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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100년,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변해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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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의미와 풍경의 변천사
원래 5월 1일이었던 어린이날, 일제 때 5월 5일로 변경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어린이날'이 생긴지 100년이 됐다. 그러나 100년이 되었어도 어린이날이 세계 최초로 어린이 인권 해방을 선언한 것이라는 의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린이날은 어린이들을 즐겁게 해주고 노는 날이 아니라, 어린이의 인권, 한 개체로서의 인격을 생각해보는 날인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발행하는 <민속소식> 5월호가 '어린이날 의미와 풍경의 변천사'라는 글을 게재했다. 한국방정환재단 염희경 연구부장의 글로, 어린이날은 어떻게 어떤 의미로 생겨났으며 지난 100년 동안 어떤 변화를 거쳐왔는지 잘 정리하고 있다. 이에 염희경 부장의 글을 전문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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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대 어린이의 발견과 어린이날-어린이 해방을 선언하다

어린이운동가 방정환은 5월 1일을 "새 세상이 열리는 첫날"이라 하였다. 근로자의 날로 널리 알려진 5월 1일에 방정환은 왜 이런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을까? 5월 1일은 조선에서 세계 최초로 어린이 인권 운동을 선언한 '어린이날'이었다.

첫 '어린이날'을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2022년 어린이날은 '어린이날 100주년'으로, 또는 '제100회 어린이날'로 일컬어진다. 100년의 시간 동안 어린이날의 가치와 정신, 풍경은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그 의미와 위상, 모습이 달라졌다.

어린이날의 제정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가난과 질병과 불행에 찌든 대한민국 어린이들을 구휼하고 교육하는 데에만 목적을 둔 것은 아니다. 어린이 사랑은 그 내면적 이상에서 더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 시절 우리 어린이들을 위한 어른들의, 한민족의 사랑이 결합된 것으로 어린이를 통해 민족과 나라 건설의 장래를 담보로 한 것이다.

세계 최초로 어린이 인권 해방을 선언하며 '어린이날'을 제정한 방정환 선생은 일제 강점기에 어린이를 잘 키우는 일이야말로 미래를 가꾸는 일임을 깨닫고 어린이를 통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어린이날'은 마치 꺼질 듯 위태로웠던 일제 강점기 속에서 미래를 꿈꿀 수 있었던 '꿈'이었고 모든 어린이가 '어린이답게' 사는 나라로서 어린이 인권의 새 장을 만든 계기였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1922년 5월 1일 『매일신보』에 실린 「조선 초유의 소년일」. '의미 깊은 기꺼운 이 소년날은 이천만 형제가 다 함께 빌으오'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사진=국립민속박물관] 2022.05.05 digibobos@newspim.com

방정환은 「조선소년운동의 사적 고찰」의 첫 시작 부분에서 '어린이 발견'과 '어린이운동'이 1919년 3.1만세운동 이후 민족 갱생을 도모한 민족운동의 일환이자 그 근본운동임을 뚜렷이 밝혔다. 방정환과 소년운동가들은 천도교소년회 창립 1주년을 기념해 1922년 5월 1일 '어린이의 날'을 제정하였다. 핵심 주장은 '10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라'며 민족의 장래를 위해 어린이를 잘 키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당시 신문과 잡지에서는 「십년 후 조선을 려慮하라」, 「조선 초유의 소년일」, 「가로로 취지 선전」, 「조선에서 처음 듣는 어린이의 날」 등의 기사와 선전지를 소개하였다. 4종의 선전문을 배포하며 전국적으로 거리 기행렬을 계획했는데, 어깨에 멘 흰띠에 붉은 글씨의 어린이날이라는 문구가 문제가 되어 불허가로 행사가 지체되면서 지방에서는 행렬이 금지되고 '경성'으로 규모가 축소되었다.

1922년 5월 1일 천도교소년회 중심의 '어린이의 날' 취지와 선전문, 거리 행렬과 자동차 선전대, 저녁의 축하기념식과 강연회 등은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의 취지와 선전문, 어린이날 행사의 기틀이 되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은 대대적으로 일어났으며, 일반에게 '어린이'의 존재를 확실하게 부각한 날이었다.

