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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티션스토리](상) 윤종오, 용접공에서 노동 투쟁까지 하게 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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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윤채영 기자 = 윤종오 진보당 의원이 뉴스핌TV KYD(Korea Youth Dream)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해 어린 시절부터 정치 입문 과정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윤 의원은 5일 오전 유튜브 채널 '뉴스핌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스토리에서 어려웠던 가정 환경을 겪은 일화부터 노동 개혁에 앞장서게 된 이유를 털어놓았다.  

윤 의원은 지난해 4월 치러진 22대 총선에서 진보당 울산북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진보당에서 현역 중 유일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현재 원내대표도 맡고 있다. 

윤 의원은 1963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초중고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부터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방위산업체에서 근무한 뒤, 거제도 대우조선소로 직장을 옮겼다. 

윤 의원은 과도한 노동에 문제를 느껴 노동조합원으로 본격 목소리를 냈다. 이후 울산 북구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했다. 이어 2006년 울산 시의원을 거쳐 2010년 울산 북구청장을 역임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울산 북구 무소속으로 당선됐다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잃었다가 지난해 22대 총선으로 복귀했다.  

윤종오 진보당 의원이 뉴스핌 KYD(Korea Youth Dream)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한 모습. [뉴스핌DB]

다음은 윤 의원과의 폴리티션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윤채영 기자. 이하 윤) 안녕하세요. 한 정치인의 인생 궤적을 돌아보는 폴리티션 스토리 저는 정치부 윤채영입니다. 오늘은 재선 국회의원이신 진보당 윤종오 원내대표님 모시고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네 네 반갑습니다. 워낙 전국 현안이 바쁘지만 또 대표님을 알아보는 시간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이렇게 초대 요청드렸습니다. 먼저 아주 옛날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제 가족 관계부터 좀 얘기를 해 보려고 하는데요. 이제 대표님 과거 부모나 가족 관계 그리고 현재 뭐 가족 관계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해 주신다면요?

▲(윤종오 의원. 이하 윤) 아버지는 한 30년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지금 90세인데 아주 건강하게 살아 계시고요. 제가 원래 5남매 중에서 장남이었는데 한 10년 정도 전에 쌍둥이 동생을 한 명 더 찾아가지고 6남매의 맞이 2남 4녀 맞이고요. 자녀는 지금 딸 둘에 아들 1명 큰 딸이 결혼을 해 가지고 또 손주를 낳아서 큰 손주가 4살 그다음에 딸 아들 쌍둥이 손주를 또 낳았어요. 걔들이 이제 돌을 지나가지고 14개월 됐는데 제가 자식도 3명을 낳았고 또 손주까지 낳았으니까 저보고 벌써 애국자라고 많이 그러네요.

-(윤)가족끼리 명절 때나 보면 되게 이렇게 반갑겠어요 가족들도 많아서.

▲(윤)그렇죠 이제 우리 어머님 슬하에 6남매 그 밑에 이제 손주들 또 그 밑에서 또 또 손주까지 낳았으니까 한 모이면 뭐 한 30명 이상 대식구죠. 명절 때 집이 막 터져 나가면

-(윤)그러니까요. 근데 또 설 명절이나 이럴 때 오히려 의원님들 더 바쁘시잖아요. 근데 또 가족들 보시는 데는 괜찮으신가요?

▲(윤)뭐 아무리 바쁜 정치 일정이 있어도 또 우리 명절 때는 가족이니까 가족들과 이렇게 따뜻한 시간도 보내야지 가족들 지지 없으면 정치 활동도 못 합니다.

-(윤)의원님 태어나신 곳은 경남 합천이시네요.

▲(윤) 그렇죠 합천은 태어나기만 태어났어요.

-(윤)그렇구나 그럼 자라신 곳은

▲(윤)초중고를 그냥 부산에서 다 다녔기 때문에 부산이 제2의 고향이고 그 군대 다녀와서 이제 울산으로 왔기 때문에 울산은 얼떨길래 돈 벌러 올라 왔다가 제가 이만큼 정치인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우연한 기회가 인생을 바꾸더라고요.

-(윤)그러면 합천에서 태어나시기만 하셨고 부산에서 이렇게 어린 시절을

▲(윤)보냈죠.

-(윤)좀 찾아보니까 어려운 환경에서 좀 자랐다 이런 이야기가 있더라.

