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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정치분석] ④의회정치 언어로 들여다 본 일본 민주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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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핵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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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5년 8일 일본은 패전과 함께 군사제국이 붕괴했다고 했다
  • 패전 뒤 의회는 신민이 아닌 주권자 국민을 전제로 돌아왔다고 했다
  • 점령군 개입 속에서도 전후 민주주의는 일본 사회가 만들어갔다고 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패전과 재건, '희생의 대상'에서 '주권자'로 바뀐 일본 정치의 언어

패전과 붕괴: 군사제국의 종말과 신민에서 주권자로의 귀환

1945년 8월 일본의 패전은 군사제국의 붕괴인 동시에 그 제국을 지탱해 온 정치언어의 붕괴였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일본 정부와 군부는 '국체', '성전', '국난', '총동원'을 반복하며 국민에게 희생과 인내를 요구하고 있었다.

국회는 형식적으로 계속 열렸지만 정부가 전쟁의 목적과 전망을 설명하기보다 국민과 의원에게 국가적 단결과 복종을 요구하는 쪽으로 기울었고, 1940년에는 중일전쟁의 목적을 정면으로 질문한 사이토 다카오(斎藤隆夫)가 중의원에서 제명되기에 이르렀다.

전편에서 살펴본 것처럼 일본 민주주의의 붕괴는 의회가 문을 닫아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국민', '법', '책임'이라는 익숙한 정치어휘가 그대로 남아 있는 가운데 그 의미가 참여와 설명책임에서 충성과 총동원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이미 의회의 민주적 기능은 크게 약화되고 있었다.

사이토 다카오 일본 제국의회 의원 [사진=위키피디아]

그런데 패전은 이 관계를 다시 뒤집어놓았다. 이제 일본 의회는 국민이 국가를 위해 얼마나 더 희생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합법적 요구가 아니라 대신 왜 일본은 침략전쟁을 멈추지 못했는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리고 전쟁기간 동안 굶주리고 희생한 국민의 삶을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민주정치본연의 역할로 돌아왔다.

제89회 제국의회에서 군부와 관료를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 의회의 책임을 묻는 발언이 다시 등장했다는 사실은 패전국가에서 매우 중요하다. 전시기에도 모든 비판이 법적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었지만, 전쟁목표와 지도부의 판단을 정면으로 문제 삼는 일은 점점 더 정치적 위험을 동반했다. 패전은 과거의 잘못을 다시 정치토론의 장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전후 일본을 연구한 존 W. 다우어(John W. Dower)는 『Embracing Defeat: Japan in the Wake of World War II』(1999)에서 이 시기를 단순히 미국이 일본에 민주주의를 이식한 과정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의 분석에서 패전은 굶주림과 실업, 주거난과 사회적 혼란이라는 거대한 충격이었지만, 동시에 전전에는 억눌려 있던 자유와 평등, 노동권과 여성참정권, 평화에 대한 요구가 사회 전면으로 등장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미국점령군이 제도를 바꾸었지만 그 새로운 제도에 따라 실제 정치문화로 만들어간 것은 일본 사회였다. 전후 일본 민주주의를 "미군정이 만들어준 민주주의"라고만 설명하면 일본 사회 내부에서 일어난 이 중요한 변화를 놓치게 된다고 다우어는 주장한다.

패전 후 일본 중의원에서 무엇보다 크게 달라진 것은 '국민'이라는 단어의 의미변화다. 1946년 4월 총선에서 여성은 처음으로 중의원 선거에 참여했고 39명의 여성 의원이 당선되었다. 1947년 시행된 일본국헌법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선언했다.

대일본제국헌법 아래에서 천황의 신민이었던 국민이 이제 국가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주권자로 바뀐 것이다. 이것은 헌법문구 몇 줄의 변화에 그치지 않았다. 국가가 국민에게 충성과 희생을 요구하던 일방적 주체에서 정부가 국민과 그 대표기관 앞에서 자신의 정책과 권력을 설명해야 하는 쌍방적 관계로 변한 것이었다.

