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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금융위기② 글로벌 금융위기…대폭락과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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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먼브러더스 파산, 안 막았나? 못 막았나?
전세계 증시 동시 대폭락...러시아는 -80%
사상 초유의 미국 금융회사 집단 파산위기
미국,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으로 파국 막아

[서울=뉴스핌] 한태봉 전문기자 = 시기적으로 볼 때 대부분의 MZ세대(1980년 이후 출생 세대)들은 1997년의 'IMF 외환위기'와 2001년의 'IT버블 붕괴'와 같은 끔찍한 대세하락장은 경험해 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 출생 세대) 중에서 주식투자를 남보다 빨리 시작했던 일부 사람들의 경우 겪어봤을 가능성이 있다.

어느 세대이건 상관없이 2008년도에 경제활동을 하고 있었다면 꼭 주식투자를 직접 안 했더라도 흉흉한 분위기 정도는 충분히 느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는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 당시의 분위기를 한 번쯤 상기해 보는 것도 투자에 있어 소중한 지식이 될 것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긴박했던 2008년으로 잠시 돌아가 보자.

2007년은 세계 각국의 증시가 모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행복한 연도다. 한국 역시 2003년부터 시작된 4년간의 대세상승장으로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행복했던 시기였다. 주요 국가들의 증시는 2007년 10월에 최고점을 찍으며 행복감이 절정에 달했고 말 그대로 축제 분위기였다. 아무도 1년 뒤에 무시무시한 폭락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불과 1년 뒤 전 세계 증시는 나란히 폭락했다. 위기의 근원지였던 미국 S&P500 지수의 최고점 대비 하락률은 단 1년 만에 -58%를, 나스닥 지수는 -55%를 기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위기의 근원지가 아니었음에도 한국의 코스피 지수는 최고점 대비 -57%로 S&P500 지수 못지않게 하락했다. 심지어 코스닥 지수는 -71%라는 역대급 하락률을 기록하며 미국 나스닥 지수보다 훨씬 더 큰 폭으로 주저앉았다.

미국보다 증시가 더 많이 하락한 나라는 한국뿐만이 아니었다. 중국 상하이종합지수의 고점 대비 하락률은 -73%를 기록했다. 그 당시 한국에서 인기리에 판매됐던 차이나펀드의 주요 투자대상이자 ELS 기초자산이기도 했던 홍콩H지수는 최고점인 2만609포인트에서 1년 만에 5000포인트마저 붕괴된 4919포인트를 기록했다. -76%라는 무시무시한 하락률이다. 이로 인해 한국의 수많은 중국펀드 투자자들은 심각한 손실을 보게 됐다.

유럽 또한 부진했다. 유로스톡스50 지수는 -53%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한때 유가가 폭등했던 영향으로 2498포인트까지 치솟았던 러시아 RTS 지수는 뒤늦게 폭락을 시작해 2009년 1월에는 최고점보다 -80% 하락한 493포인트를 기록했다. 일본 닛케이225 지수 또한 최고점 대비 -62%를 기록하며 미국보다 더 큰 낙폭을 기록했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 세계 투자자들을 모두 고통 속으로 밀어넣었다. 글로벌 분산투자는 글로벌 증시가 모두 동반 하락하면서 주가 하락 방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역시 과거나 지금이나 세계 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위상은 막강했다. 미국이 기침을 하면 나머지 모든 나라들이 중병에 걸리는 구조는 2022년인 지금 현재도 여전히 변함이 없다.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위기의 서막

미국 연준은 2001년의 IT버블 붕괴 이후 시장을 살리기 위해 금리를 계속 인하했다. 2003년 말에 미국의 기준금리는 1%까지 인하됐다. 2007년까지 글로벌 증시가 장기 호황을 이어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런 저금리 덕분이었다. 전 연준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은 장기간 저금리 정책을 지속했다. 이로 인해 시장에 거품이 쌓이고 있었지만 그린스펀은 느긋했다.

드디어 2004년 6월에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1%에서 1.25%로 인상한 그린스펀은 2006년 6월까지 불과 2년 동안 기준금리를 5.25%까지 급격히 인상했다. 순차적으로 올리긴 했지만 누적 인상폭이 무려 4%였다. 참고로 2006년 2월부터는 벤 버냉키가 연준 의장 자리를 지켰다. 어쨌든 신기하게도 미국이 물가를 잡기 위해 정책금리를 올리는데도 오히려 시장금리는 정책금리와 따로 놀며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 수준을 유지했다.

