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홈 정치 국회·정당

속보

더보기

[폴리티션스토리](상) 삼성전자 평사원에서 사장까지…고동진 의원 성장 원동력은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AI 핵심 요약

beta
분석 중...
  •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3일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삼성전자 평사원에서 대표이사까지 오른 성장 원동력을 소개했다.
  • 고 의원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뛰어넘으려 노력했으며 어느 누구보다 일을 잘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고 밝혔다.
  • 일과 삶은 분리될 수 없으며 일이 곧 인생 자체라며 일을 통해 인간관계를 만들고 삶을 살아왔다고 강조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국민의힘 고동진, 삼전 CEO 되기까지 성공 전략 공개
"입사 때부터 사장이 목표…일은 곧 삶이었다"
"매일 아침 상사에게 '50초 브리핑'…365일 일 생각뿐"

[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3일 유튜브 채널 뉴스핌TV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해 삼성전자 평사원으로 입사해 대표이사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성장 원동력을 소개했다.

고 의원은 "일은 곧 삶이었고, 제 삶은 곧 일이었다"며 "'어느 누구보다도 일은 고동진이 제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어 "늘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것을 뛰어넘으려고 했다"며 "요즘 '워라밸'이라고들 하지만 제 경험을 돌아보면 일과 삶은 분리가 안 된다. 회사에서 365일 나를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일했다"고 말했다.

고 의원은 "인생 자체가 자기자신과 세상의 상호작용이다. 그 상호작용의 매개체가 바로 일"이라며 "일 없이 인간은 살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을 잘하기 위해 일로서 모든 것을 승부했고, 일을 통해 인간관계를 만들었고, 일 속에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저에게 일이라고 하는 것은 인생 그 자체가 아니었나 싶다"고 돌아봤다.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 [사진=뉴스핌TV]

1961년생인 고동진 의원은 서울 경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영국 서섹스대학교 대학원에서 기술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고 의원은 1984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모바일경험(MX) 사업부의 전신인 IM부문장을 맡으며 갤럭시S8과 갤럭시노트8의 흥행을 이끌었고, 2018년 삼성전자 대표에 올랐다.

지난해 4·10총선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강남병 지역구에 출마해 22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당 내에선 AI(인공지능)·반도체 특별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다음은 고 의원과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주요 일문일답. 자세한 이야기는 뉴스핌TV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신정인 기자, 이하 신 기자)
정치인의 인생 궤적을 돌아보는 폴리티션스토리 시작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뉴스핌 신정인 기자입니다. 오늘은 삼성전자 대표이사 출신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의원님 안녕하세요?

▲(고동진 의원, 이하 고 의원)
안녕하세요. 고동진입니다.

-(신 기자)
의원님 근황부터 좀 여쭐게요. 최근에 한강 버스 시승식 참여하셨는데 직접 타보니까 어떠셨어요?

▲(고 의원)
서울에서 살면서 사실 한강에서 배를 타본 건 처음이에요.
강변 따라서 국회 출근했을 때 바라본 풍경하고 배를 타고서 이렇게 양쪽 강변을 바라보는 게 '아 이게 경치가 이렇게 틀리구나'. 제가 숫자가 정확히 기억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9월 15일인가 17일에 공식적으로 운행이 되고 지금은 시범 운행 그중에서도 이제 오세훈 서울시장님하고 같이 서울에 있는 국회의원들 몇 분 당협위원장들과 시승을 해 본 경우인데 이야기 들어보니까 여기에 대해서 이게 전시행정 아니냐는 부정적인 여론이 또 있다고 하더라고요.

오세훈 시장님 이야기 들어보니까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는 하는데 그래서 제가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옛날에 우리나라 경부고속도로 만들 때 반대하는 사람 무지하게 많았다. 지금 현재 좀 미흡한 부분은 많이 좀 보완을 해서 특히 접근성 문제 그렇게 하면은 서울 시민들이 많이 호응도가 있지 않겠나. 지금 제가 볼 때 이거를 비난하거나 그럴 일보다는 부족한 부분, 미흡한 부분을 보완을 해서 교통 수단으로 또는 나중에 물류 수단으로도 이용이 될 수가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이제 뭐 저 여의도 뚝섬 잠실 옥수 압구정 마곡 뭐 이렇게 쭉 7개 정도가 이어진다고 그러는데 어쨌든 시작하신 사업이니만큼 잘 되기를 바라봅니다.