이날 선언문에서 밝힌 <소년운동의 기초 조항>은 어린이날이 어린이 인권 운동이자 어린이 해방 운동임을 명확히 밝혔다. 1920년대 중반부터 어린이운동은 분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1926년, 1927년 어린이날 행사가 따로 치러지면서 이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1927년 10월 16일 조선소년운동협회와 오월회 두 단체는 통합을 모색하여 '조선소년연합회'를 결성하였다. 어린이날이 5월 1일 근로자의 날과 겹쳐 일제의 탄압뿐 아니라 어린이날 행사 참여를 금지시키는 학교장의 방해가 심해지는 점을 들어 1928년부터 어린이날을 5월 첫째 공휴일로 변경하기로 결정하였다.

조선총독부 학무국은 1928년부터 5월 5일을 '유유아(乳幼兒)애호데이(아동애호데이)'로 정하고 관 주도의 어린이날 행사를 실시하였다. 이것은 조선 어린이운동의 대표적 상징인 어린이날에 대한 맞불 형태의 행사다. 193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한 조선 어린이운동에 대한 분열과 탄압을 예비한 것이며, 어린이 해방의 자리에 어린이 보호애호의 관점을 덧씌운 것으로 볼 수 있다.

◆ 1930년대 조선 어린이운동의 퇴조, 일제의 '아동애호주간'

1931년 서울 소년단체대표들 주최로 '전조선어린이날 중앙연합회 준비회'가 결성되어 어린이날 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다. 어린이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지역의 어린이날 행사 소식도 신문에 자주 등장하였다.

일본은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선의 어린이운동을 강력히 탄압하였고, '유유아 애호' 주간을 더 본격화하면서 아동 구호 사업을 선전하였다. '우량아 선발 대회' '고궁 무료 관람' 행사 등을 벌이며 '어린이 해방 운동'의 성격을 띠었던 조선 어린이운동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하며 일종의 균열을 획책하였다.

1937년에는 어린이날 기념식만을 겨우 치렀고, 1938년부터는 어린이날이 폐지되었다. 일본은 이 틈을 타서 조선사회사업협회 주최로 5일부터 11일까지 '아동애호주간'을 펼치며 국민정신총동원이라는 취지로 아동애호 관념을 강조하였다.

또한 경성초등학교장회 주최로 "어린 학동들을 '억센 국민'으로 단련시키기 위해" 사립초등학교연합대운동회를 열고 "이만 학동이 무럭무럭 자라는 귀여운 몸으로써 그리는 대원무곡이 화려하게 벌어지고 명랑한 환성의 코러스가 여름 하늘 높이 올라가 '억센 국민' '창조의 성전聖典'다운 용장미"를 보인다는 신문 기사(『동아일보』 1938.5.31)가 등장한다.

1937년 중일전쟁으로 대륙 침략을 본격화하던 시기 '억센 국민'의 단련은 어린이의 전쟁 동원을 예비하고 독려하는 것이며, '명랑한 환성의 코로스'라는 말로 어린 병사 양성을 목적으로 한 어린이 운동회를 미화하고 있다. 어린이날 기행렬과 행사 사진이 사라지고 초등연합대운동회의 일사분란한 군사 행동 같은 운동회 모습과 재롱잔치로 묘사되는 전 경성유치원 원유회 기사와 사진들이 이 시기 신문의 지면을 채워가고 있다.

◆ 1945년~1949년 해방으로 다시 찾은 어린이날, 5월 5일로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1946년 해방 후 첫 어린이날 행렬 [사진=국가기록원] 2022.05.05 digibobos@newspim.com

일본의 탄압으로 1938년에 중단되었던 어린이날은 1946년 부활하였다. 「자유로운 세상에서 제 명절 찾은 어린이날」이라는 신문 기사는 일본이 덧씌운 불명예를 걷어내고자 하는 언어와 정신의 회복을 담고 있다. 즉 일제 말 '아동애호주간'이나 '초등연합운동회' '전 경성유치원 원유회' 등을 '어린이의 명절'로 명명하면서 조선 '어린이의 복된 새 명절'이자 어린이 해방 운동이었던 어린이날을 지웠던 역사의 회복이다.

