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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모스크바 이야기]...(4-3) 소비에트 체제 극복에 몰두한 옐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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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랄지방 출신 '시골뜨기' 옐친, 현장중심 정면돌파형 행동가
고르바초프에 발탁된 후 벼락출세→숙청 거치며 '은원' 깊어져
러시아 최초 대통령으로 재기...소비에트 공산주의 타파 앞장

[서울=뉴스핌] 김흥식 객원논설위원 = 옐친은 거의 모든 면에서 고르바초프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물이다. 고르바초프가 최고 명문 모스크바 대학 법학부 출신으로 지성적이고 논리적인데 비해 옐친은 우랄 지방대학 출신으로 토목공학도 답게 현장 중심적이며 정면 돌파형 행동가로 유명하다.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고르바초프 쪽이 서구적이라면 옐친 쪽은 다분히 슬라브적이다.

[모스크바 로이터=뉴스핌]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이 1995년 9월 연설 자료사진. 2018.01.01.

◆옐친, 우랄지방 출신 토목공학도...현장중심 정면돌파형 행동가

그 부인들도 부창부수라는 말처럼 서로가 뚜렷하게 대비되는 성격이었다. 고르바초프 부인 라이사 여사는 모스크바 대학 철학부에서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미래의 남편 고르바초프를 만나 캠퍼스 커플이 되었다. 라이사는 활동적이고 사교적이어서 전통적인 러시아 여성과는 아주 달랐다.

남편이 집권하자 소련 문화재단의 부총재직을 맡는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부부동반으로 해외방문을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나랏일에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고르바초프의 훌륭한 보좌관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민족주의적 성향이 농후한 보통 러시아인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반면 옐친 부인 나이나 여사는 남편처럼 우랄지방 대학에서 수리관개학을 마치고 평범한 연구원 생활을 했다가 옐친을 만났다. 퍼스트 레이디 신분임에도 가정부를 두지 않고 모든 요리를 직접 만들고 남편 옷을 다림질 하는 등 보통 가정주부와 다르지 않았다. 옐친이 집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하는데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보통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정적 타입이다.

달라도 너무 다른 대조적인 커플이지만 딱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고르바초프와 옐친은 한 달 차이인 1931년생 양띠이고 라이사와 나이나는 1932년생 원숭이띠로 서로 동갑나기들이라는 점이다.

◆‘시골뜨기’ 옐친, 고르바초프에 발탁 후 벼락출세→숙청...깊어진 ‘은원’

둘 다 지방당 서기를 거쳐 중앙으로 진출했다. 당시 정치국 실세인 안드로포프와 수슬로프의 강력한 후원을 받아 중앙당에 먼저 입성한 고르바초프는 1985년 체르넨코 사망으로 대망의 당 서기장이 되었다. 소련 역사상 최연소 지도자가 되었지만 보수파에 둘러싸여 개혁·개방을 야심차게 추진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개혁지지 우군을 확보하기 위해 우랄지방 스베르들로프스크(지금의 에카체린부르크) 지방당 서기이던 옐친을 발탁, 당 중앙위원회 건설담당 서기로 임명했다. 옐친은 얼마 후 핵심 요직의 하나인 모스크바 시 당 제1서기와 정치국원으로 파격 승진했다. 고르바초프와 달리 정치적 배경이 없던 시골뜨기 옐친으로서는 고르바초프의 신뢰를 바탕으로 벼락출세길에 오른 셈이다.

공고해 보였던 정치적 동지 관계에 조금씩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개혁의 본질적 문제와 속도를 놓고 고르바초프의 온건론과 옐친의 급진개혁론이 맞부딪치면서 파열음이 생겨난 것이다. 옐친은 고르바초프 개혁을 공개 비판했다는 이유로 모스크바 시 당 서기와 정치국원에서 밀려나 당 중앙위원 후보위원으로 대폭 강등됐다. 사실상 정치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다.

당시 고르바초프는 자신의 은덕을 입은 옐친의 배신에 격노해 다시는 정계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없게 하겠다고 엄포를 놨다고 한다. 옐친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 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한이 맺힌 옐친은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한때 자살시도까지 할 정도로 심적 타격이 컸다고 한다. 나중에 정상에 오른 옐친이 정치적 은인이기도 한 고르바초프를 끊임없이 괴롭힌 것을 보면 마치 응징의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같다.

러시아 격동기를 주도한 고르바초프와 옐친의 실제모습을 쏙 닮은 입상이 모스크바 시내에 설치돼 시민들과 관광객의 기념사진 촬영용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사진=뉴스핌DB]

◆옐친, 러시아 최초 대통령으로 재기...쿠테타 진압 새 지도자 부각

절치부심하던 옐친에게 재기의 기회가 왔다. 1989년 소련인민대표대회 대의원으로 당선된데 이어 다음해 5월 실시된 러시아 최초의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고르바초프와 달리 민선으로 당선된 옐친의 정치적 위상이 순식간에 고르바초프와 대등한 수준으로 오른 것이다.

