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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정치분석] ⑤의회정치 언어로 들여다 본 일본 민주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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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핵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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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시다 시게루는 1949년 재건과 경제자립을 내세웠다
  • 전후 일본은 희생보다 생산·고용·수출을 중시했다
  • 미국 의존 속 요시다 독트린으로 안보와 성장을 택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패전과 재건, '희생의 대상'에서 '주권자'로 바뀐 일본 정치의 언어

요시다 독트린과 전후 현실주의: 국가적 희생에서 경제적 성과로

바로 이 모순 속에서 요시다 시게루(吉田茂)가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요시다는 전전의 총리들과 다른 종류의 정치적 언어를 사용했다. 그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웅변가가 아니었고, 의회에서는 오히려 거칠고 직설적인 답변으로 야당과 자주 충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정치가 일본 현대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국가의 우선순위를 바꾸었다는 데 있었다. 군사적 팽창과 영토, 국위와 전쟁의 승리 대신 생산과 고용, 수출과 재정안정, 국민생활이 국가재건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 냈다.

1949년 4월 4일, 참의원 본회의 단상에 오른 요시다 시게루 내각총리대신은 총선 결과를 설명하며 보수 단독 과반의 의미를 국가 재건의 책무로 규정하며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이번 총선거에 나타난 국민의 결의는 명백합니다. 종전 이래의 혼란과 시련을 거쳐 온 국민은 안정된 정국 아래에서 국가의 재건을 민주자유당을 비롯한 보수 건전 세력에 맡기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정부는 이 엄숙한 국민적 신임에 부응하여 모든 정쟁을 초월해 오직 국가의 부흥과 경제적 자립의 길을 닦아 나갈 것을 확약합니다."

요시다 시게루 일본 총리 [사진=위키미디어 공용]

(장내 반응: 의원석 전반에서 큰 박수)

여기에서 1941년 도조 히데키(東條英機)의 '국난'과 1949년 요시다의 '재건'을 비교해 보면 일본 정치언어의 변화가 선명해진다. 두 총리 모두 국민에게 국가적 목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그러나 도조 시대의 국민은 정부와 군을 믿고 고통을 견디며 끝까지 싸워야 하는 존재였지만,  요시다 시대의 정부는 국민에게 국가를 위해 희생을 강요하는 대신 경제와 생활을 다시 일으킬 수 있다는 능력을 증명해야 했다. 정치적 정당성의 근거가 국가를 위한 희생에서 국민에게 제공하는 성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 경제사학자 나카무라 다카후사(中村隆英)는 『The Postwar Japanese Economy: Its Development and Structure, 1937–1994』 개정판(1995)에서 전후 일본 경제를 개혁과 재건, 고도성장, 안정성장의 단계로 구분한다. 그의 설명에서 전후 재건은 단순히 파괴된 공장을 다시 가동하는 과정이 아니었다. 전쟁경제의 자원과 제도를 민간생산으로 전환하고,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식량난을 안정시키며, 생산과 무역을 정상화하고 새로운 산업구조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국회의 말도 그 변화를 그대로 반영했다. 전쟁기에 중심을 이루던 '총동원', '성전', '충성'의 자리로 '물가', '생산', '식량', '재정', '수출', '외자', '고용'으로 바뀌었다. 전전의 강한 국가는 군수생산과 병력을 얼마나 신속하게 동원할 수 있는가로 평가받았지만, 전후의 국가는 국민의 생활과 경제를 얼마나 신속하게 회복시킬 수 있는가로 평가받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재건은 순수한 자력갱생의 결과가 아니다. 미국의 경제적·안보적 지원과 냉전이라는 국제환경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것이 패전국 일본의 설움이자 도약의 기회이기도 했다.

미국은 일본을 패배시킨 국가였고 점령국이었지만, 동시에 경제재건을 지원하고 국제사회 복귀의 조건을 결정하며 팽창하는 소련과 중국의 공산주의 세력을 상대로 안보를 제공하는 국가로 자리매김 하고 있었다. 따라서 전후 초기 일본 국회는 미국의 점령과 의존, 협력과 국제사회 재진출의 복합적인 시대적 요구에 직면해 있었다.

요시다가 선택한 길은 이 모순을 당장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는 것이었다. 일본이 즉시 미국으로부터 완전한 군사적·전략적 자립을 이루기 어렵다면 미국의 안보 능력을 이용하면서 국내 자원을 경제 재건에 집중하자는 현실주의였다. 바로 이것이 훗날 요시다 독트린(Yoshida Doctrine)이라고 불린 전략이다.

