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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D 폴리티션 스토리](상) 천하람 "법대서 사회 바꾸는 입법가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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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8일 방송된 정치인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는 뉴스핌 '폴리티션 스토리'에서 어린 시절의 꿈과 정치 입문 계기 과정을 소개했다. 해당 방송은 지난달 23일에 촬영됐다.

천 대표는 '뉴스핌 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 스토리에서 "어린 시절 리더십이 있고 회장을 자주 했다"며 "누가 '너 꿈이 뭐야?'라고 하면 '대통령'이라고 답하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면서부터 '법 한 줄이라는 것이 사람의 삶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치는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법률가도 좋지만 입법을 하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진지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에 변호사나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이 많은 게 그런 비슷한 생각들이라고 본다"며 "법을 해석하고 논쟁을 펼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이것을 어떻게 바꾸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뀔까를 상상하는 건 훨씬 더 재미있는 일"이라고 했다.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 [사진=뉴스핌 DB]

1986년 대구에서 태어난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고려대 법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최연소 대한변호사협회 제2법제이사, 대법원 사법정책 분과위원 등을 역임했다.

이후 천 대표는 정치 단체 '젊은보수'를 창립하며 정치에 입문, 2020년 자유한국당·새로운보수당·미래를향한전진4.0이 추진한 보수대통합에 합류했다.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순천시·광양시·곡성군·구례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23년 3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14.98% 득표로 최종 3위를 기록했고, 같은해 12월에는 국민의힘을 탈당한 뒤 이준석 신당 창당에 합류했다. 이후 지난해 4월 22대 총선에서 개혁신당 비례대표로 당선, 국회에 입성해 개혁신당의 원내대표가 됐다.

다음은 천 대표와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신정인 기자, 이하 신 기자) 오늘은 개혁소장파의 중심인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님 모시고 이야기 한번 나눠보겠습니다.

요즘 참 다들 유독 연말 느낌이 안 나는 해라고 말씀들 많이 하시는데 대표님은 어떤 연말 보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천하람 원내대표, 이하 천 대표)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단어가 비상 대기예요. 비상 대기. 그러니까 연말이지만 너무 이렇게 지역에 많이 가거나 너무 술자리 많이 하거나 아니면 뭐 해외를 가거나 이런 거 하지 말고 국회에 가능하면 언제든지 올 수 있게 비상 대기해라 이런 얘기들을 굉장히 많이 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저도 연말 느낌은 좀 덜 나고 있고요. 그럼에도 지금 국회의장을 포함한 많은 분들이 모임은 좀 많이 했으면 좋겠다. 요즘 자영업 경기가 너무 안 좋으니까. 그래서 저도 모임은 가는데 가도 이렇게 너무 이렇게 하기보다는 좀 적절하게 하고 있고요.

그래도 저는 다행인 거는 제 아이가 아직 9살이에요. 그래서 크리스마스 느낌을 집에서는 조금 내고 (아이도) 빨리 막 크리스마스 선물 내놓으라고 그러고 있어가지고

-(최연혁 교수, 이하 최 교수) 트리는 만들으셨어요?

▲(천 대표) 예 있습니다. 산타를 믿는 둥 마는 둥 지금 하고 있는데 뭐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신 기자) 선물은 어떤 선물 준비하셨나요?

▲(천 대표) 레고 아마 그런 거 하지 않을까?

-(신 기자) 개혁신당이 좀 게임 관련 의정 활동도 많이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좀 개인적으로 대표님께서도 게임에 대해 좀 취미가 있으신지. 아니면 뭐 여가 시간이 주어지면 다른 취미 또 하시는 게 있으신지

▲(천 대표) 저는 게임을 진짜 잘 못합니다. 재능이 없어 가지고 스타크래프트 같은 그런 거나 뭐 리오브 레전드 같은 것도 할 줄은 아는데 스타크래프트도 꽤 그래도 제 세대는 누구나 다 좀 잘하니까 그건 그렇다 하시는데 요즘 유행하는 게임들에서는 굉장히 젬병이고요.

