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문화·연예 대중문화·연예일반

속보

더보기

[변상문의 風流 여행기] 여여(如如)한 벽소령과 세석평전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종주 둘째 날 아침 햇살이 묵은 한지에 투영되는 것처럼 희뿌연 하게 번져왔다. 깊은 잠을 자지 못한 탓인지 온 몸이 뻑뻑했다. 맑은 샘물을 길어와 멸치,  다시마를 넣고 떡국을 끓였다. 뽀얀 김이 넘쳤다. 다시마 향이 입맛을 돌게 했다. 뜨끈한 국물과 부드러운 떡이 속으로 들어가니 핏속에 꽃이 피는 것 같이 화해졌다.
 
배낭을 짊어졌다. 어제보다 무게차이가 없었다. 몇 백 년은 묵음직한 주목나무 군락을 지났다. 호박돌이 뒹구는 산길 위로 노란색과 하얀색이 섞인 가을 햇살이 내려앉고 있었다. 몸에 착 달라붙은 배낭이 내 육신덩어리 인양 새털처럼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천왕봉으로 난 길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오르는가 싶으면 내리막 길 이고, 내리막 길 인가 싶으면 평지 길 이었다. 벽소령 입구 길은 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 입구 같았다. 빗자루로 가지런하게 쓸어 놓은 것 같은 길을 애 띤 운문사 비구니 스님들이 하얀 고무신을 신고 걸으면 거기가 극락일 것 같았다. 그런가 하면 너덜지대를 지나 안돌이를 안고 걷는 길은 턱 수염이 긴 비구 스님들이 게걸스럽게 걷기에 딱 좋은 길 이었다. 길의 마루에는 일주문 같은 바위가 양 옆에서 서로 마주보고 버티고 있었다. 그 사이로 단풍나무가 하늘 거렸다. 빨갛게 물든 단풍잎은 입술이 요조한 보살님이었다.

평평한 너널바위에 걸 터 앉았다. 근육이 잘 단련된 흑마 등에 올라탄 기분이었다. 멀리 산맥들이 굽이굽이 흐르고 있었다. 왼쪽을 보니 경상남도 함양 마천 땅이다. 오른 쪽을 보니 전라남도 구례 땅과 경상남도 하동 화개 땅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화개 땅 눈썹쯤에는 청학동 푸른 학이 두 날개를 쫙 벌이고 있었다. 청학동 너머에는 섬진강이 해금처럼 개다리 모양으로 묵묵하게 흐른다. 섬진강 너머에는 순천 백운산이 구름 위로 우뚝 솟아 거문고 술대처럼 섬진강을 금방이라도 청칠 태세다. 

눈을 돌리니 구례 땅 피아골이다. 피아골(稷田)은 오곡 중 하나인 ‘기장(직稷)을 많이 심었다 해서 유래된 말이다. 기장을 다른 말로 ‘피’라고 한다. ‘피’는 볏과의 한 해살이 풀로써 떡, 술, 엿을 만드는 원료로 쓰인다. 일부에서는 6.25 전쟁 때 이 곳 피아골에서 빨치산이 많이 죽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는 말을 퍼트리고 있으나, 근거 없는 낭설에 불과하다. 발음하기에 다소 거센 면이 있어서 붉은 피를 연상하기도 하나 이 또한 피아골이라는 명칭이 주는 매력이다. 피아골이 발음 따라 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벽소령에 도착했다. 벽소령(碧霄嶺)은 지리산 달빛이 하얗다 못해 푸르게 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감은 하늘(玄天)은 현묘한 하늘이다. 이 현묘한 하늘 가운데 떠 있는 달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하얗다. 무위(無爲)의 자연이기 때문에 그렇다. 현묘한 푸른 달빛! 말만 들어도 나처럼 음(陰) 기운이 강한 사람은 가슴이 덜렁덜렁 뛰는 이름이다.