▲(윤)그게 이제 아까 조금 전에 이야기했듯이 제 여동생 쌍둥이가 있었는데 그때 이제 집안 형편도 어렵고 이래서 부잣집에 한 명을 보냈죠. 그걸 이제 44년 만에 찾게 되는 KBS 생방송 사람을 찾습니다.

-(윤)그러니까요. 저 어린 시절에

▲(윤)그런 아픔도 있었는데 그래도 또 잘 극복해서 제가 이렇게 재선 국회의원까지 됐지 않습니까?

-(윤)어린 시절에 의원님의 성향 이런 게 좀 궁금해요. 반장 도맡아 했다든지

▲(윤)그렇지도 않아요. 제가 학교 다닐 때 그냥 주변에 있는 친구들하고 어울려서 잘 지내고 뭐 조금 솔선수범할 일이 있으면 내가 조금 일을 하고 좀 부지런하고 좀 싹싹한 이제 그런 그냥 아이였죠. 우리 고등학교 친구들 지금 뭐 자주 보긴 하는데 이 친구가 어떻게 노동 운동을 하고 이렇게 정치로 나갔지 처음에는 되게 이렇게 의아스럽게 생각했죠. 근데 사람이 이제 이렇게 어떤 환경하고 부딪혔을 때 누군가는 이렇게 나서야 될 자리가 있잖아요. 우리가 또 살아왔던 시기가 이제 군부 독재가 한참 극을 달할 정도로 좀 독재가 심한 그런 시기에 이제 그 직선제 쟁취 혹은 철폐 이렇게 역사의 어떤 확 개병기 이럴 때 누군가는 또 나서야 돼.

-(윤)그렇죠

▲(윤)그 제가 그냥 나섰더라고요.

-(윤)그러면 어릴 때 꿈은 어떤 거였어요?

▲(윤)어릴 때 꿈은 그냥 유능한 기술자 빨리 돈을 벌어야 되겠다 가정 형편도 그러니까 그런 생각들이 많이 앞섰는데요. 고등학교 때쯤 가서는 막연하게 다음에 내가 자라면 사회복지 사업 같은 거 했으면 좋겠다 고아원이나 양로원 이런 걸 운영하면 잘하겠다 이런 생각을 막연하게 했었어요. 그런데 이제 막상 이제 사회에 부도 끼고 제가 이제 정신까지 하게 됐잖아요. 이것은 고아원을 100개도 만들고 200개도 만들고 다른 복지관을 더 엄청난 복지 사업도 할 수도 있고 이런 일을 하게 된 거잖아요. 처음에 꿈은 소박했지만 또 이렇게 살아가면서 새로운 꿈이 계속 생기더라고요.

-(윤)그럼 어린 시절에도 어쨌든 좀 남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이런 직업을 좀 생각을 하시긴 하셨나요?

▲(윤)네 조금 어릴 때 이제 종교적인 영향도 조금 받은 것도 없지 않아 있고 그래서 제가 또 봉사활동도 고등학교 딸 시와의 활동도 하고 이렇게 하면서 사는 게 내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또 도움으로 이 세상에 왔고 또 이 사회에 살아가는 데 서로의 협력과 이렇게 합의 이런 것들이 매우 중요한데 맞아요.
조금 그런 게 그냥 생활화됐던 것이 어느 날 이 시대가 바뀔 때 저한테 정치의 기회도 오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

-(윤)의원님 혹시 MBTI 검사해 보셨어요? 그 e와 i 성향이 있잖아요. 외향형과 내향형 중에 어떤

▲(윤)이제 제가 검사니까 외향으로 나오는데 상황에 따라서는 내향적이기도 하고 그것도 MBTI가 다 정확하지는 않다.

