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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D 폴리티션스토리] (상) '소통왕' 한민수 "5.18 진상 알고 많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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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도 포기하고 손에 책 대신 돌을 잡았다"
"대통령 이재명, 국민께 희망, 안심, 기대 드렸으면"

[서울=뉴스핌] 박찬제 기자 =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유튜브 채널 뉴스핌TV KYD(Korea Youth Dream)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해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기자의 삶, 정치인으로서의 철학을 공개했다.

한 의원은 11일 오후 유튜브 채널 '뉴스핌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스토리에서 올해 소망으로 "어느 날 학생회관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선배들이 커튼을 쭉 치고 영상을 틀었다"며 "그게 그 유명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상을 담은 것이었는데, 눈물이 나더라. 많이 울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그때 재수도 포기했고 손에 책이 아니라 돌을 잡았다"고 회고했다.

1969년 전라북도 이리시(현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에서 태어나 남성고등학교,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기자의 삶을 시작한 그는 묻힐 뻔 했던 역사인 '광주 헬기사격'을 보도했다.

기자로써 정치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국회 대변인으로 탈바꿈 한 그는 국회의장 공보수석 및 정무수석을 거쳐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강북을에 출마해 당선됐다.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뉴스핌 KYD(Korea Youth Dream)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한 모습. [뉴스핌DB]

다음은 한 의원과의 폴리티션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박찬제 기자. 이하 박) 안녕하십니까? 한 정치인의 인생 궤적을 돌아보는 폴리스티션 스토리 시작합니다. 안녕하세요. 진행을 맡은 뉴스핌 박찬제 기자입니다. 오늘은 서울 강북구(을) 국회의원이자 당 대변인 역할을 맡아 더불어민주당의 소통왕으로 활약 중이신 한민수 의원님과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의원님 안녕하세요.

▲(한민수 의원. 이하 한) 안녕하십니까. 서울 강북을 국회의원 한민수입니다. 그런데 우리 평소에 저랑 잘 지내고 있는 우리 박 기자께서 한 정치인의 인생 궤적을 보는 폴리티션 스토리라고 했는데 이제 국회의원 된 지 1년도 안 됐는데 제가 이런 데 나올 자격이 있나 좀 싶습니다.

-(박) 국회의원을 하기 전부터 워낙 당에서 소통을 많이 해오셨고...

▲(한) 좀 과분한 자리인가 아닌가 싶은데 아무튼 나온 거니까 성실하게 해보겠습니다.

-(박) 그러면 최대한 많은 질문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2025년도 벌써 3월이 가까워졌는데요. 혹시 올해 새해 계획 세우신 게 있으신가요?

▲(한) 있죠. 우리 시청자분들께 솔직해야 되니까... 제가 금연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일전에 한 10년 남짓 더 금연을 하다가 정치한다고 들어와서 속상한 일도 많고 해서 담배를 피우다가 이거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담배라도 끊는 게 낫겠다. 제 건강도 그렇고 또 우리 저 만나는 지역 주민들께 대한 예의도 아닌 것 같아서 1월 1일부터 제가 금연에 들어갔는데, 다행히 오늘 이 순간까지 잘 참고 있습니다. 그게 개인적인 거고요. 두 번째는 우리 국민들 다 힘드실 텐데 저만 힘든 건 아니지만, 12월 3일 이후로 12월 3일은 무슨 날인지 아시잖아요.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정말 아무도 그런 짓을 할 거라고 생각 못했던 위헌적 불법 비상계엄 이후로 제가 지금까지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루도 맘 편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올해에 저의 소망이자 우리 국가적인 소망은 새 정부가 꼭 제 바람으로는 우리 민주당 정부가 탄생해서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나와서 우리 국민들께 정말 희망과 안심, 기대 이런 걸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박) 국민적 통합도 같이?

▲(한) 그럼요. 국민 통합해야죠. 통합하고 회복과 성장. 반드시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거기에 꼭 일익을 담당하고 정말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박) 지금도 당에서 열심히 하고 계시니까요.

▲(한) 고맙습니다.

-(박) 같은 당의 이원택 의원님이랑 남성고등학교 동기이신 걸로 제가 전해 들었습니다. 학창 시절 인연이나 또 지금 국회에서도 그 인연이 쭉 잘 이어지고 있는지 궁금하거든요.