삼국지 시리즈에도 최근 것들은 잘 못하고 너무 막 점점 복잡해져가지고. 옛날 것들 옛날 것들을 요즘도 가끔 합니다. 요즘도 삼국지 5 이런 거, 진짜 옛날 거. 제가 어릴 때 하던 거 그런 거는 좀 합니다. 요새는 애가 좀 커서 같이 만화빵 좀 많이 가고요. 그 외에는 그냥.

-(신 기자) 운동이나 이런 것도 따로 하시나요?

▲(천 대표) 아 저 운동은 거의 못 하고요. 옛날에 농구를 그래도 (제가) 키가 좀 크다 해서 좀 열심히 했었는데. 별로 이렇게 운동 신경이 썩 좋지 않고 그냥 그렇습니다.

-(신 기자) 대구에서 목사님이신 아버지 밑에서 자라셨다고 들었는데 좀 어린 시절 세상을 바꾸는 상상을 즐겨하셨다고

▲(천 대표) 그건 너무 미화한 얘기들이고요. 그러니까 저는 정확히 얘기하면 저희 아버지가 목회를 하시겠다고 한 게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처음에는 목사님이 아니셨어요. 원래 서점을 하시다가 대구에서 갑자기 이제 신학교를 가시고 이렇게 했는데.

어릴 때는 저는 그냥 평범한 가족. 그냥 무난하게 이렇게 했었고 초등학교 때를 돌이켜보면 좀 약간 싸가지가 없었다고 해야 될까요? 되게 잘난 맛에 살았었어요. 그래서 공부도 잘하고 제가 또 어릴 때부터 덩치가 좋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약간 리더십이 있는 형태로 컸었어요. 자꾸 회장하고 막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누가 '너 꿈이 뭐야' 하면 약간 재수 없게 "대통령이요" 하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그때는 어린 마음에 그냥 남들보다 잘 나가고 싶어서 또 남들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어서 그런 얘기를 했었다고 하면은 그래도 조금 크면서부터는 이제 그럼 뭐 이게 권력을 잡는 게 권력을 휘두르기만을 위해서는 아니라는 걸 이제 점점 깨닫게 되니까 그때부터는 이제 조금 그럼 세상에 뭐가 문제일까. 그러면서 제가 조금 자유 같은 걸 많이 생각하게 된 게 제 또래들은 공감하시겠지만은 두발 검사를 제 때만 해도 되게 많이 했어요.

그래서 제가 중학교 때 반항심이 막 올라올 때 '내 머리를 내가 기르는데 남한테 무슨 피해를 준다고' 하면서 두 발 검사를 굉장히 열심히 피해 다녔습니다.
그래서 이제 머리가 꽤 길었어요. 그러니까 이제 보통 우리 옛날에 보면 학교 들어오면서 선생님 잡잖아요. 제가 그게 싫어가지고 거의 한 달 가까이를 1교시를 안 들어갔어요.

1교시 끝나고 막 담 넘어가지고 들어가고 좀 그러면서 그때부터 약간 이게 왜 이런 식의 권위주의적인 풍토. 왜 나의 자유와 권리를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규칙으로 제약하려고 하지 그러면서 사회 비판적인 사고를 한창 클 때는 많이 했던 것 같고요. 그 이후에 워낙 많이 있으니까 너무 길어지니까.

-(최 교수) 부모님이 서점을 운영하시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많았겠습니다.

▲(천 대표) 근데 그때 동시기에 저희 이모가 만화책 대여점을 했어요. 서점과 만화책 대여점이면 애들은 당연히 만화책 대여점이 승리했기 때문에 어렸을 때 그냥 책도 조금은 봤지만 만화책을 진짜 많이 봤었고요. 그러면서 되게 재미있는 학창 생활을 보냈었습니다.