-(윤)본인이 선택을 하는 거니까

▲(윤)제가 이제 제 성향이다 이러니까 우리 딸 아이는 다른 사람이 다 속고 있는 거다 이 그런데 이제 사실은 제가 제가 조금 뭐 계획적으로 보이지만 또 적응적일 때 있고 또 이럴 때는 좀 감성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또 또 이성적으로도 행동하고 그 사안에 맞게 이렇게 적절하게 판단을 잘 하는 것들이 중요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윤)왜냐하면 정치인이라고 하면 되게 사람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고 활동적인 성향일 거라고 많이 생각을 하잖아요. 그래서 어린 시절에도 좀 내성적이기보다는 리더 활동을 많이 했다든지 이럴 거라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윤)저는 이제 조금 사람들하고 어울려서 함께하고 어디 놀러를 간다 이렇게 하면 제가 챙기고 준비하고 이런 것들도 많이 하고 뭐 그런 것들이 이제 사회생활하면서 다 도움 되는 일이잖아요. 내가 할 일 다른 사람이 대신 해 주면 좋잖아요. 그렇죠. 세상 살아가는데 이 시에 내가 조금 손해 보는 마음으로 살아가면은 나중에 다 돌아오더라.

-(윤)그러면은 중고등학교 때 고등학교 때부터 취업 전선에 뛰어드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

▲(윤)부산의 사상공단에서 용접공으로 일을 시작했고요. 그때는 뭐 방위 산업차라고 하는데 사실은 고무를 취급하는 곳이었어요. 그 전차 바퀴의 고무 청소는 개머리판에 고무 이래 사실은 고무공장이에요. 하루 일하고 나면은 호를 풀면 시커먼 덩어리가 그냥 한 주먹씩 나왔어요. 또 도저히 목욕을 하지 않으면 퇴근할 수가 없고 그때 방지 마스크도 제대로 안 줬어요. 지금 같으면 폐암 걸려서 다 죽었을 텐데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시작했고요. 그래서 이제 거제도 대우조선소에서 또 이제 용접비를 이제 하게 되었고 그때도 뭐 정말 현장은 열악했죠. 한 달에 체라 특권을 많이 할 때는 15개

-(윤)뭘 15개요?

▲(윤)특근

-(윤)철야 특근

▲(윤)그러니까 아침에 출근하면 저녁에 퇴근해야 되잖아요. 저녁에 퇴근하지 않고 아침에 퇴근을 하면 좋겠지만 안 하고 그다음 날 저녁에 퇴근하는 거예요.

-(윤)그럼 거기서 먹고 자는 거예요.

▲(윤)회사에서 밥 먹고 못 자고 일을 하는 거죠. 그렇죠 조이 졸면 와서 망치 두드리고 깨우고 그러죠. 이제 그래서 막 인간이 아닌 거죠. 노동을 짤 수 있는 만큼 짜는 거죠. 그게 거제도 조선소에서도 그랬었고 이제 80 제가 6년도에 군대 제대를 하고 현대차에 입사를 하게 되는데 거기 하니까 지금 현대차 되게 좋은 회사로 평가받고 있잖아요. 우리 젊은 친구들한테 그 선호하는 대기업 거의 뭐 타 클래스에 속하는데 제가 들어갔을 때만 해도 줄을 서면 돼 갔어요. 이번 주에 한 500명 뽑고 다음 주에 또 500명 막 뽑고 그 사이에 또 몇 백 명 퇴직 퇴사해요.

퇴사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왜 안 좋은 회사니까 매일 12시간씩 교대 근무로 일을 하고 당연하게 출근 일요일은 출근할까요? 안 할까요? 의도가 비죠. 무조건 출근 쉬는 날이 없어요. 그렇게 이제 막 교대하고 토요일 일요일까지 다 일해도 실제적으로 이제 임금은 한 20만 원도 채 못 받고 내 차를 산다 내 집을 산다 꿈에도 못 꿨죠.

현대차가 그랬어요. 그게 이제 87년도 60항쟁과 함께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나고 그때 이제 저도 모르게 제가 메가폰을 잡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조합 활동을 시작하게 됐던 것이고 그 이후에 이제 이렇게 획기적으로 이제 임금도 오르고 이제 이렇게 여러 가지 사내 복지도 좋아지고 어 이렇게 하면서 조금 다닐 만한 회사가 된 거죠.

그러한 과정에 그냥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그렇죠 많은 노동자들이 투쟁하면서 구속되고 수배되고 해고되고 싸우고 막 어떤 데는 진짜 분신도 하고 막 이런 어마어마한 투쟁들이 속에서 오늘의 이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대한민국의 어떤 노동자 전체의 어떤 권익은 물론이고 사회의 어떤 분배의 정의 실현 이런 부분에서도 상당 부분 이렇게 역사적 성과는 있는 거죠. 그렇죠 다소 뭐 이렇게 대기업 노조가 비판적인 시각도 있지만 전체적인 어떤 국민들의 삶의 질을 같이 올렸던 그런 측면에서는 아주 노동조합 운동이 큰 역할을 저는 했다고 생각합니다.