히로히토 일왕(우)과 더글러스 맥아더 최고사령관의 첫 만남(1945년) [사진=위키미디어]

점령군의 간접통치와 헌법 제정: 이중적 권력 구조 속의 의회 언어

그러나 전후 일본의 민주주의는 처음부터 하나의 복잡한 모순을 안고 출발했다. 일본은 1945년 패전과 함께 민주화의 길로 들어섰지만, 그 민주화를 추진한 가장 강력한 정치적 힘은 일본 유권자가 선택한 정부가 아니라 미국점령군이었다. 여기서 일본의 '미군정'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는 점령군이 기존 정부를 완전히 폐지하고 직접 행정을 맡은 것이 아니라, 천황제와 내각·관료제·의회를 상당 부분 존속시킨 채 연합국최고사령관총사령부(GHQ/SCAP)가 일본 정부에 지령을 내리고 그 집행을 감독하는 간접통치 방식을 채택했다. 따라서 일본 총리와 국회는 계속 존재했지만, 외교와 안보는 물론 헌법개정과 정치·사회개혁의 큰 방향에 대해서는 점령당국이 최종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중적 정치구조가 형성되었다.

점령 초기의 방향은 비교적 명확했다. 일본을 다시 전쟁을 일으킬 수 없는 국가로 만드는 '비군사화'와, 전전의 권위주의적 국가체제를 해체하는 '민주화'가 두 축이었다. 1945년 10월 GHQ는 정치·시민·종교적 자유에 대한 제한을 철폐하도록 요구했고, 이어 군국주의자들의 공직추방, 초국가주의 단체 해산, 농지개혁, 재벌개혁, 노동조합의 권리 확대 등이 추진되었다.

1945년 12월에는 중의원선거법이 개정되어 여성에게도 선거권이 주어졌고, 국가총동원법과 전시긴급조치법도 폐지되었다.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이 보존하고 있는 GHQ 민정국 자료만 보더라도 1945~51년 사이 선거, 일본정부 재편, 공직추방, 의회, 헌법, 재벌, 지방행정 등 일본 정치의 거의 모든 핵심 분야가 점령정책의 대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군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 최고사령관 총사령부(GHQ/SCAP)가 점령 기간(1945~1952년) 동안 최고 지휘부 청사로 접수·사용했던 도쿄 히비야의 다이이치 생명(第一生命) 본관 건물 [사진=위키미디어]

헌법제정 과정은 이 모순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일본 정부는 처음에는 메이지헌법을 비교적 제한적으로 수정하려 했지만, GHQ는 이를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1946년 2월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가 제시한 기본원칙을 토대로 GHQ 민정국이 별도의 헌법초안을 작성했고, 일본 정부는 이를 기초로 새로운 개정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그 헌법안이 그대로 외부에서 강제되어 시행된 것은 아니었다.

일본 정부의 수정과 협상을 거쳐 1946년 제90회 제국의회에 제출되었고, 중의원과 참의원의 심의를 거치면서 조문도 다시 수정되었다. 극동위원회 역시 새 헌법이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를 나타내는 절차와 충분한 의회심의를 거쳐 채택되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따라서 전후 일본헌법은 일본이 순수하게 스스로 만든 헌법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반대로 미국이 써준 문서를 일본이 그대로 받아들였다고만 설명하기도 어려운 복합적인 산물이었다.

정치언어의 관점에서는 바로 이 점이 흥미롭다. 1946년 제90회 제국의회에서 일본 의원들은 외부의 점령상황 속에서 국민주권과 기본권, 전쟁포기라는 새로운 원칙을 자신들의 의회언어로 다시 논의해야 했다. 6월 26일 요시다 시게루(吉田茂)는 중의원에서 헌법 제9조와 관련하여 당시 정부안이 자위를 위한 전쟁까지도 포기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국회에서 전쟁 수행과 총동원이 국가적 의무로 제시되었던 것과 비교하면 정치의 언어가 얼마나 급격하게 뒤바뀌었는지를 알 수 있다. 전쟁에서 몸을 던져 충성을 요구했던 국가가 이제는 헌법에 전쟁포기를 명시하고, 총리가 의회에서 그 의미를 설명하는 국가가 되었다.

