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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정치분석] ⑦미국 의회언어의 질과 민주주의의 향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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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핵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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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연혁 교수가 1933년 이후 미국 의회와 대통령 연설을 통해 경제위기·세계대전·냉전을 어떻게 이해·논쟁했는지 추적했다.
  • 루스벨트는 라디오 노변담화를 통해 은행위기와 뉴딜정책을 쉽게 설명하며 국민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새로운 정치언어를 만들었다.
  • 진주만 이후 치욕의 날 연설에서 루스벨트는 공격 경위를 명확히 제시해 참전의 정당성을 설득했고, 의회는 선전포고로 이를 헌법적 행동으로 완성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민주주의의 무기고에서 교육·문화·국방·과학기술 초강대국으로(1933–1992)

미국 의회가 축적해 온 본회의 기록은 미국이 대공황의 위기를 극복하고 제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을 거쳐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초강대국으로 변화한 과정을 보여준다.

앞선 편이 1882년부터 1932년까지의 『컨그레셔널 레코드』를 통해 엽관제 개혁, 독점 규제, 관세와 국제연맹을 둘러싼 논쟁을 살펴보았다면, 이번 편은 1933년부터 냉전 종결기까지 의회가 경제위기와 세계대전, 한국전쟁, 우주경쟁과 베트남전쟁을 어떤 언어로 이해하고 논쟁했는지를 추적한다.

그러나 이 시기의 정치언어는 의회속기록만으로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1930년대 라디오가 미국 가정에 보급되고, 전후에는 텔레비전이 정치적 의사소통의 중심 매체로 자리 잡으면서 대통령은 의회에 정책을 제출하는 행정부의 수장을 넘어 국민에게 직접 국가의 현실과 목표를 설명하는 정치적 설득자가 되었다.

루스벨트의 노변담화, 트루먼의 냉전 연설, 케네디의 텔레비전 연설과 존슨의 민권 연설은 의회의 토론과 함께 국민적 동의를 형성하는 새로운 정치언어를 만들었다.

따라서 이번 편에서는 『컨그레셔널 레코드』에 기록된 의원들의 발언과 토론 날짜를 중심에 두면서, 대통령의 주요 라디오·상하원 합동 연설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국가의 방향을 제시했다면, 의회는 그 방향을 법률과 예산으로 구체화하거나 헌법적 한계를 따져 물었다. 이 두 언어가 긴장하고 결합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군사·경제적 초강대국이 되었을 뿐 아니라 과학기술과 시민권을 국가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미국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 [사진=위키미디어 공용]

대공황과 국민 설득의 정치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취임한 1933년 3월 미국은 금융제도와 민주주의 정부의 통치 능력이 동시에 시험받고 있었다. 은행의 연쇄 폐쇄와 대량 실업은 경제적 고통을 넘어 연방정부와 금융기관에 대한 불신으로 번졌다. 뉴딜정책은 연방정부의 권한을 크게 확대했지만, 정책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의회의 입법뿐 아니라 은행 예금자와 기업, 노동자와 농민의 협조가 필요했다.

루스벨트는 취임 직후인 1933년 3월 12일 은행위기를 설명하는 첫 라디오 연설을 시작으로 국민에게 직접 정책을 설명하였다. 이 방송들은 뒤에 노변담화(Fireside Chats)로 불리게 되었다.

이 명칭은 루스벨트가 직접 붙인 공식 명칭이 아니라, CBS 관계자 해리 C. 버처가 1933년 5월 7일 두 번째 라디오 연설을 소개하면서 사용한 표현에서 비롯되었다. 대통령이 청취자의 거실이나 부엌에 함께 앉아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듯한 친밀하고 일상적인 화법을 잘 나타냈기 때문에 이 명칭은 곧 널리 정착하였다.

라디오는 이러한 새로운 정치적 소통을 가능하게 하였다. 루스벨트는 신문의 기사 편집이나 사설의 해석을 거치지 않고 국민에게 은행위기와 뉴딜정책의 목적을 직접 설명할 수 있었으며, 차분하고 쉬운 언어를 통해 불안을 진정시키고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와 협조를 구하였다.