-(윤)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하는 데 앞장을 서신 거죠

▲(윤)예 처음에는 그렇게

-(윤)그때 그럼 노동조합 노조장 위원장을 하셨던 거예요.

▲(윤)위원장을 하지는 않았고요. 제가 노동조합 처음 만들 때가 25살이었거든요. 그때부터 이제 100명에 1명씩 대표인 대의원도 하고 우리 전체 재정이 제법 그래도 조합원이 많으니까 몇백억 되는데 거기에 총괄하는 총무부장도 하고 또 한 개 공장도 커요.

제가 1공장이라는 승용차가 만드는 공장인데 한 3600명 됩니다. 거기에 노동조합 대표도 하고 전체 노동조합을 조직을 총괄하는 조직쟁의실장도 하고 이렇게 이제 10년 정도 조합 간부를 하면서 현장에서 임금이나 단협을 통해서 노동자의 권익을 올리는 것이 좀 한계점이 왔을 수 있죠.

그래서 이제 사회 개혁 요구가 되게 많았어요. 의료 개혁을 하자 교육 개혁을 하자 이제 이런 요구들이 많았는데 분출했는데 실제적으로 그것을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은 누가 만들어요? 정치가 만드는 거잖아요.

그래서 좀 이렇게 정치의 직접 정치에 대한 어떤 요구들이 있었고 거기에 이제 이렇게 기름을 부은 것이 IMF가 오면서 이제 정내고 바람이 확 불었던 거죠. 여기 그만두시면 갑자기 갈 데 있으신가요? 쉽지 않잖아요.

그렇듯이 우리나라에서 현대차를 다니다가 갑자기 잘리면 뭐 대우차나 상책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이제 그렇듯이 노동자에게 해고는 살인과 마찬가지다. 대투쟁이 일어난 거죠. 정리해고를 반대하는 이제 그렇게 하면서 96년 말 97년도 노동법 개정이라는 큰 투쟁이 한 달 동안 이렇게 벌어졌고 그때 정리해고법이 통과됐던 것이 다시 2년간 유예되는 노동자들의 정치 파업 투쟁으로 해서 유예되는 그런 어떤 엄청난 일이 있었어요.

그러면서 이제 자각을 한 것이죠. 우리 대표를 정치권으로 많이 보내자 국회로 보내자 지방의회로 보내자. 이때 이제 제가 선발대로 뽑혀 가지고 98년도 지방선거 당시 제가 나이가 36살이었는데 이제 기초의원으로 출마해서 북구의원으로 당선된 것

-(윤)그 사이에 좀 더 여쭤봐야 될 것 같아요. 왜 당시에 내가 이렇게 앞서서 이 노동 현장의 처우 개선에 내가 힘을 써야겠다라고 생각하셨는지 그 계기가 뭐였

▲(윤)그냥 운명처럼 제 앞에 마이크가 잡혀 있었고요. 이제 그때 현장의 어떤 열악한 환경이라는 것이 지금 어떤 일반 직장하고는 상상을 초월하는 겁니다.
그 당시가 이제 군부 독재 시대고 그러다 보니까 현장에 그 군사 문화가 그대로 이렇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질 때 처음 만들어졌으니까 많은 요구들이 분출했을 거 아닙니까? 요구들이 1번부터 해서 몇십 번까지 있는데 맨 위에 있는 1번 1번이 뭐였을 것 같아요?

상상이 안 가죠. 두 발 자유화였어요.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서 두 발 자유화를 이야기했다는 이야기는 그 현장이 얼마나 군대처럼 이렇게 통제하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주면 주는 대로의 어떤 사회였는가 이제 이것이 이제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면서 내가 땀 흘려 일하는 만큼 내놔라 하는 이제 그 권리의식이 같은 것이고 제가 현장에서 이제 실질적으로 명절 때 설날 같은 날 설날 아침에 퇴근시키고 휴일은 아예 없으니까 반장이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반에 전이 보면은 우리는 가족도 없고 친척도 없고 오직 회사만을 위해서 우리는 일해야 된다 이렇게 막 주입을 시키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일요일 날 만약에 안 나오게 되면 당연하게 놀아야 되는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빨간색 동그라미를 2개의 또는 3개를 쳐가지고 고가 먹일 때 반영해서 임금을 적게 주기도 하고 이제 이렇게 하면서 많이 여리 바다에 있었던데 때마침 이제 노동조합이 만들어질 때 저도 모르게 나서게 될 거라고요.

