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트럼프가 2024년 대선서 재집권하며 패권 변화를 이끌었다.
- 미국은 동맹·무역을 가치보다 비용과 압박의 언어로 바꿨다.
- 가자·이란 전선에서 힘의 우위는 커졌지만 정당성은 흔들렸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트럼프의 재집권과 패권국 위상의 새로운 전환
2024년 미국 대통령선거는 단순한 정권교체 이상의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을 복원하고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다시 강화하고자 했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은 유럽 국가들과 함께 비교적 강력한 국제적 연대를 구축하는 데 성공하는듯 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외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내의 정치적 분열은 충분히 해소되지 않았다. 높은 물가와 주거비 부담, 국경 문제와 이민정책을 둘러싼 갈등, 정치권과 언론에 대한 불신은 여전히 많은 유권자들의 불만으로 남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다시 한번 'Make America Great Again'을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트럼프 행정부는 첫 번째 행정부의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2017년의 미국우선주의가 세계화에 대한 미국 내부의 불만을 정치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면, 2025년의 미국우선주의는 이미 변화하기 시작한 국제질서 자체를 전제로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더 이상 냉전 직후와 같은 압도적 우위를 누리는 유일한 초강대국이 아니었다.
중국은 경제와 첨단기술, 군사력에서 미국의 가장 강력한 전략적 경쟁국으로 자리 잡았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유럽 안보질서를 지속적으로 흔들었다. 중동에서는 이스라엘과 이란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었으며, 인도·태평양에서는 공급망과 반도체, 희토류와 인공지능 기술을 둘러싼 경쟁이 국가안보의 핵심 문제로 부상했다.
이러한 국제환경 속에서 미국의 외교언어 역시 중요한 변화를 보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통령들은 자유, 민주주의, 국제질서, 집단안보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국가이익과 함께 설명해 왔다. 물론 미국의 외교 역시 언제나 현실주의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공식적인 언어에서는 미국의 국익과 국제사회의 공동이익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2025년 이후 미국의 외교언어는 점차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국익은 더욱 직접적으로 강조되었고, 동맹은 가치공동체인 동시에 비용과 책임을 분담해야 하는 계약적 관계로 이해되었다. 무역은 자유교역의 확대보다 상호주의(reciprocity)와 국내 산업 보호의 관점에서 논의되었으며, 공급망과 첨단기술은 경제정책이 아니라 국가안보의 핵심 요소로 재정의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었다. 유럽연합 역시 트럼프에 대항해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을 강조하기 시작했으며, 중국은 경제와 기술의 자립을 국가전략으로 추진했다. 세계 각국은 자유무역보다 경제안보를, 효율성보다 공급망의 안정성을, 세계화보다 자국 산업의 회복에 사활을 걸었다.
다시 말해, 트럼프 2기 이후 국제정치는 협력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협력의 언어가 변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냉전 이후 국제질서는 국가 간 상호의존이 평화를 촉진할 것이라는 기대 위에서 발전했다.
그러나 2020년대 중반의 국제질서는 상호의존 자체가 전략적 취약성이 될 수 있다는 인식 위에서 재편되기 시작했다. 공급망은 경제적 연결망인 동시에 압박의 수단이 되었고, 반도체와 희토류, 인공지능 기술은 국가 간 협력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경쟁과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의 관계에도 새로운 긴장을 만들어 내고 있다. 20세기 후반 민주평화론(Democratic Peace Theory)은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서는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실제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전후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폭넓은 협력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서도 관세와 수출통제, 기술규제와 경제제재, 방위비 분담과 산업보조금을 둘러싼 갈등이 빈번하게 나타났다.
이는 민주주의 국가들이 서로 적대국이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 국가들은 여전히 안보와 가치의 측면에서는 협력하면서도, 경제와 기술, 산업정책에서는 더욱 치열한 경쟁을 전개하는 새로운 관계로 이동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패권국의 역설'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달러는 국제금융의 중심통화로 남아 있고, 미국의 동맹망 역시 세계 어느 국가도 대체하기 어려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패권은 군사력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패권은 다른 국가들이 그 질서에 참여하는 것이 자신들에게도 이익이 된다고 믿을 때 지속된다. 다시 말해, 패권은 힘(power)뿐 아니라 정당성(legitimacy)에 의해 유지된다.