이런 신기한 현상에 그린스펀조차 이유를 알 수 없다며 원인 파악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현상을 '그린스펀 수수께끼'라고 부른다. 나중에서야 이 수수께끼가 풀렸는데 이 당시에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가 급격히 성장함에 따라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미국 국채를 대거 사들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미국의 정책금리가 인상됐지만 실제 시장의 금리 인상폭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미국 부동산시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미국의 전국주택가격은 2002년에 9.6%, 2003년에 10.2%, 2004년에 13.8%, 2005년에 12.9%라는 높은 상승률을 기록하면서 폭주를 시작했다. 2006년 말까지 5년간의 누적수익률은 무려 43%다.

그런데 케이스-실러 지수를 볼 때는 평균의 함정을 감안해야 한다. 미국의 대도시 기준이 아니라 전국을 대상으로 한 주택가격 지수이므로 실제의 높은 체감 상승률과는 온도차가 있다. 통계 범위를 미국 주요 대도시로 좁혀서 살펴보면 실제 5년간의 체감 상승률은 거의 2배에 육박했다.

이런 역대급 부동산 호황기를 미국 금융회사들은 놓치지 않았다.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은 신용등급에 따라 크게 3단계로 나뉜다. 세부적으로는 우량 등급인 프라임(Prime) 등급, 다소 위험은 있지만 상환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알트에이(Alt-A) 등급, 상환능력이 거의 없는 비우량 등급인 서브프라임(SubPrime) 등급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부동산 호황기에 취한 금융회사들은 돈을 더 많이 벌고 싶어 우량 등급인 프라임 등급 외에 비우량 등급인 서브프라임 등급 고객들에게 상당히 많은 양의 주택담보대출을 허용했다. 그러고도 금융회사들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미국 주요 투자은행들은 돈을 더 벌기 위해 이번에는 여러 사람들의 주택담보대출을 모아서 증권화한 MBS(주택저당증권)를 만들어냈다.

이 상품이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들에게 판매되면서 MBS의 인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돈 욕심이 극에 달했던 금융기관들은 이제 CDO(부채담보부증권)라는 우량대출증권과 비우량대출증권을 섞은 기상천외한 막장 금융상품까지 고안해 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험회사들이 약간의 수수료를 받고 이 CDO의 원금을 보증해 주는 CDS(신용위험스왑)을 만들어냈다. 이로 인해 신용파생상품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게 됐고 주요 금융회사들의 레버리지 비율은 점점 더 높아져만 갔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과 관련한 실제 파생상품 구조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지만 대략적으로는 이런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인 S&P, 무디스, 피치는 한국 같은 이머징마켓의 국가신용등급을 평가할 때는 상당히 까다롭게 따져보는 걸로 명성이 높다. 하지만 이 기관들이 어이없게도 미국의 기상천외한 채권과 파생상품에 대해서는 신용등급을 후하게 평가해준 것도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 규모를 키운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CDO나 CDS 같은 상품들은 부동산 가격이 영원히 계속 오르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만약 부동산 가격이 하락한다면 재앙이 시작되는 구조로 설계됐다. 그리고 드디어 그렇게 굳게 믿어 왔던 미국 부동산시장이 하락을 시작했다. 2007년도에 미국 케이스-실러 지수는 -6.4% 하락했다. 그러면서 서브프라임 계층이 모기지(주택담보대출)로 빌린 대출을 갚지 못하는 끔찍한 상황이 찾아왔다.

2007년 말 기준 전체 모기지의 연체율은 약 4%였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연체율은 그 3배인 약 14%까지 치솟았다. 2008년 상반기 주택 압류대출 대상은 전체 대출자의 20%까지 확대됐다. 모기지 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집이 계속 압류되기 시작했다.

결국 미국 금융 역사상 최악의 재앙이 시작됐다. CDO를 보유하고 있던 투자은행과 금융기관들의 자산은 순식간에 휴지조각이 됐다. 이 기상천외한 금융상품의 원금을 보증해 주는 CDS를 만들어낸 보험사들도 순식간에 파산 위기에 몰렸다.

