또 리더는 갑이 아니고 을이라 생각하고 대신 리더는 결단할 때는 결단을 해줘야지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어른들을 그렇게 제가 잘 모시면서 지냈고 또 기관장, 단체장들 이런 분들하고 소통을 잘해서 수시로 식사도 하고 간담회도 하고 그분들은 그 당시에 연세 많으신 분들이 어린 저를 항상 상석에 앉으라고 그러면서 군수가 아니고 성주라고 이렇게 불러 부르기도 하고 그렇게 하시면서 예우를 해주셨는데 그럴수록 제가 더 낮은 자세로 그분들을 모시면서 생활을 했습니다.
또 제가 음성군수 한 것이 나중에 나중에 제가 충주시에서 국회의원 하는데도 충주시 내에 음성 출신이 상당히 있습니다. 한 1~2만 정도는 되는 거로 제가 생각되는데 그 분들이 우리 음성군수 하셨던 분이고 또 고향에 누구한테 얘기 들으니까 음성군수할 때 잘해주셨다고 그러면서 저를 지지를 많이 해주신 거 아닌가 생각됩니다.

-(최)의원님 말씀을 들어보니까 어릴 때부터 이제 공부를 잘하셨고 또 아버님께서도 이제 교육계에 계셨고 자연스럽게 아까 말씀 들어보니까 도서관이 옆에 있어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그런 분위기였을 것 같고요. 그런 과정 속에서 어릴 때부터 대통령이 되겠다 이제 이런 꿈을 말씀 해 주셨는데 어릴 때부터 쭉 지금까지 이제 정치인, 행정인, 그리고 이제 정치인의 삶을 살아오시는 동안에 이끌어주셨던 멘토를 역할을 해 주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이)주위에서도 여러분들이 도와주셨는데 저를 만들어주신 분은 부모님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어릴 때부터 남을 위해서 봉사하라는 그런 말씀 그런 것들이 이제 부모님이 생각하실 때는 뭐 여러 가지로 도울 수 있겠지만 그래도 공직자로서 공익을 생각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건 공직자 아니겠느냐 그런 걸 많이 심어주신 것 같고요.
또 인생을 정직하게 살아라 이런 말씀을 주셔서 저는 그것들이 제가 정치인으로서 우리 시민과 국민들을 생각하면서 늘 진정성 있게 정치를 하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하고요.
정치할 동안도 부모님이 계속 생존해 계셨습니다.지금은 다 돌아가셨지만 부모님들이 제 정치하는 거 보시면서 또 좀 미흡하다고 생각하시는 건 수시로 얘기도 해 주시고 그래서 그런 것들이 저희의 정치의 하나의 길잡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최)타인을 위한 삶, 남을 위해서 살아라 그리고 정직하게 앞에서 남을 위해서 사는 삶이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걸어오신 길에 행정을 하시고 그리고 또 정치를 하시고 이제 그런 일관성 있는 어떤 그런 말씀에 어떤 핵심적인 것이 아니었나 싶어서 정치에 입문하시고 나서는 또 어떤 정치적인 멘토 혹은 롤 모델은 있으셨습니까?

▲(이)저는 어떤 한 분을 따라서 이렇게 롤 모델로 삼지 않고 내가 어떤 정치인이 돼야 되느냐를 늘 생각을 하고 있죠. 정치인으로서는 저희가 이제 정치 신조, 신념을 무신불립 으로 해서 신뢰를 잃으면 정치인이 돼서는 안 된다. 정치인으로서 기본 자격이 없다. 진정성이 있어야 된다.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진정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시민들과 약속한 걸 꼭 지켜야 되고 나 스스로도 나를 속여서는 안 된다는 늘 그런 걸 염두하고 생각하면서 정치를 해오고 있습니다.

-(송)공직자로서 이제 꽤 오랜 삶을 살아오셨고 이제 여러 직책들을 거치셨잖아요. 공직자로서의 이종배는 어떤 사람이었나 이제 본인 스스로 돌아보셨을 때.