-(윤)그때 그 노동 운동 그런 것들이 지금 정치를 하는 데까지 이제 발판

▲(윤)예 엄청난 이제 노동조합 운동은 정치 운동을 하는데 밑거름도 되었고 발판도 되었고 노동조합 운동의 한계는 당연하게 극복되어야 하는 것이고 지금 과거에 일반 사람들은 정치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우리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기자님은 계시지만 기자님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 또 노동조합이 필요하고 또 이것을 정치적으로 어떤 법과 제도가 만들어져야지 권익이 더 세지는 것이고 이렇듯이 정치하는 사람이 판검사 출신만 정치하고 대학 교수 출신만 정치가 되겠습니까?

그렇죠 안 되죠. 그런데 이제 국회에는 가면 지금도 좀 편향되게 특정 직종 직군에 있는 사람들이 가다 대표하다 보니까 대한민국의 정치가 많이 왜곡되고 있는 것이죠. 앞에 나갔을 때는 노동자들 서민들 영세 상인들을 위해서 이거 하겠다 저거 하겠다고 했는데 막상 국회에서 만들어지는 법안들을 보면은 이제 그런 것들은 억수로 좀 터부시 되고 실질적으로 자기 이해 집단과 관련된 부분들이 훨씬 더 우선적으로 좀 법안들이 만들어지고 이런 경향들이 지금 남아 있는 것이죠.

그래서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정치에 들어올 수 있도록 이 제도 개혁이 필요한 것이죠. 이제 독일과 같이 이제 이렇게 비례대표 총량을 더 키워서 한 600명 되는데 반은 비례대표니까 거기에 이제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이 할 수 있도록 각 정당이 이렇게 배려를 하고 그리고 다양한 정치 세력이 들어와야 되는데 우리는 영남에는 뭐 그냥 국회입니당 호남은 민주당 지역 정치가 그냥 그대로 국회에 들어와서 실제적으로 계급적인 어떤 그런 사람들을 좀 제대로 대변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거죠.

-(윤)네 의원님 자랑이실 수 있을 것 같은데 특전사로 복무하신 이력이 있으시더라고요. 여기에 대해서 좀 알려줘.

▲(윤)아 예 제가 부드러운 모양새라 가지고 안 믿는데 홍수에서 너무 고맙고요.
그래서 제가 지금 보당 활동을 하다 보니까 선거 때만 되면 종북 공세에 시달리게 됩니다. 근데 그 종북이라는 게 웃기는 게 선거 끝나고 나서 나한테 종복이라고 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어요.

선거 되면 또 종북 이야기합니다. 근데 종복 이야기할 때 제가 특전사 출신이다 이러면 상당 부분 이렇게 종북 공세를 방어하는 데 좀 유리한 부분으로 작용했고요. 네 그런데 그런 어떤 이념 논쟁이라는 게 좀 웃기는 게 저희 고향이 합천이라고 그랬잖아요. 제가 이제 정치적으로 놓고 보면 300명 국회의원 중에서 가장 좌측에 있다고 대부분 기자님들이 그렇게 판단하시죠.

그렇죠. 근데 그러면 당연하게 자기 좌측에 있으면은 조금 이제 종복 공세하는 그런 경향이 그동안 그런 경향이 억수로 더 이렇게 진한데요. 제 고향에 가면은 아재들이 이래요. 막 정치 이야기하다가 맞아요. 제가 종복인 기라면 은 아니지 우리 종우가 얼마나 열심히 잘하는데 그러니까 이런 어떤 이념 공세라는 게 괜히 이렇게 프레임을 짜서 남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지, 우리 진보당에 있는 의원들도 누구보다도 애국자이고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한 사회로 만 만들어 갈까 하는 측면에서 이런저런 정책 제안을 하고 그것을 좀 이렇게 실현시키려는 노력들을 소수 정당이지만 이제 끊임없이 해나가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그런 의제를 선도했기 때문에 과거에 우리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지금의 어떤 복지 모델이나 이런 어떤 사회 대개혁 과제 중에서 상당 부분 어떤 성과를 저는 저희들은 만들어 왔다고 생각하거든요. 의석은 작았지만 성과를 만들어 나오는데 우리 진보 정당의 역할이 있었고 앞으로 진보당의 과제이기도 합니다.