-(신 기자) 그렇게 보내시면서도 또 공부도 잘 하시고 이제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신 뒤에 또 변호사로 활동하셨잖아요. 그럼 어렸을 때부터 꿈이 법조인 쪽으로도 있으셨는지

▲(천 대표) 이게 뭐 너무 뭐 과하게 뭐 그런 건 아닌데요. 그러니까 제가 사실은 중간에 미국을 잠깐 다녀왔습니다.
미국을 다녀왔는데 그때 이제 미국의 아이다호주라는 데에 갔어요.
근데 거기가 아주 시골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전체 마을이 한 6000명이고 제가 알기로 아이다오 주가 한반도보다 더 큰가 그런데 인구가 90만인가 그럴 거예요.
그러니까 정말 시골이죠. 거기에 인구 6000명인 작은 도시에 갔었는데 미국은 대학 입시를 하는 데도 보면은 그러니까 그 고등학교의 아웃풋이 되게 중요해서 거기서 좋은 대학을 가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어서 저도 돌아와서 복학을 하려고 보니까 이게 이제 한 1년이 아니라 2년 이상을 꿇어야 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그냥 이럴 바에는 검정고시 보고 재수 종합반 다니겠다 해서 검정고시 보고 재수종합반을 다녔고요. 그래서 제가 한국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습니다. 그 와중에 다행히 운 좋게 제가 수학을 그렇게 썩 잘하는 편이 아닌데 그 애 수능이 수학이 좀 쉽게 나와가지고 운 좋게 대학을 그래도 잘 왔고.

말씀하신 것 중에저의 장래 희망은 어릴 때부터 계속 정치하고 싶어 했었어요. 근데 정치인으로 하기에는 저희 집안이 아주 가난한 건 아니지만 아주 여유 있는 상황은 아니어서 어쨌든 직업이 있어야 뭘 하니까 그래서 제가 외교 쪽을 할지 법학 쪽을 할지를 조금 고민하다가 그래도 좀 법용성 있게 정치하기에는 변호사만한 직업이 없을 것 같다 해가지고 사실은 처음부터 좀 정치를 할 목적으로 변호사가 된 게 좀 있습니다.

-(최 교수) 네 정치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게 어릴 때라면 어떤 계기가 없이 사실 힘들었을 텐데 어떤 상황이 있었습니까? 한국 정치적 상황에 맞물려서 말이죠.

▲(천 대표) 굳이 정말 어떤 계기가 있다면은 그때 말씀드렸던 두 발 검사에 저항했던 것들 그게 그나마 제가 좀 뚜렷하게 '이거 시스템이 잘못됐다' '이 규칙을 바꿔야 된다'라고 느꼈던 시기였던 것 같고요.

근데 그 직후에 제가 또 미국 생활하고 돌아와서 대학을 가고 하면서부터는 오히려 법학을 좀 공부하면서부터 '법 한 줄이라는 것이 사람의 삶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치는구나'라는 것을 오히려 법대에서 공부하면서부터 내가 법률가도 좋지만 입법을 하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거는 대학 들어가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최 교수) 네 법을 공부하시면서 뭐 법관이나 검사나 변호사가 아니라 법을 만드는 사람이 되야겠다는 생각을 하신 게 특별한 케이스가 아닌가 싶긴 합니다.

