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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D 폴리티션 스토리](상) 기자에서 국회의원으로…부친 꿈 대신 이룬 정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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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사나이' 정연욱 "부친도 법대 출신, 자연스레 법조인 길 생각"
서울대 법대 졸업 후 동아일보 입사…"85학번 시대적 고민들 있어"
정치부 기자로 활동하며 '한나라당 당무감사 결과' 단독 보도로 반향
"은사는 故 박세일 교수…한국 정치의 새로운 모티브 제공했다 자부"

[서울=뉴스핌] 이바름 기자 =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이 뉴스핌 KYD(Korea Youth Dream)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해 어린 시절과 정치 입문 과정 및 가치관에 대해 진솔하게 소개했다.

정 의원은 16일 오후 유튜브 채널 '뉴스핌 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 스토리에서 좌우명을 묻는 질문에 "거창한 건 없다"고 답했다. 다만 "좌절하고 이제 고개 숙이고 이렇게 하지 말자는 생각이 강하다"고 덧붙였다. 학창시절 모범생이었다던 그는 헤르만헤세의 '데미안'을 읽으며 접했던 '알을 깨라'라는 표현을 지금도 의미있게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정 의원은 "판단은 빨리 하지 않는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스타일"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30여 년간 언론인의 삶 이후 정계에 입문한 그는 "무모한 도전"이었다고 회상했다. 문장의 강조점은 '무모'가 아닌 '도전'이었다. 정 의원은 "반드시 앞으로 나아가야 된다"며 "대한민국을 어떻게 더 키워나갈 건지, 업그레이드시킬 건지가 정치의 영역"이라고 역설했다.

1965년 부산에서 태어난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은 서울대학교 공법학과 학사를 마치고 1991년 동아일보에 입사, 32년동안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대부분 정치부 기자로 활동했다. 그는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총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당무감사 결과' 자료를 단독 보도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해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과 한국신문방송인클럽 한국언론대상을 수상했다.

[서울=뉴스핌] 이바름 기자 =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 2025.01.16 right@newspim.com

종합편성채널인 채널A 보도본부 정치부장을 비롯해 시사프로그램인 '쾌도난마' 진행 등 방송에서도 활약했다. 2019년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복귀해 정치현안에 대한 심도 있는 칼럼을 게재하다가 2023년 12월 퇴직했다.

2024년 국민의힘 부산시당에 입당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그해 제22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부산진구을 후보로 출마했으나 당내 경선 과정에서 현역인 이헌승 의원에 패배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부산 수영구 후보였던 장예찬 전 최고위원이 과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막말 논란으로 공천 취소되면서 3월17일 국민의힘 부산 수영구 후보로 전략공천됐다. 개표 결과 50.33%를 득표하며 더불어민주당 유동철 후보(40.47%), 무소속 장예찬 후보(9.18%)를 따돌리고 당선증을 거머쥐었다. 소속 상임위원회는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다.

다음은 박 전 의원과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이바름 기자, 이하 이 기자) 정치인의 인생 궤적을 돌아보는 폴리티션 스토리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진행을 맡은 정치부 이바름 기자입니다. 오늘 함께 진행을 맡아주실 스웨덴 린네대학교 최연혁 최 교수 모셨습니다.

(최연혁 교수, 이하 최 교수) 네 안녕하십니까?

(이 기자) 오늘은 '이재명은 안 됩니다' 현수막의 주인공이시죠? 이제는 '이재명 저격수' 부산 수영구 국회의원 정연욱 의원님 모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최 교수) 어서 오십시오.

(이 기자) 의원님 사실 기자 출신이시고 방송 진행도 하셨는데 그래서 그런지 오늘 사실 자리가 좀 바뀐 것 같습니다.

▲(정 의원) 아닙니다. 저는 이제 신분이 바뀌었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 기자) 의원님 이력을 보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부산에서 졸업을 하셨거든요. '부산 사나이'라고 불리시는데 학창시절 겪었던 뭐 특별한 경험이나 추억 같은 게 있으실까요?