-(신 기자)
그러면 의원님도 앞으로 종종 타실 계획 있으세요?

▲(고 의원)
내가 만약에 탄다고 그러면 이제 옥수에서 타 가지고 여의도를 와야 되는데 굉장히 시간적으로는 빠를 것 같은데 집에서 차 타고 그냥 곧바로 국회 오는 게 빠르지 않나

-(신 기자)
의원님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한번 이야기 나눠볼게요.
1961년 서울 서대문구에서 태어나셨고 경성고, 성균관대 산업공학과 졸업하셨습니다.
그리고 회사 다니시면서도 영국 서섹스 대학교 대학원에서 기술정책학 석사 하셨는데 혹시 어린 시절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고 의원)
제가 이제 6남매 막내로 자랐는데 어렸을 때 뭐 예를 들어서 흔히 의사가 되고 싶다, 판사가 되고 싶다 이런 직업적 꿈은 별로 기억이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특히 그 어머님한테 막내야 네 꿈은 용꿈이었다, 태몽이. 그다음에 뭐 열 자식 중에 하나만 잘 되면 된다 라고 하는 거를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저한테 얘기를 많이 하셨어요.
2018년에 어머니가 91세로 돌아가셨는데 어머님 그 묘지에 묻고 난 다음에 그 형님들 누님들하고 식사를 하면서 우연히 그 얘기가 나왔어요.
열 자식 중에 하나만 잘 되면 된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그 얘기를 들은 형, 누님은 없었던 거예요.

-(신 기자)
그럼 의원님만

▲(고 의원)
저한테만 어머님이 그렇게 얘기를 하셨어요. 그래서 그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외할아버지가 우리 어머님한테 해 주셨던 말씀이라고 그랬는데 그때 깜짝 놀랐어요.
저한테만 하셨던 거예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뭔가 '아 나는 잘 돼야 되는 사람이고 성공해야 되고 우리 집안을 일으켜야 되고' 뭐 그런 어떤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늘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나는 나이가 먹으면 이런 사람이 돼야 돼'라고 생각을 했던 건 중학교 2학년 때인가 학교 교정에 이렇게 앉아서 벤치에서 혼자 '내가 나이 40이 되면 점심에 예를 들어서 불고기 백반을 먹고 싶어 그러면 언제든지 불고기 백 번을 먹을 수 있는 그런 사람' 그 어린 나이에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곧 우리 집안을 일으키는 하나의 뭐라고 그러나 기초라고 그러나 좀 그런 생각을 어렸을 때 가지지 않았나

-(신 기자)
그러면 좀 의원님께서 돌아보시기에 좀 학창시절에 어떤 아이였다고 생각하시는지

▲(고 의원)
어렸을 때 부모님 영향을 좀 많이 받지 않았나. 그러니까 금전적으로는 우리 집안이 굉장히 부족하고 어려움이 많았는데 아버님 어머님이 어떤 분이셨냐 하면 한 번도 싸우지를 않으셨어.
집에 큰 소리 나는 걸 난 들어본 적이 없어. 어렸을 때부터 아 이게 우리가 물질적으로는 부족하지만 정신적으로는 굉장히 좀 풍요롭게 살지 않았나. 제가 중학교 2학년 때인가 그때 이 여의도를, 친구가 자기 집에 가자고 그래서 그때 마포에서 버스를 타고 여의도를 왔어요.
근데 그때 이 여의도의 아파트가 제 기억에 아마 시범 아파트였어요. 5층짜리 아파트를 그때 처음 들어가 봤어요.

-(신 기자)
어떠셨어요?

▲(고 의원)
깜짝 놀랐어요. 화장실이 어쨌든 집 안에 있었고 수세식 화장실이었고. 놀라긴 했지만 부러워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그때 중학교 2학년 때 제가 '아 이 다음에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꼭 뜨거운 물 나오는 집에 내가 모셔야 되겠다'. 그래서 그거를 제가 나중에 했어요.