냄비를 꺼내 차를 다렸다. 입안에 은은한 차향이 배었다. 입술을 적혔다. 따뜻한 햇살에 몸을 맡겼다. 허공을 타고 인연 소식이 전해왔다. 인연은 업 따라 온다. 업은 내가 만든 결과물이다. 끝을 알 수 없는 과거로부터 낳고 죽기를 끝없이 반복하며 지은 업이다. 어머님 아버님이 사랑해서 나를 낳은 것이 아니다. 내가 내 업을 따르고, 부모님이 부모님 업을 따른 것이 교묘하게 맞아 떨어져  내가 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인연 맺은 모든 것들은 서로의 업이 맞아 떨어질 때 맺어진다.

마누라가 생각났다. 부부는 기막힌 업의 인연이다. 이 세상에 와서 맺어진 부부인연은 어떤 인연보다도 그 작용력이 크다. 그래서 잘 닦고 잘 관리해야 한다. 다음 생에서 서로에게 더 좋은 인연의 생명을 받도록 서로가 사랑해 줘야 한다. 아들이 떠올랐다. 짓궂은 놈이란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늘 나 보다 더 세상을 산 것처럼 떠들어 대는 그 놈이 대견스럽다. 딸년의 웃음이 보였다. 다소 쌀쌀 맞기는 해도 그래도 고년이 있어 내 맘이 즐겁다. 가슴으로 그윽한 가을 향기가 들어왔다.

오른쪽 다리가 내리막길에서 걷기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지팡이에 의지에 걸었다. 세석평전이 보였다. 세석평전(細石平田)은 잔 돌이 많은 밭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세석의 철쭉은 지리산 8경 중 하나다. 봄이 아닌 가을인 관계로 철쭉을 보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민둥산 등선이 편하게 다가왔다. 뚱한 등선엔 갈대들이 하늘거렸다. 세석이 평지로 보이지만 눈 아래로 까마귀들이 날았다.

세석평전에 뭉개고 앉아 보니 산들에 대한 단상이 떠올랐다. 북한산은 요요(姚姚)한 여고생 같다. 설악산은 요조(窈窕)한 신입 여사원 같다. 한라산은 연연(姸姸)한 기생 같다. 오대산은 국어를 잘하는 여대생 같다. 계방산은 지혜로운 새색시 같다. 지리산은 엄마의 젖을 잡고 잠든 아기의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처럼 그윽하다. 지리산은 묵묵한 부처님의 마음 같다. 지리산은 사천왕처럼 무섭다. 지리산은 굿판의 만신 모습이다. 지리산은 꾀죄죄한 내 가슴과 머리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영산(靈山)이다.

허기진 배를 라면으로 채우고 세석대피소에서 40여 분 거리에 있는 촛대봉에 올랐다. 천왕봉이 눈앞에 우뚝 솟아 있다. 가슴이 둥둥거렸다. 배낭을 내려놓고 양팔을 벌렸다. 천왕봉을 향해 입을 크게 벌리고 폐 깊숙이 공기를 들이마셨다. 햇살이 등 뒤로 따갑게 쏟아져 내렸다. 소원을 빌었다. “천왕봉 보살님. 천왕봉 보살님. 제 뜻이 이루어지게 해 주소서.” 속 뜰이 희망으로 꽉 차 올랐다.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변상문 전통문화연구소장 (02-794-8838,  sm2909@hanmail.net)