▲(한) 사실은 우리 이원택 의원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원택아 미안하다. 제가 원택이보다는 훨씬 유명합니다. 익산에서도 유명하고 여고생들 사이에서도 당시에 유명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외향을 비교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근데 원택아 미안해. 이원택 의원은 이과였어요. 저는 문과였는데 아시겠지만 제가 좀 나서기도 좋아하고 하니까 좀 알죠 아는데 그래서 학교 다닐 땐 몰랐습니다. 그 이원택 의원을 만나보시면 알겠지만 조용합니다. 품성도 좋고 지금 재선이에요. 초선인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원택이가 기분 나쁠 수 있겠어요. 근데 동기고 저는 이제 그 뒤에 이원택 의원을 그 뒤에 알았습니다. 뒤에 알았는데 청와대에서 문재인 정부 때 이제 근무하고 있는데 제가 그때 알았던 것 같아요. 워낙에 이원택 의원에 대한 우리 동기들 고등학교 동기들 남성 평가들도 좋고 저랑도 잘 맞습니다. 예전에 제가 출마하기 전에 상담도 좀 하고 그 진정성 있게 코치를 해 주더라고요. 그래서 아 제 동기가 같은 고등학교에 같은 기수에 국회의원이 있다는 게 저한테 얼마나 의지가 됩니까? 따로 모임도 합니다. 원택아, 화 풀어라.

-(박) 고향이 전라북도 이리시. 현재는 이제 익산시죠? 여기서 나고 자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대학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나오셔 가지고 기자 생활을 하셨는데요. 혹시 이제 서울로 올라가야겠다라고 생각을 하게 된 계기와 타향살이가 또 힘들지는 않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한) 제가 뭐 공부를 아주 잘하지는 않았지만 또 못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대학은 서울로 가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제 인생 중에 여러 가지 고비들이 있지만 고3 때가 좀 힘들었습니다. 지난해 이제 하늘나라로 가신 우리 어머니가 제 고3 때 제 어머니께서 큰 교통사고를 당하셨어요. 그래서 힘들더라고요. 그때 버티는 게. 그때 시기를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어머니 나름대로 힘드셨을 병원에서 투병하시느라 힘드셨을 거고, 막 결혼하신 우리 형수님은 그냥 신혼의 시동생이죠. 저 도시락 싸주느라 힘드셨고. 그런 일이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대학은 서울로 와서 다녀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처음 하숙하는데 그거 좀 재미도 하숙은 있습니다. 학교 앞에서 하숙을 했는데 재미도 있습니다만 집 생각 많이 나죠.

-(박) 사실은 저도 하숙을 했었거든요.

▲(한) 그거 힘들죠 아무래도. 그리고 하숙의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제 한 집에서 4년 뭐 이렇게 5년 있지는 않잖아요. 이렇게 옮겨 다니는데 제가 두 번째인가 하숙하는 집이 집이 참 깨끗했는데 하숙집 주인께서 그렇게 다정다감한 스타일은 아니셨어요. 그 어머니가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고기를 주는 날이 있는데 제 기억으로 지금 목요일쯤 될 겁니다. 그날은 고기를 주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가서 고기를 먹어야 돼요. 근데 꼭 그날 무슨 동문회가 있거나 그러면 정말 힘들었어요. 그 고기를 먹으러 가야 되는데 빠지면 안 되니까 그런 것들이 지금 돌이켜 보면은 그래도 그분들이 잘 이렇게 간수해 주셔서 제가 잘 지냈던 것 같고. 그리고 이제 제가 87학번인데 87년도에 나름 또 제 욕심이 있어서 처음에 서울로 올라왔을 때는 재수를 한번 해보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공부했던 참고서도 버리지 않고 어디 학원으로 갈까 이러고 있었는데 그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가 결정적으로 터진 게 87년이었죠. 그때 박종철 열사가 일이 있었고, 그 다음에 이제 민주화 운동. 그리고 제 기억으로 제가 그때 제가 고 김근태 의장님을 학교에서 뵀어요. 그러고 어느 날 학생회관에 이제 갔는데 김근태 의장님은 이제 고문 피해 사례를 이렇게 말씀하러 각 대학을 다니셨어요. 그리고 어느 날 학생회관에 갔는데 갑자기 선배들이 회관에 이제 커튼을 치는 거예요. 저 깜짝 놀랐습니다. 밥을 먹고 있는데 커튼을 쭉 치는데 영상을 틀더라고요. 그게 그 유명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상을 진실을 담은 외국 기자가 찍은 것. 제 이름 얘기 안 해도 누구인지 아시겠죠? 제가 이 말을 하면서도 제가 목도 메이고 이렇게 좀 전율이 아직도 느껴지는데, 그 영상을 보면서 제가 제 인생에 그게 아니었구나 눈물이 나더라고요. 많이 울었습니다.

