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홈 문화·연예 전시·아트

속보

더보기

괴짜그룹 수퍼플렉스 "세상의 종말보다 '자본주의 종말' 더 상상하기 어려워"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덴마크 3인조 컬렉티브 그룹 수퍼플렉스,국제갤러리에서 7월28일까지 작품전
-경제학적, 기후학적 시스템 성찰한 비평적 작업

[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덴마크의 3인조 작가그룹 수퍼플렉스(SUPERFLEX)는 시니컬하면서도 재기발랄한 컬렉티브 그룹이다. 이들은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골라서 간다. 대체로 심각한 이슈를 건드리는데 가뿐하니 흥미롭다.   

[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덴마크 작가그룹 수퍼플렉스의 국제갤러리 K1 개인전 'Fish & Chips'설치전경.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2024.06.05 art29@newspim.com

1993년 결성된 이래 수퍼플렉스는 자본의 불균형과 왜곡, 민주주의, 기후위기, 거대도시, 난민 등 범세계적 이슈들을 독특한 방식으로 파고들어왔다. 이들이 서울에서 작품전을 갖는다.

서울 삼청로의 국제갤러리(회장 이현숙)는 지난 6월 4일 수퍼플렉스의 'Fish & Chips'전을 K1과 K3에서 개막했다. 작금의 지배적인 경제학 논리를 비트는 작업에서 출발한 이들은 사회, 문화, 정치적 문제로 영역을 넓혀가며 자신들의 사고와 목소리를 미술을 통해 구현해왔다.

[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국제갤러리 K1 수퍼플렉스 개인전 'Fish & Chips' 설치전경. 왼쪽은 뉴욕에 소재한 씨티은행 사옥을 패러디한 화분형 조각에, 제주도 등지에서 자라는 독성식물인 '협죽도'를 심은 것으로 연작 '투자은행 화분' 중 한 작품이다.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2024.06.05 art29@newspim.com

2019년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의 작품전 이후 5년 만에 갖는 한국 전시에서 수퍼플렉스는 기후문제와 경제시스템 사이의 관계성을 살펴본 비평적 작업을 내놓았다. 이 주제를 풀어낸 페인팅, 조각, LED텍스트 설치, 인터랙티브 영상 등 다양한 작품들이 국제갤러리 K1, K3에 자리잡았다.

전시 제목 'Fish & Chips'는 영국을 대표하는 생선튀김 요리가 연상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다른 뜻이다. 수퍼플렉스가 K3에서 소재로 다룬 해양생물과 K1에 내걸린 마이크로칩 회화 속 '데이터의 거래'라는 모티프를 합성한 것으로, 다종다기한 작품을 통해 자신들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조합한 단어다.

K1 전시장에 수퍼플렉스는 'Chips'라는 제목의 화이트톤의 단색화 페인팅들을 내걸었다. 근래 한국에서 재조명돼 세계로 뻗어나간 한국의 단색화 같지만 수퍼플렉스의 회화에는 거대 경제자본의 논리가 저변에 깔려 있다. 수퍼플렉스는 "요즘엔 세상의 종말 보다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했다.

지구의 종말은 먼 미래처럼 느껴지나, 자본주의의 종말은 너무나도 끔찍하고 아찔해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누구나 휴대폰이나 신용카드를 잃어버렸을 때의 황망함을 떠올리면 된다.  

수퍼플렉스는 캔버스에 흰색 아크릴물감을 일곱 겹으로 칠하고, 실리콘으로 마감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세한 패턴이 보인다. 신용카드에 부착된 작은 마이크로 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패턴이다. 이 작은 칩이 지구촌 무수한 사람들의 소비활동을 가능케 하고, 경제적으로 연결시키며 종국적으론 복속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그 칩을 크게 확대해 보일듯 말듯 회화 속에 숨겨놓았다.   

흰색 페인팅들이 내걸린 전시장 중앙에는 역시 흰색의 세라믹 조각이 자리를 잡았다. 수퍼플렉스의 흥미로운 연작인 '투자은행 화분(Investment Bank Flowerpots)'의 한 작품(2019)이다. 골드만삭스, 도이치뱅크, 씨티그룹, JP모건 체이스 등 글로벌 금융계를 쥐락펴락하는 거대 투자은행의 본사 건물을 꽃병으로 제작한 일련의 시리즈다. 이 작품은 금융투자와 거래의 중독적인 면모를 은연 중 암시하고 있다.