▲(정 의원) 제가 태어나서 그 다음에 초등학교, 중·고, 12년 다 부산에서 나왔습니다. 그다음에 바로 대학으로 와서 이제 서울 생활을 했지만 그래도 제가 아직 뼛속 깊이 부산 사나이라는 건 지울 수가 없는 거죠.

(최 교수) 부산 사나이의 특징이 뭡니까?

▲(정 의원) 거칠다는 지적도 받습니다만 약간 좀 선이 분명하다고 그럴까요. 좀 말이 짧죠. 뒤끝은 없습니다. 그렇게 해주면 고맙겠습니다.

(이 기자) 그러면 혹시 유년 시절 가정 환경은 어떠셨는지 좀 궁금하거든요.

▲(정 의원) 네, 뭐 유복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무난한 생활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제가 고등학교 중반에 아마 저희 아버님이 와병을 하셔서 좀 이렇게 어려워진 적은 있습니다. 그래도 뭐 버틸만 했습니다.

(이 기자) 20살이 되면서 대학을 서울로 진학을 하셨거든요. 서울대 법대에 입학을 하셨는데 당시에 그럼 장래 희망이 법조인이셨나요?

▲(정 의원) 네, 저희 아버님도 법대 출신이기도 해서 저도 이제 자연스럽게 저 개인적으로도 이제 법조인의 길을 한번 갈까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최 교수) 어렸을 때는 대개 골목대장 출신이었습니까? 그런 성향이었습니까? 아니면 뭐 조용히 책을 읽는 스타일이었습니까?

▲(정 의원) 어떻게 보면 골목대장이라기보다는 그냥 누가 봐도 그냥 모범생 그런 이미지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도 활달하게 다녔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모범생 이미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최 교수) 어렸을 때 어떤 분이 가장 영향력을 미쳤다고 생각하십니까?

▲(정 의원) 아무래도 아버님입니다. 아버님은 이제 법대 출신이긴 했지만 영어 교사를 하셨고, 하시다가 당시에 야당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생활을 하셨습니다. 출마 준비까지 하셨는데 그 무렵에 와병을 하셔가지고 출마를 접게 된, 좀 아픈 기억이 제 고등학교 때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뭐 대학을 가고 이후에 모든 제 삶을 정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그런 기억은 계속 오래 남았습니다.

(최 교수) 그럼 아버님의 꿈을 실현하신 거네요?

▲(정 의원)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이 기자) 그러면 이제 서울대 법대를 들어가셨는데 졸업 후에 동아일보에 입사를 하셨거든요. 그때부터 30년 넘게 언론인의 길을 걸으셨는데 계획을 하셨던 걸까요?

▲(정 의원) 85학번이기 때문에 갖는 약간의 80년대 대학생들이 갖는 아마 시대적 고민들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 부분이 저에게 있어서는 제가 평생 갖고 가야 되는 제 대학 시절이었다고 생각이 들고요.

(이 기자) 정통 기자의 삶을 사셨더라고요. 기자 이력을 보면. 이제 사회부 기자로 시작을 하셨고 정치부 기자로 가셔서 청와대 출입하셨고 또 법조팀장을 거쳐서 정치부장 논설위원까지 하셨거든요. 또 방송 진행도 하셨고. 이게 소위 '잘 나가는 기자'라고 다들 알고 있는데, 당시의 삶을 좀 기억을 하고 계십니까?

▲(정 의원) 기자들은 잘 나간다는 표현을 쓰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건 같이 고생하는 '원팀'으로 가야 되기 때문에 누가 잘 나간다 못 나간다 그런 얘기할 건 아닙니다. 특히 정치부장을 방송, 신문을 다 해봤기 때문에 느끼는 현장에서 지금도 이제 그 후배들과 간혹 보기는 하지만, 언론인이나 기자 현장 취재라는 건 팀웍으로 같이 가야 됩니다. 그게 같이 가야 되는 일이기 때문에 누구를 뭐 잘 나왔다 못 나왔다 그렇게 평가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최 교수) 기자로서의 사명도 필요할 것 같고요. 또 기자로서의 자질도 필요할 것 같은데 특히 이제 자질 면에서는 글을 쓰는 걸 좋아하셨나요?