1년 후 발생한 쿠데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쿠데타군 탱크에 올라 사자후를 토하며 영웅적 지도력을 발휘함으로써 새로운 지도자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자신감을 잃어가는 고르바초프와 점점 커지는 대담함을 보이는 옐친 간의 정치적 처지는 완전히 역전됐다.

고르바초프에게 개인적 감정이 많은 옐친은 소비에트 체제 유지에 안간힘을 쓰는 고르바초프를 가차 없이 몰아쳤다. 공개적으로 수모를 주는 일도 적지 않았다. 고르바초프에게 동정적 여론이 형성되면서 옐친의 지나친 적대감 표시에 비판도 있었다. 오죽하면 부시 대통령을 비롯해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콜 독일총리 등 서방 지도자들이 고르바초프 구하기에 나서기까지 했겠는가.

소련을 주도적으로 해체하고 기세높게 출범한 옐친이지만 그의 통치는 희망보다는 실망을 안겨주는 결과로 나타났다. 의회보수파와 내란에 가까운 정쟁을 벌이고 민영화를 포함한 시장경제 정책이 시행착오를 거듭하자 소련해체 이전보다 모든 것이 악화되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96년 재선에 겨우 성공했지만 경제사정의 악화로 98년에는 국가모라토리엄(대외채무지불유예)까지 선포돼 '세계의 병자'라는 소리를 듣기에 이르렀다. 정치에 흥미를 잃은 옐친은 다음해인 1999년 돌연 그동안 후계자로 키워온 푸틴 총리를 대통령 직무대행으로 임명하고 자신은 사임해 버렸다.

고르바초프와 옐친이 숙명의 정적관계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모든 면에서 서로 달랐지만 특히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입장에서 첨예하게 대립된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고르바초프는 느슨한 형태로나마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개혁·개방으로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으려 했다.

2004년 9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회 세계뉴스통신사 대회' 참석자. 왼쪽에서 두번째는 야마노우치 일본교포통신 사장, 오른쪽에서 두번째는 김병호 조선중앙통신 부사장. [사진=뉴스핌DB]

◆옐친, 공산주의 타파에 앞장...레닌 묘 이장명령-‘소비에트’ 명칭 사용금지

옐친은 정반대였다. 어린 시절 그의 부친이 반 소비에트 활동으로 수년간 투옥된 사실을 잊을 수 없었던 옐친은 소비에트 체제를 철저히 타파되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했다. 소련이 해체되자마자 붉은광장에 안치돼 있는 레닌의 시신을 이장하라는 결정을 내릴 정도였다.

레닌의 묘 이장 명령은 사회주의 체제가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조치로 여겨졌다.(이장명령은 반대여론 등으로 계속 연기되었고 후임 푸틴대통령도 역시 집행을 계속 미루면서 붉은광장에 그대로 안치돼 있다). 러시아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오랜 기간 공산주의 골수분자였던 옐친이 철두철미한 반공투사로 변신한 것이다.

미국을 방문한 옐친이 미 의회지도자들과의 회동에서도 자신의 반공 입장을 명쾌하게 밝혔다. 미국과 러시아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미국에는 공산당이 있지만 우리 러시아에는 이제 공산당은 없다”고 했다.

공산주의 타파에 자부심을 가진 옐친은 스스로를 ‘러시아 민주주의 수호자’로 불리길 원했고 추종자들이 ‘러시아 민주주의 아버지’로 추켜세우기도 했다. 반면 일부에서는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이 힘겹게 일궈놓은 ‘민주화’와 ‘자유화’라는 정치적 자산을 옐친이 가로챘을 뿐이라는 혹평도 있다.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옐친의 단절 의지가 얼마나 철저했던지 다음의 실례로도 짐작할 수 있다. 옐친은 ‘소비에트’라는 말을 극도로 싫어했다. 고르바초프를 물리치고 ‘도전받지 않는 지도자’ 반열에 오르자 모든 정부기관과 공공기관들에 ‘소비에트’가 붙은 명칭을 모조리 제거하라고 지시했다. 대부분의 정부 기관들이 지시에 따랐다. 문제는 타스통신이었다.