 

◆ 갑자기 닥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위험성을 아예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니다. 이미 2007년 봄부터 여기저기서 경고음이 울려퍼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장 참여자들은 이 문제를 모기지 문제로만 한정해서 생각했다.

따라서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대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해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경우가 많았다. 천하의 미국 정부조차도 초기에는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미봉책만 쏟아내며 정책적 실수가 이어졌다. 그러면서 사상 유례없는 대위기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2007년 2월에 HSBC가 전년도 모기지 관련 손실을 100억달러(약 12조원)로 발표하면서 금융시장에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4월에는 미국 2위 모기지 대출회사 뉴센추리 파이낸셜이 파산을 신청했다. 6월에는 베어스턴스가 운영하는 펀드도 모기지 투자 손실을 고백했다.

2007년 8월에 미국 모기지 대출회사 아메리칸 홈 모기지 인베스트먼트가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연이어 BNP파리바은행의 자산유동화증권(ABS)펀드가 환매를 일시 중단했다. 9월에는 영국 중앙은행(BOE)이 모기지론 업체인 노던록에 긴급 자금을 투입하면서 사태가 유럽까지 번지게 됐다.

2007년 11월에는 미국 2위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마저 모기지 투자손실이 37억달러(약 4조4000억원)라고 발표하면서 시장을 긴장시켰다. 연이어 미국 주택담보대출업체의 양대 산맥이자 준공공기관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까지 대규모 손실을 발표하면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올라왔다.

하지만 아직 미국 정부는 사태가 얼마나 심각하게 전개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2008년 1월에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대부기업인 컨트리 파이낸셜의 인수를 발표했다. 2월에는 영국에서 모기지론 업체 노던록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결국 국유화됐다.

2008년 2월에 미국 의회는 1680억달러(약 202조원)의 경기부양안을 승인하며 사태 해결에 나섰다. 그러나 3월이 되자 미국 5위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가 쏟아지는 모기지 부실로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이에 연준은 대공황 이후 처음으로 베어스턴스에 긴급 자금을 지원해 간신히 부도를 막아냈다. 결국 이틀 뒤 베어스턴스는 JP모건체이스에 헐값으로 인수됐다.

하지만 여름이 되면서 위기는 점점 더 심각 해졌다. 2008년 8월에 모기지업체 인디맥이 부도를 냈다. 그리고 드디어 운명의 2008년 9월이 다가왔고 사태는 정점을 항해 달려갔다. 9월 7일에 주택담보대출업체의 양대 산맥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심각한 모기지 부실로 결국 국유화됐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준공공기관을 부도 내기에는 부담이 컸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자금을 지원해 살려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바로 리먼브러더스였다. 2008년 9월에 리먼브러더스는 사방팔방으로 투자자를 구하러 다녔지만 결국 자금 유치에 실패했다. 한국에서는 산업은행이 리먼브러더스의 인수 협상에 나섰으나 한국 정부의 부정적인 기류로 결국 9월 9일에 최종 인수 포기를 발표했다. 그리고 6일 뒤인 9월 15일에 리먼브러더스는 파산했다. 결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미국 투자은행 서열 4위인 리먼브러더스와 5위인 베어스턴스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미국 정부 역시 마지막까지 리먼브러더스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최종적으로 부실 규모가 너무나 거대했던 리먼브러더스는 포기하고 그보다 부실 규모가 작은 메릴린치를 구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같은 날 메릴린치는 BoA에 인수됐다. 다음날인 9월 16일에 연준은 CDS 부실로 허덕이던 AIG에 850억달러(약 102조원)의 구제금융을 지원하며 AIG 지분 79.9%를 인수했다.

하지만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은 전 세계 금융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다. 당연히 위기도 계속됐다. 9월 21일에 미국 1위와 2위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순수 투자은행 모델을 포기하고 은행 지주사로 전환했고 단기 유동성 자금도 공급받았다. 9월 25일에는 상업은행인 워싱턴 뮤추얼이 파산했고 일부 부서는 JP모건체이스에 인수됐다. 전 연준 의장이었던 엘런 그린스펀도 "세기에 한 번 있을 법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 미국 금융회사 대부분 파산 위기?

계속되는 신용위기와 금융위기 속에 마침내 미국 의회는 특단의 결단을 내렸다. 미국 국민들의 피 같은 세금을 투입해서라도 붕괴 위기에 빠진 금융시장을 구해내야 했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과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백방으로 뛰며 설득작업에 나섰다. 마침내 7000억달러(약 840조원)라는 막대한 구제금융법안이 9월 28일에 미국 상원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 구제금융법안은 놀랍게도 다음날 하원에서 205 대 228로 부결되고 말았다.