(하)편에서 계속

ycy1486@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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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이 완성한 韓·日 반도체 동맹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이건희 선대회장에게 물려받은 일본 재계 네트워크를 인공지능(AI) 반도체 시대의 사업 동맹으로 재편하고 있다. 선대부터 이어진 일본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들과의 교류를 직접 챙겨온 이 회장은 최근 삼성전기와 스미토모화학 계열 동우화인켐의 유리기판 합작을 계기로 인적 신뢰를 핵심 소재 공동 개발과 생산 협력으로 확장했다. 과거 일본의 선진 기술을 배우고 부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시작된 삼성의 대일 협력이 이 회장 체제에서는 AI 반도체 공급망을 함께 설계하는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 = 뉴스핌DB] ◆ 스미토모와 손잡고 반도체 핵심 '글라스 코어' 공동 생산 15일 삼성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기는 지난 2일 일본 스미토모화학의 한국 자회사인 동우화인켐과 합작법인 '글라셈' 설립에 나섰다. 글라셈은 차세대 반도체 기판으로 주목받는 유리기판의 핵심 소재인 '글라스 코어'를 생산할 예정이다. 삼성전기가 지분 66%, 동우화인켐이 34%를 보유한다. 경기 평택에 생산 거점을 구축해 내년 하반기부터 공급 체계를 갖출 계획이다. 재계에서는 이번 합작을 단순한 계열사 차원의 투자보다 삼성과 일본 재계가 오랜 기간 쌓아온 신뢰 관계가 첨단산업의 공동 사업으로 이어진 사례로 보고 있다. 스미토모화학은 이건희 선대회장 때부터 삼성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대표적인 일본 소재기업이다. 양사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소재 분야에서 협력을 이어왔고, 지난 2011년에는 LED용 사파이어 웨이퍼 생산 합작사 SSLM을 설립했다. 이번에는 협력의 무대가 AI 반도체용 첨단 패키징 소재로 옮겨갔다. 유리기판은 기존 플라스틱 기판보다 표면이 평탄하고 열에 따른 변형이 적어 고성능 AI 반도체와 대형 패키지에 적합한 차세대 부품으로 꼽힌다. AI 반도체의 연산 성능과 전력 사용량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칩 자체뿐 아니라 이를 연결하고 지지하는 기판과 패키징 소재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삼성전기는 고다층·고밀도 반도체 패키지기판 설계와 제조 기술을 합작법인에 투입한다. 동우화인켐은 정밀 유리 가공과 공정 자동화 역량을 제공한다. 양사가 각자의 기술을 결합해 글라스 코어를 공동 생산하면 삼성은 AI 반도체 패키징 경쟁의 핵심으로 떠오른 유리기판 공급망을 선제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AI 인포그래픽=서영욱 기자] ◆ 이재용 회장이 잇는 일본 네트워크…AI 협력으로 확장 삼성과 일본 재계의 협력 중심에는 이건희 선대 회장이 1993년 출범시킨 LJF(Lee Kunhee Japanese Friends)가 있다. LJF는 삼성과 일본 주요 전자·부품·소재 기업 최고경영진이 정례적으로 만나 기술과 공급망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교류 모임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 경영자들이 참여하며 삼성의 핵심 해외 네트워크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특히 이 선대 회장은 요네쿠라 히로마사 전 스미토모화학 회장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양측의 신뢰는 스미토모화학 회장과 일본 경제단체연합회 회장을 지낸 도쿠라 마사카즈 회장으로 이어졌다. 일본 게이오대에서 유학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LJF 정례 교류회를 직접 주재하고 일본을 수시로 방문하며 도쿠라 회장을 비롯한 현지 재계 인사들과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재용 회장이 선대부터 이어진 일본 재계 네트워크를 AI 시대에 맞는 사업 협력으로 발전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삼성전기의 유리기판 [사진=삼성전기] ◆ 산요·NEC·도레이·소니…반세기 이어진 기술 동맹삼성과 일본 기업의 협력은 반세기 넘게 이어져 왔다. 출발점은 일본의 선진 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합작이었다. 삼성은 1969년 산요전기와 TV 생산법인 '삼성-산요전기'를 설립하며 전자산업 진출의 기반을 다졌다. 산요전기 창업자인 이우에 토시오와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와세다대 동문으로 인연을 맺은 점도 양사 협력의 계기가 됐다. 이후 삼성과 일본 기업의 협력은 기술 도입을 넘어 핵심 부품을 함께 개발·생산하고 공급망을 구축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삼성은 1970년 일본전기(NEC)와 삼성NEC를 설립해 브라운관과 전자부품 기술을 확보했다. 