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홈 정치 국회·정당

속보

더보기

[폴리티션스토리](상) '25년 교사 출신' 野 정성국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정치 하고파"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학생을 공정하게 대하던 은사님처럼, 교육자 마음으로 정치할 것"

[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학생들을 정말 공정하게 대하신 선생님을 존경했습니다. 그 분 덕분에 제 인생이 바뀌었죠."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은 16일 유튜브 채널 뉴스핌TV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해 어린시절부터 교육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공개했다. 해당 방송은 지난달 25일에 촬영됐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정 의원은 25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상식과 정의'에 대해 강조해왔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회장으로 지낼 당시에는 교권 회복에 앞장섰고, 서이초 사건을 계기로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 문제 해결에 나섰다.

현재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활동 중인 정 의원은 "교권 회복에 대한 대책이 좀 더 실효성 있게 되도록 꼼꼼히 챙기겠다"며 "유보통합 문제나 고교학점제 등 교육 현장에 혼란을 주는 부분들도 교육부와 함께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 [사진=뉴스핌TV]

1971년생인 정성국 의원은 부산중앙고와 부산교대, 부산교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부산 토현초·성북초·동원초·남천초·교리초·해강초 등에서 근무했으며, 한국초등영어교육학회 연구이사와 부산초등영어교육연구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했다.

정 의원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75년 역사상 두 번째 평교사 출신이자 최초의 초등교사 출신 회장으로 선출됐고, 제22대 총선에서 부산진구갑 지역구 국민의힘 소속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현재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이며 당 내에선 조직부총장을 역임했다.

다음은 정 의원과의 폴리티션스토리 인터뷰 내용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뉴스핌TV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신정인 기자, 이하 신 기자)
정치인의 인생 궤적을 돌아보는 폴리티션스토리 시작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뉴스핌 신정인 기자입니다. 오늘은 부산 진구갑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의원님 안녕하세요.

▲(정성국 의원, 이하 정 의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신 기자)
부산 영도구에서 태어나셔서 부산교대에서 영어 교육학 학석사 전공하셨습니다. 의원님 지역구이자 고향인 부산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실 것 같은데 부산은 의원님께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정 의원)
태어난 곳이라는 것은 의미가 크잖아요. 제가 부산 이제 지금 영도구 영도에서 태어났는데 이제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어요. 그리고 이제 한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제 우리가 지금 말하는 이제 수영구라고 하는 그쪽으로 이제 이사를 가게 된 거거든요. 그래서 그 이후로부터는 이제 수영구나 이제 해운대구 이렇게 남구 쪽으로 해서 이렇게 쭉 제가 이제 살았지만 저의 어릴 적의 추억은 사실 영도구 쪽에 있는 그 어린 시절의 추억이 남아 있죠. 지금 저희 외삼촌이나 이모도 사실 지금 영도에 그대로 살고 있습니다.

기억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어릴 적에 그 기억들이 곳곳에 남아 있죠. 한 번 이런 적은 있었어요. 저희가 이제 이사를 가고 나서 제가 대학생이 됐을 때 친형하고 저하고 우리 옛날 집이 옛날에 어릴 적에 살았던 집이 궁금해서 온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시점에 그게 없어져 버렸어요. 없어져 버린 걸 알면서도 다시 가본 적이 있어요. 그때 이 골목까지 있었고 이게 이제 없어졌구나 왜 지금 거기 아직까지 우리 외삼촌이 살고 계시니까. 사람이 역시 어릴 적 기억은 참 소중하죠.

우스갯소리로 제가 이번에 영입 인재로 국민의힘 들어왔을 때 어떻게 보면 그 지역에 선거를 준비하던 분들이 봤을 때는 국민의힘에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1호 영입 인재라고 제가 들어오니까 부산에 반드시 이 지역구로 오는데 어디로 가느냐에 대한 이야기들이 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뭐 제가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영도구를 넣는 기자들이 있더라고요.
그 이유는 아무래도 제가 그곳에서 태어난 곳이고 이러니까 영도구 쪽으로 또 갈 수 있지 않느냐 이런 기사도 나온 적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에게는 참 지금도 한 번씩 가는 일이 생기는데 옛날 추억들이 좀 많이 올라옵니다.