라디오 노변담화(Fireside Chat)를 진행 중인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사진=위키미디어 공용]

"First of all, let me state the simple fact that when you deposit money in a bank the bank does not put the money into a safe-deposit vault. It invests your money in many different forms of credit—in bonds, in commercial paper, in mortgages and in many other kinds of loans. In other words, the bank puts your money to work to keep the wheels of industry and of agriculture turning around."

"먼저 여러분이 은행에 돈을 맡긴다고 해서 은행이 그 돈을 금고 안에 그대로 보관하는 것은 아니라는 단순한 사실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은행은 그 돈을 채권과 상업어음,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여러 형태의 신용에 투자합니다. 다시 말해 은행은 산업과 농업의 바퀴가 계속 돌아가도록 여러분의 돈을 활용합니다."

루스벨트는 정부를 무조건 믿으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예금이 어떻게 운용되는지를 먼저 설명하고, 은행제도의 안정이 시민의 판단과 행동에 달려 있음을 설득했다. 정치 지도자가 복잡한 제도를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협력을 요청하는 방식은 이후 미국 대통령 정치의 중요한 전통이 되었다.

미디어사학자 베티 호친 윈필드(Betty Houchin Winfield)는 『FDR and the News Media』(1990)에서 루스벨트가 자신에게 적대적이었던 유력 신문 발행인들의 영향력을 라디오와 새로운 언론관계를 통해 우회했다고 분석한다.

더글러스 B. 크레이그(Douglas B. Craig)도 『Fireside Politics: Radio and Political Culture in the United States, 1920–1940』(2005)에서 라디오가 대통령의 선거운동뿐 아니라 통치와 국민의 정치의식을 연결하는 핵심 매체로 발전했다고 설명한다. 루스벨트는 2차대전이 진행되던 1944년까지 노변연설을 총30회 진행하며, 라디오는 당시 국민과 직접 소통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일본의 기습 타격을 받아 검은 연기를 내뿜는 진주만 해군 기지 전경. [사진=위키미디어 공용]

진주만과 민주주의의 전쟁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미국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인명 피해와 전후 국제정치에 대한 실망으로 강한 고립주의 여론이 형성되어 있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영국과 중국 등 침략에 맞서 싸우는 국가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보았지만, 의회와 국민 다수는 유럽과 아시아의 전쟁에 직접 참전하는 데 여전히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루스벨트는 1940년 12월 29일 「국가안보에 관한 노변담화」에서 미국이 참전하지 않더라도 연합국에 필요한 무기를 생산·공급하는 민주주의의 거대한 무기고(the great arsenal of democracy)가 되어야 한다고 호소했으며, 이 구상은 이듬해 3월 「무기대여법(Lend-Lease Act)」으로 제도화되었다.

그러나 1941년 12월 7일 일본 해군이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공격하면서 미국의 대외정책은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았다. 다음 날인 12월 8일 루스벨트는 의회 합동회의에 출석하여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요청했다. 그는 전날의 공격이 단순한 군사적 충돌이 아니라 평화협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루어진 계획적인 기습이었다고 규정하며, 미국은 더 이상 유럽과 아시아의 전쟁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할 수 없다고 선언하였다.

1941년 12월 8일 미국 의회에서 '치욕의 날' 연설을 하는 루스벨트 대통령 [사진=위키미디어 공용]

루스벨트는 공격의 도덕적 성격만 강조하지 않고 외교협상과 군사공격이 동시에 진행된 시간적 순서를 제시했다.

"Yesterday, December 7, 1941—a date which will live in infamy—the United States of America was suddenly and deliberately attacked by naval and air forces of the Empire of Japan. The United States was at peace with that nation and, at the solicitation of Japan, was still in conversation with its Government and its Emperor looking toward the maintenance of peace in the Pacific. Indeed, one hour after Japanese air squadrons had commenced bombing in the American island of Oahu, the Japanese Ambassador to the United States and his colleague delivered to our Secretary of State a formal reply to a recent American message."

"어제 1941년 12월 7일, 치욕으로 기억될 그날, 미합중국은 일본제국의 해군과 공군으로부터 갑작스럽고 계획적인 공격을 받았습니다. 미국은 그 나라와 평화로운 관계에 있었고, 일본 측의 요청에 따라 태평양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일본 정부와 계속 협의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항공대가 오아후섬을 폭격하기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지나서야 주미 일본대사와 그의 동료가 미국 측 통보에 대한 공식 답변을 국무장관에게 전달했습니다."