그때 그러고 재수도 이제 포기했고 책이 아니라 손에 돌을 잡았죠. 그리고 뭐 네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그 당시 그 진실을 밝히려고 했던 분들. 그리고 얼마나 많은 분들이 희생됐는지 그때 그걸 알았습니다. 진실을 알기 시작했고, 우리 대표도 말씀하시잖아요. 이재명 대표도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이런 고민들을 많이 했었고요. 근데 지금도 아직도 5.18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거나 그 유가족들을 모독하는 일을 보면은 아 저렇게 해서는 안 되는데. 아무리 생각이 다르고 정파가 다르고 뭐 서로가 지지하는 정당이 다를 수 있고 좋아하는 정치인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옳고 그름은 판단을 해줘야 되거든요.

▲(한) 정치하는 사람들이 인기나 기득권을 노리겠다면서 진실과 역사적 사실마저 부인하거나 모독하는 일은 안 해야 된다. 만에 하나 저에게 그런 상황이 온다면 저는 과감히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며 그럴 자신이 없으면 정치 그만하겠습니다.

-(박) 잘 녹화가 되고 있습니다.

▲(한) 아 그렇습니까?

-(박) 그러면 이런 아까 방금 말씀하셨던 기억들이 기자 생활하시면서도 또 되게 많은 원동력이라든가 또 이제 생각을 계속 하게 되는 계기가 됐을 것 같습니다. 대학 졸업 후에 거의 기자로서 평생을 보내셨는데 기자로서 좀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든가 기억에 남는 기사라든가 있으신지?

▲(한) 있죠. 많이 있고 우리 박 기자님도 아시겠지만 언론사 들어오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또 대학 때 또 이렇게 좀 놀기도 하다 보니까 이 기초가 안 돼 있어서 꽤 열심히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정도 했으면 어지간한 고시는 제가 다 붙었을 것 같아요. 근데 언론 고시라고 하지 않습니까? 꽤 몇 년 했습니다. 진짜 열심히 했어요. 한 번 또 우리가 물면 잘 안 놓지 않습니까? 근성이 있죠 기자들이. 그래서 이제 어렵게 언론사에 들어왔고 사회부 기자부터 시작했고 정치부 기자를 오래 했습니다. 그런데 물어보시면 제가 어린 기자 때 5.18 민주화 운동 얘기하다 보니까 제가 어린 95년 제 기억으로 4월쯤으로. 4월 아니면 5월 초인 것 같아요. 저 혼자 한 거 아닙니다. 어린 기자인데 무슨 죄가 다 하겠습니까? 이제 막 2년 차였는데 팀을 꾸렸는데 그때 처음으로 저희 팀이 밝히고 기자상도 받았던 내용이 광주 전일빌딩을 향해서 헬기가 난사했다.

그거를 저희들이 이제 증언을 받고 제보를 받아서 기사를 크게 썼습니다. 제가 신문 기자였으니까 1면에다 쓰고 막 3면 쓰고 해서 사회적 반향도 있고 하니까 저희들이 상을 받았는데 참 그런데 말이죠. 그때가 YS 정부 때거든요. 근데 김영삼 대통령 그래도 민주화 운동 하신 분이잖아요. 정부가 인정 안 합니다. 그거 언제 인정되는 줄 아십니까?

-(박) 한참 지나서죠.