1946년 5월 첫째 주 일요일이 5일이어서 이때부터 날짜가 달라지는 불편을 덜기 위해 어린이날은 5월 5일로 고정되었다. 해방의 기쁨과 어린이운동의 역동성도 잠시 이후 좌우익 이념 대립과 갈등, 분단 체제를 맞으면서 이후 반쪽의 어린이운동으로 자리 잡게 된다.

◆ 1950년대 관 주도 기념식, 일제 강점기 '아동애호주간'의 닮은꼴

어린이날 기념식은 1953년부터는 점차 관 주도, 국가 주도 행사가 되었고 분단 상황으로 '반공의식'을 강화하거나 어린이날 행사에 '합동체조'가 끼어드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어린이날 기념식에 전면적으로 등장하는 이승만 대통령 내외의 사진이라든가, 어린이가 대통령 내외에게 꽃을 바치는 모습들은 이전에는 없던 어린이날 풍경이다.

1957년 5월, 전후의 피폐한 상황에 놓여 있는 어린이의 복지와 건강을 지켜주기 위해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이 제정되었다. 그 이전 시기에도 첫 어린이날에 대한 회차 논란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1956년, 1957년에 와서 어린이날이 폐지되었던 1938년~1945년 시기의 회차까지를 포함하면서 이 과정에서 1923년을 첫 어린이날제1회로 보는 기사들이 나온다.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이 제정된 1957년 이후에는 1923년을 제1회 어린이날로 보는 관점이 공식화되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1969년 어린이날 기념식, 착한 어린이 우량아 표창식 [사진= 국가기록원]  2022.05.05 digibobos@newspim.com

◆ 1960년대 착한 어린이상에 갇힌 어린이와 가장 행렬의 등장

1960년 '계엄령과 정치 붐'으로 어린이날 행사는 하지 못하였다. 1956년 새싹회에서 어린이날을 맞아 착한 어린이상을 표창한 뒤 1960년대에는 서울시를 비롯해 각 단체에서 착한모범 어린이상, 장한착한 어머니상, 장한 어버이상 등을 시상하기에 이른다. 이는 1980년대 후반까지도 지속되었다.

1967년에는 어린이날 가장행렬이 처음 시작되었다. 서울운동장에서 기념식을 가진 뒤 우주소년 아톰, 동물 복장 가장행렬단이 종로-세종로-시청 앞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가장행렬에는 '과외 수업 없는 나라 어린이가 건강하다'는 표어와 불량만화 추방, 혼·분식 장려 등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는 표어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 1970년대 화려한 볼거리-어린이 경축대잔치, 가장행렬

1973년 3월 '어린이날'이 법정 기념일이 되었고, 1975년 1월, 어린이날이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공휴일 지정의 영향인 듯 1976년에는 어린이날 창경원에 35만 인파가 몰렸다는 기사가 나온다.

세계 어린이의 해인 1979년에는 장충체육관에서 기념식을 거행하고,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어린이날 경축대잔치를 벌였다. 서울시 주최로 서울 시내 초등학교 어린이 1만여 명이 서울운동장-을지로-시청으로 대행진을 벌였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청와대에서 진행된 1980년 어린이날 [사진=국가기록원] 2022.05.05 digibobos@newspim.com

◆ 1980년대 전면에 등장하는 대통령과 소비자가 된 어린이의 출현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부 주최 어린이날 행사가 청와대에서 진행되었다. 1981년에는 어린이날 행사로 청와대가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이후 정부 주도 어린이날 행사는 청와대 안의 녹지원, 상춘재, 본관 등에서 개최되었다. 초대된 어린이들은 모의 국무회의, 대통령과의 오락 등의 시간을 보냈다.

1981년에 <아동복지법>을 개정하면서 '어린이를 옳고 아름답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도록 하기 위하여 해마다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한다'는 조문이 포함되었다. 1970년대 중반부터 대공원 놀이동산 등으로 어린이와 가족들이 몰리는 현상이 보도되기 시작한다면, 1980년대 후반부터는 어린이날을 맞아 일종의 소비자, 고객이 된 어린이를 보도하는 신문 기사들이 자주 노출된다.