타스 통신 사장직을 20년 이상 유지한 '처세의 달인' 이그나텐코가 한국 뉴스통신사와 협력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2004.09. [사진=뉴스핌DB]

◆소비에트연방 뉴스통신사 '타스'→기형적 별난 이름 '이타르-타스'로 한때 개명 

원래 타스라는 명칭은 ‘소비에트 연방 통신사’라는 뜻으로 러시아어 앞머리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따라서 옐친 지시대로라면 타스라는 명칭은 쓸 수 없다. 정부기관 명칭이야 내부적인 사항이라서 ‘소비에트’를 빼도 별문제가 없었지만 타스라는 이름은 국내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 오래전부터 인식되어온 브랜드라 ‘소비에트’를 제거한 이름으로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나온 게 ‘이타르-타스‘라는 이름이었다.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이타르-타스에 대해 처음에는 모두들 갸우뚱했다. ’이타르‘라는 이름 자체가 ’러시아 정보통신사‘라는 의미로 러시아어 머리글자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타르-타스‘로 하면 ’러시아정보통신사-소비에트 연방 통신사‘가 되는 것이다. 별난 이름으로 10여년 사용하다가 최근 푸틴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원래의 ’타스‘로 되돌아갔다.

▲김흥식 뉴스핌 객원논설위원
한국외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하고 1977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첫발을 디뎠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로 해직되는 아픔을 겪고 쌍용그룹에 몸담고 있다가 1988년 연합뉴스 기자로 복귀했다. 1991년 한국의 첫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파견돼 맹활약했다. 이후 연합뉴스 북한부장, 남북관계 부장, 문화부장, 논설위원실 간사, 경영기획실장을 거쳐 편집담당 상무이사를 지냈다. 퇴임후 연합뉴스 부설 동북아센터 상임이사, 중소기업진흥공단 비상임이사, 도로교통공단 비상임이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특별위원 등을 지낸뒤 현재 뉴스핌 객원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kh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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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전지 평택을·부산 북갑 판세는 [서울=뉴스핌] 박서영 기자 = 6·3 지방선거를 하루 앞두고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치러지는 경기 평택을과 부산 북구갑이 여야 모두 '단일화 없는 정면 승부' 속 최대 격전지로 자리잡아 끝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쉽지 않다. 두 지역 모두 '초접전' 3자 구도가 끝까지 유지되면서 막판 표심의 미세한 이동이 승패를 가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5월 14일 제9회 전국지방동시선거 평택을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하는 더불어민주당 김용남, 국민의힘 유의동, 조국혁신당 조국, 진보당 김재연, 자유와혁신 황교안 후보가 후보 등록을 마쳤다. [사진=뉴스핌 DB] ◆ 평택을, 민주·보수 모두 단일화 무산...김용남·유의동·조국 3자 초접전 경기 평택을에선 김용남 더불어민주당 후보, 유의동 국민의힘 후보, 조국 조국혁신당 후보가 오차 범위 내 접전을 벌이며 3자 구도가 굳어졌다. 프레시안이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해 지난달 25~26일 평택을 유권자 703명을 대상으로 무선 자동응답(ARS) 방식으로 진행한 후보 지지도 조사 결과, 김 후보 21.4%, 유 후보 21.2%, 조 후보 23.4%로 오차 범위 내 접전이 펼쳐졌다. 김재연 진보당 후보와 황교안 자유와혁신 후보도 각각 9.4%, 12%를 기록했다. 3자 후보들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상황에서 김재연, 황교안 후보의 지지율이 10% 안팎으로 기록되자 단일화 문제가 평택을 판세를 뒤흔들 막판 변수로 떠올랐다. 그러나 범민주 진영에서 김용남, 조국, 김재연 후보 사이의 단일화 논의가 사실상 불발됐고, 보수 진영에서도 유 후보와 황 후보의 단일화 논의가 중단됐다. 양측 모두 '핵심 키'였던 단일화 카드가 무산되면서 뚜렷한 '1강' 없는 3자 구도가 이어질 전망이다. 김재연 후보는 지난달 28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단일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지금 상황이 또 반드시 단일화를 해야 할 정도의 국면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완주 의지를 제가 계속 밝힌 바가 있다"라고 선을 그었다. 황 후보도 단일화 없는 '완주' 기류가 굳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 후보는 이날 SBS 라디오에 출연해 "단일화하자고 제안했는데 사퇴하라고 하면 드릴 말씀이 없다"면서도 "지금 지역에선 흩어진 보수 목소리를 하나로 합쳐야 된다는 열망, 민심이 굉장히 크게 움직이고 있다"라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 부산 북구갑, 한동훈 '상승세' 속 보수 분열…끝까지 안갯속 부산 북구갑은 하정우 더불어민주당 후보, 박민식 국민의힘 후보, 한동훈 무소속 후보의 3자 구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여론조사에선 한 후보의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MBC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6~27일 북구 갑 거주 만 18세 이상 500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가상 번호 전화면접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하 후보 37%, 한 후보 43%로 오차범위 내 접전이다. 박 후보 14%를 기록했다. 지난달 19일 공표 조사에 비해 한 후보는 10%p 상승한 반면, 박 후보는 6%p, 하 후보는 1%p 하락하면서 보수 지지층이 한 후보 쪽으로 결집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런 기류 속에 보수 단일화는 끝내 성사되지 못한 분위기다. 같은 조사를 살펴보면 범야권 후보 단일화 필요성을 묻자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이 56%로 '필요하다'(33%)보다 20%p 이상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야권 후보들은 단일화 문제를 놓고 거센 설전을 이어갔다. 