이 회사는 훗날 삼성SDI로 성장했다. 2000년에는 NEC와 삼성NEC모바일디스플레이를 세워 OLED 사업에 진출했다. 관련 사업은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를 거쳐 현재의 삼성디스플레이로 이어졌다. 협력 범위는 반도체·디스플레이 패키징과 대형 LCD 분야로도 넓어졌다. 삼성은 1995년 도레이와 스템코(STEMCO), 스테코(STECO)를 설립해 관련 공급망을 공동 구축했다. 2004년에는 소니와 대형 LCD 패널 합작사 S-LCD를 세워 대규모 생산 투자에 나섰다. 초기 일본 기술을 배우기 위한 합작으로 시작된 협력이 기술 개발과 생산, 공급망을 함께 구축하는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진화한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 삼성과 일본 기업의 협력은 선진 기술을 배우고 핵심 부품을 안정적으로 조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며 "이재용 회장은 일본 재계와 쌓아온 오랜 신뢰 관계를 단순한 교류에 그치지 않고 AI 반도체와 첨단 소재 분야의 실질적인 사업 협력으로 연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syu@newspim.com 2026-07-1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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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李 정부 출범 후 시민 주거 힘들어져" [서울=뉴스핌] 조수민 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부동산 시장의 현실을 설명하는 '일타강사'로 나섰다. 오 시장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매매·전세·월세가 모두 상승하는 '트리플 강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요 억제·공급 축소 기조의 정부 정책 기조를 원인으로 꼽으면서 청년, 신혼부부, 중산층 1주택자의 주거 부담이 커졌다고 주장했다. [서울=뉴스핌] 류기찬 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서울청년정책박람회'에 모두 발언을 했다. 2026.07.10 ryuchan0925@newspim.com 서울시는 15일 오후 '일타시장 오세훈-국무회의에서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 이재명 정부 부동산 지옥, 원인 분석 보고서'를 서울시장 공식 누리집과 소셜방송 라이브서울 통해 공개했다. 영상은 약 26분 분량이다. 이번 영상은 서울 부동산 시장의 문제와 원인을 분석하는 내용이다. 후속편에서는 시장 정상화를 위한 정책 전환 방향과 서울시 대책, 정부에 건의한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매매·전세·월세 트리플 강세" 오 시장은 "정부가 틀렸고 서울시가 옳다는 뜻이 아니라, 통계와 데이터를 시민과 공유하고 해법을 함께 고민하자는 것"이라고 강의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서울시가 모든 주택 거래와 공신력 있는 통계를 분석하고 토지거래허가대장 4만4000건을 대조하는 한편 공인중개사 약 660명의 의견을 들었다"며 "현장에서 확인한 결론은 시민들의 주거 상황이 매우 힘들어졌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오 시장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1년간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이 13.1%, 전세가격이 6.3%, 월세가 7.4% 올랐다며 매매·전세·월세가 동시에 상승하는 이례적인 '트리플 강세'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전세가격은 11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월세는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다. 또 오 시장은 지난 1년간 정부가 여섯 차례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지만 주택담보대출 제한, 규제지역 확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등 수요 억제에 집중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 당시와 현 정부의 대책을 비교하며 "대출 규제와 임대주택 공급 발표, 투기과열지구 지정, 양도세·보유세 강화로 이어지는 흐름이 닮았다"고 말했다. 공급 대책도 서울 주택 공급의 90% 이상을 담당하는 민간 재개발·재건축보다 공공사업에 치중돼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발표한 서울 공급 물량 약 3만2000가구 중 2만8000가구는 과거 발표 후 장기간 진척되지 않은 사업으로, 실질적인 신규 공급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오 시장은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한 6·27 대책 이후 매수 수요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15억원 이하 아파트로 이동했다고 전했다. 