◆ 1990년대 돌아보는 어린이날, '공동체 놀이, 우리 아이'의 가치

1991년 5월 5일, 전교조 초등위원회가 주최하고 한양대학교 총학생회와 여러 어린이 교육 문화 관련 단체들이 공동 주관한 '제1회 어린이날 놀이마당'이 한양대학교에서 열렸다. 1994년부터는 각 교육청과 시청, 구청에서 어린이날에 저소득층이나 장애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놀이마당과 유사한 행사를 마련하였다.

1999년 5월 1일, 방정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어린이어깨동무, 어린이도서연구회, 공동육아와 공동체 교육이 중심이 되어 1923년의 어린이날 선언을 수정 보완한 '새천년 어린이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민주화의 시대적 흐름 속에서 어린이날의 원래 취지를 살리면서 시대에 맞는 어린이날의 모습을 모색한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왼쪽) 2022년 어린이날노래공모전 포스터, (오른쪽) 어린이 3권 5호(1925.5) [사진=한국근대문학관] 2022.05.05 digibobos@newspim.com

◆ 2000년대 어린이의 인권, 안전, 놀이 권리를 생각하다.

정부 각 부처, 지방 자치 단체, 어린이 관련 놀이 문화 산업, 유통업체 등이 어린이날 행사를 주관하면서 행사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보여주기식 행사나 소비성 행사가 적지 않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한편, 다문화· 탈북·폭력과 학대·실종 상황에 놓인 어린이의 인권이 부각되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어린이 안전과 주체적 교육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2015년 '어린이 놀이 헌장' 선포는 어린이의 놀 권리 보장을 위해 제도와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2016년 5월 2일 보건복지부는 <2016 아동권리헌장>을 제정하였다. 정부 차원의 '아동권리헌장'은 1957년 '어린이 헌장'1988년 개정 이후 처음이다. "모든 아동은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받고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또한 생명을 존중받고 보호받으며 발달하고 참여할 수 있는 고유한 권리가 있다. 부모와 사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다음과 같은 아동의 권리를 확인하고 실현할 책임이 있다"고 하여 9개 조항을 발표하였다. 이 헌장은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기초해 달라진 시대상을 반영하고 어린이의 처지에서 기술한 사실상의 첫 헌장이라고 평가받는다.

2019년 겨울 이후 전세계를 덮친 코로나19의 위협이 어린이날 행사는 물론 가정과 학교에서의 어린이의 삶 전반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어린이들의 소원도 '마스크를 벗고 신나게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다'거나 '코로나19가 사라지고 지구가 다시 행복해지기를 바란다'는 등으로 변화하였다. 2021년부터 랜선이나 메타버스로 만나는 어린이날 행사 등도 마련되었다. 전 세계를 위협하는 질병과 IT 산업이 결합해 어린이날 풍경도 변화하고 있다.

[서울=뉴스핌] 조용준 기자 = 국립민속박물관의 어린이날 한마당 포스터 [사진=국립민속박물관] 2022.05.05 digibobos@newspim.com

어린이날 100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린이를 향한 어른의 기대와 바람을 마주하게 되고, 정치 사회적 격변 속에서 어린이날의 풍경이 변화하고 어린이날의 정신이 훼손되기도 하고 그에 대한 반성으로 다시 새롭게 계승하기 위한 노력이 엿보이기도 한다. 앞으로 100년이 더 흐른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200회, 또는 200주년의 어린이날을 맞이할까? 훗날 2022년 어린이날은 어떤 풍경으로 그려질지, 어떤 가치를 담아낸 날로 기억될지 상상해 본다.

어린이날 100년의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면서 더 새로운 미래를 위해 어린이는 어떤 존재인지, 우리 사회는 어린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다시금 되물어봐야 할 것이다.