-(신 기자)
그때 되게 뿌듯하셨겠어요.
대학 졸업하신 이후에 바로 삼성그룹에 입사하셨습니다.
삼성전자에서 38년 그리고 고문으로 2년 또 재직하시면서 총 40여 년간 근무하셨는데 이렇게 평사원으로 시작해서 50대 중반에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하실 수 있었던 원동력이 따로 있으실까요?

▲(고 의원)
삼성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다니면서 뭐 사장도 하고 대표이사를 어떻게 할 수 있었냐라고 하는 질문을 사실은 뭐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내가 진짜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어떻게 보면 내가 일류 대학을 나온 사람도 아니고 사실은 그때 삼성 들어가는 것도 집안이 그때 좀 많이 힘들고 그래서 돈을 벌어야 됐기 때문에 회사를 들어가기로 결심을 한 거고 직장생활 자체가 일단 생계 수단으로 시작을 했어요.

그런데 제 자신이 회사의 다른 동기들, 서울대 나온 애들, 그다음에 뭐 해외 유학 갔다 온 친구들 이런 사람들 보면서 '내가 늘 부족하다' 이런 생각을 아예 전제로 하고 회사 들어와서 진짜 열심히 일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가 뭐 예를 들어서 '대학은 그래 좋은 대학 안 나왔어. 하지만 일은 내가 어느 누구보다도 잘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때 일체의 약속을 안 잡고 오로지 일을 하지 않았나. 마지막 퇴근 버스가 10시 15분 근데 항상 그거 타고 퇴근하고 그리고 집에 오면 또 일어 공부하고.

그래서 입사해서 한 2년 차 겨울에 제가 부산에 어디 여관에 가서 계획을 이렇게 세웠는데 뭐 30살에 과장이 되고 40살에 임원이 되고 50대에 부사장이 되고 그 다음에 사장이 되겠다라고 하는 걸 아예 계획을 세웠어요. 신입사원 2년 차 때 그런 결심을 세우고 나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부적으로 어떻게 해야 되고 그런 계획도 세웠고.

아까 질문하신 그 원동력이 뭐냐. 제가 저의 부족함을 늘 인정하고 그것을 뛰어넘으려고 노력을 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일은 고동진이가 제일 잘한다' 이런 소리를 듣기 위해서 진짜 열심히 노력을 했고 20~30대 진짜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

-(신 기자)
그 당시에 이제 회사에서 아침마다 상사에게 50초 브리핑을 매번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그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게 되셨어요?

▲(고 의원)
아까 이야기한 '난 삼성에서 사장이 되겠다' 이렇게 하려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냐. 매일 퇴근하기 전에 내일 할 일을 적어보고 퇴근하기 전에 그날 한 일을 평가를 했어요.
아무리 내가 사원이라도 내가 100이라고 하는 일을 할 수 있으면 목표는 한 50에서 60 정도만 내가 목표를 잡아야 된다.
이런 것도 배우고 스스로 이 업무를 조정을 하고 내 머릿속에 이런 일 해야지 저런 일 해야지만 생각을 했다가 이 일을 하는 함에 있어서 어느 다른 팀하고도 상의를 하고 협의하고 이런 것까지를 체득을 한 거죠. '아 이게 안 되는구나, 나 혼자 계획을 세워서는'. 이제 그런 것도 배우게 되고.

그때만 해도 대리님이나 과장님은 오시면 1시간을 신문을 봤어. 나이 차이도 좀 많았고 그런데 그때 저는 미혼이었지만 결혼을 한 분들이 회사에 와서 자기 집안에서의 그 생활 모드가 회사 모드로 빨리빨리 안 바뀌시는 거를 내가 느꼈어요.
그래서 아 이건 안 되겠다. 그래서 아침에 밝은 목소리로 상사가 출근을 하면 인사를 드리고 "대리님 요거 요거를 우리 오늘 팀에서 해야 되는데 이건 제가 할 테니까 이거는 좀 챙겨주세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우리 쪽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상사한테 내가 그때 주무 사원이어 가지고 보고를 드림과 동시에 그분의 그 생각 속에 회사 일을 이렇게 좀 밀어넣었다고 그래야 하나.