-(신 기자)
의원이 되시기 전에 부산에서 오랫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셨잖아요. 그런데 어린 시절부터 꿈이 초등학교 교사셨는지

▲(정 의원)
사실 제가 어릴 적부터 선생님의 꿈을 가진 건 아니었어요. 제가 나중에 무엇이 되어야 되겠다고 확실한 마음을 가졌던 건 고등학교 때였거든요.
우리가 뭐 초등학교 때는 대통령 된다 했다가 뭐 국회의원 된댔다가 의사가 됐다가 자꾸 바뀌잖아요. 그래도 제가 고등학교에 갔을 때는 이제 마음이 올라오는 부분에서 장군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80년대 후반 90년대 될 때 80년대 서울 올림픽 하고 할 때 있지 않습니까? 1988년 서울올림픽 하고 할 때 제가 고등학교 시절이었거든요. 그때만 하더라도 이제 노태우 정부가 이제 시작되는 그 시절이었어요.

그 시절을 제가 고등학교 때 겪어서 정치적인 경향을 많이 지켜봤는데 그때 제가 봤을 때 그때 제 꿈이 이제 군인이 장군이 되고 싶다 목표가 이제 어린 마음에 별 4개를 달고 있는 4성장군이 너무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때만 하더라도 육군 사관학교나 이런 데는 굉장히 또 인기도 있었고 우리나라의 현실이 북한과의 관계나 이런 걸 봤을 때 우리 군의 중요성이 굉장히 많이 강조되던 때 아니었습니까?
내가 대한민국의 장군으로서 이 나라를 지키고 하는 그런 어떤 그런 마음이 고등학교 때 올라오더라고요.

제가 이제 87년에 6·10 항쟁 때 제가 고등학생이었는데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이 군정이라 해가지고 좀 비판이 많았지 않습니까? 그런 생각에서 우리 군이 바르게 가는 군, 국민에게 신뢰받는 군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을 어릴 적부터 좀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그 당시 때 제 공부 실력이 뭐 그렇게 대단히 뛰어난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역사를 한번 실패하고 역사를 실패하고 좀 좌절하고 있을 때 사촌 누나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근데 제가 좀 너무 크게 좀 꿈을 꾸고 이러다 보니까 사촌 누나가 이제 그때 한번 위로를 하시면서 군인도 좋은데 나는 우리 성국이가 선생님이 교육자가 되는 게 참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됐어요. 저희 형제들도 스타일이나 이런 모습이 선생님보다는 뭔가 좀 이런 군인 이런 게 맞는 것 같은데 왜 누나가 그런 말을 할까 이랬는데 모르겠어요. 어떤 모습을 보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 형제들도 그때 제가 이제 교대를 가게 되니까 결국 교대를 갔잖아요.
가게 되니까 그때부터 무슨 말이 나오냐면 잘 갔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왜 일단 제가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고등학교 때도 보면은 그 친구들 그때는 이제 학원이 없었거든요.
우리 학원을 갈 수 없는 시절이었어요. 그러면 친구들이 이제 공부할 때 잘 모르고 이런 거 있으면 서로 물어보잖아요.
네 근데 제 친구들이 어떤 말이 좀 있었냐 하면 제가 설명을 잘한대요. 저보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설명을 잘한다는데 친구들이 좀 오더라고요.

또 아이들을 좋아해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도 너무 보람 있는 일이겠다 생각했습니다.
또 제가 초등학교 때 존경하는 은사님이 계셨거든요. 이홍렬 선생님이라는 분이 계셨어요. 지금은 퇴임을 하셨는데 제가 평생을 존경하는 은사님이십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사실 한 반에 605명씩 되고 이러기 때문에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신경 쓸 수 있는 교육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또 선생님들도 월급도 작았지 또 이런 처우도가 약하고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선생님들의 처우가 좋지 않은 그런 상태고 하지만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만났던 이홍렬 선생님은 제 인생을 바꾸신 분이었어요. 정성국이라는 사람의 어떤 자존감을 세워주신 분이거든요. 공정한 선생님이셨어요.