글 | 염희경_한국방정환재단 연구부장

digibobo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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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이 완성한 韓·日 반도체 동맹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이건희 선대회장에게 물려받은 일본 재계 네트워크를 인공지능(AI) 반도체 시대의 사업 동맹으로 재편하고 있다. 선대부터 이어진 일본 주요 기업 최고경영자들과의 교류를 직접 챙겨온 이 회장은 최근 삼성전기와 스미토모화학 계열 동우화인켐의 유리기판 합작을 계기로 인적 신뢰를 핵심 소재 공동 개발과 생산 협력으로 확장했다. 과거 일본의 선진 기술을 배우고 부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시작된 삼성의 대일 협력이 이 회장 체제에서는 AI 반도체 공급망을 함께 설계하는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사진 = 뉴스핌DB] ◆ 스미토모와 손잡고 반도체 핵심 '글라스 코어' 공동 생산 15일 삼성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기는 지난 2일 일본 스미토모화학의 한국 자회사인 동우화인켐과 합작법인 '글라셈' 설립에 나섰다. 글라셈은 차세대 반도체 기판으로 주목받는 유리기판의 핵심 소재인 '글라스 코어'를 생산할 예정이다. 삼성전기가 지분 66%, 동우화인켐이 34%를 보유한다. 경기 평택에 생산 거점을 구축해 내년 하반기부터 공급 체계를 갖출 계획이다. 재계에서는 이번 합작을 단순한 계열사 차원의 투자보다 삼성과 일본 재계가 오랜 기간 쌓아온 신뢰 관계가 첨단산업의 공동 사업으로 이어진 사례로 보고 있다. 스미토모화학은 이건희 선대회장 때부터 삼성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대표적인 일본 소재기업이다. 양사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소재 분야에서 협력을 이어왔고, 지난 2011년에는 LED용 사파이어 웨이퍼 생산 합작사 SSLM을 설립했다. 이번에는 협력의 무대가 AI 반도체용 첨단 패키징 소재로 옮겨갔다. 유리기판은 기존 플라스틱 기판보다 표면이 평탄하고 열에 따른 변형이 적어 고성능 AI 반도체와 대형 패키지에 적합한 차세대 부품으로 꼽힌다. AI 반도체의 연산 성능과 전력 사용량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칩 자체뿐 아니라 이를 연결하고 지지하는 기판과 패키징 소재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삼성전기는 고다층·고밀도 반도체 패키지기판 설계와 제조 기술을 합작법인에 투입한다. 동우화인켐은 정밀 유리 가공과 공정 자동화 역량을 제공한다. 양사가 각자의 기술을 결합해 글라스 코어를 공동 생산하면 삼성은 AI 반도체 패키징 경쟁의 핵심으로 떠오른 유리기판 공급망을 선제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AI 인포그래픽=서영욱 기자] ◆ 이재용 회장이 잇는 일본 네트워크…AI 협력으로 확장 삼성과 일본 재계의 협력 중심에는 이건희 선대 회장이 1993년 출범시킨 LJF(Lee Kunhee Japanese Friends)가 있다. LJF는 삼성과 일본 주요 전자·부품·소재 기업 최고경영진이 정례적으로 만나 기술과 공급망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교류 모임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 경영자들이 참여하며 삼성의 핵심 해외 네트워크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특히 이 선대 회장은 요네쿠라 히로마사 전 스미토모화학 회장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다. 양측의 신뢰는 스미토모화학 회장과 일본 경제단체연합회 회장을 지낸 도쿠라 마사카즈 회장으로 이어졌다. 일본 게이오대에서 유학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LJF 정례 교류회를 직접 주재하고 일본을 수시로 방문하며 도쿠라 회장을 비롯한 현지 재계 인사들과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재용 회장이 선대부터 이어진 일본 재계 네트워크를 AI 시대에 맞는 사업 협력으로 발전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삼성전기의 유리기판 [사진=삼성전기] ◆ 산요·NEC·도레이·소니…반세기 이어진 기술 동맹삼성과 일본 기업의 협력은 반세기 넘게 이어져 왔다. 출발점은 일본의 선진 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합작이었다. 삼성은 1969년 산요전기와 TV 생산법인 '삼성-산요전기'를 설립하며 전자산업 진출의 기반을 다졌다. 산요전기 창업자인 이우에 토시오와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와세다대 동문으로 인연을 맺은 점도 양사 협력의 계기가 됐다. 이후 삼성과 일본 기업의 협력은 기술 도입을 넘어 핵심 부품을 함께 개발·생산하고 공급망을 구축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삼성은 1970년 일본전기(NEC)와 삼성NEC를 설립해 브라운관과 전자부품 기술을 확보했다. 