삭발 투혼을 불사하며 완주 의지를 내비친 박 후보는 지난 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 후보를 겨냥하며 "가짜 보수인 주제에 국민의힘 이름 훔쳐 쓰려고 하는 게 딱하다. 무소속 (후보) 뽑으면 당내 분열이라는 비극을 반복하며 이재명 정부의 폭주만 도와주는 꼴"이라고 힐난했다. 이에 한 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현명하신 북구 시민 여러분께서 한동훈으로 단일화해 주시라"며 "박 후보 찍는 표는 단순한 사표(死票)가 아니라 민주당 하정우 후보 돕는 표이자 이재명 정권 폭주 돕는 표가 된다"고 맞불을 놨다. 본문의 여론조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seo00@newspim.com 2026-06-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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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IBK기은 지방이전 재점화 [서울=뉴스핌] 정광연 기자 =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책은행 지방 이전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부산시장 선거에서는 한국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대구시장 선거에서는 IBK기업은행 대구 이전이 주요 공약으로 거론되면서다. 금융권은 국책은행 이전이 사전 협의 없이 선거 공약으로 소비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이전 논의가 재점화될 경우 금융권 노사 갈등이 다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한국산업은행] 금융권의 관심은 국책은행 지방 이전 공약에 쏠려 있다. 충분한 사전 논의와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에도 일부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본사 이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어서다. 노조 반발에 더해 법 개정이라는 현실적 장벽도 있어 선거 이후 논란이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산업은행은 윤석열 정부 당시 부산 이전 추진과 무산 과정에서 홍역을 치른 데 이어 이번 선거에서도 같은 논란에 다시 휩싸였다. 현직 부산시장인 박형준 국민의힘 후보는 산은 본사 이전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가덕도신공항 조기 개항과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 통과 등과 함께 산은을 부산에 유치해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한다는 구상이다. 산은 부산 이전을 추진하려면 산은법 개정 등 관련 법령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현실화가 쉽지 않은 구조다. 그럼에도 박 후보는 지역 토론회에서 "포기는 없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박 후보가 재선에 성공할 경우 산은 이전을 둘러싼 공방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산업은행 이전보다는 동남권투자공사 설립 등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산은 부산 이전이 이미 윤석열 정부에서 무산된 프로젝트라는 점과 금융권 반발 등을 고려한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다만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산은 이전이 필요하다는 지역 여론도 적지 않은 만큼, 전 후보가 당선되면 향후 구체적인 논의가 재점화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관측이다. [사진= IBK기업은행] 기업은행(기은)의 경우에는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추경호 국민의힘 후보 모두 대구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김 후보는 지난 12일 열린 일곱 번째 공약 발표회에서 기은 본점 이전 추진과 대기업 유치를 강조하면서, 이를 통해 지역내총생산(GRDP)을 임기 내 100조 원 규모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추 후보 역시 지난 3월 국민의힘 토론회에서 국내외 대기업 투자와 함께 기은 대구 이전을 관철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기은 역시 산은과 마찬가지로 지방 이전을 위해서는 기은법 개정 등 법령 정비가 우선이다. 이에 김 후보는 다수당 후보라는 점을, 추 후보는 초당적 협력을 각각 내세우고 있다. 이 같은 흐름에 금융권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은 잇따른 국책은행 지방 이전 공약과 관련해 수차례 성명을 내 "포퓰리즘에 눈먼 공약"이라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다해 투쟁할 것"이라고 밝히며 전력을 집중하고 있다. 금융노조는 지방 이전 공동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조직적인 대응에도 나섰다. 지난달 15일에는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기은 이전 공약 폐기'를 촉구하기도 했다. 현 정부가 다소 미온적인 산은 부산 이전보다, 여야 후보 모두 대구 이전을 약속한 기은 사태를 더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지방선거 이후 국책은행 지방 이전이 일방적으로 추진될 경우 금융권의 반발과 혼란이 더욱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미 전 정권에서 산은 이전 사태로 심각한 갈등이 불거져 금융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 만큼, 충분한 논의와 소통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윤석구 금융노조 위원장은 "본점 이전은 노동자의 일터와 가족의 삶, 자녀 교육과 돌봄까지 흔드는 문제다. 당사자 설명도, 노조와의 협의도 없이 후보의 공약 한 줄로 금융노동자의 삶을 뒤흔들 수는 없다. 국책은행을 정치적 흥정물로 삼는 모든 시도에 맞서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강조했다. peterbreak22@newspim.com 2026-06-0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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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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