2025년 이후 미국은 국익을 더욱 직접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국가가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점에서는 별로 특별할 것이 없다. 모든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고려한다. 그러나 문제는 국익을 설명하는 언어가 보편적 규범과 결합하기보다 거래와 비용, 손익의 언어로 점차 재구성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동맹은 공동의 가치 이전에 비용분담의 문제가 되었고, 무역은 공동번영보다 상호주의와 보복의 문제로 이해되었다. 외교는 설득과 규범의 공간이라기보다 협상력과 압박의 공간으로 변화했다.
이러한 변화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여전히 세계 어느 국가보다 강력한 군사력과 금융·기술·동맹 네트워크를 통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정당화하는 방식은 달라지고 있다.
미국은 규칙을 만들고 동맹국을 설득하는 국가에서 협상을 주도하고 상대를 압박하는 국가로, 질서를 설계하는 국가에서 거래와 힘의 우위를 통해 결과를 만들어내는 국가로 점차 이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동은 이러한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리트머스지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이후 시작된 가자전쟁에서 미국은 이스라엘의 안보와 자위권을 지지하면서도 민간인 피해와 인도주의 위기, 휴전과 인질 석방 문제를 둘러싸고 점점 더 어려운 외교적 선택에 직면해 왔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가자지구의 막대한 인명 피해와 생활기반 파괴는 미국이 오랫동안 강조해 온 인권, 국제법, 민간인 보호라는 언어와 동맹국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 사이의 긴장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2025년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한 가자 구상도 휴전과 인질 석방, 하마스의 무장해제, 이스라엘군의 단계적 철수와 가자 재건을 하나의 협상 틀로 묶었지만, 현장에서의 군사행동과 인도주의 위기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2026년 8월 현재에도 가자에서는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이 계속되고 있으며, 휴전과 철수, 하마스 무장해제를 둘러싼 갈등 역시 완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더 결정적인 변화는 이란에서 나타났다. 2025년 6월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과 군사목표를 공격하면서 시작된 충돌에서 미국은 처음에는 "우리는 이 공격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불과 며칠 뒤 미군은 포르도(Fordow), 나탄즈(Natanz), 이스파한(Esfahan)의 이란 핵시설을 직접 공격했다.
백악관은 이를 이란의 핵무장을 막기 위한 결정적 행동으로 설명하며, 트럼프 대통령은 핵시설이 사실상 "obliterated(완전히 파괴되었다)"고 선언했다. 미국 외교의 언어에서 협상과 억제의 경계가 직접적인 군사력 사용으로 넘어간 순간이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다시 이란을 상대로 공동 군사작전을 개시했고, 이란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중동의 미군기지와 미국의 이해관계를 공격 대상으로 삼으며 대응해 왔다. 전쟁은 호르무즈 해협으로 확대되었고, 이란의 해협 봉쇄와 미국의 이란 항만 봉쇄가 맞물리면서 세계 에너지 공급과 국제경제까지 흔들었다.

2026년 8월 현재에도 미국과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두고 서로 상반된 주장을 내놓고 있으며, 6월의 잠정 휴전 합의마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채 군사적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서 미국 패권의 역설은 더욱 분명해진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질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힘을 정당화하는 언어는 점차 달라지고 있다. 자유, 민주주의, 국제법, 동맹, 공동의 책임이라는 전통적인 언어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 옆에서 "maximum pressure(최대 압박)", "peace through strength(힘을 통한 평화)", 봉쇄, 관세, 보복, 거래와 같은 언어가 훨씬 강한 정치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2025년 트럼프 행정부가 대이란 정책을 공식적으로 "maximum pressure"의 복원이라고 규정하고, 이란 핵시설 공격을 "peace through strength"의 결과로 설명한 것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힘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아니다. 패권국은 역사적으로 군사력을 사용했고 미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그 힘을 어떤 규칙과 절차, 어떤 언어를 통해 정당화하는가이다.
미국이 동맹국의 행동에는 국제법과 규범의 적용을 유보하면서 경쟁국에는 동일한 규범을 엄격하게 요구한다는 인상을 줄 경우, 미국이 오랫동안 주장해 온 '규칙에 기초한 국제질서(rules-based international order)'의 설득력도 약화될 수 있다. 패권의 힘은 남아 있어도 패권의 정당성이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이 변화는 미국 국내 정치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국내에서 정치가 타협보다 충성의 언어로 이동할수록 국제정치에서도 외교는 설득보다 힘과 압박의 언어를 더 쉽게 사용하게 된다. 반대로 국제환경이 전쟁과 전략경쟁의 언어로 바뀔수록 국내 정치 역시 안보와 국익을 중심으로 더욱 강한 결집을 요구한다. 국내의 정치언어와 국제질서의 언어가 서로를 강화하는 순환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달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