이 회사는 훗날 삼성SDI로 성장했다. 2000년에는 NEC와 삼성NEC모바일디스플레이를 세워 OLED 사업에 진출했다. 관련 사업은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를 거쳐 현재의 삼성디스플레이로 이어졌다. 협력 범위는 반도체·디스플레이 패키징과 대형 LCD 분야로도 넓어졌다. 삼성은 1995년 도레이와 스템코(STEMCO), 스테코(STECO)를 설립해 관련 공급망을 공동 구축했다. 2004년에는 소니와 대형 LCD 패널 합작사 S-LCD를 세워 대규모 생산 투자에 나섰다. 초기 일본 기술을 배우기 위한 합작으로 시작된 협력이 기술 개발과 생산, 공급망을 함께 구축하는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진화한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 삼성과 일본 기업의 협력은 선진 기술을 배우고 핵심 부품을 안정적으로 조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며 "이재용 회장은 일본 재계와 쌓아온 오랜 신뢰 관계를 단순한 교류에 그치지 않고 AI 반도체와 첨단 소재 분야의 실질적인 사업 협력으로 연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syu@newspim.com 2026-07-1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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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李 정부 출범 후 시민 주거 힘들어져" [서울=뉴스핌] 조수민 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부동산 시장의 현실을 설명하는 '일타강사'로 나섰다. 오 시장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매매·전세·월세가 모두 상승하는 '트리플 강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요 억제·공급 축소 기조의 정부 정책 기조를 원인으로 꼽으면서 청년, 신혼부부, 중산층 1주택자의 주거 부담이 커졌다고 주장했다. [서울=뉴스핌] 류기찬 기자 =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10일 오후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서울청년정책박람회'에 모두 발언을 했다. 2026.07.10 ryuchan0925@newspim.com 서울시는 15일 오후 '일타시장 오세훈-국무회의에서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 이재명 정부 부동산 지옥, 원인 분석 보고서'를 서울시장 공식 누리집과 소셜방송 라이브서울 통해 공개했다. 영상은 약 26분 분량이다. 이번 영상은 서울 부동산 시장의 문제와 원인을 분석하는 내용이다. 후속편에서는 시장 정상화를 위한 정책 전환 방향과 서울시 대책, 정부에 건의한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매매·전세·월세 트리플 강세" 오 시장은 "정부가 틀렸고 서울시가 옳다는 뜻이 아니라, 통계와 데이터를 시민과 공유하고 해법을 함께 고민하자는 것"이라고 강의를 시작했다. 그러면서 "서울시가 모든 주택 거래와 공신력 있는 통계를 분석하고 토지거래허가대장 4만4000건을 대조하는 한편 공인중개사 약 660명의 의견을 들었다"며 "현장에서 확인한 결론은 시민들의 주거 상황이 매우 힘들어졌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오 시장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1년간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이 13.1%, 전세가격이 6.3%, 월세가 7.4% 올랐다며 매매·전세·월세가 동시에 상승하는 이례적인 '트리플 강세'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전세가격은 11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월세는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다. 또 오 시장은 지난 1년간 정부가 여섯 차례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지만 주택담보대출 제한, 규제지역 확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등 수요 억제에 집중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 당시와 현 정부의 대책을 비교하며 "대출 규제와 임대주택 공급 발표, 투기과열지구 지정, 양도세·보유세 강화로 이어지는 흐름이 닮았다"고 말했다. 공급 대책도 서울 주택 공급의 90% 이상을 담당하는 민간 재개발·재건축보다 공공사업에 치중돼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가 발표한 서울 공급 물량 약 3만2000가구 중 2만8000가구는 과거 발표 후 장기간 진척되지 않은 사업으로, 실질적인 신규 공급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오 시장은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한 6·27 대책 이후 매수 수요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15억원 이하 아파트로 이동했다고 전했다. 