오노기 히데지로(大野木秀次郎) 일본 참의원 [사진=위키미디어 공용]

그러나 일본 의회가 이것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1949년 11월 11일 참의원 본회의, 녹풍회(緑風会)의 오노기 히데지로(大野木秀次郎) 의원은 발언대에 올라 강화조약과 국가의 주권 회복을 둘러싼 정부의 모호한 태도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오노기 히데지로) 의원:

"국민이 가장 간절히 바라는 것은 조기 강화의 실현과 진정한 독립의 완성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강화의 구체적 조건이나 조약 체결 후 국가의 안전보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에 대해 늘 침묵과 모호함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총리는 독립과 국가 안위라는 이 중대한 문제를 도대체 어떠한 방침으로 대처하려 하십니까? 국민 앞에 솔직하게 밝혀 주십시오."

(장내 반응: 의원석 곳곳에서 고개 끄덕임과 집중된 침묵)

단상에 오른 요시다 시게루 총리는 민감한 외교 교섭의 현실적 제약을 앞세우며 즉답을 피했다.

(요시다 시게루) 내각총리대신:

"강화 문제는 연합국 각국의 의향과 국제 정세에 긴밀히 얽혀 있는 사안입니다. 아직 연합국 측에서도 강화의 구체적 조건이나 안전보장의 형식을 공식적으로 확정하지 않은 현 단계에서, 본인이 이 자리에서 앞질러 구체적인 조건이나 방침을 명시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외교상 극히 곤란하며 적절치도 않습니다."

(장내 반응: 의원석에서 터져 나온 웃음과 웅성거림)

속기록에 남겨진 의원들의 웃음은 총리의 원론적인 회피를 꿰뚫어 본 의회의 냉소이자 여유였다.

전전 군국주의 시절 총리를 향한 비판이 반역이나 불충으로 몰려 침묵을 강요당했던 모습과 비교하면, 이는 결코 작은 변화가 아니다. 의회는 국가의 운명이 걸린 안보와 독립의 방식을 놓고 최고 권력자를 공개적으로 압박했고, 총리는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대신 현실 정치의 제약을 들어 의회를 설득해야 했다. 의사당 안에서 권력을 향한 질문과 그에 답해야 할 책무가 비로소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은 이 새로운 질서를 다시 흔들었다. 일본국헌법 제9조는 전쟁을 국가의 권리로 포기했지만 한반도에서 실제 전쟁이 벌어지자 미국은 일본의 방위력 강화를 요구했고 경찰예비대가 창설되었다. 동시에 미군의 대규모 군수조달, 이른바 한국전쟁 특수는 일본의 산업생산과 수출회복에 상당한 자극을 주었다. 전쟁을 포기한 나라의 경제재건에 이웃 한반도의 전쟁이 중요한 외부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은 전후 일본사의 가장 뚜렷한 역설 가운데 하나였다.

국회에서 재군비가 핵심 쟁점으로 등장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1951년 1월 27일 제10회 국회 중의원 본회의에서 요시다는 재군비와 헌법개정에 관한 질문을 받고, 당시 정부가 헌법개정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지 않으며 현 상황에서 재군비를 추진할 생각도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영원히 재군비하지 않겠다는 말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선을 그었다. 답변 뒤에는 박수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 대목은 전전과 전후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전전 일본에서 군비는 국가의 명예와 생존, 충성의 문제로 도덕화되었다. 반면 요시다는 군사력을 당장 가능한가, 헌법에 맞는가,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가라는 정책적 문제로 설명했다. 군사정책이 국가의 신성한 영역에서 다시 의회가 비용과 법적 근거를 따질 수 있는 정책의 영역으로 돌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 국회 [사진=로이터 뉴스핌]

샌프란시스코 체제: 국제사회 복귀인가, 종속적 독립인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미일안전보장조약을 둘러싼 국회토론에서는 '독립'이라는 하나의 단어를 놓고 정부와 야당이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요시다에게 독립은 가능한 조건에서 점령을 끝내고 국제사회로 복귀하는 일이었다. 미국과의 동맹은 그 독립을 현실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장치였다. 반면 사회당을 비롯한 비판세력은 미국 군대가 일본에 계속 주둔하고 일본이 미국의 냉전전략 안에 들어가는 상태를 완전한 독립으로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1951년 8월 16일, 제11회 국회 중의원 본회의 단상에 오른 요시다 시게루 내각총리대신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초안의 성격을 설명하며 패전을 처벌이 아닌 국제사회 복귀라는 새로운 언어로 규정했다.