▲(천 대표) 근데 아닙니다. 사실 우리가 우리나라에 변호사나 법조인 출신의 정치인들이 많은 게 저는 그런 비슷한 생각들이 있다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있는 법을 해석하는 걸 가지고 논쟁을 펼치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은 이것을 어떻게 바꾸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바뀔까를 상상하는 거는 훨씬 더 재미있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게 어떤 의미에서 좀 더 재미있기 때문에 그리고 제가 상상하는 거를 좀 즐겨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법조도 법조지만은 정치를 해야겠다라고 점점 더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가 정치는 사람들이 취미로라도 유튜브도 보고 뉴스도 보고 하지만은 법 공부 내지는 해석론을 취미로 하시는 분은 없잖아요. 그런 거 보면 정치가 훨씬 더 재미있는 영역 아닌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신 기자) 정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시게 된 게 2019년에 젊은 보수라는 단체를 설립하시면서 그랬다고 들었는데 당시에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조국 사태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천 대표) 정확히 조금 말씀드리면 제가 그때 당시에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제가 법제이사라는 걸 그때도 했었습니다. 주요한 특히 기본법들 예를 들면 민법을 바꾼다 민사소송법을 바꾼다 이런 거 할 때는 국회에서 법안을 바꿀 때 대한변호사협회에다가도 법률 검토 의견을 요청합니다.

'변호사들이 봤을 때 이렇게 바꾸는 거 어떻게 생각하냐' 그거를 정리해서 보내는 역할을 제가 그때 많이 했고 그러다 보니까 국회의원들도 많이 만나고 국회 토론회도 많이 불려다니고 그런 걸 자연스럽게 했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논의가 본격화되는 상황이었고 그때 조국 사태도 터지면서 욕심과 실제 소신 같은 게 약간 겹쳤습니다. 소신의 면에서는 조국 사태를 보니까 더불어민주당도 별로 나을 게 없다.

뭔가 새로운 정치 세력이 필요할 것 같다라는 소신도 있었고 그거와 또 맞닿은 것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생기니까 '야 3%만 넘기면 신생 정당 해볼 만한 거 아니냐' 해서 그때 신생 정당들이 막 우후죽순 물밑에서 난리였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게 조정훈 의원의 시대 전환 같은 거였고 조성은 씨가 하던 뭐도 있었고 김재섭 의원이 준비하던 것도 있었고 막 난립했었는데 저도 그중에 한 군데 들어갔다가 거기에서 제가 후발주자로 들어갔는데 약간 리더 비슷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처음에 들어간 그룹은 약간 초당적 그룹이었는데 거기서 보수 색깔이 조금 강한 친구들이 따로 나와서 젊은 보수라고 하는 그룹을 만들었고 이게 정당으로 이제 좀 만들어보자라고 시작하는 한 사람으로 치면 한 300명 정도 모였을 때였던 것 같아요.

그때 이제 미래통합당이 이제 보수 대통합을 한다고 '야 우리는 다 통합을 하려고 그러는데 너는 무슨 얼어죽을 젊은 보수를 새로 만들고 앉아 있냐 그냥 당에 들어와서 같이 해보는 게 어떻겠냐'라고 그때 당시에 정병국 의원님이 저를 리크루팅을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때 해보니까 제 힘으로는 사실은 당을 만들기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그때 완전 정치 신인이고 알음알음으로 모으는 것도 한계가 있지 총선까지 5000명 모을 수 있을까. 제대로 5천 명 모은 다음에 이거 쉽지 않겠다라는 판단을 했고 그때 그룹의 양해를 구하고 '그럼 난 미래통합당 들어가겠다' 했을 때 이제 거기서도 꽤 상당수는 저를 엄청 비난을 했고. '같이 새로운 정당 해보기로 해놓고 왜 홀라당 거기 들어가냐'(는 비난도 있었습니다).

근데 이제 일정한 부분에서는 현실적으로 '그래 이거 우리도 해보니까 어쨌든 기성 정당의 틀 안에서 활동을 좀 해야 될 것 같다. 그러고 나서 나중에 뭘 하든'(이란 생각을 했고) 어떤 나름의 안에서의 이제 의견 충돌 그다음에 분화 이런 것들을 겪어서 미래통합당이 출범할 때 저도 그중에 정당은 아니었지만 작은 하나의 세력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합류를 하게 됐습니다.