▲(정 의원) 글을 쓰는 걸 좋아했습니다.

(최 교수) 잘 쓰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정 의원) 제가 평가할 건 아니지 않습니까?

(최 교수) 본인 스스로도 그래도 재밌다, 글 쓰는 게 이 정도면 괜찮다라는 그런 나름대로의 자체 평가가 있지 않을까요?

▲(정 의원) 저는 그렇게 평가했죠.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는 건 모르겠습니다. 저는 최대한도로 제 진심을 담아서 쓰려고 했고 그렇게 취재를 했고요. 책은 많이 읽었습니다. 여러 고등학교 시절에도 웬만한 세계문학 과정은 제가 따로 다 읽고 싶었고 읽었고요. 군에서도 저도 차트병을 했습니다. 그래서 글 쓰는 건 저도 자신 있었습니다. 사명감이라는 부분은 제가 그렇게 거창하게 얘기할 건 없지만 기자라는 게 그런 겁니다. 아시겠지만 뭔가 하나의 이슈를 가지고 접근할 때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오는 거 아닙니까? 저희는 이제 어떤 기사를 쓸 때 이게 좋든 싫든 반응이 나옵니다. 그걸 갖다가 어떤 사태를 해결해 줬거나 뭐 진상을 파헤쳤거나 즉각적인 반응이 올 때 나는 그 약간의 희열이라는 게 있습니다. 기자들의 그 엔돌핀은 거기서 나오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부분이 조금씩 사회가 조금씩은 나아가는 한 발자국씩 이렇게 나가는 걸 지켜볼 수 있다는 거, 아마 그건 기자들이 갖는 가장 큰 사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 교수) 내가 이 기자를 하면서 우리나라의 어떤 면을 좀 바꿔보겠다든지, 아니면 뭐 정론 언론을 한번 내가 한번 나름대로 또 기여를 해 보겠다라는 그런 나름대로 각오가 있으셨나요?

▲(정 의원) 네, 있었죠. 특히 저는 주로 정치 현장에서 많이 뛰었기 때문에 정치권의 변화, 정치권이 조금은 나아져야 된다는 생각, 그런 생각을 항상 좀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가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제가 가장 큰 나름대로 제가 회심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제가 2004년도 한나라당 현장반장을 하면서 썼던 기사가 그때 2004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당무감사 문건을 저희가 폭로한 게 있었습니다. 그게 이제 그 한나라당 현역 의원들의 당무감사 결과를 A·B·C·D·E 등급을 나눠서 그게 이제 그 결과가 공천 자료로 즉각 활용되는 거기 때문에 그 데이터 자체가 아주 민감했던 숫자입니다. 그 반응이 아주 폭발적이었습니다. 과연 이 당무감사 A·B·C·D·E 등급이 과연 제대로 매겨진 것인지, 어떤 근거에서 나왔던 건지 이 부분이 명쾌하게 설명이 안 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정 의원) 그러니까 좀 편의적으로 어떤 부분을 좀 이렇게 유리하게 봐주고 말고 하는 이게 좀 우리가 속된 말로 표현하면 '마사지를 한다'는 그런 표현을 쓰죠. 그런 표현이 그런 것들이 가미가 되니 그럼 이 당무감사 결과를 신뢰할 수 있겠느냐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나왔고 이런 식의 당무감사가 의미가 있느냐, 현역 의원 100명 정도의 전화가 몰려와서 휴대폰을 제가 받지 못할 정도였는데. 지금도 모든 아마 웬만한 정당은 당무감사 지역구 조사를 하면서 그 결과를 공천자료로 활용을 합니다. 그래서 최대한도 공정성을 기여할 수 있는 당무감사 자료를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되지 않았나 저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기자) 사회부나 정치부 경험을 하시면서 또 기억에 남는 기사나 아니면 인터뷰이가 뭐 있을까요?