▲(이)저는 그래도 공직에서 행정고시 합격하고 최고로 올라가는 게 차관이거든요.차관까지 제가 올라갔고 동기들에 비해서 좀 빨리 승진을 한 편이었습니다.저는 이 일에 이 일을 맡기면 최선을 다해서 전념해서 일을 처리하는 그런 스타일이었고요.또 승진을 하면 한 자리에 있지 않고 다른 데 가서 이렇게 또 경험하고 다시 또 오기도 하고 그래서 저희가 내무부가 나중에 행정자치부 행정안전부로 바뀌었는데요.그 이후에도 승진을 할 때는 지방에 가서 지방에 가서 또 근무하고 그래 근무하다 보면 또 중앙에서 불러들이면 다시 또 보고 이걸 세 번 왔다 갔다 하면서 근무를 했습니다.저같이 이렇게 세 번 지방과 중앙을 왔다 갔다 하면서 근무한 사람도 상당히 드물 거라고 생각이 되고요.또 저희 동기들이 이제 내무부에 온 동기들도 군수를 다 못한 사람도 있어요.군수 1995년도에 지방자치가 실시가 돼서 자치단체장 선거가 처음에 있었거든요.

▲(이)95년도면 제가 공직에 나가서 15년 정도 이렇게 된 기간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군수로 승진할 그런 상황이 안 되면 군수를 못하는 그런 분들도 있었고 군수를 하신 분들도 있고 그렇습니다. 조금 빨리빨리 제가 승진을 했고요. 저는 아까도 말씀드렸던 바와 같이 제 삶은 리더로서의 그런 역할을 많이 했다. 팀장으로서의 역할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것도 제가 누구를 부리고 시키는 것보다도 앞에서 모범적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승진도 빨리 된 것 아닌가 주위에서도 이종배가 승진해야 된다 그런 여론이 형성됐던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oneway@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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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듀오 내년 1월까지 배송 지연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심재민 인턴기자 = 애플의 첫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 듀오'가 사전예약 직후 품귀 현상을 빚으며 배송 일정이 내년 1월까지 밀렸다. 이례적인 수요에 따른 흥행 신호로 해석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생산 수율 저하와 핵심 부품 공급 차질이 물량 부족을 심화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생산이 안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70여개국 동시 출시를 추진한 애플의 전략적 판단도 공급난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애플의 첫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 듀오' [사진=로이터 뉴스핌] ◆ 10대 중 4대 품질 기준 미달…증산에도 공급난 지속 21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아이폰 듀오는 지난 16일 사전예약을 시작한 지 30분 만에 일부 모델의 배송 예정일이 내년 1월로 미뤄졌다. 오는 23일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지만, 지금 주문하면 제품을 받기까지 약 3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애플은 사전예약 수요가 이례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실제 예약 건수와 초기 공급량이 공개되지 않은 만큼 장기간의 배송 지연을 수요 폭증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핵심은 생산 수율이다. 중국 경제매체 지몐신문은 지난달 21일 폭스콘 공급망 관계자를 인용해 아이폰 듀오의 완제품 조립 수율이 9월 17일 기준 60%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생산된 제품 10대 중 4대 가까이가 품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당시 공급망 관계자는 애플의 품질 기준을 유지할 경우 생산라인이 안정적인 수율에 도달하기까지 6개월에서 1년이 걸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수율 문제는 최근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메리츠증권은 지난 19일 보고서에서 외장 힌지와 초박형유리(UTG) 등 핵심 부품뿐 아니라 최종 조립 단계에서도 수율 부진이 발생해 생산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애플이 공급망 주문량을 늘리고 있지만 단기간에 물량 부족을 해소하기 어려운 이유다. 중국 증권시보는 지난 10일 애플이 아이폰 듀오의 부품 주문량을 기존보다 30% 늘렸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부품 확보량을 늘리더라도 최종 조립 수율이 개선되지 않으면 실제 출하량을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 애플의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듀오' [사진=블룸버그통신] ◆ 70여개국 동시 출시 강행…국내 초기 물량 3만대 공급 부족을 예상하고도 글로벌 동시 출시를 선택한 판단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블룸버그는 지난 18일 애플이 당초 미국과 중국에 먼저 출시한 뒤 판매 국가를 확대하려던 계획을 바꿔 70여 개 국에서 동시에 사전예약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제한된 초기 생산 물량을 여러 국가에 배분하면서 공급 부담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국내에서도 물량 부족이 현실화하고 있다. 통신업계가 파악한 아이폰 듀오의 한국 초기 공급 물량은 약 3만대 수준이다. 통신 3사의 일평균 스마트폰 개통량인 약 2만대와 비교하면 이틀 치에도 못 미친다. 