(요시다 시게루) 내각총리대신:

이번 대일평화조약 초안은 과거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패전국에 대한 가혹한 징벌이나 감시를 목적으로 하는 조약이 아닙니다. 전쟁에 따른 전후 처리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항만을 두고, 장래 일본과 연합국 간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우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작성된 화해와 신뢰의 조약입니다. 우리 국민은 이 조약을 통해 마침내 주권을 완전히 회복하고, 명예로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복귀하게 될 것입니다.

(장내 반응: 여당 의원석 전반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

그러나 이튿날인 8월 17일 본회의 질의에서 일본사회당의 스즈키 모사부로(鈴木茂三郎) 의원은 정부의 이른바 화해와 신뢰 수사를 통렬하게 비판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스즈키 모사부로) 의원:

총리는 이번 조약을 화해와 신뢰의 산물이라 자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약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미군 주둔을 용인하고 국토를 외국 군대의 기지로 내맡기는 불평등과 군사적 종속의 위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미국에 이토록 일방적이고 과도한 권리를 안겨주면서 그것을 어찌 화해와 신뢰라는 미사여구로 포장할 수 있단 말입니까? 전면 강화와 영세 중립을 포기하고 기지 제공 조약을 감수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독립국가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까?

(장내 반응: 야당 의원석 곳곳에서 터져 나온 열렬한 박수와 공감의 환호)

스즈키 모사부로(鈴木茂三郎) 일본 사회당 의원 [사진=위키미디어 공용]

전전의 제국의회라면 국가의 존립과 외교 교섭을 둘러싼 야당의 이러한 비판은 체제 전복이나 불충으로 몰려 국회 밖으로 배제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1951년의 국회에서는 총리가 제시한 국가 진로의 언어에 맞서 야당이 자주독립의 실질적 의미를 따져 묻는 날 선 질문이 의사당 안에 공존하고 있었다.

1951년 10월 평화조약 및 미일안전보장조약 특별위원회의 분위기는 더욱 생생하다. 요시다가 강화조약을 설명하는 동안 의원석에서 "마이크가 들리지 않는다"는 고함과 여러 끼어들기가 이어졌고, 요시다는 "조용히 들으라"는 취지로 맞받아쳤다.

속기록은 이런 소란까지 그대로 남기고 있다. 중요한 것은 국회가 시끄러웠다는 사실이 아니다. 정부와 야당이 미국 의존과 독립, 중립과 동맹이라는 서로 다른 국가전략을 공개적으로 놓고 신랄하게 응수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즉 전전 말기의 국회에서 사라졌던 정책적 선택지가 다시 나타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52년 4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되면서 일본은 공식적으로 점령을 끝내고 주권을 회복했다. 그러나 미군은 일본에 계속 주둔했고 일본의 안보는 미일안전보장조약에 의존하게 되었다. 따라서 일본의 전후 독립은 처음부터 불완전한 성격을 띠고 있다.