▲(정 의원) 많은 부분에 대해서 저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분들과 교류할 수밖에 없는 자리가 많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비운의 정치인이지만 제 은사이기도 했던 그 박세일 교수님을 많이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그분이 이제 정치권에 들어오는 과정, 2004년도 들어오시고, 그 중간에 이제 결국 정치적 이렇게 좀 이견이 있어서 나가시고 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한국 정치가 약간 속된 표현이죠. 패거리를 지어서 다니는, 그러니까 진영이라기보다도 진영의 가치라도 제대로 있으면 되지만, 그냥 이렇게 사람들이 뭉쳐 다니는 옛날에 3김식 정치에 있었다면 하나의 이제 진영의 가치를 놓고 이념을 한번 추구하고 우리가 나아가야 될 하나의 국가적 어젠다를 고민하는 하나의 모티브가 되지 않았나.

▲(정 의원)저는 박세일 교수께서 정치권에 들어오는 과정부터 많은 얘기를 했지만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정치가 한 발짝 나가가기 위해서는 이념적 가치나 보수의 가치도 정립을 해야 된다, 그런 부분은 많이 저도 공감을 했고요. 그래서 선진화라는 얘기도 나오고 선진화가 이제 산업화, 민주화 그다음 넥스트 선진화로 가는 국가적 목표를 놓고 각 분야별로 어떻게 정리를 해 나가야 될지, 물론 현실 정치는 그게 바로 적용되기는 어렵습니다. 어려운 한계는 있었지만 그런 정도의 정치적 어젠다를 걸 수 있는 새로운 하나의 계기가 되지 않았나 한국 정치의 새로운 좀 모티브를 제공하지 않았나 저 개인적으로 그렇게 자부하고 있습니다.

(최 교수) 기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어떤, 보수도 마찬가지고, 정치적인 어떻게 보면 입문의 기회가 조금 됐다 하는 거는 뭐 부인할 수 없겠습니까?

▲(정 의원) 입문이라고 할 수는 없죠. 저는 이제 기자로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길이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 기자도 어느 정도는 이제 사회적 여러 가지 이슈에 Involve 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닙니까? 이제 그렇게 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가야 되지 않나 그런 생각도 한 것이죠.

(이 기자) 30년 동안 기자 생활로 사명감을 가지시다가 작년 국민의힘 부산시당에 입당하면서 이제 정계에 발을 들이셨잖아요. 당시에 정치인 정연욱이 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어땠습니까?

▲(정 의원) 기자나 언론인이라는 건 제3자적 좀 객관적,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기본적으로 항상 기본적인 이 전제가 바탕에 깔리는 거 아닙니까? 그러다 보면 항상 균형이라는 걸 찾게 되고 어쩔 수 없습니다. 그건 불가피하게 그걸 요구받게 되고 그렇게 가야 되는 것이 숙명이고 언론이. 과연 그렇다면 과연 그 길만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저는 좀 했습니다. 고민도 했고 또 이제 뭐 수많은 저희 언론 동지들이 있는 것이고. 저는 좀 이 부분이 더 좀 한 발자국이라도 이렇게 진행이 되는 과정은 뭐 결국은 정치의 영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치는 국민적 비난과 비판의 항상 대상이 되고 있지만 정치를 통해서 사회가 원래 어차피 한 발자국 나갈 수밖에 없는 거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한번 도전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좀 했었던 것 같습니다.

(최 교수) 인생을 표현해 주는 혹은 내가 나는 이것이 신조로 한다 혹은 믿음이나 원칙이나 철학이나 이런 것들이 있는지요?