이 연설은 미국 민주주의에서 대통령의 언어가 국민적 감정을 헌법적 행동으로 전환한 대표적 사례였다. 루스벨트는 분노를 단순히 자극하기보다 공격의 경위와 책임을 명확히 제시함으로써 참전의 정당성을 설득했고, 짧고 절제된 레토릭은 국민과 의회 사이에 신속한 합의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연설이 끝난 뒤 상원은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만장일치로 승인했고, 하원은 1941년 12월 8일 찬성 388표, 반대 1표로 가결했다. 대통령이 국민의 분노와 전쟁 목적을 언어로 정리했다면, 의회는 헌법상 선전포고권을 행사해 참전을 국가의 공식 의사로 확정했다.

전쟁이 본격화되면서 미국의 공장과 조선소는 연합국에 전차·항공기·선박을 공급하는 거대한 군수생산 체제로 전환되었다. 민주주의의 무기고라는 표현은 생산 확대를 군수산업의 이익이 아니라 자유국가의 생존과 연결하는 설득의 언어였으며, 국민의 노동과 희생을 민주주의 수호라는 공동의 목적 아래 조직하는 정치적 효과를 발휘했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교수 [사진=뉴스핌 DB]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달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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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넘 의원, 英 집권 노동당 새 대표로 [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북부의 왕'으로 불리는 앤디 버넘 의원이 17일(현지 시각) 영국 집권 여당인 노동당의 새 대표에 올랐다.  버넘 대표는 오는 20일 키어 스타머 총리를 이어 영국의 차기 총리 자리를 확정했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은 의회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집권당의 대표가 총리가 된다. 노동당은 이날 특별 당대회를 열고 버넘 의원을 당 대표로 공식 선출했다. 버넘은 전날 마감된 당 대표 경선 후보 등록에서 단독으로 등록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노동당 공보에 따르면 버넘은 노동당 소속 하원의원 379명과 노동조합·사회주의 단체 23곳의 지지를 받아 당 대표로 선출됐다"고 했다. 현재 노동당은 전체 의석 650석 중 403석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중 94%가 버넘을 당 대표로 선택한 것이다.  앤디 버넘 영국 노동당 새 대표가 17일(현지 시각) 특별 당대화에서 대표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샤바나 마무드 내무장관의 새 대표 선출 결과 발표와 함께 무대에 오른 버넘은 일성으로 "국민에게 희망을 되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는 "저를 지지한 노동당 의원들이 모두 영국 곳곳의 잊혀진 지역을 위해 과거의 노동당을 되찾아 달라는 요구를 들었다"면서 "우리는 그 부름에 응답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오늘 하나로 뭉쳤고, 그 힘을 오랫동안 정치로부터 희망을 잃은 사람들과 지역을 위해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다섯 가지 변화와 약속을 실천하겠다고 했다. 노당동의 단결을 위해 '파벌 문화'를 종식하겠다고 했고, "이번이 바뀔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면서 비난보다 문제 해결의 정치를 추구하겠다고 했다. 그는 "영국 정치가 덜 독해졌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세번째 변화로는 노동당의 정치적 지향을 거론하며 노동당답게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녹색당보다 더 녹색당처럼 행동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고, 영국개혁당(Reform UK)보다 더 개혁당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과거처럼 보수당 옷을 너무 많이 입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담대하고 자신감 있게, 진정한 노동당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북부와 남부, 동부와 서부,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북아일랜드 모두를 위한 지도자가 되겠다"는 것이 네 번째 약속이고, 중앙정부가 독접하고 있는 권한을 웨스트민스터와 화이트홀에서 지역 사회로 되돌려주는 지방분권이 다섯 번째 약속이라고 했다.  버넘 대표는 자신이 친기업 노선을 취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그레이터맨체스터 시장 시절 친기업적인 시장이었듯이 노동당 대표가 된 뒤에도 친기업적인 지도자가 될 것"이라며 "우리는 기업과 함께 지역을 되살렸고 그 방식을 영국 전체로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1970년 1월 리버풀 북쪽 교외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15세 때 노동당에 가입했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영어를 전공한 뒤 의원 보좌관 등을 거쳐 2001년 총선에서 그레이터맨체스트의 리(Leigh) 선거구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16년간 하원의원을 지냈다.  