[관련키워드]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달러값 떨어지자 '사자' 몰렸다 [서울=뉴스핌] 박가연 기자 = 달러/원 환율이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달러화 선취매가 늘어난 영향으로 지난달 거주자외화예금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달러화예금도 처음으로 1000억달러를 넘어섰다. 한국은행이 28일 발표한 '2026년 7월중 거주자외화예금 동향'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외국환은행의 거주자외화예금 잔액은 1283억4000만달러로 전월 말보다 150억1000만달러 증가했다. 잔액 기준 역대 최대치로 지난해 12월 기록한 종전 최고치인 1194억3000만달러를 7개월 만에 넘어섰다. 월간 증가폭도 지난해 12월 158억8000만달러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컸다. [자료=한국은행] 거주자외화예금은 내국인과 국내 기업, 국내에 6개월 이상 거주한 외국인, 국내에 진출한 외국기업 등이 국내 은행에 예치한 외화예금을 말한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달러화예금은 1089억2000만달러로 전월보다 111억2000만달러 증가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달러화예금 잔액이 1000억달러를 넘어선 것은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전체 거주자외화예금의 84.9%를 차지했다. 달러/원 환율이 지난 6월 말 1549.4원에서 7월 말 1424.0원으로 한 달 새 125.4원 떨어지면서 달러화 선취매가 늘어난 영향이다. 대기업의 경상대금 수취와 증권사의 외화채권 발행자금, 고객예탁금 유입도 달러화예금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유로화와 엔화예금도 증가했다. 유로화예금은 일부 기업의 경상대금 수취 등으로 전월보다 22억2000만달러 늘어난 80억6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엔화예금은 일부 기업의 배당금 지급 목적 예치와 증권사의 외화채권 발행자금 유입 등으로 15억달러 증가한 86억1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위안화예금은 전월보다 2000만달러 증가한 12억9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영국 파운드화와 호주 달러화 등이 포함된 기타통화 예금은 14억6000만달러로 전월보다 1억6000만달러 증가했다. 예금 주체별로는 기업예금과 개인예금이 모두 늘었다. 기업예금 잔액은 전월보다 135억7000만달러 증가한 1125억6000만달러로 전체 외화예금의 87.7%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기업의 달러화예금은 전월보다 101억1000만달러 늘어난 956억9000만달러로 집계됐다. 개인예금은 157억7000만달러로 한 달 새 14억4000만달러 증가했다. 개인이 보유한 달러화예금도 10억1000만달러 늘어난 132억3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은행별로는 국내은행의 외화예금 잔액이 1023억9000만달러로 전월보다 96억1000만달러 증가했다. 외국은행 국내지점은 259억5000만달러로 54억달러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eoyn2@newspim.com 2026-08-28 12:00
사진
'헌법재판관 미임명' 한덕수 5년 구형 [서울=뉴스핌] 백승은 기자 = 내란특검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을 저지할 목적으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았다는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재판장 이진관)는 28일 직무유기 등 혐의를 받는 한 전 총리와 정진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김주현 전 대통령실 민정수석·이원모 전 공직기강비서관의 결심 공판을 열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 [사진=뉴스핌 DB] 한 전 총리는 윤 전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던 지난 2024년 12월 대통령 권한대행을 역임하며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관 후보자 3인(마은혁·정계선·조한창)을 의도적으로 임명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마은혁 재판관이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채택되자 그가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회원인 점, 판사 임관 전 운동권 조직과 진보 정당에서 활동했던 점 등이 대두되며 보수 진영의 비판이 이어졌다. 특검은 한 전 총리가 이런 상황을 참작해 윤 전 대통령의 탄핵 인용 결정을 저지하려는 목적으로 마 재판관의 임명을 104일간 미루고, 마용주 대법관 임명도 3개월 넘게 미뤘다고 본다. 또 지난해 4월 적법한 인사 검증을 거치지 않고 윤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함상훈·이완규 후보자를 헌법재판관 후보로 지명했다는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도 있다.  특검 측은 최종 구형을 통해 "피고인들은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아 헌법재판소의 정상적인 구성을 방해하고 국회 동의까지 모두 마친 대법관마저 임명하지 않아 사법부의 정상적인 구성까지 지연시켰다"며 "그 결과는 국정과 헌법기관의 마비였다"고 밝혔다. 이어 "공무원이 행사하는 권한은 본래 공무원 자신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 피고인들은 권한을 위임한 국민을 배신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들의 행위로) 국민이 국가기관의 공식적인 절차를 믿을 수 있다는 신뢰, 그리고 최고위 공직자가 국민 앞에서 하는 말을 믿을 수 있다는 최소한의 신뢰까지 훼손됐다"고 짚었다. 특검 측은 "불의한 권력 앞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보다 헌법과 양심을 지키는 것이 공직자의 의무라는 것을, 국민이 맡긴 권한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사용했을 때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이 판결을 통해 분명하게 남겨 주시기 바란다"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날 특검은 함께 재판에 넘겨진 정 전 비서실장과 김 전 민정수석은 모두 징역 4년을, 이 전 비서관에게는 징역 3년을 구형했다. 100wins@newspim.com 2026-08-28 13:52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