-(신 기자) 꿈이 줄곧 정치 쪽이라고 하셨지만 제가 찾아봤을 때는 우리나라 최대 로펌인 김앤장에서도 근무를 하셨던 걸로 봤는데 이렇게 좀 좋은 이력을 두고 정치라는 낯선 시작을 할 때 두려움이나 걱정은 없으셨는지

▲(천 대표) 제가 로스쿨 1학년 1학기 때 학생회장 같은 걸 했습니다. 거기 안에서 그리고 또 제가 예나 지금이나 설레발 치는 걸 좋아해가지고 전국 로스쿨 학생회에 이제 연합 같은 걸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학교에서는 '아 쟤는 약간 정치하는 애' '그냥 원래 저런 거 하는 애' 이렇게 돼 있어서 교수님들도 저를 조금 '쟤는 어린 애가 로스쿨 와가지고 뭐 자꾸 저런 외부 활동만 하고 공부도 열심히 안 하고' 이렇게 자꾸 수업도 빠지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제가 그때는 좀 독한 마음을 먹고 막 새벽에 일어나서 정말 잠을 몇 시간 못 자도 내가 이런 대회 활동을 하면서도 학업도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겠다 그런 오기가 좀 생겨가지고 남들 안 볼 때 몰래 그때 공부를 좀 열심히 했어요. 그래서 제가 1학년 1학기 때에 학점이 만점이 나왔어요. 4.5가 나왔어요. 당연히 1등이었고.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도 다 '얘 뭐지 얘는 맨날 나가서 사람들이나 만나고 전국을 돌면서 학생회나 모으고 있고 이런 줄 알았는데 대단하네' 이렇게 약간 그런 게 있었고. 그러니까 저도 어쨌든 사람들이 인정도 해주고 학점 잘 받아놓으니까 다음 학기에 학점 망치기도 조금 아깝고 이래가지고 열심히 했어요.

하다 보니까 이제 졸업하기 전에 김앤장 쪽에서 연락이 와서 우리 사무실로 좀 와봐라 해서 인턴을 하는 걸 보고 채용 여부를 결정하겠다라고 했고 그래서 이제 그래서 채용하겠다라고 했는데

김앤장 출신이라고 하면 남들이 봤을 때 바보는 아닌 게 인증이 되기 때문에 저는 감사한 일이지만 사실 오래 다닐 생각도 없었고 실제로 오래 다니지도 않았기 때문에 약간 좀...아무튼 그렇게 됐습니다.

-(최 교수) 어렸을 때 특별한 계기는 없었지만 정치에 관심이 있었고 그러고 법을 공부하면서 입법자가 한번 돼보겠다 하는 생각이 있었고요. 항상 정치하고는 이렇게 맥이 좀 있었습니다. 다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조직을 하는 모습을 보니까 사실은 정치인들이 이 조직력 강화. 조직력을 갖춘다든지 조직력이라는 게 결국은 설득의 연속일 것이고 또 미팅과 미팅 연속 과정 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함께 어떤 공동의 목표를 나가는 그런 과정인데 사실은 그게 리더십이거든요.