이 기간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 정부에서 내무부·재무부 차관, 문화장관, 보건장관 등을 역임했다.  2010년과 2015년에 당 대표에 도전했지만 에드 밀리밴드와 제러미 코빈에서 패했다.  2017년 중앙정치를 떠나 새로 만들어진 그레이터맨체스터 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2021년과 2024년 선거에서도 내리 승리했다.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버스 공영화를 추진하고 통합 대중교통망 구축과 주택 공급 확대 등으로 시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중앙 정부에 맞서 북부 지역 지원 확대를 요구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이때부터 '북부의 왕(King of the North)'이라는 별명이 널리 퍼졌다. 버넘 시장 재임 시절 그레이터맨체스터는 전국 평균을 상회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버넘 대표는 당 대회 연설에 앞서 소셜미디어에 "앞으로 며칠은 영국을 누가 통치하느냐만 바꾸는 것이 아니며 영국이 어떻게 통치되는지를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권력을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릴 기회"라고 했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현 스타머 총리보다 더욱 왼쪽에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주택과 교통, 교육 등과 관련된 권한을 지방으로 분산해 각 지역에 맞는 경제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는 내용의 '맨체스터리즘'(Manchesterism)을 주장한다.  맨체스터에 제2 총리실을 둬 중앙정부와 효율적으로 업무를 조율하는 '북부 총리실(No. 10 North)' 구상도 밝혔다.  ihjang67@newspim.com   2026-07-17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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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서, AI카타고에 제1국 불계패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두 점을 먼저 놓고 시작했어도 인공지능(AI)의 벽은 높았다. 세계 최강 신진서 9단이 바둑 AI 카타고(KataGo)와의 첫 맞대결에서 아쉬운 역전패를 당했다. 신진서는 17일 서울 중구 한국경제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카타고와의 '쎈수학·한경 기신전' 3번기 제1국에서 4시간 20분의 혈투 끝에 245수 만에 흑 불계패했다. 이번 대국은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 이후 10년 만에 성사된 인간과 AI의 맞대결로 큰 관심을 모았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AI의 기력을 고려해 이번에는 신진서가 2점을 먼저 까는 접바둑으로 진행됐다. 카타고는 첫 수부터 흔들기에 나섰다. 좌상귀 화점에 첫 수를 놓는 변칙수로 신진서의 초반 포석 구상을 깨뜨렸다. 이어 우상귀 쪽에도 높은 걸침 수를 두며 변칙 전술을 이어갔다. 신진서는 전투를 피하고 잔잔하게 국면을 이끌며 중반까지 우세를 유지했다. [AI 챗GPT가 제작한 AI '카타고(KataGo)'와 신진서 9단 기신전(棋神戰) 3번기 일러스트] psoq1337@newspim.com 100수를 넘어서면서 승부처가 나왔다. 미세하게 격차가 좁혀지자 신진서는 백 대마를 잡기 위해 중앙에 승부수를 던졌다. 사람을 상대로는 충분히 통할 수 있는 강력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카타고는 완벽한 계산으로 이를 가뿐하게 타개해 냈다. 112수째에 이르러 흐름은 완전히 뒤집혔다. 역전을 허용한 신진서가 다시 전투를 걸었으나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졌다.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도 신진서는 다음 대국을 대비해 30분 가까이 끝내기를 이어가며 카타고를 분석했다. 단 한 차례의 실수도 범하지 않고 버텼지만, 30집 가까이 벌어진 격차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신진서는 돌을 던졌고 대국이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쎈수학·한경 기신전'은 승패와 관계없이 3국까지 치러진다. 신진서는 기본 대국료 1억 5000만 원을 확보했으며, 승리할 때마다 5000만 원의 수당을 추가로 받는다. 2승 이상을 거둘 경우 제네시스 G90이 부상으로 주어진다. 설욕을 노리는 신진서의 제2국은 오는 19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psoq1337@newspim.com 2026-07-1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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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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