요시다 시게루 일본 총리 [사진=위키미디어 공용]

냉전의 도래와 재기: 개혁에서 안정으로

그러나 점령당국이 민주주의를 확대하면서 동시에 일본의 정치적 자율성을 제한했다는 사실도 함께 보아야 한다. 1946년 총선 뒤 자유당 총재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郎)가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GHQ는 그를 공직추방 대상으로 지정했고 결국 요시다 시게루가 내각을 구성했다.

1946년 5월에는 식량난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자 맥아더가 군중의 무질서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즉 점령당국은 언론·노동·선거와 시민적 자유를 확대하는 주체였지만, 자신이 설정한 점령질서와 충돌하는 정치활동에는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권력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냉전이 시작되면서 미군정의 성격은 다시 달라진다. 초기에는 군국주의 해체와 사회경제적 민주화가 우선되었지만, 1947~48년 이후 중국의 공산화 가능성과 소련과의 대립이 커지고 1950년 한국전쟁까지 발발하면서 미국의 대일정책은 일본을 동아시아의 반공과 경제적 거점으로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흔히 '역코스(Reverse Course)'라고 부르는 변화다.

초기에는 해체의 대상이었던 보수세력 일부가 다시 정치와 경제에 복귀했고, 노동운동에 대한 정책도 보다 억제적으로 변했으며, 경제안정과 재건이 급진적인 사회개혁보다 우선되기 시작했다. 국립국회도서관의 점령자료를 검토해 보면 역시 1945~52년의 점령사를 '개혁·복구·평화'라는 세 요소가 교차하는 과정으로 정리하고 있다.

따라서 전후 일본의 민주주의를 단순히 미군정이 이식한 민주주의라고 표현하기도, 반대로 일본이 스스로 전전의 체제를 반성하고 만들어낸 민주주의라고 설명하기도 어렵다.

점령당국은 군부를 해체하고 여성참정권, 노동권, 농지개혁과 국민주권헌법 같은 제도적 변화를 강력하게 추진했지만, 동시에 일본의 외교·안보와 주요 정치개혁에 대한 최종적인 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일본 정치인과 국회는 그 제한된 공간 안에서 새로운 제도를 받아들이고 수정하며 자신들의 정치언어로 정당화해야 했다.