대책 이후 서울 전체 거래의 78.1%가 15억 원 이하 아파트에 집중됐고 영등포, 강서, 관악, 동작, 성북, 성동 등 비강남권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오 시장은 전월세 시장의 혼란도 지적했다. 그는 "서울 전역의 실거주 의무 강화로 갭투자뿐 아니라 기존 세입자가 살던 전셋집까지 사라졌다"며 "전체 전세계약의 55.4%가 갱신계약일 정도로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 없는 '전세 감옥'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이어 "과거에는 금리가 급등하면서 월세가 늘었지만 지금은 금리변화가 크지 않은데도 월세가 급증했다"면서 "자연스러운 구조 변화라기보다 정책이 미친 결과"라고 덧붙였다. 특히 전용면적 40㎡ 이하 소형 연립·다세대주택의 월세 부담이 크게 늘어 청년과 1인 가구 등 경제적 여력이 부족한 시민에게 먼저 청구서가 돌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 "이주비 대출 제한·입주물량 감소로 공급 부족 현실화" 공급 측면에서는 이주비 대출 제한으로 올해 이주 예정인 정비사업구역 35곳 중 14곳의 자금 조달이 불확실하다는 시각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공사가 보증을 거부한 사업장은 5곳, 협의 중인 사업장은 9곳이며 보증을 확보하더라도 연 4~7%의 금리를 부담해야 한다.  올해 서울 아파트 신규 입주 물량 2만7000가구 중 정비사업 물량은 1만7000가구로 약 60%지만, 내년에는 8000가구로 절반 이하로 감소할 전망이다. 오 시장은 "이자는 결국 조합원 분담금과 분양가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며 "수요는 여섯 번의 대책으로 누르고 공급은 규제로 막은 데다 향후 3년간 공급 부족 우려가 심각하다"고 했다.  또 정부가 전세 물량 감소 원인으로 다주택자의 주택 매각과 기존 세입자의 자가 전환을 제시한 데 대해서도 서울시 분석 결과와 다르다고 밝혔다. 서울시가 주소를 대조한 결과 기존 세입자가 거주 주택을 직접 매입한 비율은 2.9%에 불과했다.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율이 53.5%인 만큼 집값의 절반가량을 추가로 마련해야 해 자가 전환이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전세를 원하는 수요는 78.3%, 매물이 부족하다는 응답은 약 70%였다. 오 시장은 "전세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시민은 여전히 많은데 매물이 없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라며 "정부의 진단은 결과를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 "정부 부동산 정책, 청년·신혼부부·중산층에 큰 부담" 오 시장은 잘못된 부동산 정책의 부담이 투기세력이 아닌 청년과 신혼부부, 4050세대, 등록임대사업자, 중산층 1주택자에게 돌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관악구 신림동 대학가의 한 원룸은 지난해 6월 보증금 1000만원·월세 40만원에서 올해 5월 월세 80만원으로 두 배 올랐다. 또 서울의 500가구 이상 아파트 850개 단지 중 47.9%인 404개 단지의 전세 매물은 2건 이하였다. 세금 부담도 중산층 1주택자까지 확대되고 있다.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은 2009년 서울 공동주택의 2.99%에서 올해 14.9%로 예상된다. 서울의 1주택자 종부세 대상자는 지난해 12만 명에서 올해 16만 명으로, 한강벨트 1주택자는 3만3000명에서 5만7000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오 시장은 "투기를 잡겠다던 세금이 중산층 1주택자에게 꽂히고 있다"며 "부자의 세금이 아니라 12월에 날아오는 중산층의 세금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시는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지난 1년간 일곱 차례에 걸쳐 18건을 정부에 건의했다"며 "정부와 대립하자는 것이 아니다. 부동산에는 여야가 없고 시민의 삶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현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서울시가 데이터를 공유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오 시장은 "정책 방향 전환과 서울시 대책, 정부에 건의한 구체적인 해법은 다음 시간에 풀어드리겠다"며 "부동산 지옥은 끝낼 수 있다. 시민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 가겠다"고 했다. blue99@newspim.com 2026-07-1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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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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