그전에는 이렇게 어린 마음에도 보더라도 좀 차별이 보이는 일들이 많았거든요. 아마 지금 제 나이에 되는 분들 다 이해하실 것 같아요.
좀 선생님이 잘 봐주는 학생이 있는 것 같고, 왜 저 반장은 야단을 안 치지 뭐 이런 것도 있는 것 같고. 엄마가 자주 찾아오는 학생은 더 눈여겨보게 되고. 그런데도 우리 이홍렬 은사님께서는 학생들을 정말 공정하게 대하시고 너무나 이렇게 학생을 아끼시는, 때로는 엄격하셨고 저도 그때 막 손바닥 맞고 그랬거든요. 근데 그 손바닥 맞을 때 기분이 나쁘지 않았어요.
이홍렬 선생님이 손바닥을 때리기 때문에 내가 잘못했구나를 생각한 거거든요.
그런 은사님이 제가 또 교대에 갔다는 말씀 들었을 때 가장 기뻐하셨고 그 당시 때의 이홍렬 선생님은 장학사가 되시고 이러셨거든요.

그러니까 나도 우리 이홍렬 선생님처럼 교육자의 길을 걸으면서 나중에 또 어찌 보면 교육계에서 또 더 큰일도 할 수 있는 것이구나 이렇게 하면서 그런 이유들이 다 이제 합쳐지면서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교대도 가게 되었고 교대를 이제 졸업하고 선생님이 되면서 한 25년 정도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신 기자)
의원님께서 아이들을 가르치시면서 가장 뿌듯했거나 보람 있던 적이 있으실 것 같아요.

▲(정 의원)
6학년을 5번을 했는데 학부모님들이 졸업할 때 다 오잖아요. 여러 번 눈물을 흘렸어요. 그때 이제 우리 학부모님들이 선생님 운다면서 막 그러는데, 학생들을 떠나보낼 때 눈물을 흘리는 걸 보면서 학부모님들께서는 선생님이 아이들과 참 잘 지냈고 아이들을 참 사랑했구나 이런 걸 좀 느끼실 수도 있지 않았겠나. 그게 억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학년이 바뀌면 학생을 보내잖아요. 한 번은 제가 교리 초등학교에 있을 때 5학년을 했는데 마지막 날 이제 끝나고 이제 학생들을 이제 종업식이라 하죠.
보내고 이제 혼자서 굉장히 아쉽고 슬픈 마음이 있는데 옆 반 학생이 쫓아와가지고 올라와가지고 선생님 지금 빨리 1층으로 내려가라더라고요.

"왜?" 그러니까 선생님 반 학생들이 안 가고 계속 울고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내려갔더니만 우리 학생들 열몇 명이 거기서 막 서서 안 가고 막 울고 있는 거예요.
1년마다 헤어짐이 참 그랬던 것 같은데 그 우리 제자들이 지금도 다 커서 이제 이 사회 곳곳에서 또 자기의 삶을 살고 있지 않겠습니까?

기억들이 참 생생하고 또 마지막 하나는 제가 이제 제가 역사를 좋아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역사 이야기를 사회 교과서가 역사가 들어 있거든요.
그 시간에 제가 역사적인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줬어요.
동영상도 보여주고 너무나 재미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수업하다가 이렇게 사회 다른 거 공부하면 좀 딱딱한 내용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럴 때 학생이 이렇게 딱 해요. 팻말에다가 '역사 특강' 딱 적어가지고 이렇게 들더라고요. 선생님 지금 수업이 따분하고 좀 내용이 어렵고 한데 선생님 역사 특강 해 주세요. 이순신 이야기해 주세요 막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그래 그럼 이 수업 잘 마치고 나서 선생님이 또 한번 해줄게 이래가지고 학생들하고 옛날에 우리 역사적 사실을 공부하는 게 아니라 그 인물을 우리가 이야기하면서 또 우리 예전에 보면 참 예전에는 역사 드라마가 참 많았잖아요. 그런 장면들이 참 좋은 게 많거든요. 그 불멸의 이순신 같은 참 떠오를 수 있는 게 많습니다. 그런 장면을 학생에게 직접 보여주면서 우리 그때로 한번 돌아가 보자. 타임머신 타고 우리가 지금 저기 한산도 대첩을 우리 산에서 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저기 우리 아빠가 있다고 한번 생각해 보자. 이러면 아이들이 완전히 그게 심취를 해버리거든.