▲(천 대표) 제가 성적이 운 좋게 잘 나와서 거기서 뽑아주지 않았다면은 원래 제 생각은 변호사가 되고 보좌진으로 이제 정치계에 들어오든 아니면 그냥 이제 개업을 해 놓고 방송에 많이 나가는 변호사가 아마 처음부터 그렇게 갔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런 활동을 더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데 이제 김앤장에서 운 좋게 뽑아줘서 거기 잠깐 갔다가 결국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거를 하면서 살게 되기 때문에 약간 결국 그런 쪽으로 오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allpas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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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듀오 내년 1월까지 배송 지연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심재민 인턴기자 = 애플의 첫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 듀오'가 사전예약 직후 품귀 현상을 빚으며 배송 일정이 내년 1월까지 밀렸다. 이례적인 수요에 따른 흥행 신호로 해석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생산 수율 저하와 핵심 부품 공급 차질이 물량 부족을 심화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생산이 안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70여개국 동시 출시를 추진한 애플의 전략적 판단도 공급난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애플의 첫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 듀오' [사진=로이터 뉴스핌] ◆ 10대 중 4대 품질 기준 미달…증산에도 공급난 지속 21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아이폰 듀오는 지난 16일 사전예약을 시작한 지 30분 만에 일부 모델의 배송 예정일이 내년 1월로 미뤄졌다. 오는 23일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지만, 지금 주문하면 제품을 받기까지 약 3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애플은 사전예약 수요가 이례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실제 예약 건수와 초기 공급량이 공개되지 않은 만큼 장기간의 배송 지연을 수요 폭증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핵심은 생산 수율이다. 중국 경제매체 지몐신문은 지난달 21일 폭스콘 공급망 관계자를 인용해 아이폰 듀오의 완제품 조립 수율이 9월 17일 기준 60%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생산된 제품 10대 중 4대 가까이가 품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당시 공급망 관계자는 애플의 품질 기준을 유지할 경우 생산라인이 안정적인 수율에 도달하기까지 6개월에서 1년이 걸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수율 문제는 최근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메리츠증권은 지난 19일 보고서에서 외장 힌지와 초박형유리(UTG) 등 핵심 부품뿐 아니라 최종 조립 단계에서도 수율 부진이 발생해 생산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애플이 공급망 주문량을 늘리고 있지만 단기간에 물량 부족을 해소하기 어려운 이유다. 중국 증권시보는 지난 10일 애플이 아이폰 듀오의 부품 주문량을 기존보다 30% 늘렸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부품 확보량을 늘리더라도 최종 조립 수율이 개선되지 않으면 실제 출하량을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 애플의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듀오' [사진=블룸버그통신] ◆ 70여개국 동시 출시 강행…국내 초기 물량 3만대 공급 부족을 예상하고도 글로벌 동시 출시를 선택한 판단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블룸버그는 지난 18일 애플이 당초 미국과 중국에 먼저 출시한 뒤 판매 국가를 확대하려던 계획을 바꿔 70여 개 국에서 동시에 사전예약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제한된 초기 생산 물량을 여러 국가에 배분하면서 공급 부담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국내에서도 물량 부족이 현실화하고 있다. 통신업계가 파악한 아이폰 듀오의 한국 초기 공급 물량은 약 3만대 수준이다. 통신 3사의 일평균 스마트폰 개통량인 약 2만대와 비교하면 이틀 치에도 못 미친다. 통신사들은 첫 폴더블 아이폰 출시를 앞두고 고객 유치에 나섰지만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품 수령 지연에 따른 고객 문의와 불만까지 유통 현장에 집중되면서 정식 출시 이후에도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IT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품귀 현상을 폭발적인 수요에 따른 흥행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생산 차질이 장기화하면 출하 목표 달성이 어려워지고 삼성전자 등 경쟁사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flurry327@newspim.com 2026-10-2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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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사망설, 왜?