▲(한) 한참 지났어요. 문재인 대통령 때 인정합니다. 문재인 대통령 제 기억으로 2018년에 국방부가 그때 인정합니다. 헬기 난사에 대해서 인정을 합니다. 그래서 그때 같이 기사를 썼던 선후배들이 제가 제일 후배입니다만 선배들이랑 조촐하게 저들끼리 자축했습니다. 아 이제야 이게 진실로 인정받았구나. 지금은 다 누구도 부인하지 않죠. 그런 기사가 있었고요. 또 하나는 제가 이제 우리 박 기자님은 아시겠지만 시경캡을 했었습니다. 사건 기자들을 같이 이렇게 지휘하는 역할을 했는데 그때 우리 팀 기자들이 훌륭한 기자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최종길 교수님이 계시거든요. 서울대 교수님인 그분이 의문사를 당했습니다. 중앙정보부로부터. 그거를 의문사 진상위원회에서 밝혀냅니다. 근데 그걸 우리가 저희들이 좀 더 빨리 그 사실을 입수해 가지고 특종을 쓰는데, 그때 그 기사를 준비할 때 이제 후배들이 써온 기사를 제가 데스킹을 보고 출고를 할 때 그 과정이 너무 행복했어요.

신도 나고 평소에 힘들었었는데, 그 특종 하나를 하는데 너무 기분 좋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큰 상도 몇 개 받았거든요. 그랬던 기억나고 특종 얘기만 하니까 좀 잘난 척하는 것 같아서 하하. 그거 말고 개인적으로 정치부 기자하면서 기억나는 거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될 때가 기억이 많이 납니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님의 그 소탈한 모습들도 저에게 기억이 나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수평적 정권 교체를 이뤄낼 때 그때는 저도 어린 기자였는데 제가 마치 그 당의 일원인 것처럼 막 너무 신이 나는 거예요. 그 IMF가 와가지고 힘든 상황인데도 새로운 시대가 펼쳐진다는 그런 막 엔돌핀도 돌고 막 신나서 일했던 기억이 나고요. 그때 아마 IMF 때 또 제가 이제 단독 기사를 썼던 것 중에 하나가 금 모으기도 했지 않습니까 하는데, 그때 찾아보시면 아마 우리 박 기자님 기억이 날 수도 있는데 재벌 대기업들이죠.

재벌 그룹들이 사재를 출연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만 나라가 망하게 생겼잖아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제 출연도 하고 하는데 그걸 제가 미리 캐치를 해가지고 한번 기사를 쓴 적이 있었습니다. 저 물 먹은 것도 많습니다. 근데 잘난 척만 해서 죄송합니다.

-(박) 그런 시간을 위해서 질문드리는 거니까요. 편하게 말씀 주세요. 가끔 찾아오는 쉬는 날 이럴 땐 어떻게 보내시나요?

▲(한) 제가 여기 지금 방송하고 있는 이 순간까지는 정말 거짓말하고 쉬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당선되고 뭐 제가 공천 늦게 받고 갔지 않습니까? 아휴 쟤 만나보지도 못하고 저 지지해 줬다는 저 우리 주민 분을 보면은 제가 정말 죄송해요. '내가 우리 한 후보 얼굴도 못 보고 찍었어. 민주당 좋아서' 그럴 때 정말 우리 민주당 내 사랑한다. 그리고 우리 이분은 어떻게 이 어르신을 내가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한민수가 뭐 잘났다고 얼굴도 못 본 저 저놈을 찍어줬다는데 저거 너무 감사하죠. 제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열심히 하려고 그래요. 그렇죠 정말 진정성을 발휘해서 겸손하게 일을 하려고 하는데 그런 이제 우리 지지자들 우리 이제 주민들을 만나고 하면 정말 열심히 해야 되겠다 하니까 그 뒤로 못 갔던 데 계속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국회 열리고 제가 속한 상임위가 과방인 거 아시죠? 국회 과학기술 정보방송통신위원회 청문회 하면 3일씩 합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기자분들도 너무 고생하세요. 그러다가 제가 또 예결위원도 했지 않습니까? 당 대변인도 하니까 거의 쉬지 못하고 일을 했는데 아까 말씀드린 대로 쉬면 안 되죠. 월급 주시는데 국민들이. 그래서 열심히 하려고 하고 있고, 다만 제가 이제 주일날 일요일 날 예배드리고 그 다음에 쭉 이제 행사들 갔다 오고 하면 오후 시간이 빌 때 있습니다. 그때는 뭐 하냐 책을 봐야 되는데 솔직히 보면 잡니다. 근데...

-(박) 워낙 일이 많으니까.

▲(한) OTT 밀린 거 좀 봅니다.

-(박) 그럼 만약에 정치인이나 기자가 아니라 다른 일을 했다면 어떤 일을 하셨을 것 같으세요?