-(신 기자)
그렇죠. 몰입도가 높아질 것 같아요.

▲(정 의원)
그런 상황에서 왜 장군이 저런 판단을 하셨을까 왜 리더의 역할이 저렇게 중요할까 왜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을 했을까 뭐 이런 이야기 왜 사육신이 어린 12살의 단종을 지키기 위해서 저렇게 목숨을 바쳤을까 선생님도 저렇게까지는 못할 것 같다.

근데 우리가 저 정신만큼은 배워야 되지 않겠나 상식과 정의에 대해 학생들과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교육의 힘이 크다고 생각해요. 수업을 받고 있던 학생들이 편지를 써서 보낼 때 항상 역사에서 저한테 감동받았던 부분들을 편지로 쓰더라고요. 저는 그게 굉장히 학생들의 내면에 인성 교육이 됐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인성 교육이 도덕책 가지고 하는 그런 수준이 아니라 생각해요.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수업이 될 수 있다면 저도 더 노력을 했어야 되지만 그런 부분에서 제가 아이들과 좀 많이 공감이 되지 않겠나 그런 게 기억이 좀 많이 남아요.

-(신 기자)
38대 한국교총 회장으로 당선 되셨을 때 초등학교 교사 출신으로는 최초 당선이었습니다.
▲(정 의원)
75년 만에

-(신 기자)
아이들에서 교육 현장의 영향력을 더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회장으로 지내시면서 가장 크게 바꾸고 싶었던 교육 현장이나 문제점이 있으셨다면

▲(정 의원)
현장에 있으니까 좀 아쉽고 개선해야 될 일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선생님은 수업에 집중하고 싶은데 수업보다 행정 업무가 더 강조되는 그런 모습이라든지 그다음에 선생님들이 좀 소신 있게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이 안 되기 시작하고 뭐 이런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알면서도 그거를 해결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교장 선생님이 되더라도 그 학교 안에서는 좀 변화를 줄 수 있겠죠.
근데 전국에 있는 만 2000개 학교 중에 1개 학교의 역할일 수밖에 없잖아요.
과연 내가 어떤 역할을 했을 때 이 현장에 있는 교육 현장의 문제들 또 어려움들을 해결하는 데 좀 스스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을 이제 제가 한 40대가 되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제 진로가 걸리니까. 진로라는 의미는 내가 과연 교장 교감 이렇게 승진을 하는 길로 가는 게 맞느냐 어떤 분들은 승진 준비하면서 교총 회장 하면 안 되나 (했는데) 이 말은 사실 안 맞는다고 생각한 게 그 교총의 구조가 대학 교수가 대학 총장이 회장을 거의 다 했죠. 이 구조를 깨는 게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려웠다고 봤거든요.

저희 교원들이 석사 박사를 하면서 교장이라 하더라도 석사 박사를 하면서 교수에게 수업을 받는 학생이 돼 버리잖아요. 교수는 좀 어찌 보면 스승의 개념이 돼버리는 그런 게 있다 보니까 대학 교수 정도, 대학 총장 정도 돼야 교총장 하는 게 아니냐 이런 인식들을 갖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저는 그런 걸 보면서 그래서 이런 부분에 문제점을 좀 많이 가지고 우리 사원들 초중등 교육에 있는 교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결국 교총회장이 된다든지 또는 교육감이 된다든지 이런 방법밖에 없잖아요.

교육감을 하는 부분도 어찌 보면 시도의 차원의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대한민국 교육을 좀 나름 좀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지금 교원 단체의 장이 되는 것이다. 이거는 한 번 스스로 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을 갖기 시작한 거죠.

평교사로서 도전하는 것이 어찌 보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겠구나 하는 확고한 판단을 한 것입니다. 교사가 80%를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그러면 이 교사들이 밀어준다면 내가 충분히 대학 교수와 경쟁할 수 있겠다 생각을 한 거죠.

