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고희영 감독이 3일 영화 사진의 얼굴로 역사 접근법을 밝혔다
- 구와바라 사진 10만여장 중 1000컷으로 현대사를 엮었다
- 고 감독은 제주4·3 다큐를 준비하며 기록의 가치를 강조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우리의 얼굴, 사진이 기억해줬죠"
[서울=뉴스핌] 정태이 기자 = "젊은 세대들에게 '이런 역사가 있었어'라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아요. 예술로 먼저 접하고 마음이 움직여서 스스로 더 찾아보는 것,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3일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영화 '사진의 얼굴'의 고희영 감독은 이번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바를 이같이 말했다. 고 감독은 "학생들도 영화를 보면서 월남 파병이나 동두천의 슬픈 사연이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자연스럽게 역사에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전날 개봉한 '사진의 얼굴'은 일본 사진기자 구와바라 시세이가 약 60년간 카메라에 담아온 한국의 모습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다. 청계천과 월남 파병, 민주화운동, 동두천 기지촌 여성 등 한국 현대사의 여러 얼굴을 그의 사진을 통해 마주한다.
개봉을 맞은 고 감독은 "지난주까지 구와바라 선생님과 사모님이 계속 일정을 함께해주셨는데 두 분이 안 계시니 굉장히 허전하다"며 "관객분들이 영화가 좋다고 말씀해주셔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이어 박찬욱 감독으로부터도 영화를 잘 봤다는 연락과 함께 응원 영상을 받았다며 감사함을 전했다.
고 감독이 구와바라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전작 '불숨'을 촬영하면서다. 당시 도자기 장인의 이야기를 담던 중 구와바라가 찍은 흑백사진을 접했고 사진 한 장이 지닌 힘에 매료됐다. 이후 그의 작품을 찾아본 뒤 직접 구와바라를 만나 영화 제작을 제안했다.
"사진의 힘이 굉장히 크다고 느꼈어요. 작품을 찾아보니 너무 좋았고 '이걸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선생님을 찾아갔죠. 다행히 흔쾌히 허락해주셨어요."

구와바라가 남긴 10만여장의 사진 가운데 영화에 사용된 것은 약 1000컷이다. 고 감독은 월남 파병과 민주화운동, 한일회담 등 구와바라가 오랫동안 천착했던 주제를 중심으로 큰 테마를 정한 뒤 사진을 선별했다.
고 감독은 "구와바라 선생님의 사진은 한 장 안에도 드라마가 있다"며 "사진을 보면 당시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지, 그 사람은 이후 어떻게 됐을지 여러 가지를 상상하게 된다"고 말했다.
사진을 어떻게 보여줄지뿐 아니라 그 기록을 어떤 목소리로 들려줄지도 중요한 고민이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구와바라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나 정작 구와바라는 자신의 내레이션을 원하지 않았다.
고 감독은 "선생님의 육성으로 들어가야 사진의 힘이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선생님은 전문 성우가 있는데 왜 자신이 해야 하느냐며 싫어하셨다"고 웃었다. 결국 구와바라의 아내와 힘을 합쳐 녹음을 진행했고 지금의 내레이션이 완성됐다.
내레이션 역시 감독이 새롭게 써낸 것이 아니다. 고 감독은 구와바라가 평생 남긴 인터뷰와 책, 잡지 기고문 등을 모아 사진을 찍었던 당시 그의 생각과 감정을 찾아내 각각의 사진과 연결했다.
영화를 만들며 고 감독이 주목한 것은 구와바라의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였다. 그는 구와바라의 시선을 단순히 외국인이기 때문에 객관적이었다고 보지는 않았다.
"낯선 일본인이기 때문에 찍을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일본인이기 때문에 편향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은 사진 프레임 안에서 어느 한쪽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고 감독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구와바라의 청계천 사진을 꼽았다. 왜 가난한 청계천을 계속 찍느냐는 질문에 구와바라는 건물이 가난했을 뿐 그곳의 사람들이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답했다.
고 감독은 "그 말이 선생님을 설명하는 키워드라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얼마나 편견에 사로잡힌 눈으로 사람을 보고 있는지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구와바라가 기록한 것은 결국 특정 사건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이러한 시선은 영화 제목인 '사진의 얼굴'에도 이어졌다.
"월남 파병부터 동두천까지 분명히 있었지만 우리가 억지로 지웠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우리의 얼굴이에요. 선생님이 그 얼굴들을 기억하고 기록해줬다고 생각해 '사진의 얼굴'이라는 제목을 지었습니다."
고 감독은 구와바라의 사진을 통해 젊은 세대가 과거를 자연스럽게 접하기를 바랐다. 특히 AI 시대일수록 실제 현장을 남기는 기록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록자가 없으면 AI도 아무 기능을 할 수 없다"며 "구와바라 선생님처럼 빛과 그림자를 모두 기록한 사람이 더 소중하다"고 말했다. 실제 전국 사진학과와 방송·영상 관련 학과 가운데 약 200곳을 골라 영화 관람을 권하는 손편지를 직접 보냈다.

이처럼 기록을 남기는 일을 자신의 역할로 여기는 고 감독은 다큐멘터리 작업을 농사에 빗댔다. 그는 "이게 제 직업이다. 농부처럼 하는 거다. 미리 씨를 뿌려두고 다른 영화를 제작하면서 또 다음 작업을 이어간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작업 방식 속에서 고 감독은 이미 제주4·3을 다룬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기존 작품들이 희생자의 이야기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가해자의 흔적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2022년부터 작업을 이어왔으며 내년 영화제 출품을 거쳐 제주4·3 80주년에 맞춰 개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고 감독은 관객들이 구와바라가 남긴 사진의 가치를 함께 발견하기를 바랐다.
"선생님이 우리가 영영 못 볼 뻔했던 사진들을 큰 선물로 남겨줬다고 생각해요. 그 선물을 갚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많이 봐주시는 것밖에 없을 것 같아요. 선생님이 노년에도 찍고 싶은 것을 마음껏 찍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taeyi427@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