▲(정 의원) 제가 고등학교 때 읽었던 여러 가지 소설 중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조금 숙독을 했습니다. '알을 깨라'는 표현들이 많습니다. 이게 알을 깨고 나와야 된다는 표현들이 그 헤세가 얘기하는 몇 가지 강조점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데미안이 이제 성숙해가는 과정을 그리는 여러 가지 묘사가 나오는데. 저는 군대도 현역으로 다녔습니다. 저는 강원도 철원에서 FM대로 군 생활을 하고 나왔습니다. 아마 좀 법대생 치고는 좀 드물 겁니다. 아시겠지만 기자 생활 초년병은 무척 힘듭니다. 잠도 거의 뭐 한두 시간 만에 못 자고 그런 생활을 했고. 결국은 일련의 과정에서 좀 이렇게 이렇게 헤쳐 나간다는 그런 느낌으로 살아야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정치권 도전도 저로서는 좀 상당히 무모하다 싶은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처음 가는 길이고 제가 지켜는 봤지만 현실에서 뛰어보는 건 다른 거거든요.

▲(정 의원) 중도에 있는 사람을 설득하는 과정 또 이렇게 상대 진영과의 또 싸우는 과정. 그래서 제가 조금 헤쳐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좀 무모하리만큼 도전했던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최 교수) 좌우명이나 좋아하는 단어나 뭐 이런 건 있나요?

▲(정 의원) 저는 거창한 건 없습니다. 다만, 좌절하고 이제 고개 숙이고 이렇게 하지 말자는 생각이 강합니다. 저는 판단은 빨리 하지 않습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스타일입니다. 제가 뭐 사람인 이상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지만 가급적이면 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자 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기자) 작년 한 해가 의원님의 삶에 큰 의미였을 것 같은데, 어떤 한 해였는지 궁금합니다.

▲(정 의원) 저로서는 작년 한 해가 10년간 벌어질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압축해 놓은 게 아니었나. 1년이 10년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뭐 선거 준비부터 선거를 치르고 나서 국회 생활을 하고 그리고 또 지난 연말에 벌어졌던 일련의 사태들이 한꺼번에 벌어졌기 때문에 저도 지금 상당히 좀 혼란스럽습니다. 제가 쉬는 곳에 가서 항상 저는 자기 정리를 합니다. 이게 좀 어떻게 풀어야 될지 그리고 이게 어떻게 저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를 해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최 교수) 아마도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 아마 이걸 시청하시는 분들이나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 알에 갇혀서 어떻게 이걸 깨고 나갈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 좀 전해주시죠.

▲(정 의원) 45년 해방 이후에 올해 그럼 80년이 되지 않습니까? 대한민국은 가장 최빈국에서 출발했습니다. 어떻게 전쟁을 치른 나라가 이렇게 세계 10위 경제대국이 될 수 있습니까. 그러면서도 가장 어려운 생활을 산업화를 거치면서 헤쳐 나왔고. 그러면서도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민주화까지 완성해서 이 나라를 세계 10위의 경제대국. 이게 누구 세계 어느 나라도 대한민국을 부러워할 정도로 대한민국이 됐습니다. 우리나라는 절대 폄훼해서도 안 되고 폄훼받을 나라도 아닙니다. 그리고 스스로 절대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를 자기 비하해서도 안 되고 그럼 이 대한민국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저는 그게 선진화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부문에서 경제도 그렇고 말씀하신 하나의 그 가치나 이념적 부분에 민주주의, 제도적 성숙의 문제도 같이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진짜 제대로 된 선진국이 될 수 있는 대한민국이 돼야 됩니다. 그렇게 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 교수) 어제 발표한 거를 봤더니 대한민국이 수출 기준으로 세계 5위더군요. 참 대단한 국가죠.