결국은 그때 교총회장이 됐을 때 꿈은 교권 회복이었죠. 다른 거 다 떠나서 교권 회복이 1위였고 그다음에 행정 업무 경감이라든지, 교원들의 처우 개선 이런 쪽으로 실질적으로 해야 되겠다 생각했는데 회장 되고 나서 1년 후에 서이초 사건이 터지더라고요.

서이초 사건이 터지기 전에 이미 저는 많은 자리에서 무분별한 아동 학대 신고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가 안 될 수 있도록 법을 제정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서이초 사건이 딱 터지고 나서 많이 바뀌었잖아요. 우리 국민들도 선생님들을 응원해 줬잖아요. 이거는 아니다. 학생이 모기에 물렸다고 민원 넣는 이런 세상은 있을 수가 없다. 본인이 자식을 키우면서 아이 아기가 2명밖에 없어도 아기가 모기에 물리잖아요.

근데 20명 넘는 학생을 가르치는 그런 정도로 극단적인 이 교실이 돼 버렸거든요. 그리고 아이들 이야기만 듣고 선생님을 신고해 버리고 그러다 보니까 그때 서이초에 비극이 생겼는데 그래도 우리 교총이 나름 좀 주도적인 역할을 많이 해서, 교권 5법을 통과시켜서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그때에 비해서는 좀 선생님들에게 어떤 무분별한 민원이나 아동학대 신고 여부로부터 조금 어느 정도는 방어를 가질 수 있는 좀 상황을 만들었거든요.

그리고 행정 업무도 지금 많이 경감을 시키는 쪽으로도 많이 좀 발전이 됐습니다. 교원의 처우 개선들도 지금 담임 수당, 부장 수당도 좀 오르면서 개선이 되고 만족스러운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 성과를 이루었다고 봐요. 그리고 그 이유가 바로 국민의힘에 영입이 되는 또 이유 중에 하나였거든요.

-(신 기자)
지금 교육위에서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가장 크게 좀 중요하게 보시는 부분은 어떤건지

▲(정 의원)
첫째는 이제 교권 회복에 대한 부분. 대책이 좀 더 실효성 있게 될 수 있도록 좀 더 현장에 와닿을 수 있도록 더 꼼꼼히 챙겨야 되는 상황이고요.
지금 현재로서 좀 중요한 거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통합 이 부분도 앞으로 좀 갈 길이 있습니다. 더 준비가 잘 돼야 되고요.

요즘 또 문제가 되는 게 고교 학점제입니다. 듣기는 좋죠. 고교 학점제 이러니까 대학교처럼 고등학교도 학점이 있으면 학생이 과목을 선택하고 자기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는 이런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게 굉장히 현장에 지금 많은 혼란을 주고 있고 어려움을 주고 있어요.

선생님들이 고교 학점제 과목이 많아지니까 본인이 가르치는 과목 말고 다른 과목을 가르쳐야 되는 일인데 이게 전공을 했다기보다는 좀 부전공이라든지 또는 학교 선생님이 되고 나서는 좀 이 과목만 가르치면 되니까 안 가르쳤던 과목들을 갑자기 가르쳐야 되는데 선생님 한 분이 두세 과목을 가르치는 일이 이제 일상화돼 버린 거예요.

그런데 그게 상당히 어려운 게 가르치는 것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면 수행평가도 해야 되고 지필평가도 해야 되고 관리도 해야 되는데 얼마나 많은 일이 생기겠습니까? 상담도 또 얼마나 많아지겠습니까? 이런 문제부터 시작해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또 학생이 최소 성취 기준을 이렇게 도달하지 못하면 유급 제도가 있어가지고요. 고등학교 때부터 학생을 유급한다는 게 이게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게 과연 진로와 적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취지하고 좀 다르죠.

