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장훈이 9일 오후 도쿄 병원에서 별세했다
- NPB 통산 3085안타로 최다 기록을 남겼다
- KBO 보좌와 증언 활동으로 한일 야구에 기여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오른손 화상·원폭 참상 극복한 안타 제조기...한일야구에 거대한 족적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일본프로야구(NPB) 통산 최다 안타 기록을 보유한 재일동포 출신의 전설적인 타자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씨가 별세했다. 향년 86세.
일본 TBS는 "장훈(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이 9일 오후 5시쯤 도쿄의 한 병원에서 숨졌다"고 10일 보도했다. 매체는 "히로시마 출신인 장훈은 프로야구 선수로 도에이와 요미우리 등에서 활약했다"며 "현역 시절 7차례 타격왕에 올랐고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3000안타를 달성하는 등 수많은 대기록을 세웠다"고 소개했다.

1940년 6월 19일 히로시마에서 재일동포 2세로 태어난 고인의 삶은 역경의 연속이었다. 어린 시절 입은 심한 화상으로 오른손 검지와 중지가 붙는 장애를 얻었다. 다섯 살 때인 1945년 8월에는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로 폭심지 근처에 있던 누나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어머니의 보호로 목숨을 건진 고인은 피폭의 기억과 신체적 장애, 재일동포를 향한 극심한 차별을 강인한 정신력으로 극복했다. 왼손으로 공을 던지고 치는 타자로 성장해 일본 야구사를 새로 썼다.
오사카 나니와상고를 거쳐 1959년 도에이 플라이어스에 입단한 고인은 데뷔 첫해 퍼시픽리그 신인왕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1961년 처음 타격왕에 올랐고 1962년에는 도에이의 리그 첫 우승을 이끌며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1967년부터 1970년까지 4년 연속 타격왕을 차지하는 등 통산 7차례 타격왕에 올랐고 포지션별 최고 선수를 뽑는 베스트 나인에 16차례나 이름을 올렸다.

197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한 고인은 '홈런왕' 오 사다하루(왕정치)와 공포의 'O-H 타선'을 구축하며 타율 0.355 182안타로 타선을 이끌었다. 1980년 롯데 오리온스(현 지바 롯데) 소속이던 5월 28일에는 가와사키구장에서 열린 한큐 브레이브스전에서 강속구 투수 야마구치 다카시를 상대로 우월 홈런을 터뜨려 NPB 역사상 최초로 통산 3000안타 고지를 밟았다.
1981년까지 23시즌 동안 도에이, 닛폰햄, 요미우리, 롯데를 거치며 통산 2752경기, 타율 0.319, 3085안타, 504홈런, 1676타점, 319도루의 대기록을 남겼다. 특유의 광각 타격으로 좌우를 가리지 않고 타구를 보내 '안타 제조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가 남긴 3085안타는 은퇴 후 45년이 지난 현재까지 NPB 통산 최다 안타 기록으로 깨지지 않고 있다. 일본 리그에서만 3000안타를 돌파한 선수 역시 고인이 유일하다. 1990년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한국 야구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1982년 KBO 리그 출범 당시부터 2005년까지 KBO 총재특별보좌를 맡아 재일동포 선수들의 한국 진출과 기틀 마련에 힘을 보탰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1980년 체육훈장 맹호장, 200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했다. 현역 시절 한국 국적을 지켰던 고인은 말년에 일본 국적을 취득했음을 밝혔으나 "한국인 부모에게서 받은 뿌리에 대한 자부심은 변함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은퇴 후에는 야구 평론가와 방송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시사 프로그램 등에 출연하며 거침없는 직설적 논평으로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말년에는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원폭 피폭 참상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증언 활동에 앞장서며 한일 양국 야구계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psoq1337@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