세 달 정도는 사실은 별로 이렇게 관심도 안 보이고 그냥 뭐 듣는 둥 마는 둥 이러시더라고. 근데 어느 날 출근해 가지고 제가 그걸(50초 브리핑) 못 했어요. 과장님이 나를 부르시더라고 '오늘은 뭐 아침에 브리핑 없어요?' 그때 아 이분이 듣고 있었구나. 그동안 안 들은 게 아니라 듣고 있었구나 그러고서 "아 요거 요거 오늘 할 일인데 이것만 챙겨 주시면 됩니다" 그랬더니 웃으면서 "어 알았어요. 그건 내가 챙길게요" 그러고 자리로 돌아가시더라고요.

나중에 제가 부사장이 돼서도 그런 식으로 일을 했었어요. 전무 부사장 때 그 때 우리 개발실장님이 나중에 사업부장 되고 사장 되신 분인데 아침에 가서 인사드리고 "요거 요거가 좀 큰 일인데 이거는 좀 챙겨주십시오. 이거는 제가 챙기겠습니다".

그래서 직장 생활을 하는 분들이나 어느 누구도 이 자기 일뿐만이 아니라 그 팀 또는 파트 그 조직에서 일어나는 일을 한번 적어보고 선배나 상사한테 이런 일이 오늘 벌어져야 된다. 그러니까 '이거는 좀 마무리해 달라. 이거는 내가 하겠다'. 이런 거를 간단하게 이렇게 브리핑을 하면 어차피 또 상사나 선배의 도움을 받아야 될 일이 또 꽤 있기 때문에 그런 어떤 '투두 리스트(To do list)' 가지고 50초 브리핑하는 거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신 기자)
의원님 책 제목이기도 한데요. 의원님께서 생각하시는 '일'이란 무엇인지

▲(고 의원)
저에게 일은 사실 나이에 따라서 조금 틀렸던 것 같아요.
20대 때 일은 사실은 생계 수단이었고. 근데 일을 하면서 이제 일이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고 그다음에 '아 내가 일에 관해서 이 분야는 가장 자신 있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변화하고 혁신해 나갔던, 특히 3040대 때 이런 기억이 있는데.

일이라고 하는 거는 곧 삶이었고 제 삶은 곧 일 아니었나. 젊은 사람들은 요새 워라벨이라고 그래 가지고 일과 삶이 분리가 되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데 제 경험을 돌이켜 보면 일하고 삶은 분리가 안 돼요. 회사에서는 365일 나를 쳐다보고 있다라고 생각을 하면 돼.

아니 365일 어떻게 나를 쳐다봅니까? 의문이 생기잖아요. 월요일날 아침에 8시 반에 회의를 해보면 자기 일에 대해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 해야 될 일을 주말에도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고 온 사람과 진짜 이 생각이 단절돼 가지고 온 사람과 딱 구분이 돼요.

그러니까 일이라고 하는 거는 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가 않는 거예요. 일을 누구보다도 많이 하고 빨리 처리하고. 저는 그 자체가 자기 개발이었고 내 삶이었고 그게 나중에 삼성전자에서 임원이 되고 전무 부사장 승진하고 또 사장 대표이사가 되고. 그 원동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고동진이 있었을까 저는 생각이 별로 안 돼요.

그러니까 일과 삶은 분리가 안 된다. 인생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자기하고 세상하고의 상호작용이에요. 인간은 자기가 원해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거든요. 삶은 주어지는 거죠. 자기가 세상하고 상호작용이라고 하는 그 매개체가 바로 일이거든요. 일이 없이 인간은 살 수가 없어요.