▲(한) 글쎄요. 마땅히 잘하는 일이 별로 없어서 없어가지고 저는 이제 대학 때 졸업하면서는 이제 준비를 했던 게 딱 기자 시험만 봤어요. PD 시험도 안 보고 오로지 오로지 기자 시험 보고 하도 떨어지니까 제가 광고 회사 시험을 한번 본 적은 있어요. 제때 광고 회사들이 되게 인기가 있었거든요. 광고회사 유명 광고회사 대기업 광고회사를 봤어요. 그때는 본인 때는 하도 신문사 방송사 떨어지니까 도대체 실력이 없는 거야 뭐야 하다가 보니까 붙었어요.

붙어가지고 그 광고 회사에서 면접을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내가 실력은 있는 것 같네' 근데 그날 면접 보는 날 모 중앙 언론사 신문사의 2차 실습이었나 논문이었나 하고 날짜가 겹 만약 제가 광고회사를 갔으면 광고쟁이를 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본 때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후회했을 것 같아서 그날 안 갔어요. 면접을 안 가고 그 신문사 시험 보러 가서 떨어졌어요.

떨어졌는데 그 뒤에 이제 붙어서 제가 이제 기자 생활을 했고 그래서 딱히 다른 직업이나 그런다고 제가 무슨 사업을 해서 돈을 벌었을 것 같지는 않고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맡겨진 일이나 열심히 해야죠.

지금은 이제 우리 국민들께서 선택해 주셨으니까 우리 지역 주민들이 아 과분하게 사랑을 주셨잖아요. 그러니까 열심히 해서 우리 지역과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을 위해서 한번 열심히 달려가 보겠습니다.