바로 그래서 전후 초기 국회에서는 '민주화'와 함께 '독립', '주권', '자주'라는 단어가 부각되었다. 국민주권을 헌법에 선언하고 자유선거를 실시하는 나라가 외교와 안보에서 최종적인 결정권을 갖지 못한다면 그 민주주의는 완전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미군정의 종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은 민주화에 대한 반발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오히려 민주주의가 정착될수록 "국민이 주권자라면 국가도 주권국가여야 한다"는 역설적 논리를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교수 [사진=뉴스핌 DB]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달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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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칼 최대주주 오른 호반건설…항공업 진출? [서울=뉴스핌] 송현도 기자 = 호반그룹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을 0.11%p(포인트) 차로 제치고 한진칼 최대주주(지분율 20.69%)에 오르면서 호반건설의 지분 매입 의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단순 투자라는 공식 입장과 달리, 건설업 불황 속 한진칼 지분이 그룹의 재무적 가치를 뒷받침하는 핵심 자산으로 자리 잡은 데다 과거 금호산업 인수전부터 이어진 항공업 진출 구상에도 다시 힘이 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 분양 반토막·PF 대위변제 덮은 6152억 평가차익… 호반의 '손익 방어막' [AI그래픽=송현도 기자] 6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호반건설이 주택·건설 경기 침체 속에서도 수천억원을 투입해 한진칼 지분을 확보한 배경에는 재무적 실익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진칼 주가 상승에 따른 대규모 평가이익이 건설업 불황으로 악화한 그룹의 실적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호반건설의 2025년 연결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연결 매출액은 1조2326억원, 영업이익은 1361억원으로 전년(매출 2조3706억원, 영업이익 2716억원) 대비 각각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주력 사업인 분양수익이 1조1476억원에서 2531억원으로 급감한 영향이 컸다. 영업활동 현금흐름도 4728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 의무에 따라 4395억원을 대위변제하면서 2381억원의 기타대손상각비를 인식하는 등 재무 부담도 커졌다. 올해 2월에는 대위변제에 따른 구상채권과 상계하는 방식으로 대구 황금동 주상복합 용지를 2750억원에 취득하기도 했다. 이 같은 본업 부진을 상쇄한 것은 한진칼 지분에서 발생한 평가이익이다. 취득원가가 6966억원인 한진칼 지분의 장부가액은 지난해 말 1조5544억원으로 늘었다. 호반건설은 이를 통해 한 해 동안 6152억원의 금융자산 평가이익을 인식했다.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감소했음에도 당기순이익은 4752억원으로 전년(2657억원)보다 78.8% 증가했다. 100% 자회사인 호반호텔앤리조트도 비슷한 구조다. 본업 영업이익은 182억원에 그쳤지만, 보유 중인 한진칼 주식(장부가액 5902억원)에서 2267억원의 평가이익이 발생하면서 당기순이익 1872억원을 기록했다. 호반호텔앤리조트는 이를 바탕으로 모회사 호반건설에 1000억원의 현금배당을 결의하며 자금 공급 역할도 했다. 결국 한진칼 지분은 호반그룹의 실적 방어와 현금 확보에 기여하는 핵심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향후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이어지면서 한진칼 주가가 추가 상승할 경우 평가이익 확대는 물론 그룹의 순이익과 배당 여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집중투표제' 무기 쥔 호반… 이사회 진입 시 한진 경영권 영향 호반이 내년 3월 정기주총에서 이사회 진입에 성공할 경우, 단순 주주를 넘어 한진그룹 지배구조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한진칼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한진칼은 올해 3월 정기주총에서 상법 개정에 맞춰 정관 제30조의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을 삭제했다. 집중투표제란 주주총회에서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주주가 1주당 선임할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받고 이를 특정 후보 1명에게 몰아주거나 나누어 투표할 수 있는 제도로, 내년 3월 주총이 한진칼에 집중투표제가 의무 적용되는 첫 무대가 된다. 