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서울가정법원 취재에서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 법원은 부모 갈등 속 아이의 삶과 귀가를 살폈다
- 회복적 사법은 판결 뒤 돌봄까지 이어졌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서울=뉴스핌] 박민경 기자 =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뫼르소는 사람을 죽인 죄로 법정에 선다. 그러나 법정이 집요하게 파고든 것은 총성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것, 관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셨다는 것, 그다음 날 바다에 갔다는 것이었다. 검사는 그 장면들을 엮어 피고인의 마음이 비어 있다고 단정한다.
정작 뫼르소에게는 자신의 재판에서 말할 자리가 없었다. 변호인이 그를 대신해 '나'라고 말하는 동안 그는 자기 인생이 낭독되는 것을 남의 이야기처럼 듣는다. 그는 자기 재판에서도 이방인이었다.

세 차례 서울가정법원을 드나들며 취재하는 동안 뫼르소가 자꾸 떠올랐다.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도 자기 삶을 결정하는 절차의 한가운데 있으면서 정작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부모가 이혼하면 누구와 살지, 어느 학교에 다닐지, 때로는 어떤 성(姓)을 쓸지까지 달라진다. 소년보호재판에서 처분을 받는 것도 아이지만, 그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왜 법정까지 오게 됐는지는 조사관과 판사라는 어른들의 언어를 거쳐 기록된다. 다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이방인'의 법정이 뫼르소의 삶에서 단죄할 이유를 찾았다면, 가정법원의 사람들은 아이의 삶에서 다시 살아갈 방법을 찾으려 했다.
첫 번째 취재는 이혼 사건을 담당하는 가사조사관이었다. 이혼 소송의 당사자는 부모다. 소장과 판결문에는 아이의 이름 대신 '사건본인'이라는 세 글자가 놓인다. 부모가 서로를 향해 쓴 서면이 수십, 수백 장 쌓이는 동안 정작 그 판결로 삶이 달라질 아이의 목소리는 법정까지 좀처럼 닿지 않는다.
그래서 가사조사관은 판결 전에 아이를 먼저 만나러 간다. 서울가정법원의 한 가사조사관은 아이의 말을 가능한 한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 조사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부모의 주장은 서면으로 법원에 들어오지만 아이의 사정은 누군가 찾아가 묻지 않으면 기록에 남기 어렵다. 조사보고서는 부모의 주장 사이에 묻힌 아이의 목소리를 재판부까지 옮기는 통로다.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법원 1층 면접교섭센터였다. 입구에는 안전관리대가 있다. 휴대전화는 보관함에 넣고 흉기는 들여보낼 수 없다. 면접교섭실과 관찰실 사이에는 한쪽에서만 보이는 유리가 놓여 있다. 조사관은 헤드셋을 낀 채 화면으로 부모와 아이의 만남을 지켜본다. 그 장치들을 지나면 풍경이 달라진다. 놀이방에는 인형과 그림책이 있고, 큰 아이들이 쓰는 '햇살방'에는 보드게임과 닌텐도, 암벽타기 시설이 있다. 보안검색대와 그림책이 왜 한 공간에 있어야 하는지 그곳에서 알게 됐다. 부모의 갈등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면서도 부모와 자녀의 관계까지 끊어지지 않도록 이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센터에서 만난 조사관은 판결문이 나왔다고 가족의 삶까지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세 번째 취재는 소년보호재판이었다. 서울가정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보호처분을 결정할 때 재비행 가능성과 가정환경, 학교생활 등을 살핀다고 했다. 보호자가 아이를 돌볼 의지가 있는지뿐 아니라 실제로 돌볼 능력이 있는지도 본다.법원이 묻는 것은 아이가 무엇을 했는지만이 아니다. 왜 여기까지 왔는지, 재판이 끝난 뒤 돌아갈 자리는 있는지도 함께 묻는다.소년조사관은 이를 위해 아이의 삶을 처음부터 되짚는다. 언제 누구와 살았는지, 학교생활은 어땠는지, 언제 학교를 그만뒀는지, 어느 순간부터 곁을 지켜줄 어른이 사라졌는지를 따라간다.
더 나아가 취재동안 알게된 사실은 아이의 삶을 아무리 세밀하게 읽어도 정작 돌려보낼 곳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아동보호치료시설인 6호 시설 가운데 여자 시설은 두 곳뿐이다. 수탁기관 지원 예산은 2009년 이후 사실상 묶여 있다. 현장에서는 1인당 지원 단가를 2만원 수준으로 현실화해 달라는 요구가 나온다. 정신과 진료가 필요한 아이를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소년원 부속의원도 부족하다. 계약의사 제도는 하위 규정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소년원 과밀 수용도 여전하다. 아이의 삶을 읽어내는 사람은 있는데, 그렇게 읽어낸 아이를 받아낼 곳이 부족하다.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회는 소년보호관찰 전담기관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한 '보호관찰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성인과 소년의 보호관찰을 분리해 예방교육부터 지도·감독, 치료·재활, 사후관리까지 소년의 특성에 맞는 체계를 갖추겠다는 취지다. 취재 과정에서 자료를 요청했던 국회 의원실도 소년교도소에 성인 수형자가 함께 수용되는 실태를 확인한 뒤 법무부 업무보고에서 이 문제를 질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방인'의 법정은 뫼르소가 어떤 사람인지 답을 정해놓고 그의 과거에서 그 답에 맞는 장면을 골라냈다. 울어야 할 때 울지 않았다는 것이 한 인간을 판단하는 근거가 됐다. 가정법원에서 만난 사람들의 질문은 달랐다. '왜 울지 않았느냐'고 묻기 전에 왜 울 수 없었는지를 살폈다. 언제부터 학교에 가지 않았는지, 누구와 살았는지, 어느 순간 곁을 지켜줄 어른이 사라졌는지, 돌아갈 집에는 아이를 받아줄 사람이 있는지를 물었다. 뫼르소는 끝까지 이방인으로 남는다. 사형을 앞두고 세계의 무심함을 받아들인다. 소설이기에 가능한 결말이다. 가정법원에서 만난 아이들에게는 그런 결말을 허락할 수 없다.
세 번의 취재에서 본 것은 '회복적 사법'이라는 거창한 이름보다 판결 전에 아이의 말을 들으러 가고, 판결 뒤에는 부모와 아이의 만남을 지켜보고, 잘못을 저지른 아이에게 돌아갈 자리가 있는지 살피는 사람들의 시간이었다. 법정은 여전히 어른들의 언어로 굴러간다. 소장도 판결문도 처분도 어른들이 쓰고 결정한다. 그래도 그 언어 바깥에 한 아이가 서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pmk1459@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