통신사들은 첫 폴더블 아이폰 출시를 앞두고 고객 유치에 나섰지만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품 수령 지연에 따른 고객 문의와 불만까지 유통 현장에 집중되면서 정식 출시 이후에도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IT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품귀 현상을 폭발적인 수요에 따른 흥행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생산 차질이 장기화하면 출하 목표 달성이 어려워지고 삼성전자 등 경쟁사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flurry327@newspim.com 2026-10-2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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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사망설, 왜?…"독재 체제가 불러온 고질병"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42)이 뇌출혈로 쓰러져 중국 병원에서 숨졌다는 소문이 한반도를 넘어 지구촌을 뒤흔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사망설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가짜뉴스다. 의료기록이나 목격자, 하다못해 정황을 뒷받침할 만한 최소한의 방증이나 전언도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도 소문은 외신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는 물론 국내 언론과 증권가까지 순식간에 번졌다. 사망설 자체보다 이 소문 앞에서 우리 사회가 보인 허술한 대응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뉴스핌]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지난 19일 '전국 피복·신발전시회-2026' 전시장을 찾아 간부들에게 뭔가를 지시하고 있다. 김정은의 오른쪽은 딸 주애. [사진=북한매체 종합] 2026.10.20 ◆'중국 반체제 인사의 X 글'에 휘둘려 메가톤급 소문의 진원지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반체제 인사 셰완진(謝萬軍)이다. 그는 19일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전해지기로 김정은과 시진핑이 같은 병에 걸렸다. 김정은은 죽었고 시진핑은 죽음이 아직 멀었을까"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어 김정은이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의식을 잃었고 북한의 열악한 의료 여건 때문에 중국에 도움을 요청해 중국 의료진이 급파됐다고 주장했다. 베이징의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았으나 골든타임을 놓쳐 결국 사망했다는 얘기다 시신은 북한으로 비밀리에 운구됐고 북한은 이를 숨기고 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던지면서도 그는 어떤 출처나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셰완진이 중국에서 불법단체로 규정된 '중국민주당 주석'을 자처하며 시진핑 주석 사망설이나 대역설 같은 허위·날조 사실을 SNS에 올려온 인물이란 점에서 신빙성은 떨어진다.  그런데도 영국 더선 등 해외 매체들이 이를 받아 전하면서 소문은 증폭됐고 여기에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장의 권력 장악설이나 중국군 파병설까지 얹혔다. 근거 없는 이야기에 그럴싸한 살이 덧붙여지면서 가짜뉴스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사실 사망설이 한창 번지기 시작한 19일 김정은은 부인 이설주, 딸 주애와 함께 평양에서 열린 '전국 피복·신발 전시회-2026'을 참관했다. 이튿날 북한 관영매체들은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이를 보도했다. 하지만 집요한 가짜뉴스는 이를 견강부회식으로 해석했다. '사망 사실'이 퍼지니 북한 당국이 이를 은폐하고 기만하기 위해 거짓으로 김정은과 가족의 일정을 공개한 것이란 주장까지 내놓으면서 그럴듯하게 포장을 했다. ◆'뇌졸중 쓰러져 中병원 이송'…뻔하고 반복된 레퍼토리 눈여겨볼 대목은 김정은 사망설에서 드러나는 클리셰(Cliché)다. 뇌출혈로 쓰러졌다거나 북한 의료진이 속수무책이라 중국 병원으로 옮겼다, 혹은 시신은 몰래 평양으로 반입했다는 등의 레퍼토리는 과거 북한 지도자의 신변 이상설이 나올 때마다 되풀이된 판박이다. 과거 북한 최고지도자의 사망설 확산 사례를 돌아보면 그 패턴이 드러난다. 1986년 11월 김일성 주석 피격 사망설이 나왔다. 당시 외신과 국내에서 소문이 크게 부풀렸고 최전방 북측 지역에 조기가 걸렸다는 말까지 나왔다. 결국 김일성이 얼마 뒤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오보로 판명됐다. [서울=뉴스핌] 지난 2011년 12월 28일 평양 금수산태양궁전 앞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 장례식에서 아들이자 후계 최고권력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당시 직책은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운구차 옆을 걷고 있다. [사진=북한매체 종합] 2026.10.20 2008년 9월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권수립 60주년 행사에 불참하면서 와병설이 퍼졌다. 이 경우는 뇌졸중으로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망설과는 별개였고 김정일은 이후에도 3년 넘게 통치했다. 정작 2011년 12월 김정일의 실제 사망은 이틀 가까이 지난 뒤에야 공식 발표됐다. 김일성 주석 때도 1994년 7월 사망 후 하루 이상 지나서 발표됐다. 