▲(정 의원) 우리가 과거는 잊을 수 없습니다. 잊어서는 안 되고, 그리고 과거의 아픈 기억을 간직하지만 반드시 앞으로 나아가야 됩니다. 그러니까 서로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뭐라고 다툴 수는 있어도 대한민국이라는 큰, 하나의 거함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계속 나가야 되니 이걸 지켜야 된다는데 누구도 이의 제기를 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더 키워 나갈 건지, 그리고 이걸 한 단계 업그레이드 어떻게 시킬 건지 결국 이게 정치의 영역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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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듀오 내년 1월까지 배송 지연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심재민 인턴기자 = 애플의 첫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 듀오'가 사전예약 직후 품귀 현상을 빚으며 배송 일정이 내년 1월까지 밀렸다. 이례적인 수요에 따른 흥행 신호로 해석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생산 수율 저하와 핵심 부품 공급 차질이 물량 부족을 심화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생산이 안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70여개국 동시 출시를 추진한 애플의 전략적 판단도 공급난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애플의 첫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 듀오' [사진=로이터 뉴스핌] ◆ 10대 중 4대 품질 기준 미달…증산에도 공급난 지속 21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아이폰 듀오는 지난 16일 사전예약을 시작한 지 30분 만에 일부 모델의 배송 예정일이 내년 1월로 미뤄졌다. 오는 23일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지만, 지금 주문하면 제품을 받기까지 약 3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애플은 사전예약 수요가 이례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실제 예약 건수와 초기 공급량이 공개되지 않은 만큼 장기간의 배송 지연을 수요 폭증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핵심은 생산 수율이다. 중국 경제매체 지몐신문은 지난달 21일 폭스콘 공급망 관계자를 인용해 아이폰 듀오의 완제품 조립 수율이 9월 17일 기준 60%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생산된 제품 10대 중 4대 가까이가 품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당시 공급망 관계자는 애플의 품질 기준을 유지할 경우 생산라인이 안정적인 수율에 도달하기까지 6개월에서 1년이 걸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수율 문제는 최근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메리츠증권은 지난 19일 보고서에서 외장 힌지와 초박형유리(UTG) 등 핵심 부품뿐 아니라 최종 조립 단계에서도 수율 부진이 발생해 생산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애플이 공급망 주문량을 늘리고 있지만 단기간에 물량 부족을 해소하기 어려운 이유다. 중국 증권시보는 지난 10일 애플이 아이폰 듀오의 부품 주문량을 기존보다 30% 늘렸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부품 확보량을 늘리더라도 최종 조립 수율이 개선되지 않으면 실제 출하량을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 애플의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듀오' [사진=블룸버그통신] ◆ 70여개국 동시 출시 강행…국내 초기 물량 3만대 공급 부족을 예상하고도 글로벌 동시 출시를 선택한 판단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블룸버그는 지난 18일 애플이 당초 미국과 중국에 먼저 출시한 뒤 판매 국가를 확대하려던 계획을 바꿔 70여 개 국에서 동시에 사전예약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제한된 초기 생산 물량을 여러 국가에 배분하면서 공급 부담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국내에서도 물량 부족이 현실화하고 있다. 통신업계가 파악한 아이폰 듀오의 한국 초기 공급 물량은 약 3만대 수준이다. 통신 3사의 일평균 스마트폰 개통량인 약 2만대와 비교하면 이틀 치에도 못 미친다. 통신사들은 첫 폴더블 아이폰 출시를 앞두고 고객 유치에 나섰지만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품 수령 지연에 따른 고객 문의와 불만까지 유통 현장에 집중되면서 정식 출시 이후에도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IT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품귀 현상을 폭발적인 수요에 따른 흥행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생산 차질이 장기화하면 출하 목표 달성이 어려워지고 삼성전자 등 경쟁사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flurry327@newspim.com 2026-10-2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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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사망설, 왜?