이 부결 소식으로 전 세계 주식시장은 공포의 도가니에 빠지게 된다. S&P500 지수는 이날 하루에만 8.8% 폭락했다. 그 전부터 계속 하락세를 보여왔던 미국 시장이었으나 이날을 기점으로 11월 중순까지 단 2개월 만에 S&P지수는 추가로 40% 이상 폭락했다. 주가 폭락이 다시 추가적인 폭락을 부르며 주식시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이제 미국 금융회사 전체가 모두 파산할 수도 있는 충격적인 상황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금융기관들의 모럴 해저드를 방지해야 한다는 대의명분보다 미국 금융시장 붕괴를 막아내야 하는 냉혹한 현실 인식이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미국 상원은 10월 1일에 법안 일부를 수정해 다시 통과시켰다. 그리고 10월 3일에 하원도 수정안을 통과시켜 가까스로 연방정부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시장이 안정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더 필요했다. 시장은 연방정부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폭락에 폭락을 거듭했다. 급기야 워런 버핏까지 나섰다. 10월 17일에 워런 버핏은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을 통해 "나는 주식을 사고 있다. 지금은 탐욕을 부릴 시기"라며 주식시장이 극도로 저평가돼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포에 질린 투자자들의 투매는 이어졌고 주가는 계속 하락했다.

미국 정부는 추가적인 시장안정화를 위해 11월 23일에 위기에 빠진 씨티그룹에 3000억달러(약 360조원)의 지급보증과 450억달러(약 54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또 11월 25일에는 정부보증 모기지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의 채권 GSE와 MBS를 직접 매입하는 공격적인 제1차 양적완화 정책을 단행했다. 결국 워런 버핏이 기고문을 쓴 지 1개월이 지난 11월 21일에서야 S&P500 지수는 1차 저점을 형성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S&P지수는 계속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여전히 수많은 미국기업들이 유동성 위기로 신음했기 때문이다. 결국 12월에는 또 다른 위기의 뇌관이었던 자동차 회사에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미국 재무부는 12월 29일에 자동차 회사인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책을 발표했다. 

 그리고 해를 넘긴 2009년 2월에 미국 정부가 금융안정정책 및 경기부양책을 추가로 발표하면서 시장의 변동성이 급격히 줄어들고 주식시장의 본격적인 반등이 시작됐다. 결국 미국 S&P지수의 역사적 바닥은 2009년3월에 667포인트까지 하락하며 형성됐다. 한국 코스피지수의 바닥은 2008년 10월이었으니 미국 S&P 지수의 바닥형성이 한국보다 5개월가량 늦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위기의 2008년도에 미국의 기준금리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연준은 위기가 수면 위로 올라온 2008년 1월에 4.25%였던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0.5%포인트 두 차례 연속 인하해 3%까지 낮췄다. 또 3월에도 0.75%포인트를 추가 인하했다. 그 후 4월에 0.25%포인트를 인하해 기준금리를 2%까지 낮췄다. 하지만 위기는 계속됐고 결국 10월에도 연속으로 두 차례 0.5%포인트씩 낮춰 기준금리는 1%가 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2008년 12월에 0.75%포인트의 파격 인하를 단행해 기준금리를 0~0.25%의 제로금리로 만들었다.

그러고 나서도 부족해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사상 처음으로 양적완화를 실시해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를 결국 위기에서 구해내게 된다. 버냉키 전 의장은 평소 "디플레이션 위기 때는 헬리콥터에서 돈을 살포해서라도 경기를 살려야 한다"고 주장해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다. 결국 이 공로를 인정받아 위기 대응 이후 한참이 지난 2022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참고로 2006년 말에 최고점을 찍은 미국 부동산 가격은 케이스-실러 지수 기준으로 이후 5년간 꾸준히 하락해 2011년 말 누적 하락률은 -26.5%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22년 6월 말 기준으로 다시 계산해 보면 2006년 말의 전고점보다 무려 74% 폭등한 상태다. 미국의 주택시장은 다시 회복됐다. 오히려 너무 많이 회복된 게 문제일 정도다.