소문은 엄청나게 번지고 정작 진짜 사망 때는 깜깜무소식으로 있다가 북한 발표가 나오고서야 알게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이런 양상은 이어졌다. 2014년 9~10월 김정은이 약 40일간 공개 활동을 하지 않아 유고설이 불거졌지만 지팡이를 짚고 다시 나타났다. 과체중으로 추정되는 다리 혹은 관절 수술 때문으로 파악됐다. 2020년 4월에는 김일성 생일 참배 불참을 계기로 심혈관 수술 후 위중설, 사망설이 퍼졌다. 일부 정치인이 "99% 확신한다"고까지 단언했지만, 김정은은 20일 만인 같은 해 5월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5월에도 원산에서 현지지도 중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는 소문이 외교가와 증권가를 중심으로 돌았다. 번번이 오보로 끝났지만 가짜뉴스와 소문은 '죽지 않는 각설이'처럼 주기적으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일단 베껴 쓰고 보자'…줏대 없이 흔들린 언론 이번 사태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은 언론의 대응이다. 유력 외신뿐 아니라 우리 언론도 줏대 없이 흔들렸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확산일로를 걸으니 '일단 베끼거나 받아쓰고 보자'는 심리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남이 쓰니 나도 쓰고, 안 쓰면 낙종이 될까 불안해 쓰는 식이다. 그 결과 독자와 시청자, 국민은 전례 없는 혼란을 겪었다. 소문이 가장 먼저 들이닥친 주식시장은 출렁였고, 포털과 SNS에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넘쳐났다. 유튜브 일부 채널과 콘텐츠는 한술 더 떴다. 자극적인 제목과 섬네일을 앞세워 사망설을 기정사실처럼 다루며 혼란을 부채질했다. 조회수와 수익이라는 상업적 계산 앞에서 최소한의 사실 확인 의무는 실종됐다. 필자 또한 이번 사태의 한복판에서 적지 않은 시달림을 겪었다. 수많은 지인과 독자들로부터 '정말 사망한 것이냐', '평양이 지금 난리라는 데 파악해 볼 수 있냐'는 문의 전화와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지난 34년간 북한 취재 현장에서 여러번의 '사망·유고설'을 겪었지만 이번은 유독 파장이 크다. 최근의 남북관계와 북한 김정은과 김여정 남매의 비정상적이고 호전적인 도발 상황이 국민이 불안감을 키운 것이란 생각도 든다. ◆'강 건너 불구경'식 정부 대응도 문제 정부 대북부처의 대처도 비판받을 소지가 많다. '가짜뉴스 엄정 대응'을 공언해 왔지만 이번엔 사실상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30일 국회에 김정은의 체중이 약 140kg에 이르러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높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소문이 돌 때 더욱 신속하고 구체적인 사실관계 설명이 필요했다. 책임 있는 당국자가 직접 나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설명하고 소문을 일찍 진화했어야 했다. 국회 정보위원회의 대응도 도마에 오른다. 정보위가 국정원 긴급보고를 받아 사망설이 가짜라는 점을 확인하고, 즉각 공개했더라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란을 차단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일수록 정보위가 정치적 계산을 앞세우지 않고 사실을 확인해 국민에게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본부 청사와 원훈석 [뉴스핌 자료사진] ◆전문성 키우지 못한 언론도 책임 느껴야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북한 체제의 폐쇄성에 있다. 더구나 김정은 한 사람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수령 유일지배 독재체제다. 김정은이 유고상황에 빠지면 대책이 없어진다. 이런 사정에 있다보니 '사망설'을 비롯한 소문의 파괴력은 클 수밖에 없고, 거짓인 줄 알면서도 시장과 사회가 뒤흔들리는 기형적인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정보의 불투명성과 체제의 취약성이 만나 만든 구조적 고질병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우리 언론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북한 보도가 지라시 수준의 글에 휘둘리는 이유는 전문성을 갖춘 저널리스트를 제대로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때 언론사들이 전문기자를 두고 연구소 등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경영 논리와 남북관계 경색에 밀려 유명무실해졌다. 북한 정보의 진위를 가려낼 안목과 취재 네트워크를 갖춘 기자가 줄어들면서 확인되지 않은 SNS 글 한 줄에 증시와 언론, 여론이 함께 휘청이는 모습이 연출됐다. '김정은 사망' 같은 민감한 대북 정보는 우리의 안보와 남북관계, 한반도 정세에 미칠 파장이 크다. 이번 일을 일과성의 해프닝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제대로 된 진단과 대책마련이 없으면 김정은은 앞으로도 몇 번이고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때마다 우리는 휘둘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정부 대북 부처와 유관기관, 언론, 학계 등이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yjlee@newspim.com 2026-10-21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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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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