…"독재 체제가 불러온 고질병"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42)이 뇌출혈로 쓰러져 중국 병원에서 숨졌다는 소문이 한반도를 넘어 지구촌을 뒤흔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사망설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가짜뉴스다. 의료기록이나 목격자, 하다못해 정황을 뒷받침할 만한 최소한의 방증이나 전언도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도 소문은 외신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는 물론 국내 언론과 증권가까지 순식간에 번졌다. 사망설 자체보다 이 소문 앞에서 우리 사회가 보인 허술한 대응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뉴스핌]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지난 19일 '전국 피복·신발전시회-2026' 전시장을 찾아 간부들에게 뭔가를 지시하고 있다. 김정은의 오른쪽은 딸 주애. [사진=북한매체 종합] 2026.10.20 ◆'중국 반체제 인사의 X 글'에 휘둘려 메가톤급 소문의 진원지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반체제 인사 셰완진(謝萬軍)이다. 그는 19일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전해지기로 김정은과 시진핑이 같은 병에 걸렸다. 김정은은 죽었고 시진핑은 죽음이 아직 멀었을까"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어 김정은이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의식을 잃었고 북한의 열악한 의료 여건 때문에 중국에 도움을 요청해 중국 의료진이 급파됐다고 주장했다. 베이징의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았으나 골든타임을 놓쳐 결국 사망했다는 얘기다 시신은 북한으로 비밀리에 운구됐고 북한은 이를 숨기고 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던지면서도 그는 어떤 출처나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셰완진이 중국에서 불법단체로 규정된 '중국민주당 주석'을 자처하며 시진핑 주석 사망설이나 대역설 같은 허위·날조 사실을 SNS에 올려온 인물이란 점에서 신빙성은 떨어진다.  그런데도 영국 더선 등 해외 매체들이 이를 받아 전하면서 소문은 증폭됐고 여기에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장의 권력 장악설이나 중국군 파병설까지 얹혔다. 근거 없는 이야기에 그럴싸한 살이 덧붙여지면서 가짜뉴스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사실 사망설이 한창 번지기 시작한 19일 김정은은 부인 이설주, 딸 주애와 함께 평양에서 열린 '전국 피복·신발 전시회-2026'을 참관했다. 이튿날 북한 관영매체들은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이를 보도했다. 하지만 집요한 가짜뉴스는 이를 견강부회식으로 해석했다. '사망 사실'이 퍼지니 북한 당국이 이를 은폐하고 기만하기 위해 거짓으로 김정은과 가족의 일정을 공개한 것이란 주장까지 내놓으면서 그럴듯하게 포장을 했다. ◆'뇌졸중 쓰러져 中병원 이송'…뻔하고 반복된 레퍼토리 눈여겨볼 대목은 김정은 사망설에서 드러나는 클리셰(Cliché)다. 뇌출혈로 쓰러졌다거나 북한 의료진이 속수무책이라 중국 병원으로 옮겼다, 혹은 시신은 몰래 평양으로 반입했다는 등의 레퍼토리는 과거 북한 지도자의 신변 이상설이 나올 때마다 되풀이된 판박이다. 과거 북한 최고지도자의 사망설 확산 사례를 돌아보면 그 패턴이 드러난다. 1986년 11월 김일성 주석 피격 사망설이 나왔다. 당시 외신과 국내에서 소문이 크게 부풀렸고 최전방 북측 지역에 조기가 걸렸다는 말까지 나왔다. 결국 김일성이 얼마 뒤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오보로 판명됐다. [서울=뉴스핌] 지난 2011년 12월 28일 평양 금수산태양궁전 앞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 장례식에서 아들이자 후계 최고권력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당시 직책은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운구차 옆을 걷고 있다. [사진=북한매체 종합] 2026.10.20 2008년 9월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권수립 60주년 행사에 불참하면서 와병설이 퍼졌다. 이 경우는 뇌졸중으로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망설과는 별개였고 김정일은 이후에도 3년 넘게 통치했다. 정작 2011년 12월 김정일의 실제 사망은 이틀 가까이 지난 뒤에야 공식 발표됐다. 김일성 주석 때도 1994년 7월 사망 후 하루 이상 지나서 발표됐다. 소문은 엄청나게 번지고 정작 진짜 사망 때는 깜깜무소식으로 있다가 북한 발표가 나오고서야 알게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이런 양상은 이어졌다. 2014년 9~10월 김정은이 약 40일간 공개 활동을 하지 않아 유고설이 불거졌지만 지팡이를 짚고 다시 나타났다. 