pcjay@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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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넘 의원, 英 집권 노동당 새 대표로 [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북부의 왕'으로 불리는 앤디 버넘 의원이 17일(현지 시각) 영국 집권 여당인 노동당의 새 대표에 올랐다.  버넘 대표는 오는 20일 키어 스타머 총리를 이어 영국의 차기 총리 자리를 확정했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은 의회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집권당의 대표가 총리가 된다. 노동당은 이날 특별 당대회를 열고 버넘 의원을 당 대표로 공식 선출했다. 버넘은 전날 마감된 당 대표 경선 후보 등록에서 단독으로 등록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노동당 공보에 따르면 버넘은 노동당 소속 하원의원 379명과 노동조합·사회주의 단체 23곳의 지지를 받아 당 대표로 선출됐다"고 했다. 현재 노동당은 전체 의석 650석 중 403석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중 94%가 버넘을 당 대표로 선택한 것이다.  앤디 버넘 영국 노동당 새 대표가 17일(현지 시각) 특별 당대화에서 대표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샤바나 마무드 내무장관의 새 대표 선출 결과 발표와 함께 무대에 오른 버넘은 일성으로 "국민에게 희망을 되돌려주겠다"고 했다.  그는 "저를 지지한 노동당 의원들이 모두 영국 곳곳의 잊혀진 지역을 위해 과거의 노동당을 되찾아 달라는 요구를 들었다"면서 "우리는 그 부름에 응답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오늘 하나로 뭉쳤고, 그 힘을 오랫동안 정치로부터 희망을 잃은 사람들과 지역을 위해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다섯 가지 변화와 약속을 실천하겠다고 했다. 노당동의 단결을 위해 '파벌 문화'를 종식하겠다고 했고, "이번이 바뀔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면서 비난보다 문제 해결의 정치를 추구하겠다고 했다. 그는 "영국 정치가 덜 독해졌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세번째 변화로는 노동당의 정치적 지향을 거론하며 노동당답게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녹색당보다 더 녹색당처럼 행동하려 하지도 않을 것이고, 영국개혁당(Reform UK)보다 더 개혁당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과거처럼 보수당 옷을 너무 많이 입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담대하고 자신감 있게, 진정한 노동당으로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북부와 남부, 동부와 서부,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북아일랜드 모두를 위한 지도자가 되겠다"는 것이 네 번째 약속이고, 중앙정부가 독접하고 있는 권한을 웨스트민스터와 화이트홀에서 지역 사회로 되돌려주는 지방분권이 다섯 번째 약속이라고 했다.  버넘 대표는 자신이 친기업 노선을 취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그레이터맨체스터 시장 시절 친기업적인 시장이었듯이 노동당 대표가 된 뒤에도 친기업적인 지도자가 될 것"이라며 "우리는 기업과 함께 지역을 되살렸고 그 방식을 영국 전체로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1970년 1월 리버풀 북쪽 교외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15세 때 노동당에 가입했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영어를 전공한 뒤 의원 보좌관 등을 거쳐 2001년 총선에서 그레이터맨체스트의 리(Leigh) 선거구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16년간 하원의원을 지냈다.  이 기간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 정부에서 내무부·재무부 차관, 문화장관, 보건장관 등을 역임했다.  2010년과 2015년에 당 대표에 도전했지만 에드 밀리밴드와 제러미 코빈에서 패했다.  2017년 중앙정치를 떠나 새로 만들어진 그레이터맨체스터 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고, 2021년과 2024년 선거에서도 내리 승리했다.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버스 공영화를 추진하고 통합 대중교통망 구축과 주택 공급 확대 등으로 시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중앙 정부에 맞서 북부 지역 지원 확대를 요구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이때부터 '북부의 왕(King of the North)'이라는 별명이 널리 퍼졌다. 버넘 시장 재임 시절 그레이터맨체스터는 전국 평균을 상회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버넘 대표는 당 대회 연설에 앞서 소셜미디어에 "앞으로 며칠은 영국을 누가 통치하느냐만 바꾸는 것이 아니며 영국이 어떻게 통치되는지를 바꾸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권력을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릴 기회"라고 했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현 스타머 총리보다 더욱 왼쪽에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주택과 교통, 교육 등과 관련된 권한을 지방으로 분산해 각 지역에 맞는 경제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는 내용의 '맨체스터리즘'(Manchesterism)을 주장한다.  맨체스터에 제2 총리실을 둬 중앙정부와 효율적으로 업무를 조율하는 '북부 총리실(No. 10 North)' 구상도 밝혔다.  ihjang67@newspim.com   2026-07-17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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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서, AI카타고에 제1국 불계패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두 점을 먼저 놓고 시작했어도 인공지능(AI)의 벽은 높았다. 세계 최강 신진서 9단이 바둑 AI 카타고(KataGo)와의 첫 맞대결에서 아쉬운 역전패를 당했다. 신진서는 17일 서울 중구 한국경제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카타고와의 '쎈수학·한경 기신전' 3번기 제1국에서 4시간 20분의 혈투 끝에 245수 만에 흑 불계패했다. 이번 대국은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 이후 10년 만에 성사된 인간과 AI의 맞대결로 큰 관심을 모았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AI의 기력을 고려해 이번에는 신진서가 2점을 먼저 까는 접바둑으로 진행됐다. 카타고는 첫 수부터 흔들기에 나섰다. 좌상귀 화점에 첫 수를 놓는 변칙수로 신진서의 초반 포석 구상을 깨뜨렸다. 이어 우상귀 쪽에도 높은 걸침 수를 두며 변칙 전술을 이어갔다. 신진서는 전투를 피하고 잔잔하게 국면을 이끌며 중반까지 우세를 유지했다. [AI 챗GPT가 제작한 AI '카타고(KataGo)'와 신진서 9단 기신전(棋神戰) 3번기 일러스트] psoq1337@newspim.com 100수를 넘어서면서 승부처가 나왔다. 미세하게 격차가 좁혀지자 신진서는 백 대마를 잡기 위해 중앙에 승부수를 던졌다. 사람을 상대로는 충분히 통할 수 있는 강력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카타고는 완벽한 계산으로 이를 가뿐하게 타개해 냈다. 112수째에 이르러 흐름은 완전히 뒤집혔다. 역전을 허용한 신진서가 다시 전투를 걸었으나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졌다. 패색이 짙어진 상황에서도 신진서는 다음 대국을 대비해 30분 가까이 끝내기를 이어가며 카타고를 분석했다. 단 한 차례의 실수도 범하지 않고 버텼지만, 30집 가까이 벌어진 격차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신진서는 돌을 던졌고 대국이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쎈수학·한경 기신전'은 승패와 관계없이 3국까지 치러진다. 신진서는 기본 대국료 1억 5000만 원을 확보했으며, 승리할 때마다 5000만 원의 수당을 추가로 받는다. 2승 이상을 거둘 경우 제네시스 G90이 부상으로 주어진다. 설욕을 노리는 신진서의 제2국은 오는 19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psoq1337@newspim.com 2026-07-1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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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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