…"독재 체제가 불러온 고질병"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42)이 뇌출혈로 쓰러져 중국 병원에서 숨졌다는 소문이 한반도를 넘어 지구촌을 뒤흔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사망설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가짜뉴스다. 의료기록이나 목격자, 하다못해 정황을 뒷받침할 만한 최소한의 방증이나 전언도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도 소문은 외신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는 물론 국내 언론과 증권가까지 순식간에 번졌다. 사망설 자체보다 이 소문 앞에서 우리 사회가 보인 허술한 대응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뉴스핌]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지난 19일 '전국 피복·신발전시회-2026' 전시장을 찾아 간부들에게 뭔가를 지시하고 있다. 김정은의 오른쪽은 딸 주애. [사진=북한매체 종합] 2026.10.20 ◆'중국 반체제 인사의 X 글'에 휘둘려 메가톤급 소문의 진원지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반체제 인사 셰완진(謝萬軍)이다. 그는 19일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전해지기로 김정은과 시진핑이 같은 병에 걸렸다. 김정은은 죽었고 시진핑은 죽음이 아직 멀었을까"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어 김정은이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의식을 잃었고 북한의 열악한 의료 여건 때문에 중국에 도움을 요청해 중국 의료진이 급파됐다고 주장했다. 베이징의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았으나 골든타임을 놓쳐 결국 사망했다는 얘기다 시신은 북한으로 비밀리에 운구됐고 북한은 이를 숨기고 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던지면서도 그는 어떤 출처나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셰완진이 중국에서 불법단체로 규정된 '중국민주당 주석'을 자처하며 시진핑 주석 사망설이나 대역설 같은 허위·날조 사실을 SNS에 올려온 인물이란 점에서 신빙성은 떨어진다.  그런데도 영국 더선 등 해외 매체들이 이를 받아 전하면서 소문은 증폭됐고 여기에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장의 권력 장악설이나 중국군 파병설까지 얹혔다. 근거 없는 이야기에 그럴싸한 살이 덧붙여지면서 가짜뉴스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사실 사망설이 한창 번지기 시작한 19일 김정은은 부인 이설주, 딸 주애와 함께 평양에서 열린 '전국 피복·신발 전시회-2026'을 참관했다. 이튿날 북한 관영매체들은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이를 보도했다. 하지만 집요한 가짜뉴스는 이를 견강부회식으로 해석했다. '사망 사실'이 퍼지니 북한 당국이 이를 은폐하고 기만하기 위해 거짓으로 김정은과 가족의 일정을 공개한 것이란 주장까지 내놓으면서 그럴듯하게 포장을 했다. ◆'뇌졸중 쓰러져 中병원 이송'…뻔하고 반복된 레퍼토리 눈여겨볼 대목은 김정은 사망설에서 드러나는 클리셰(Cliché)다. 뇌출혈로 쓰러졌다거나 북한 의료진이 속수무책이라 중국 병원으로 옮겼다, 혹은 시신은 몰래 평양으로 반입했다는 등의 레퍼토리는 과거 북한 지도자의 신변 이상설이 나올 때마다 되풀이된 판박이다. 과거 북한 최고지도자의 사망설 확산 사례를 돌아보면 그 패턴이 드러난다. 1986년 11월 김일성 주석 피격 사망설이 나왔다. 당시 외신과 국내에서 소문이 크게 부풀렸고 최전방 북측 지역에 조기가 걸렸다는 말까지 나왔다. 결국 김일성이 얼마 뒤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오보로 판명됐다. [서울=뉴스핌] 지난 2011년 12월 28일 평양 금수산태양궁전 앞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 장례식에서 아들이자 후계 최고권력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당시 직책은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운구차 옆을 걷고 있다. [사진=북한매체 종합] 2026.10.20 2008년 9월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권수립 60주년 행사에 불참하면서 와병설이 퍼졌다. 이 경우는 뇌졸중으로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망설과는 별개였고 김정일은 이후에도 3년 넘게 통치했다. 정작 2011년 12월 김정일의 실제 사망은 이틀 가까이 지난 뒤에야 공식 발표됐다. 김일성 주석 때도 1994년 7월 사망 후 하루 이상 지나서 발표됐다. 소문은 엄청나게 번지고 정작 진짜 사망 때는 깜깜무소식으로 있다가 북한 발표가 나오고서야 알게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이런 양상은 이어졌다. 2014년 9~10월 김정은이 약 40일간 공개 활동을 하지 않아 유고설이 불거졌지만 지팡이를 짚고 다시 나타났다. 