그래서 성취 기준을 도달을 못하는 학생을 보충 지도를 해야 되는 이 부담까지 선생님들이 있는 거예요. 이런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어서 지금 우리 국회 교육위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해결을 이제 해야 되는 교육부와 함께 개선하고 획기적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되는 지금 그런 상황입니다.

allpass@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아이폰 듀오 내년 1월까지 배송 지연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심재민 인턴기자 = 애플의 첫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 듀오'가 사전예약 직후 품귀 현상을 빚으며 배송 일정이 내년 1월까지 밀렸다. 이례적인 수요에 따른 흥행 신호로 해석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생산 수율 저하와 핵심 부품 공급 차질이 물량 부족을 심화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생산이 안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70여개국 동시 출시를 추진한 애플의 전략적 판단도 공급난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애플의 첫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 듀오' [사진=로이터 뉴스핌] ◆ 10대 중 4대 품질 기준 미달…증산에도 공급난 지속 21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아이폰 듀오는 지난 16일 사전예약을 시작한 지 30분 만에 일부 모델의 배송 예정일이 내년 1월로 미뤄졌다. 오는 23일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지만, 지금 주문하면 제품을 받기까지 약 3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애플은 사전예약 수요가 이례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실제 예약 건수와 초기 공급량이 공개되지 않은 만큼 장기간의 배송 지연을 수요 폭증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핵심은 생산 수율이다. 중국 경제매체 지몐신문은 지난달 21일 폭스콘 공급망 관계자를 인용해 아이폰 듀오의 완제품 조립 수율이 9월 17일 기준 60%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생산된 제품 10대 중 4대 가까이가 품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당시 공급망 관계자는 애플의 품질 기준을 유지할 경우 생산라인이 안정적인 수율에 도달하기까지 6개월에서 1년이 걸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수율 문제는 최근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메리츠증권은 지난 19일 보고서에서 외장 힌지와 초박형유리(UTG) 등 핵심 부품뿐 아니라 최종 조립 단계에서도 수율 부진이 발생해 생산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애플이 공급망 주문량을 늘리고 있지만 단기간에 물량 부족을 해소하기 어려운 이유다. 중국 증권시보는 지난 10일 애플이 아이폰 듀오의 부품 주문량을 기존보다 30% 늘렸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부품 확보량을 늘리더라도 최종 조립 수율이 개선되지 않으면 실제 출하량을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 애플의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듀오' [사진=블룸버그통신] ◆ 70여개국 동시 출시 강행…국내 초기 물량 3만대 공급 부족을 예상하고도 글로벌 동시 출시를 선택한 판단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블룸버그는 지난 18일 애플이 당초 미국과 중국에 먼저 출시한 뒤 판매 국가를 확대하려던 계획을 바꿔 70여 개 국에서 동시에 사전예약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제한된 초기 생산 물량을 여러 국가에 배분하면서 공급 부담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국내에서도 물량 부족이 현실화하고 있다. 통신업계가 파악한 아이폰 듀오의 한국 초기 공급 물량은 약 3만대 수준이다. 통신 3사의 일평균 스마트폰 개통량인 약 2만대와 비교하면 이틀 치에도 못 미친다. 통신사들은 첫 폴더블 아이폰 출시를 앞두고 고객 유치에 나섰지만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품 수령 지연에 따른 고객 문의와 불만까지 유통 현장에 집중되면서 정식 출시 이후에도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IT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품귀 현상을 폭발적인 수요에 따른 흥행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생산 차질이 장기화하면 출하 목표 달성이 어려워지고 삼성전자 등 경쟁사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flurry327@newspim.com 2026-10-21 15:43