초대형 투자은행들의 사옥을 패러디한 꽃병 조각에, 환각을 유발하는 식물(산 페드로 선인장, 페요테 선인장, 마리화나 식물 등)을 심고 이를 키우는 발상이 독특하다. 이번 서울 전시에는 씨티그룹 건물을 본뜬 모형에 제주도를 비롯해 한국 남부지역과 일본 등지에서 자생하는 독성 식물인 협죽도가 심어져 있다. 협죽도는 제주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식물로 붉은 꽃이 아름답게 피지만 올레안더라는 독성을 함유하고 있다. 

[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수퍼플렉스의 국제갤러리 개인전 K1 전시전경. 이미지제공:국제갤러리 2024.06.07 art29@newspim.com

K1 전시장의 바깥쪽 공간에는 LED 텍스트 작품이 빛을 발하고 있다. 알루미늄 프레임에 분홍빛의 LED 글귀를 새겨넣어 전시장은 그야말로 '핑크 룸'이다. 몽롱하고 화사하지만 텍스트는 아찔하다.'Save Your Skin'(위기에서 빠져나와라), 'Make a Killing'(크게 한몫 잡아라), 'Hold Your Tongue'(입을 다물어라)라고 쓰여진 텍스트들은 극심한 경쟁체제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현대인의 경제적 상황을 보여준다. 동시에 인간의 끝없는 소유욕과 경제시스템의 붕괴를 암시하는 듯한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도 감지된다.

[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국제갤러리 K3 수퍼플렉스 개인전 'Fish & Chips'설치전경. 이미지 제공:국제갤러리 2024.06.05 art29@newspim.com

한편 K3 전시실은 전지구적 기후위기에 대면한 수중세계를 다룬 작품들이 어우러졌다. 1관이 암시하는 경제적 비평과는 결이 사뭇 다른, 생태학적 영역으로 전환한 작업이다. 전시장 중앙에는 지구의 지표면이 물에 잠기는 미래에 해양생물의 대안적 터전으로 기능할 수 있는 조각 'As Close As We Get'(2024)이 다섯점 설치됐다.

모듈 형태의 천연석으로 이뤄진 이 조각들은 인류세(Antropocene) 시대 너머의 시점에 인간과 해양생태계 모두의 생존을 지탱할 수 있는 '수면 아래 기반시설'을 표현한 것이다. 현재의 기후위기를 뛰어넘어 '미래'를 고찰한 작가들의 상상력이 빚어낸 수직의 작품들이다.

[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덴마크의 컬렉티브 그룹 수퍼플렉스. 남태평양에서 수중 탐사를 하면서 점프수트를 입은 모습이다.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2024.06.07 art29@newspim.com

이번 서울 전시를 위해 선별된 조각들은 작가들이 "다양한 기하학적 형태를 내포한 거대한 어망처럼 보인다"고 묘사한 K3 건물의 구조와도 조형적 접점를 이루고 있다. 해양식물과 인간의 공생에 대한 작가들의 비전을 2차원적 작업으로 확장한 석점의 'Interface Painting'(2022)이 전시장의 벽면과 천장에 설치됐다. 어류가 서식하기 좋은 산호초들로 이뤄진 환경을 은유하는 산호빛 단색조 캔버스들이다.

​K3 전시실의 하이라이트 작품은 인터랙티브 영상 'Vertical Migration'(2021)이다. LED화면에는 수중해파리의 친척 뻘인 해양생명체 '사이포노포어'의 활동이 구현되면서 관람객의 시선을 인류세적 관점 바깥으로 확장시킨다.