 

미국 S&P500 지수 또한 2009년 3월의 667포인트를 대바닥으로 꾸준히 우 상향했다. 1년9개월 뒤인 2010년말에는 2배 가까이 상승해 1,258포인트를 회복했다. 13년이 지난 2022년 11월말 기준으로는 4,080포인트로 무려 6배 상승했다. '미국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합리적인 신념을 가지고 장기투자한 조심스러운 낙관론자들은 지금 큰 폭의 수익을 달성하고 있는 중이다.

 

③편에서 계속… 금융위기③ 2008년과 2003년의 대폭락, 우크라전쟁 닮았나?

 

자세한 내용은 해당 영상을 통해 확인해 보자.

뉴스핌 (촬영·편집 : 양홍민 / 그래픽 : 조현아)

longinu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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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듀오 내년 1월까지 배송 지연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심재민 인턴기자 = 애플의 첫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 듀오'가 사전예약 직후 품귀 현상을 빚으며 배송 일정이 내년 1월까지 밀렸다. 이례적인 수요에 따른 흥행 신호로 해석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생산 수율 저하와 핵심 부품 공급 차질이 물량 부족을 심화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생산이 안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70여개국 동시 출시를 추진한 애플의 전략적 판단도 공급난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애플의 첫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 듀오' [사진=로이터 뉴스핌] ◆ 10대 중 4대 품질 기준 미달…증산에도 공급난 지속 21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아이폰 듀오는 지난 16일 사전예약을 시작한 지 30분 만에 일부 모델의 배송 예정일이 내년 1월로 미뤄졌다. 오는 23일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지만, 지금 주문하면 제품을 받기까지 약 3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애플은 사전예약 수요가 이례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실제 예약 건수와 초기 공급량이 공개되지 않은 만큼 장기간의 배송 지연을 수요 폭증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핵심은 생산 수율이다. 중국 경제매체 지몐신문은 지난달 21일 폭스콘 공급망 관계자를 인용해 아이폰 듀오의 완제품 조립 수율이 9월 17일 기준 60%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생산된 제품 10대 중 4대 가까이가 품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당시 공급망 관계자는 애플의 품질 기준을 유지할 경우 생산라인이 안정적인 수율에 도달하기까지 6개월에서 1년이 걸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수율 문제는 최근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메리츠증권은 지난 19일 보고서에서 외장 힌지와 초박형유리(UTG) 등 핵심 부품뿐 아니라 최종 조립 단계에서도 수율 부진이 발생해 생산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애플이 공급망 주문량을 늘리고 있지만 단기간에 물량 부족을 해소하기 어려운 이유다. 중국 증권시보는 지난 10일 애플이 아이폰 듀오의 부품 주문량을 기존보다 30% 늘렸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부품 확보량을 늘리더라도 최종 조립 수율이 개선되지 않으면 실제 출하량을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 애플의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듀오' [사진=블룸버그통신] ◆ 70여개국 동시 출시 강행…국내 초기 물량 3만대 공급 부족을 예상하고도 글로벌 동시 출시를 선택한 판단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블룸버그는 지난 18일 애플이 당초 미국과 중국에 먼저 출시한 뒤 판매 국가를 확대하려던 계획을 바꿔 70여 개 국에서 동시에 사전예약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제한된 초기 생산 물량을 여러 국가에 배분하면서 공급 부담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국내에서도 물량 부족이 현실화하고 있다. 통신업계가 파악한 아이폰 듀오의 한국 초기 공급 물량은 약 3만대 수준이다. 통신 3사의 일평균 스마트폰 개통량인 약 2만대와 비교하면 이틀 치에도 못 미친다. 통신사들은 첫 폴더블 아이폰 출시를 앞두고 고객 유치에 나섰지만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품 수령 지연에 따른 고객 문의와 불만까지 유통 현장에 집중되면서 정식 출시 이후에도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IT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품귀 현상을 폭발적인 수요에 따른 흥행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생산 차질이 장기화하면 출하 목표 달성이 어려워지고 삼성전자 등 경쟁사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flurry327@newspim.com 2026-10-2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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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사망설, 왜?