사진
김정은 사망설, 왜?…"독재 체제가 불러온 고질병"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42)이 뇌출혈로 쓰러져 중국 병원에서 숨졌다는 소문이 한반도를 넘어 지구촌을 뒤흔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사망설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가짜뉴스다. 의료기록이나 목격자, 하다못해 정황을 뒷받침할 만한 최소한의 방증이나 전언도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도 소문은 외신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는 물론 국내 언론과 증권가까지 순식간에 번졌다. 사망설 자체보다 이 소문 앞에서 우리 사회가 보인 허술한 대응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뉴스핌]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지난 19일 '전국 피복·신발전시회-2026' 전시장을 찾아 간부들에게 뭔가를 지시하고 있다. 김정은의 오른쪽은 딸 주애. [사진=북한매체 종합] 2026.10.20 ◆'중국 반체제 인사의 X 글'에 휘둘려 메가톤급 소문의 진원지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반체제 인사 셰완진(謝萬軍)이다. 그는 19일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전해지기로 김정은과 시진핑이 같은 병에 걸렸다. 김정은은 죽었고 시진핑은 죽음이 아직 멀었을까"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어 김정은이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의식을 잃었고 북한의 열악한 의료 여건 때문에 중국에 도움을 요청해 중국 의료진이 급파됐다고 주장했다. 베이징의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았으나 골든타임을 놓쳐 결국 사망했다는 얘기다 시신은 북한으로 비밀리에 운구됐고 북한은 이를 숨기고 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던지면서도 그는 어떤 출처나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셰완진이 중국에서 불법단체로 규정된 '중국민주당 주석'을 자처하며 시진핑 주석 사망설이나 대역설 같은 허위·날조 사실을 SNS에 올려온 인물이란 점에서 신빙성은 떨어진다.  그런데도 영국 더선 등 해외 매체들이 이를 받아 전하면서 소문은 증폭됐고 여기에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장의 권력 장악설이나 중국군 파병설까지 얹혔다. 근거 없는 이야기에 그럴싸한 살이 덧붙여지면서 가짜뉴스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사실 사망설이 한창 번지기 시작한 19일 김정은은 부인 이설주, 딸 주애와 함께 평양에서 열린 '전국 피복·신발 전시회-2026'을 참관했다. 이튿날 북한 관영매체들은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이를 보도했다. 하지만 집요한 가짜뉴스는 이를 견강부회식으로 해석했다. '사망 사실'이 퍼지니 북한 당국이 이를 은폐하고 기만하기 위해 거짓으로 김정은과 가족의 일정을 공개한 것이란 주장까지 내놓으면서 그럴듯하게 포장을 했다. ◆'뇌졸중 쓰러져 中병원 이송'…뻔하고 반복된 레퍼토리 눈여겨볼 대목은 김정은 사망설에서 드러나는 클리셰(Cliché)다. 뇌출혈로 쓰러졌다거나 북한 의료진이 속수무책이라 중국 병원으로 옮겼다, 혹은 시신은 몰래 평양으로 반입했다는 등의 레퍼토리는 과거 북한 지도자의 신변 이상설이 나올 때마다 되풀이된 판박이다. 과거 북한 최고지도자의 사망설 확산 사례를 돌아보면 그 패턴이 드러난다. 1986년 11월 김일성 주석 피격 사망설이 나왔다. 당시 외신과 국내에서 소문이 크게 부풀렸고 최전방 북측 지역에 조기가 걸렸다는 말까지 나왔다. 결국 김일성이 얼마 뒤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오보로 판명됐다. [서울=뉴스핌] 지난 2011년 12월 28일 평양 금수산태양궁전 앞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 장례식에서 아들이자 후계 최고권력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당시 직책은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운구차 옆을 걷고 있다. [사진=북한매체 종합] 2026.10.20 2008년 9월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권수립 60주년 행사에 불참하면서 와병설이 퍼졌다. 이 경우는 뇌졸중으로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망설과는 별개였고 김정일은 이후에도 3년 넘게 통치했다. 정작 2011년 12월 김정일의 실제 사망은 이틀 가까이 지난 뒤에야 공식 발표됐다. 김일성 주석 때도 1994년 7월 사망 후 하루 이상 지나서 발표됐다. 소문은 엄청나게 번지고 정작 진짜 사망 때는 깜깜무소식으로 있다가 북한 발표가 나오고서야 알게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이런 양상은 이어졌다. 2014년 9~10월 김정은이 약 40일간 공개 활동을 하지 않아 유고설이 불거졌지만 지팡이를 짚고 다시 나타났다. 