내년 3월 20일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이사는 배성례(ESG경영위원회·보상위원회 위원장), 송백훈(분리선출 감사위원 겸 감사위원장), 홍동표(감사위원 겸 독립이사후보추천위원장) 위원 등 3명이다. 특히나 분리선출 감사위원 표결에서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하는 강화된 '3% 룰'이 적용된다. 오는 12월 31일 주주명부 폐쇄일 기준 최대주주가 되는 쪽이 의결권에서 불리해지는 구조다. 조원태 회장이 예고대로 12월 중 지분 0.49%를 추가 매수해 최대주주를 탈환하면 조 회장 측 전체 의결권은 3%로 묶이는 반면, 2대 주주가 되는 호반 측은 계열사별로 나눠 총 6.32%를 행사할 수 있다. 호반 입장에서는 감사위원 표결의 실리를 챙기기 위해 연말까지 조 회장의 최대주주 복귀를 용인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일반 사외이사 선임에서도 호반이 주총 6주 전(내년 2월 중순)까지 보유 목적을 경영참여로 바꾼 뒤 집중투표제를 신청해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면 이사회 진입 가능성이 높아진다. 호반 측 인사가 이사회와 감사위원회에 1석이라도 진입하면 상법상 회계장부 열람권과 주요 안건 의결권을 바탕으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 자금 지원, 자회사 부동산 매각, 배당 정책 등에 관여할 수 있다. 나아가 호반호텔앤리조트(리솜리조트)와 한진칼 산하 호텔·관광 계열사(칼호텔네트워크, 한진트래블) 간의 사업 시너지나 자산 매각 협상을 요구할 기반도 확보하게 된다. 반면 한진칼은 지난해 8월 보유 자사주 44만44주(0.66%)를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전량 출연해 현재 방어에 쓸 수 있는 보통주 자사주가 3주뿐이다. 올해 1월 자회사 칼호텔네트워크가 그랜드하얏트인천 웨스트타워를 2100억원에 매각해 한진칼 본사 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 3201억원)은 늘어났지만, 회사 자금으로 자사주를 사들여 방어에 나설 수는 없어 조 회장 개인과 우호 세력의 자금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다. ◆ 금호산업 인수전부터 이어진 항공업 진출 시도… 산은 지분 매각이 승부처 재계와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호반의 목표가 단순 차익 실현을 넘어 한진그룹 경영권 인수에 맞춰져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김상열 호반그룹 창업주는 지난 2015년 아시아나항공의 모회사였던 금호산업 인수전에 단독 응찰하며 항공업 진출을 시도한 바 있다. 당시 채권단과의 가격 이견으로 무산됐지만, 이후 리솜리조트와 퍼시픽랜드를 인수해 레저 사업을 확장했고 2022년 사모펀드 KCGI로부터 한진칼 지분을 사들이며 항공·레저 수직계열화를 추진했다. 주택 사업에 편중된 그룹의 포트폴리오를 바꿀 카드로 한진칼을 낙점했다는 평가다. 내년 3월 주총에서는 조 회장 측과 델타항공, 한국산업은행(10.58%) 등 우호 지분이 과반에 육박해 당장 경영권 확보가 쉽지 않다. 한진칼 시가총액이 적정 가치(3조3000억원 추산)를 웃도는 12조3000억원대까지 올라, 장내에서 지분 1%를 추가 확보하는 데 1230억원이 드는 점도 부담이다. 호반건설의 지난해 말 연결 현금 및 단기유동성 금융자산이 1조1916억원 수준이지만, 단기금융부채 역시 1년 새 679억원에서 5172억원으로 늘어 장내 매수를 지속하긴 어렵다. 결국 향후 승부처는 항공 산업 구조 개편이 끝난 뒤 시장에 나올 산업은행의 한진칼 지분 10.58%다. 대한항공은 올해 5월 아시아나항공 흡수합병을 결의한 데 이어 8월 12일 소규모합병 승인 이사회 결의를 완료하며 연말 통합 항공사 출범을 앞두고 있다. 내년 3월 저비용항공사(LCC) 3사 통합까지 마무리되면 산은이 지분을 보유할 정책적 명분은 사라지고 공적자금 회수 절차가 진행된다. 산은은 2020년 11월 체결한 투자합의서에 따라 의무 위반 시 5000억원의 위약벌을 부과할 담보로 조원태 회장의 한진칼 주식 385만8869주(약 5.78%)에 근질권을 설정해 두고 있으며, 유사시 조 회장 지분까지 묶어 제3자에게 팔 수 있는 동반매각요구권과 동반매도참여권을 보유하고 있다. 호반이 20%대 지분을 바탕으로 이사회에 진입해 경영에 관여하다가 향후 산은 지분 10.58% 인수전에 참여해 이를 확보할 경우, 지분율을 31%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산은 지분 인수나 경영권 확보가 여의치 않더라도, 과거 대우건설·금호산업 사례에서 보듯 지분 가치를 높인 뒤 조 회장 측 우호 세력에게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블록딜로 넘기는 출구 전략을 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dosong@newspim.com 2026-11-0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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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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