…"독재 체제가 불러온 고질병"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42)이 뇌출혈로 쓰러져 중국 병원에서 숨졌다는 소문이 한반도를 넘어 지구촌을 뒤흔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사망설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가짜뉴스다. 의료기록이나 목격자, 하다못해 정황을 뒷받침할 만한 최소한의 방증이나 전언도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도 소문은 외신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는 물론 국내 언론과 증권가까지 순식간에 번졌다. 사망설 자체보다 이 소문 앞에서 우리 사회가 보인 허술한 대응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뉴스핌]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지난 19일 '전국 피복·신발전시회-2026' 전시장을 찾아 간부들에게 뭔가를 지시하고 있다. 김정은의 오른쪽은 딸 주애. [사진=북한매체 종합] 2026.10.20 ◆'중국 반체제 인사의 X 글'에 휘둘려 메가톤급 소문의 진원지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반체제 인사 셰완진(謝萬軍)이다. 그는 19일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전해지기로 김정은과 시진핑이 같은 병에 걸렸다. 김정은은 죽었고 시진핑은 죽음이 아직 멀었을까"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어 김정은이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의식을 잃었고 북한의 열악한 의료 여건 때문에 중국에 도움을 요청해 중국 의료진이 급파됐다고 주장했다. 베이징의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았으나 골든타임을 놓쳐 결국 사망했다는 얘기다 시신은 북한으로 비밀리에 운구됐고 북한은 이를 숨기고 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던지면서도 그는 어떤 출처나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셰완진이 중국에서 불법단체로 규정된 '중국민주당 주석'을 자처하며 시진핑 주석 사망설이나 대역설 같은 허위·날조 사실을 SNS에 올려온 인물이란 점에서 신빙성은 떨어진다.  그런데도 영국 더선 등 해외 매체들이 이를 받아 전하면서 소문은 증폭됐고 여기에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장의 권력 장악설이나 중국군 파병설까지 얹혔다. 근거 없는 이야기에 그럴싸한 살이 덧붙여지면서 가짜뉴스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사실 사망설이 한창 번지기 시작한 19일 김정은은 부인 이설주, 딸 주애와 함께 평양에서 열린 '전국 피복·신발 전시회-2026'을 참관했다. 이튿날 북한 관영매체들은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이를 보도했다. 하지만 집요한 가짜뉴스는 이를 견강부회식으로 해석했다. '사망 사실'이 퍼지니 북한 당국이 이를 은폐하고 기만하기 위해 거짓으로 김정은과 가족의 일정을 공개한 것이란 주장까지 내놓으면서 그럴듯하게 포장을 했다. ◆'뇌졸중 쓰러져 中병원 이송'…뻔하고 반복된 레퍼토리 눈여겨볼 대목은 김정은 사망설에서 드러나는 클리셰(Cliché)다. 뇌출혈로 쓰러졌다거나 북한 의료진이 속수무책이라 중국 병원으로 옮겼다, 혹은 시신은 몰래 평양으로 반입했다는 등의 레퍼토리는 과거 북한 지도자의 신변 이상설이 나올 때마다 되풀이된 판박이다. 과거 북한 최고지도자의 사망설 확산 사례를 돌아보면 그 패턴이 드러난다. 1986년 11월 김일성 주석 피격 사망설이 나왔다. 당시 외신과 국내에서 소문이 크게 부풀렸고 최전방 북측 지역에 조기가 걸렸다는 말까지 나왔다. 결국 김일성이 얼마 뒤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오보로 판명됐다. [서울=뉴스핌] 지난 2011년 12월 28일 평양 금수산태양궁전 앞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 장례식에서 아들이자 후계 최고권력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당시 직책은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운구차 옆을 걷고 있다. [사진=북한매체 종합] 2026.10.20 2008년 9월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권수립 60주년 행사에 불참하면서 와병설이 퍼졌다. 이 경우는 뇌졸중으로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망설과는 별개였고 김정일은 이후에도 3년 넘게 통치했다. 정작 2011년 12월 김정일의 실제 사망은 이틀 가까이 지난 뒤에야 공식 발표됐다. 김일성 주석 때도 1994년 7월 사망 후 하루 이상 지나서 발표됐다. 소문은 엄청나게 번지고 정작 진짜 사망 때는 깜깜무소식으로 있다가 북한 발표가 나오고서야 알게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이런 양상은 이어졌다. 2014년 9~10월 김정은이 약 40일간 공개 활동을 하지 않아 유고설이 불거졌지만 지팡이를 짚고 다시 나타났다. 