이 작업을 위해 남태평양의 한 지역에서 수중탐사를 시도하기도 했던 수퍼플렉스는 "매일 밤 먹이를 찾기 위해 수면으로 올라오는 수조마리의 바다 생물들처럼, 다가오는 미래에는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인간들도 '수직 이동'을 하게 될 것"이라며 "인류와 해양 생명체 사이의 공통된 운명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서울=뉴스핌]이영란 미술전문기자=수퍼플렉스 'Vertical Migration'. 2021. [이미지제공:국제갤러리] 2024.06.05 art29@newspim.com

영상 속 카메라는 칠흑같이 어두운 심해에서 해수면을 향해 이동하는 사이포노포어의 모습에서 시작해 점점 더 생명체에 가까이 다가가며, 후반부에는 사이포노포어라는 비인간의 시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끔 유됴한다. 이 작품은 2021년에 열린 제76회 유엔 총회에서 유엔 사무국 파사드의 프로젝션으로 선보인 바 있다.

인터랙티브 영상 속 사이포노포어는 관람객이 가까이 다가가거나 물러서면 커지거나 작아지며 반응한다. 작가들은 "어류의 의식이란 게 어떤 것인지 궁금해 출발한 작업으로 인간과 다른 종과의 긴밀한 관계성과 소통을 시도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결국 이번 전시는 '종말'에서 '미래'로 작가들의 시선이 이행되고 있음을 감지하게 한다.전시는 7월28일까지.

[서울=뉴스핌] 국제갤러리 K3 수퍼플렉스 개인전 'Fish & Chips' 현장에서 한국 기자들과 인터뷰 중인 작가들. 포즈를 취해달라는 미디어의 주문에 한 명은 천정을, 또다른 작가는 발밑(맨발이다)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이영란 기자] 2024.06.05 art29@newspim.com

▲수퍼플렉스는 어떤 그룹?

​덴마크의 컬렉티브 그룹인 수퍼플렉스는 지난 2002년 난민을 상대로 배타적 태도를 취하던 코펜하겐 정부를 비판하며 '이방인들이여, 제발 우리를 덴마크인과 홀로 남겨두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를 코펜하겐 도심 곳곳에 부착했다. 공공장소 표지판을 연상시키는 강렬한 주황색 배경에 검은색 텍스트로 디자인한 이 포스터 작업은 외국인, 난민, 디아스포라 등의 이슈를 부각시키며 덴마크에서만 10만장 이상 배부되었다. 2018광주비엔날레를 포함해 이후 전세계적으로 다양한 형태로 활발히 소개됐다.

수퍼플렉스는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라는 주제로 개막한 2024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에도 초대됐다. 이들은 본전시에서 'Foreigners, Please Don't Leave Us Alone With The Danes!'를 두가지 형태로 선보이고 있다. 초기 포스터와 동일한 포스터를 바닥에 쌓아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지난 20여 년간 수많은 이들이 공적, 사적 공간에서 해당 포스터를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보여주는 영상을 선보이고 있다. 

그룹 수퍼플렉스는 1993년에 야콥 펭거, 브외른스테르네 크리스티안센, 라스무스 로젠그렌 닐슨이 설립했다. 자본의 불균형, 이주 문제, 저작권 문제 등을 주목하며 일관되게 세상의 불합리함의 근원을 파헤친 작품들을 선보여왔고, 자신들의 작업을 '도구(tools)'라 명명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작업을 매개로 범세계적 담론에 대해 함께 고민해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들은 ICA 샌디에고(샌디에고, 2024), 사우스 플로리다 현대미술관(템파, 2023), 르 비콜로르(파리, 2022), 쿤스트하우스 그라츠(그라츠, 2021), 투르쿠 미술관(투르쿠, 2020), 테이트 모던(런던, 2017), 후멕스 현대미술재단(멕시코 시티, 2013), 사우스 런던갤러리(런던, 2009), 쿤스트할레 바젤(바젤, 2005)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또한 샤르자 비엔날레(2017, 2013), 광주비엔날레(2018, 2002) 등 다수의 비엔날레와 단체전에 초대되었다. 광주광역시에 공공조형물인 '폴리'작업을 선보이기도 했다. 주요 작품 소장처로는 덴마크 아르켄 현대미술관과 미국 워싱턴 D.C. 허쉬혼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뉴욕 현대 미술관(MoMA), 마이애미 페레즈 아트뮤지엄 등이 있다.