내가 추구하는 일을 제대로 하려고 그러면 점점 시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많은 사람들하고 소통이 수반이 돼야 해요. 젊은 사람들이 "아 저는 이 일을 하는 거는 어렵지 않은데 사람들 인간관계가 어려워요. 소통이 어려워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 말은 잘못된 거죠. 일을 하려고 그러면 인간관계하고 소통이 병행이 돼야 되는 거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 일로서 모든 것을 승부를 했고, 일을 통해서 인간관계를 만들었고, 일 속에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저에게 일이라고 하는 거는 그 인생 자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allpass@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아이폰 듀오 내년 1월까지 배송 지연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심재민 인턴기자 = 애플의 첫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 듀오'가 사전예약 직후 품귀 현상을 빚으며 배송 일정이 내년 1월까지 밀렸다. 이례적인 수요에 따른 흥행 신호로 해석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생산 수율 저하와 핵심 부품 공급 차질이 물량 부족을 심화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생산이 안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70여개국 동시 출시를 추진한 애플의 전략적 판단도 공급난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애플의 첫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 듀오' [사진=로이터 뉴스핌] ◆ 10대 중 4대 품질 기준 미달…증산에도 공급난 지속 21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아이폰 듀오는 지난 16일 사전예약을 시작한 지 30분 만에 일부 모델의 배송 예정일이 내년 1월로 미뤄졌다. 오는 23일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지만, 지금 주문하면 제품을 받기까지 약 3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애플은 사전예약 수요가 이례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실제 예약 건수와 초기 공급량이 공개되지 않은 만큼 장기간의 배송 지연을 수요 폭증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핵심은 생산 수율이다. 중국 경제매체 지몐신문은 지난달 21일 폭스콘 공급망 관계자를 인용해 아이폰 듀오의 완제품 조립 수율이 9월 17일 기준 60%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생산된 제품 10대 중 4대 가까이가 품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당시 공급망 관계자는 애플의 품질 기준을 유지할 경우 생산라인이 안정적인 수율에 도달하기까지 6개월에서 1년이 걸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수율 문제는 최근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메리츠증권은 지난 19일 보고서에서 외장 힌지와 초박형유리(UTG) 등 핵심 부품뿐 아니라 최종 조립 단계에서도 수율 부진이 발생해 생산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애플이 공급망 주문량을 늘리고 있지만 단기간에 물량 부족을 해소하기 어려운 이유다. 중국 증권시보는 지난 10일 애플이 아이폰 듀오의 부품 주문량을 기존보다 30% 늘렸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부품 확보량을 늘리더라도 최종 조립 수율이 개선되지 않으면 실제 출하량을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 애플의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듀오' [사진=블룸버그통신] ◆ 70여개국 동시 출시 강행…국내 초기 물량 3만대 공급 부족을 예상하고도 글로벌 동시 출시를 선택한 판단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블룸버그는 지난 18일 애플이 당초 미국과 중국에 먼저 출시한 뒤 판매 국가를 확대하려던 계획을 바꿔 70여 개 국에서 동시에 사전예약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제한된 초기 생산 물량을 여러 국가에 배분하면서 공급 부담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국내에서도 물량 부족이 현실화하고 있다. 통신업계가 파악한 아이폰 듀오의 한국 초기 공급 물량은 약 3만대 수준이다. 통신 3사의 일평균 스마트폰 개통량인 약 2만대와 비교하면 이틀 치에도 못 미친다. 통신사들은 첫 폴더블 아이폰 출시를 앞두고 고객 유치에 나섰지만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품 수령 지연에 따른 고객 문의와 불만까지 유통 현장에 집중되면서 정식 출시 이후에도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IT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품귀 현상을 폭발적인 수요에 따른 흥행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생산 차질이 장기화하면 출하 목표 달성이 어려워지고 삼성전자 등 경쟁사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flurry327@newspim.com 2026-10-21 15:43