과체중으로 추정되는 다리 혹은 관절 수술 때문으로 파악됐다. 2020년 4월에는 김일성 생일 참배 불참을 계기로 심혈관 수술 후 위중설, 사망설이 퍼졌다. 일부 정치인이 "99% 확신한다"고까지 단언했지만, 김정은은 20일 만인 같은 해 5월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5월에도 원산에서 현지지도 중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는 소문이 외교가와 증권가를 중심으로 돌았다. 번번이 오보로 끝났지만 가짜뉴스와 소문은 '죽지 않는 각설이'처럼 주기적으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일단 베껴 쓰고 보자'…줏대 없이 흔들린 언론 이번 사태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은 언론의 대응이다. 유력 외신뿐 아니라 우리 언론도 줏대 없이 흔들렸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확산일로를 걸으니 '일단 베끼거나 받아쓰고 보자'는 심리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남이 쓰니 나도 쓰고, 안 쓰면 낙종이 될까 불안해 쓰는 식이다. 그 결과 독자와 시청자, 국민은 전례 없는 혼란을 겪었다. 소문이 가장 먼저 들이닥친 주식시장은 출렁였고, 포털과 SNS에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넘쳐났다. 유튜브 일부 채널과 콘텐츠는 한술 더 떴다. 자극적인 제목과 섬네일을 앞세워 사망설을 기정사실처럼 다루며 혼란을 부채질했다. 조회수와 수익이라는 상업적 계산 앞에서 최소한의 사실 확인 의무는 실종됐다. 필자 또한 이번 사태의 한복판에서 적지 않은 시달림을 겪었다. 수많은 지인과 독자들로부터 '정말 사망한 것이냐', '평양이 지금 난리라는 데 파악해 볼 수 있냐'는 문의 전화와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지난 34년간 북한 취재 현장에서 여러번의 '사망·유고설'을 겪었지만 이번은 유독 파장이 크다. 최근의 남북관계와 북한 김정은과 김여정 남매의 비정상적이고 호전적인 도발 상황이 국민이 불안감을 키운 것이란 생각도 든다. ◆'강 건너 불구경'식 정부 대응도 문제 정부 대북부처의 대처도 비판받을 소지가 많다. '가짜뉴스 엄정 대응'을 공언해 왔지만 이번엔 사실상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30일 국회에 김정은의 체중이 약 140kg에 이르러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높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소문이 돌 때 더욱 신속하고 구체적인 사실관계 설명이 필요했다. 책임 있는 당국자가 직접 나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설명하고 소문을 일찍 진화했어야 했다. 국회 정보위원회의 대응도 도마에 오른다. 정보위가 국정원 긴급보고를 받아 사망설이 가짜라는 점을 확인하고, 즉각 공개했더라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란을 차단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일수록 정보위가 정치적 계산을 앞세우지 않고 사실을 확인해 국민에게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본부 청사와 원훈석 [뉴스핌 자료사진] ◆전문성 키우지 못한 언론도 책임 느껴야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북한 체제의 폐쇄성에 있다. 더구나 김정은 한 사람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수령 유일지배 독재체제다. 김정은이 유고상황에 빠지면 대책이 없어진다. 이런 사정에 있다보니 '사망설'을 비롯한 소문의 파괴력은 클 수밖에 없고, 거짓인 줄 알면서도 시장과 사회가 뒤흔들리는 기형적인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정보의 불투명성과 체제의 취약성이 만나 만든 구조적 고질병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우리 언론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북한 보도가 지라시 수준의 글에 휘둘리는 이유는 전문성을 갖춘 저널리스트를 제대로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때 언론사들이 전문기자를 두고 연구소 등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경영 논리와 남북관계 경색에 밀려 유명무실해졌다. 북한 정보의 진위를 가려낼 안목과 취재 네트워크를 갖춘 기자가 줄어들면서 확인되지 않은 SNS 글 한 줄에 증시와 언론, 여론이 함께 휘청이는 모습이 연출됐다. '김정은 사망' 같은 민감한 대북 정보는 우리의 안보와 남북관계, 한반도 정세에 미칠 파장이 크다. 이번 일을 일과성의 해프닝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제대로 된 진단과 대책마련이 없으면 김정은은 앞으로도 몇 번이고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때마다 우리는 휘둘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정부 대북 부처와 유관기관, 언론, 학계 등이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yjlee@newspim.com 2026-10-21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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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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