수퍼플렉스는 2019년 한국과 덴마크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파주 도라산전망대에 '집단'의 잠재력과 '협업'의 중요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3인용 모듈식 그네 작품 '하나 둘 셋 스윙!'을 선보였는데,  이 작품은 2023년 통일부에 영구 기증됐다.

art29@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아이폰 듀오 내년 1월까지 배송 지연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심재민 인턴기자 = 애플의 첫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 듀오'가 사전예약 직후 품귀 현상을 빚으며 배송 일정이 내년 1월까지 밀렸다. 이례적인 수요에 따른 흥행 신호로 해석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생산 수율 저하와 핵심 부품 공급 차질이 물량 부족을 심화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생산이 안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70여개국 동시 출시를 추진한 애플의 전략적 판단도 공급난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애플의 첫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 듀오' [사진=로이터 뉴스핌] ◆ 10대 중 4대 품질 기준 미달…증산에도 공급난 지속 21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아이폰 듀오는 지난 16일 사전예약을 시작한 지 30분 만에 일부 모델의 배송 예정일이 내년 1월로 미뤄졌다. 오는 23일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지만, 지금 주문하면 제품을 받기까지 약 3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애플은 사전예약 수요가 이례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실제 예약 건수와 초기 공급량이 공개되지 않은 만큼 장기간의 배송 지연을 수요 폭증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핵심은 생산 수율이다. 중국 경제매체 지몐신문은 지난달 21일 폭스콘 공급망 관계자를 인용해 아이폰 듀오의 완제품 조립 수율이 9월 17일 기준 60%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생산된 제품 10대 중 4대 가까이가 품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당시 공급망 관계자는 애플의 품질 기준을 유지할 경우 생산라인이 안정적인 수율에 도달하기까지 6개월에서 1년이 걸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수율 문제는 최근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메리츠증권은 지난 19일 보고서에서 외장 힌지와 초박형유리(UTG) 등 핵심 부품뿐 아니라 최종 조립 단계에서도 수율 부진이 발생해 생산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애플이 공급망 주문량을 늘리고 있지만 단기간에 물량 부족을 해소하기 어려운 이유다. 중국 증권시보는 지난 10일 애플이 아이폰 듀오의 부품 주문량을 기존보다 30% 늘렸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부품 확보량을 늘리더라도 최종 조립 수율이 개선되지 않으면 실제 출하량을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 애플의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듀오' [사진=블룸버그통신] ◆ 70여개국 동시 출시 강행…국내 초기 물량 3만대 공급 부족을 예상하고도 글로벌 동시 출시를 선택한 판단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블룸버그는 지난 18일 애플이 당초 미국과 중국에 먼저 출시한 뒤 판매 국가를 확대하려던 계획을 바꿔 70여 개 국에서 동시에 사전예약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제한된 초기 생산 물량을 여러 국가에 배분하면서 공급 부담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국내에서도 물량 부족이 현실화하고 있다. 통신업계가 파악한 아이폰 듀오의 한국 초기 공급 물량은 약 3만대 수준이다. 통신 3사의 일평균 스마트폰 개통량인 약 2만대와 비교하면 이틀 치에도 못 미친다. 통신사들은 첫 폴더블 아이폰 출시를 앞두고 고객 유치에 나섰지만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품 수령 지연에 따른 고객 문의와 불만까지 유통 현장에 집중되면서 정식 출시 이후에도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IT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품귀 현상을 폭발적인 수요에 따른 흥행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생산 차질이 장기화하면 출하 목표 달성이 어려워지고 삼성전자 등 경쟁사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flurry327@newspim.com 2026-10-21 15:43