사진
김정은 사망설, 왜?…"독재 체제가 불러온 고질병"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42)이 뇌출혈로 쓰러져 중국 병원에서 숨졌다는 소문이 한반도를 넘어 지구촌을 뒤흔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사망설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가짜뉴스다. 의료기록이나 목격자, 하다못해 정황을 뒷받침할 만한 최소한의 방증이나 전언도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도 소문은 외신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는 물론 국내 언론과 증권가까지 순식간에 번졌다. 사망설 자체보다 이 소문 앞에서 우리 사회가 보인 허술한 대응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뉴스핌]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지난 19일 '전국 피복·신발전시회-2026' 전시장을 찾아 간부들에게 뭔가를 지시하고 있다. 김정은의 오른쪽은 딸 주애. [사진=북한매체 종합] 2026.10.20 ◆'중국 반체제 인사의 X 글'에 휘둘려 메가톤급 소문의 진원지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반체제 인사 셰완진(謝萬軍)이다. 그는 19일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전해지기로 김정은과 시진핑이 같은 병에 걸렸다. 김정은은 죽었고 시진핑은 죽음이 아직 멀었을까"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어 김정은이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의식을 잃었고 북한의 열악한 의료 여건 때문에 중국에 도움을 요청해 중국 의료진이 급파됐다고 주장했다. 베이징의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았으나 골든타임을 놓쳐 결국 사망했다는 얘기다 시신은 북한으로 비밀리에 운구됐고 북한은 이를 숨기고 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던지면서도 그는 어떤 출처나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셰완진이 중국에서 불법단체로 규정된 '중국민주당 주석'을 자처하며 시진핑 주석 사망설이나 대역설 같은 허위·날조 사실을 SNS에 올려온 인물이란 점에서 신빙성은 떨어진다.  그런데도 영국 더선 등 해외 매체들이 이를 받아 전하면서 소문은 증폭됐고 여기에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장의 권력 장악설이나 중국군 파병설까지 얹혔다. 근거 없는 이야기에 그럴싸한 살이 덧붙여지면서 가짜뉴스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사실 사망설이 한창 번지기 시작한 19일 김정은은 부인 이설주, 딸 주애와 함께 평양에서 열린 '전국 피복·신발 전시회-2026'을 참관했다. 이튿날 북한 관영매체들은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이를 보도했다. 하지만 집요한 가짜뉴스는 이를 견강부회식으로 해석했다. '사망 사실'이 퍼지니 북한 당국이 이를 은폐하고 기만하기 위해 거짓으로 김정은과 가족의 일정을 공개한 것이란 주장까지 내놓으면서 그럴듯하게 포장을 했다. ◆'뇌졸중 쓰러져 中병원 이송'…뻔하고 반복된 레퍼토리 눈여겨볼 대목은 김정은 사망설에서 드러나는 클리셰(Cliché)다. 뇌출혈로 쓰러졌다거나 북한 의료진이 속수무책이라 중국 병원으로 옮겼다, 혹은 시신은 몰래 평양으로 반입했다는 등의 레퍼토리는 과거 북한 지도자의 신변 이상설이 나올 때마다 되풀이된 판박이다. 과거 북한 최고지도자의 사망설 확산 사례를 돌아보면 그 패턴이 드러난다. 1986년 11월 김일성 주석 피격 사망설이 나왔다. 당시 외신과 국내에서 소문이 크게 부풀렸고 최전방 북측 지역에 조기가 걸렸다는 말까지 나왔다. 결국 김일성이 얼마 뒤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오보로 판명됐다. [서울=뉴스핌] 지난 2011년 12월 28일 평양 금수산태양궁전 앞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 장례식에서 아들이자 후계 최고권력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당시 직책은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운구차 옆을 걷고 있다. [사진=북한매체 종합] 2026.10.20 2008년 9월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권수립 60주년 행사에 불참하면서 와병설이 퍼졌다. 이 경우는 뇌졸중으로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망설과는 별개였고 김정일은 이후에도 3년 넘게 통치했다. 정작 2011년 12월 김정일의 실제 사망은 이틀 가까이 지난 뒤에야 공식 발표됐다. 김일성 주석 때도 1994년 7월 사망 후 하루 이상 지나서 발표됐다. 소문은 엄청나게 번지고 정작 진짜 사망 때는 깜깜무소식으로 있다가 북한 발표가 나오고서야 알게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이런 양상은 이어졌다. 2014년 9~10월 김정은이 약 40일간 공개 활동을 하지 않아 유고설이 불거졌지만 지팡이를 짚고 다시 나타났다. 