과체중으로 추정되는 다리 혹은 관절 수술 때문으로 파악됐다. 2020년 4월에는 김일성 생일 참배 불참을 계기로 심혈관 수술 후 위중설, 사망설이 퍼졌다. 일부 정치인이 "99% 확신한다"고까지 단언했지만, 김정은은 20일 만인 같은 해 5월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5월에도 원산에서 현지지도 중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는 소문이 외교가와 증권가를 중심으로 돌았다. 번번이 오보로 끝났지만 가짜뉴스와 소문은 '죽지 않는 각설이'처럼 주기적으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일단 베껴 쓰고 보자'…줏대 없이 흔들린 언론 이번 사태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은 언론의 대응이다. 유력 외신뿐 아니라 우리 언론도 줏대 없이 흔들렸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확산일로를 걸으니 '일단 베끼거나 받아쓰고 보자'는 심리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남이 쓰니 나도 쓰고, 안 쓰면 낙종이 될까 불안해 쓰는 식이다. 그 결과 독자와 시청자, 국민은 전례 없는 혼란을 겪었다. 소문이 가장 먼저 들이닥친 주식시장은 출렁였고, 포털과 SNS에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넘쳐났다. 유튜브 일부 채널과 콘텐츠는 한술 더 떴다. 자극적인 제목과 섬네일을 앞세워 사망설을 기정사실처럼 다루며 혼란을 부채질했다. 조회수와 수익이라는 상업적 계산 앞에서 최소한의 사실 확인 의무는 실종됐다. 필자 또한 이번 사태의 한복판에서 적지 않은 시달림을 겪었다. 수많은 지인과 독자들로부터 '정말 사망한 것이냐', '평양이 지금 난리라는 데 파악해 볼 수 있냐'는 문의 전화와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지난 34년간 북한 취재 현장에서 여러번의 '사망·유고설'을 겪었지만 이번은 유독 파장이 크다. 최근의 남북관계와 북한 김정은과 김여정 남매의 비정상적이고 호전적인 도발 상황이 국민이 불안감을 키운 것이란 생각도 든다. ◆'강 건너 불구경'식 정부 대응도 문제 정부 대북부처의 대처도 비판받을 소지가 많다. '가짜뉴스 엄정 대응'을 공언해 왔지만 이번엔 사실상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30일 국회에 김정은의 체중이 약 140kg에 이르러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높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소문이 돌 때 더욱 신속하고 구체적인 사실관계 설명이 필요했다. 책임 있는 당국자가 직접 나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설명하고 소문을 일찍 진화했어야 했다. 국회 정보위원회의 대응도 도마에 오른다. 정보위가 국정원 긴급보고를 받아 사망설이 가짜라는 점을 확인하고, 즉각 공개했더라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란을 차단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일수록 정보위가 정치적 계산을 앞세우지 않고 사실을 확인해 국민에게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본부 청사와 원훈석 [뉴스핌 자료사진] ◆전문성 키우지 못한 언론도 책임 느껴야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북한 체제의 폐쇄성에 있다. 더구나 김정은 한 사람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수령 유일지배 독재체제다. 김정은이 유고상황에 빠지면 대책이 없어진다. 이런 사정에 있다보니 '사망설'을 비롯한 소문의 파괴력은 클 수밖에 없고, 거짓인 줄 알면서도 시장과 사회가 뒤흔들리는 기형적인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정보의 불투명성과 체제의 취약성이 만나 만든 구조적 고질병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우리 언론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북한 보도가 지라시 수준의 글에 휘둘리는 이유는 전문성을 갖춘 저널리스트를 제대로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때 언론사들이 전문기자를 두고 연구소 등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경영 논리와 남북관계 경색에 밀려 유명무실해졌다. 북한 정보의 진위를 가려낼 안목과 취재 네트워크를 갖춘 기자가 줄어들면서 확인되지 않은 SNS 글 한 줄에 증시와 언론, 여론이 함께 휘청이는 모습이 연출됐다. '김정은 사망' 같은 민감한 대북 정보는 우리의 안보와 남북관계, 한반도 정세에 미칠 파장이 크다. 이번 일을 일과성의 해프닝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제대로 된 진단과 대책마련이 없으면 김정은은 앞으로도 몇 번이고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때마다 우리는 휘둘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정부 대북 부처와 유관기관, 언론, 학계 등이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yjlee@newspim.com 2026-10-21 06:12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