과체중으로 추정되는 다리 혹은 관절 수술 때문으로 파악됐다. 2020년 4월에는 김일성 생일 참배 불참을 계기로 심혈관 수술 후 위중설, 사망설이 퍼졌다. 일부 정치인이 "99% 확신한다"고까지 단언했지만, 김정은은 20일 만인 같은 해 5월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5월에도 원산에서 현지지도 중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는 소문이 외교가와 증권가를 중심으로 돌았다. 번번이 오보로 끝났지만 가짜뉴스와 소문은 '죽지 않는 각설이'처럼 주기적으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일단 베껴 쓰고 보자'…줏대 없이 흔들린 언론 이번 사태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은 언론의 대응이다. 유력 외신뿐 아니라 우리 언론도 줏대 없이 흔들렸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확산일로를 걸으니 '일단 베끼거나 받아쓰고 보자'는 심리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남이 쓰니 나도 쓰고, 안 쓰면 낙종이 될까 불안해 쓰는 식이다. 그 결과 독자와 시청자, 국민은 전례 없는 혼란을 겪었다. 소문이 가장 먼저 들이닥친 주식시장은 출렁였고, 포털과 SNS에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넘쳐났다. 유튜브 일부 채널과 콘텐츠는 한술 더 떴다. 자극적인 제목과 섬네일을 앞세워 사망설을 기정사실처럼 다루며 혼란을 부채질했다. 조회수와 수익이라는 상업적 계산 앞에서 최소한의 사실 확인 의무는 실종됐다. 필자 또한 이번 사태의 한복판에서 적지 않은 시달림을 겪었다. 수많은 지인과 독자들로부터 '정말 사망한 것이냐', '평양이 지금 난리라는 데 파악해 볼 수 있냐'는 문의 전화와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지난 34년간 북한 취재 현장에서 여러번의 '사망·유고설'을 겪었지만 이번은 유독 파장이 크다. 최근의 남북관계와 북한 김정은과 김여정 남매의 비정상적이고 호전적인 도발 상황이 국민이 불안감을 키운 것이란 생각도 든다. ◆'강 건너 불구경'식 정부 대응도 문제 정부 대북부처의 대처도 비판받을 소지가 많다. '가짜뉴스 엄정 대응'을 공언해 왔지만 이번엔 사실상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30일 국회에 김정은의 체중이 약 140kg에 이르러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높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소문이 돌 때 더욱 신속하고 구체적인 사실관계 설명이 필요했다. 책임 있는 당국자가 직접 나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설명하고 소문을 일찍 진화했어야 했다. 국회 정보위원회의 대응도 도마에 오른다. 정보위가 국정원 긴급보고를 받아 사망설이 가짜라는 점을 확인하고, 즉각 공개했더라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란을 차단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일수록 정보위가 정치적 계산을 앞세우지 않고 사실을 확인해 국민에게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본부 청사와 원훈석 [뉴스핌 자료사진] ◆전문성 키우지 못한 언론도 책임 느껴야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북한 체제의 폐쇄성에 있다. 더구나 김정은 한 사람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수령 유일지배 독재체제다. 김정은이 유고상황에 빠지면 대책이 없어진다. 이런 사정에 있다보니 '사망설'을 비롯한 소문의 파괴력은 클 수밖에 없고, 거짓인 줄 알면서도 시장과 사회가 뒤흔들리는 기형적인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정보의 불투명성과 체제의 취약성이 만나 만든 구조적 고질병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우리 언론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북한 보도가 지라시 수준의 글에 휘둘리는 이유는 전문성을 갖춘 저널리스트를 제대로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때 언론사들이 전문기자를 두고 연구소 등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경영 논리와 남북관계 경색에 밀려 유명무실해졌다. 북한 정보의 진위를 가려낼 안목과 취재 네트워크를 갖춘 기자가 줄어들면서 확인되지 않은 SNS 글 한 줄에 증시와 언론, 여론이 함께 휘청이는 모습이 연출됐다. '김정은 사망' 같은 민감한 대북 정보는 우리의 안보와 남북관계, 한반도 정세에 미칠 파장이 크다. 이번 일을 일과성의 해프닝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제대로 된 진단과 대책마련이 없으면 김정은은 앞으로도 몇 번이고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때마다 우리는 휘둘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정부 대북 부처와 유관기관, 언론, 학계 등이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yjlee@newspim.com 2026-10-21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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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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