사진
김정은 사망설, 왜?…"독재 체제가 불러온 고질병"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42)이 뇌출혈로 쓰러져 중국 병원에서 숨졌다는 소문이 한반도를 넘어 지구촌을 뒤흔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사망설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가짜뉴스다. 의료기록이나 목격자, 하다못해 정황을 뒷받침할 만한 최소한의 방증이나 전언도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도 소문은 외신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는 물론 국내 언론과 증권가까지 순식간에 번졌다. 사망설 자체보다 이 소문 앞에서 우리 사회가 보인 허술한 대응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뉴스핌]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지난 19일 '전국 피복·신발전시회-2026' 전시장을 찾아 간부들에게 뭔가를 지시하고 있다. 김정은의 오른쪽은 딸 주애. [사진=북한매체 종합] 2026.10.20 ◆'중국 반체제 인사의 X 글'에 휘둘려 메가톤급 소문의 진원지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반체제 인사 셰완진(謝萬軍)이다. 그는 19일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전해지기로 김정은과 시진핑이 같은 병에 걸렸다. 김정은은 죽었고 시진핑은 죽음이 아직 멀었을까"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어 김정은이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의식을 잃었고 북한의 열악한 의료 여건 때문에 중국에 도움을 요청해 중국 의료진이 급파됐다고 주장했다. 베이징의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았으나 골든타임을 놓쳐 결국 사망했다는 얘기다 시신은 북한으로 비밀리에 운구됐고 북한은 이를 숨기고 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던지면서도 그는 어떤 출처나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셰완진이 중국에서 불법단체로 규정된 '중국민주당 주석'을 자처하며 시진핑 주석 사망설이나 대역설 같은 허위·날조 사실을 SNS에 올려온 인물이란 점에서 신빙성은 떨어진다.  그런데도 영국 더선 등 해외 매체들이 이를 받아 전하면서 소문은 증폭됐고 여기에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장의 권력 장악설이나 중국군 파병설까지 얹혔다. 근거 없는 이야기에 그럴싸한 살이 덧붙여지면서 가짜뉴스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사실 사망설이 한창 번지기 시작한 19일 김정은은 부인 이설주, 딸 주애와 함께 평양에서 열린 '전국 피복·신발 전시회-2026'을 참관했다. 이튿날 북한 관영매체들은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이를 보도했다. 하지만 집요한 가짜뉴스는 이를 견강부회식으로 해석했다. '사망 사실'이 퍼지니 북한 당국이 이를 은폐하고 기만하기 위해 거짓으로 김정은과 가족의 일정을 공개한 것이란 주장까지 내놓으면서 그럴듯하게 포장을 했다. ◆'뇌졸중 쓰러져 中병원 이송'…뻔하고 반복된 레퍼토리 눈여겨볼 대목은 김정은 사망설에서 드러나는 클리셰(Cliché)다. 뇌출혈로 쓰러졌다거나 북한 의료진이 속수무책이라 중국 병원으로 옮겼다, 혹은 시신은 몰래 평양으로 반입했다는 등의 레퍼토리는 과거 북한 지도자의 신변 이상설이 나올 때마다 되풀이된 판박이다. 과거 북한 최고지도자의 사망설 확산 사례를 돌아보면 그 패턴이 드러난다. 1986년 11월 김일성 주석 피격 사망설이 나왔다. 당시 외신과 국내에서 소문이 크게 부풀렸고 최전방 북측 지역에 조기가 걸렸다는 말까지 나왔다. 결국 김일성이 얼마 뒤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오보로 판명됐다. [서울=뉴스핌] 지난 2011년 12월 28일 평양 금수산태양궁전 앞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 장례식에서 아들이자 후계 최고권력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당시 직책은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운구차 옆을 걷고 있다. [사진=북한매체 종합] 2026.10.20 2008년 9월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권수립 60주년 행사에 불참하면서 와병설이 퍼졌다. 이 경우는 뇌졸중으로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망설과는 별개였고 김정일은 이후에도 3년 넘게 통치했다. 정작 2011년 12월 김정일의 실제 사망은 이틀 가까이 지난 뒤에야 공식 발표됐다. 김일성 주석 때도 1994년 7월 사망 후 하루 이상 지나서 발표됐다. 소문은 엄청나게 번지고 정작 진짜 사망 때는 깜깜무소식으로 있다가 북한 발표가 나오고서야 알게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이런 양상은 이어졌다. 2014년 9~10월 김정은이 약 40일간 공개 활동을 하지 않아 유고설이 불거졌지만 지팡이를 짚고 다시 나타났다. 과체중으로 추정되는 다리 혹은 관절 수술 때문으로 파악됐다. 2020년 4월에는 김일성 생일 참배 불참을 계기로 심혈관 수술 후 위중설, 사망설이 퍼졌다. 