대책 이후 서울 전체 거래의 78.1%가 15억 원 이하 아파트에 집중됐고 영등포, 강서, 관악, 동작, 성북, 성동 등 비강남권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오 시장은 전월세 시장의 혼란도 지적했다. 그는 "서울 전역의 실거주 의무 강화로 갭투자뿐 아니라 기존 세입자가 살던 전셋집까지 사라졌다"며 "전체 전세계약의 55.4%가 갱신계약일 정도로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 수 없는 '전세 감옥'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이어 "과거에는 금리가 급등하면서 월세가 늘었지만 지금은 금리변화가 크지 않은데도 월세가 급증했다"면서 "자연스러운 구조 변화라기보다 정책이 미친 결과"라고 덧붙였다. 특히 전용면적 40㎡ 이하 소형 연립·다세대주택의 월세 부담이 크게 늘어 청년과 1인 가구 등 경제적 여력이 부족한 시민에게 먼저 청구서가 돌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 "이주비 대출 제한·입주물량 감소로 공급 부족 현실화" 공급 측면에서는 이주비 대출 제한으로 올해 이주 예정인 정비사업구역 35곳 중 14곳의 자금 조달이 불확실하다는 시각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공사가 보증을 거부한 사업장은 5곳, 협의 중인 사업장은 9곳이며 보증을 확보하더라도 연 4~7%의 금리를 부담해야 한다.  올해 서울 아파트 신규 입주 물량 2만7000가구 중 정비사업 물량은 1만7000가구로 약 60%지만, 내년에는 8000가구로 절반 이하로 감소할 전망이다. 오 시장은 "이자는 결국 조합원 분담금과 분양가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며 "수요는 여섯 번의 대책으로 누르고 공급은 규제로 막은 데다 향후 3년간 공급 부족 우려가 심각하다"고 했다.  또 정부가 전세 물량 감소 원인으로 다주택자의 주택 매각과 기존 세입자의 자가 전환을 제시한 데 대해서도 서울시 분석 결과와 다르다고 밝혔다. 서울시가 주소를 대조한 결과 기존 세입자가 거주 주택을 직접 매입한 비율은 2.9%에 불과했다.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율이 53.5%인 만큼 집값의 절반가량을 추가로 마련해야 해 자가 전환이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전세를 원하는 수요는 78.3%, 매물이 부족하다는 응답은 약 70%였다. 오 시장은 "전세가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시민은 여전히 많은데 매물이 없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라며 "정부의 진단은 결과를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 "정부 부동산 정책, 청년·신혼부부·중산층에 큰 부담" 오 시장은 잘못된 부동산 정책의 부담이 투기세력이 아닌 청년과 신혼부부, 4050세대, 등록임대사업자, 중산층 1주택자에게 돌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관악구 신림동 대학가의 한 원룸은 지난해 6월 보증금 1000만원·월세 40만원에서 올해 5월 월세 80만원으로 두 배 올랐다. 또 서울의 500가구 이상 아파트 850개 단지 중 47.9%인 404개 단지의 전세 매물은 2건 이하였다. 세금 부담도 중산층 1주택자까지 확대되고 있다.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은 2009년 서울 공동주택의 2.99%에서 올해 14.9%로 예상된다. 서울의 1주택자 종부세 대상자는 지난해 12만 명에서 올해 16만 명으로, 한강벨트 1주택자는 3만3000명에서 5만7000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오 시장은 "투기를 잡겠다던 세금이 중산층 1주택자에게 꽂히고 있다"며 "부자의 세금이 아니라 12월에 날아오는 중산층의 세금이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시는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지난 1년간 일곱 차례에 걸쳐 18건을 정부에 건의했다"며 "정부와 대립하자는 것이 아니다. 부동산에는 여야가 없고 시민의 삶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현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는 서울시가 데이터를 공유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오 시장은 "정책 방향 전환과 서울시 대책, 정부에 건의한 구체적인 해법은 다음 시간에 풀어드리겠다"며 "부동산 지옥은 끝낼 수 있다. 시민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 가겠다"고 했다. blue99@newspim.com 2026-07-1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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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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