과체중으로 추정되는 다리 혹은 관절 수술 때문으로 파악됐다. 2020년 4월에는 김일성 생일 참배 불참을 계기로 심혈관 수술 후 위중설, 사망설이 퍼졌다. 일부 정치인이 "99% 확신한다"고까지 단언했지만, 김정은은 20일 만인 같은 해 5월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5월에도 원산에서 현지지도 중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는 소문이 외교가와 증권가를 중심으로 돌았다. 번번이 오보로 끝났지만 가짜뉴스와 소문은 '죽지 않는 각설이'처럼 주기적으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일단 베껴 쓰고 보자'…줏대 없이 흔들린 언론 이번 사태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은 언론의 대응이다. 유력 외신뿐 아니라 우리 언론도 줏대 없이 흔들렸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확산일로를 걸으니 '일단 베끼거나 받아쓰고 보자'는 심리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남이 쓰니 나도 쓰고, 안 쓰면 낙종이 될까 불안해 쓰는 식이다. 그 결과 독자와 시청자, 국민은 전례 없는 혼란을 겪었다. 소문이 가장 먼저 들이닥친 주식시장은 출렁였고, 포털과 SNS에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넘쳐났다. 유튜브 일부 채널과 콘텐츠는 한술 더 떴다. 자극적인 제목과 섬네일을 앞세워 사망설을 기정사실처럼 다루며 혼란을 부채질했다. 조회수와 수익이라는 상업적 계산 앞에서 최소한의 사실 확인 의무는 실종됐다. 필자 또한 이번 사태의 한복판에서 적지 않은 시달림을 겪었다. 수많은 지인과 독자들로부터 '정말 사망한 것이냐', '평양이 지금 난리라는 데 파악해 볼 수 있냐'는 문의 전화와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지난 34년간 북한 취재 현장에서 여러번의 '사망·유고설'을 겪었지만 이번은 유독 파장이 크다. 최근의 남북관계와 북한 김정은과 김여정 남매의 비정상적이고 호전적인 도발 상황이 국민이 불안감을 키운 것이란 생각도 든다. ◆'강 건너 불구경'식 정부 대응도 문제 정부 대북부처의 대처도 비판받을 소지가 많다. '가짜뉴스 엄정 대응'을 공언해 왔지만 이번엔 사실상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30일 국회에 김정은의 체중이 약 140kg에 이르러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높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소문이 돌 때 더욱 신속하고 구체적인 사실관계 설명이 필요했다. 책임 있는 당국자가 직접 나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설명하고 소문을 일찍 진화했어야 했다. 국회 정보위원회의 대응도 도마에 오른다. 정보위가 국정원 긴급보고를 받아 사망설이 가짜라는 점을 확인하고, 즉각 공개했더라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란을 차단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일수록 정보위가 정치적 계산을 앞세우지 않고 사실을 확인해 국민에게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본부 청사와 원훈석 [뉴스핌 자료사진] ◆전문성 키우지 못한 언론도 책임 느껴야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북한 체제의 폐쇄성에 있다. 더구나 김정은 한 사람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수령 유일지배 독재체제다. 김정은이 유고상황에 빠지면 대책이 없어진다. 이런 사정에 있다보니 '사망설'을 비롯한 소문의 파괴력은 클 수밖에 없고, 거짓인 줄 알면서도 시장과 사회가 뒤흔들리는 기형적인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정보의 불투명성과 체제의 취약성이 만나 만든 구조적 고질병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우리 언론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북한 보도가 지라시 수준의 글에 휘둘리는 이유는 전문성을 갖춘 저널리스트를 제대로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때 언론사들이 전문기자를 두고 연구소 등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경영 논리와 남북관계 경색에 밀려 유명무실해졌다. 북한 정보의 진위를 가려낼 안목과 취재 네트워크를 갖춘 기자가 줄어들면서 확인되지 않은 SNS 글 한 줄에 증시와 언론, 여론이 함께 휘청이는 모습이 연출됐다. '김정은 사망' 같은 민감한 대북 정보는 우리의 안보와 남북관계, 한반도 정세에 미칠 파장이 크다. 이번 일을 일과성의 해프닝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제대로 된 진단과 대책마련이 없으면 김정은은 앞으로도 몇 번이고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때마다 우리는 휘둘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정부 대북 부처와 유관기관, 언론, 학계 등이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yjlee@newspim.com 2026-10-21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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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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