일부 정치인이 "99% 확신한다"고까지 단언했지만, 김정은은 20일 만인 같은 해 5월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5월에도 원산에서 현지지도 중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는 소문이 외교가와 증권가를 중심으로 돌았다. 번번이 오보로 끝났지만 가짜뉴스와 소문은 '죽지 않는 각설이'처럼 주기적으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일단 베껴 쓰고 보자'…줏대 없이 흔들린 언론 이번 사태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은 언론의 대응이다. 유력 외신뿐 아니라 우리 언론도 줏대 없이 흔들렸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확산일로를 걸으니 '일단 베끼거나 받아쓰고 보자'는 심리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남이 쓰니 나도 쓰고, 안 쓰면 낙종이 될까 불안해 쓰는 식이다. 그 결과 독자와 시청자, 국민은 전례 없는 혼란을 겪었다. 소문이 가장 먼저 들이닥친 주식시장은 출렁였고, 포털과 SNS에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넘쳐났다. 유튜브 일부 채널과 콘텐츠는 한술 더 떴다. 자극적인 제목과 섬네일을 앞세워 사망설을 기정사실처럼 다루며 혼란을 부채질했다. 조회수와 수익이라는 상업적 계산 앞에서 최소한의 사실 확인 의무는 실종됐다. 필자 또한 이번 사태의 한복판에서 적지 않은 시달림을 겪었다. 수많은 지인과 독자들로부터 '정말 사망한 것이냐', '평양이 지금 난리라는 데 파악해 볼 수 있냐'는 문의 전화와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지난 34년간 북한 취재 현장에서 여러번의 '사망·유고설'을 겪었지만 이번은 유독 파장이 크다. 최근의 남북관계와 북한 김정은과 김여정 남매의 비정상적이고 호전적인 도발 상황이 국민이 불안감을 키운 것이란 생각도 든다. ◆'강 건너 불구경'식 정부 대응도 문제 정부 대북부처의 대처도 비판받을 소지가 많다. '가짜뉴스 엄정 대응'을 공언해 왔지만 이번엔 사실상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30일 국회에 김정은의 체중이 약 140kg에 이르러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높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소문이 돌 때 더욱 신속하고 구체적인 사실관계 설명이 필요했다. 책임 있는 당국자가 직접 나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설명하고 소문을 일찍 진화했어야 했다. 국회 정보위원회의 대응도 도마에 오른다. 정보위가 국정원 긴급보고를 받아 사망설이 가짜라는 점을 확인하고, 즉각 공개했더라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란을 차단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일수록 정보위가 정치적 계산을 앞세우지 않고 사실을 확인해 국민에게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본부 청사와 원훈석 [뉴스핌 자료사진] ◆전문성 키우지 못한 언론도 책임 느껴야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북한 체제의 폐쇄성에 있다. 더구나 김정은 한 사람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수령 유일지배 독재체제다. 김정은이 유고상황에 빠지면 대책이 없어진다. 이런 사정에 있다보니 '사망설'을 비롯한 소문의 파괴력은 클 수밖에 없고, 거짓인 줄 알면서도 시장과 사회가 뒤흔들리는 기형적인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정보의 불투명성과 체제의 취약성이 만나 만든 구조적 고질병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우리 언론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북한 보도가 지라시 수준의 글에 휘둘리는 이유는 전문성을 갖춘 저널리스트를 제대로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때 언론사들이 전문기자를 두고 연구소 등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경영 논리와 남북관계 경색에 밀려 유명무실해졌다. 북한 정보의 진위를 가려낼 안목과 취재 네트워크를 갖춘 기자가 줄어들면서 확인되지 않은 SNS 글 한 줄에 증시와 언론, 여론이 함께 휘청이는 모습이 연출됐다. '김정은 사망' 같은 민감한 대북 정보는 우리의 안보와 남북관계, 한반도 정세에 미칠 파장이 크다. 이번 일을 일과성의 해프닝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제대로 된 진단과 대책마련이 없으면 김정은은 앞으로도 몇 번이고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때마다 우리는 휘둘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정부 대북 부처와 유관기관, 언론, 학계 등이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yjlee@newspim.com 2026-10-21 06:12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