과체중으로 추정되는 다리 혹은 관절 수술 때문으로 파악됐다. 2020년 4월에는 김일성 생일 참배 불참을 계기로 심혈관 수술 후 위중설, 사망설이 퍼졌다. 일부 정치인이 "99% 확신한다"고까지 단언했지만, 김정은은 20일 만인 같은 해 5월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5월에도 원산에서 현지지도 중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는 소문이 외교가와 증권가를 중심으로 돌았다. 번번이 오보로 끝났지만 가짜뉴스와 소문은 '죽지 않는 각설이'처럼 주기적으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일단 베껴 쓰고 보자'…줏대 없이 흔들린 언론 이번 사태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은 언론의 대응이다. 유력 외신뿐 아니라 우리 언론도 줏대 없이 흔들렸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확산일로를 걸으니 '일단 베끼거나 받아쓰고 보자'는 심리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남이 쓰니 나도 쓰고, 안 쓰면 낙종이 될까 불안해 쓰는 식이다. 그 결과 독자와 시청자, 국민은 전례 없는 혼란을 겪었다. 소문이 가장 먼저 들이닥친 주식시장은 출렁였고, 포털과 SNS에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넘쳐났다. 유튜브 일부 채널과 콘텐츠는 한술 더 떴다. 자극적인 제목과 섬네일을 앞세워 사망설을 기정사실처럼 다루며 혼란을 부채질했다. 조회수와 수익이라는 상업적 계산 앞에서 최소한의 사실 확인 의무는 실종됐다. 필자 또한 이번 사태의 한복판에서 적지 않은 시달림을 겪었다. 수많은 지인과 독자들로부터 '정말 사망한 것이냐', '평양이 지금 난리라는 데 파악해 볼 수 있냐'는 문의 전화와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지난 34년간 북한 취재 현장에서 여러번의 '사망·유고설'을 겪었지만 이번은 유독 파장이 크다. 최근의 남북관계와 북한 김정은과 김여정 남매의 비정상적이고 호전적인 도발 상황이 국민이 불안감을 키운 것이란 생각도 든다. ◆'강 건너 불구경'식 정부 대응도 문제 정부 대북부처의 대처도 비판받을 소지가 많다. '가짜뉴스 엄정 대응'을 공언해 왔지만 이번엔 사실상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30일 국회에 김정은의 체중이 약 140kg에 이르러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높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소문이 돌 때 더욱 신속하고 구체적인 사실관계 설명이 필요했다. 책임 있는 당국자가 직접 나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설명하고 소문을 일찍 진화했어야 했다. 국회 정보위원회의 대응도 도마에 오른다. 정보위가 국정원 긴급보고를 받아 사망설이 가짜라는 점을 확인하고, 즉각 공개했더라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란을 차단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일수록 정보위가 정치적 계산을 앞세우지 않고 사실을 확인해 국민에게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본부 청사와 원훈석 [뉴스핌 자료사진] ◆전문성 키우지 못한 언론도 책임 느껴야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북한 체제의 폐쇄성에 있다. 더구나 김정은 한 사람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수령 유일지배 독재체제다. 김정은이 유고상황에 빠지면 대책이 없어진다. 이런 사정에 있다보니 '사망설'을 비롯한 소문의 파괴력은 클 수밖에 없고, 거짓인 줄 알면서도 시장과 사회가 뒤흔들리는 기형적인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정보의 불투명성과 체제의 취약성이 만나 만든 구조적 고질병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우리 언론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북한 보도가 지라시 수준의 글에 휘둘리는 이유는 전문성을 갖춘 저널리스트를 제대로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때 언론사들이 전문기자를 두고 연구소 등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경영 논리와 남북관계 경색에 밀려 유명무실해졌다. 북한 정보의 진위를 가려낼 안목과 취재 네트워크를 갖춘 기자가 줄어들면서 확인되지 않은 SNS 글 한 줄에 증시와 언론, 여론이 함께 휘청이는 모습이 연출됐다. '김정은 사망' 같은 민감한 대북 정보는 우리의 안보와 남북관계, 한반도 정세에 미칠 파장이 크다. 이번 일을 일과성의 해프닝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제대로 된 진단과 대책마련이 없으면 김정은은 앞으로도 몇 번이고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때마다 우리는 휘둘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정부 대북 부처와 유관기관, 언론, 학계 등이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yjlee@newspim.com 2026-10-21 06:12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