주권은 회복했지만 안보의 상당 부분을 다른 국가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일본의 보수정부는 이를 즉각적인 군사자립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함으로써 경제를 회복할 시간을 확보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전후 일본의 미국 의존과 경제재건은 서로 다른 정책이 아니라 하나의 국가전략으로 채택된 셈이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교수 [사진=뉴스핌 DB]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달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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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법무장관에 민변 출신 이용철 '성남라인' [서울=뉴스핌] 박찬제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은 6일 새 법무부 장관에 이용철(66·순창) 현 방위사업청장, 국세청장에 안덕수(55·부산) 서울지방국세청장을 후보로 지명했다. 청와대 새 정무수석으로는 최인호(60·창녕) 더불어민주당 재선 의원 출신인 주택도시보증공사 사장을 임명했다. 임광현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인사 발표 브리핑을 했다. 임 실장은 "국민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듣고 소통하겠다는 의지이며 국민 삶 속에 정책 변화와 효능감이 체감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이번 인사 방향을 설명했다. 임 실장은 이 법무장관 후보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출신으로 인권 보호와 민주 가치 증진에 힘써 온 변호사"라며 "참여정부 민정수석실 민정2비서관과 법무비서관을 역임하며 반부패와 제도개혁을 주도한 바 있다"고 소개했다. 임 실장은 "법조인이면서도 구조개혁 등 다양한 행정 경험을 갖춘 만큼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를 안착시키고 누구도 소외되거나 억울한 일을 겪지 않는 법무 행정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이번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임 실장은 이 후보가 과거 대장동 사건에 연루됐다는 언론 질문에 "그 부분은 검증 때 감안됐고 자세한 건 국회 인사청문회 때 본인이 소명할 걸로 기대한다"며 "적임자를 뽑기 위해 다양한 많은 분에 대한 검증이 있었다"고 밝혔다.  안 국세청장 후보에 대해 임 실장은 "국세청 1조사국장과 징세법무국장, 납세자보호담당관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세무 행정 전문가"라며 소개했다. 임 실장은 "성실하게 세금을 내는 국민이 손해 보지 않도록 악의적 탈세와 숨긴 재산은 끝까지 추적해 조세 정의를 실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인선 이유를 설명했다. 최 정무수석 내정자에 대해 임 실장은 "부산 지역 재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민주당 최고위원과 수석대변인을 역임하며 소통과 통합의 가치를 실천해 온 정치인"이라고 소개했다. 임 실장은 "우리 사회의 통합과 성장을 위해 더 낮은 자세로 여야, 국민과 소통하며 국민이 하나 되는 정치를 뒷받침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임 실장은 "청와대 내부 인사는 검토가 되는 대로 업무의 연속성과 개혁 성과, 국민 체감을 위해서 필요한 경우에는 적당한 시점에 인사를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pcjay@newspim.com 2026-11-0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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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칼 최대주주 오른 호반건설…항공업 진출? [서울=뉴스핌] 송현도 기자 = 호반그룹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을 0.11%p(포인트) 차로 제치고 한진칼 최대주주(지분율 20.69%)에 오르면서 호반건설의 지분 매입 의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단순 투자라는 공식 입장과 달리, 건설업 불황 속 한진칼 지분이 그룹의 재무적 가치를 뒷받침하는 핵심 자산으로 자리 잡은 데다 과거 금호산업 인수전부터 이어진 항공업 진출 구상에도 다시 힘이 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 분양 반토막·PF 대위변제 덮은 6152억 평가차익… 호반의 '손익 방어막' [AI그래픽=송현도 기자] 6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호반건설이 주택·건설 경기 침체 속에서도 수천억원을 투입해 한진칼 지분을 확보한 배경에는 재무적 실익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진칼 주가 상승에 따른 대규모 평가이익이 건설업 불황으로 악화한 그룹의 실적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호반건설의 2025년 연결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연결 매출액은 1조2326억원, 영업이익은 1361억원으로 전년(매출 2조3706억원, 영업이익 2716억원) 대비 각각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주력 사업인 분양수익이 1조1476억원에서 2531억원으로 급감한 영향이 컸다. 영업활동 현금흐름도 4728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 의무에 따라 4395억원을 대위변제하면서 2381억원의 기타대손상각비를 인식하는 등 재무 부담도 커졌다. 올해 2월에는 대위변제에 따른 구상채권과 상계하는 방식으로 대구 황금동 주상복합 용지를 2750억원에 취득하기도 했다. 이 같은 본업 부진을 상쇄한 것은 한진칼 지분에서 발생한 평가이익이다. 취득원가가 6966억원인 한진칼 지분의 장부가액은 지난해 말 1조5544억원으로 늘었다. 호반건설은 이를 통해 한 해 동안 6152억원의 금융자산 평가이익을 인식했다.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감소했음에도 당기순이익은 4752억원으로 전년(2657억원)보다 78.8% 증가했다. 100% 자회사인 호반호텔앤리조트도 비슷한 구조다. 본업 영업이익은 182억원에 그쳤지만, 보유 중인 한진칼 주식(장부가액 5902억원)에서 2267억원의 평가이익이 발생하면서 당기순이익 1872억원을 기록했다. 호반호텔앤리조트는 이를 바탕으로 모회사 호반건설에 1000억원의 현금배당을 결의하며 자금 공급 역할도 했다. 결국 한진칼 지분은 호반그룹의 실적 방어와 현금 확보에 기여하는 핵심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향후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이어지면서 한진칼 주가가 추가 상승할 경우 평가이익 확대는 물론 그룹의 순이익과 배당 여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집중투표제' 무기 쥔 호반… 이사회 진입 시 한진 경영권 영향 호반이 내년 3월 정기주총에서 이사회 진입에 성공할 경우, 단순 주주를 넘어 한진그룹 지배구조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한진칼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한진칼은 올해 3월 정기주총에서 상법 개정에 맞춰 정관 제30조의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을 삭제했다. 집중투표제란 주주총회에서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주주가 1주당 선임할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받고 이를 특정 후보 1명에게 몰아주거나 나누어 투표할 수 있는 제도로, 내년 3월 주총이 한진칼에 집중투표제가 의무 적용되는 첫 무대가 된다. 내년 3월 20일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이사는 배성례(ESG경영위원회·보상위원회 위원장), 송백훈(분리선출 감사위원 겸 감사위원장), 홍동표(감사위원 겸 독립이사후보추천위원장) 위원 등 3명이다. 특히나 분리선출 감사위원 표결에서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하는 강화된 '3% 룰'이 적용된다. 오는 12월 31일 주주명부 폐쇄일 기준 최대주주가 되는 쪽이 의결권에서 불리해지는 구조다. 조원태 회장이 예고대로 12월 중 지분 0.49%를 추가 매수해 최대주주를 탈환하면 조 회장 측 전체 의결권은 3%로 묶이는 반면, 2대 주주가 되는 호반 측은 계열사별로 나눠 총 6.32%를 행사할 수 있다. 호반 입장에서는 감사위원 표결의 실리를 챙기기 위해 연말까지 조 회장의 최대주주 복귀를 용인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일반 사외이사 선임에서도 호반이 주총 6주 전(내년 2월 중순)까지 보유 목적을 경영참여로 바꾼 뒤 집중투표제를 신청해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면 이사회 진입 가능성이 높아진다. 호반 측 인사가 이사회와 감사위원회에 1석이라도 진입하면 상법상 회계장부 열람권과 주요 안건 의결권을 바탕으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 자금 지원, 자회사 부동산 매각, 배당 정책 등에 관여할 수 있다. 나아가 호반호텔앤리조트(리솜리조트)와 한진칼 산하 호텔·관광 계열사(칼호텔네트워크, 한진트래블) 간의 사업 시너지나 자산 매각 협상을 요구할 기반도 확보하게 된다. 반면 한진칼은 지난해 8월 보유 자사주 44만44주(0.66%)를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전량 출연해 현재 방어에 쓸 수 있는 보통주 자사주가 3주뿐이다. 올해 1월 자회사 칼호텔네트워크가 그랜드하얏트인천 웨스트타워를 2100억원에 매각해 한진칼 본사 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 3201억원)은 늘어났지만, 회사 자금으로 자사주를 사들여 방어에 나설 수는 없어 조 회장 개인과 우호 세력의 자금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다. ◆ 금호산업 인수전부터 이어진 항공업 진출 시도… 산은 지분 매각이 승부처 재계와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호반의 목표가 단순 차익 실현을 넘어 한진그룹 경영권 인수에 맞춰져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김상열 호반그룹 창업주는 지난 2015년 아시아나항공의 모회사였던 금호산업 인수전에 단독 응찰하며 항공업 진출을 시도한 바 있다. 당시 채권단과의 가격 이견으로 무산됐지만, 이후 리솜리조트와 퍼시픽랜드를 인수해 레저 사업을 확장했고 2022년 사모펀드 KCGI로부터 한진칼 지분을 사들이며 항공·레저 수직계열화를 추진했다. 주택 사업에 편중된 그룹의 포트폴리오를 바꿀 카드로 한진칼을 낙점했다는 평가다. 내년 3월 주총에서는 조 회장 측과 델타항공, 한국산업은행(10.58%) 등 우호 지분이 과반에 육박해 당장 경영권 확보가 쉽지 않다. 한진칼 시가총액이 적정 가치(3조3000억원 추산)를 웃도는 12조3000억원대까지 올라, 장내에서 지분 1%를 추가 확보하는 데 1230억원이 드는 점도 부담이다. 호반건설의 지난해 말 연결 현금 및 단기유동성 금융자산이 1조1916억원 수준이지만, 단기금융부채 역시 1년 새 679억원에서 5172억원으로 늘어 장내 매수를 지속하긴 어렵다. 결국 향후 승부처는 항공 산업 구조 개편이 끝난 뒤 시장에 나올 산업은행의 한진칼 지분 10.58%다. 대한항공은 올해 5월 아시아나항공 흡수합병을 결의한 데 이어 8월 12일 소규모합병 승인 이사회 결의를 완료하며 연말 통합 항공사 출범을 앞두고 있다. 내년 3월 저비용항공사(LCC) 3사 통합까지 마무리되면 산은이 지분을 보유할 정책적 명분은 사라지고 공적자금 회수 절차가 진행된다. 산은은 2020년 11월 체결한 투자합의서에 따라 의무 위반 시 5000억원의 위약벌을 부과할 담보로 조원태 회장의 한진칼 주식 385만8869주(약 5.78%)에 근질권을 설정해 두고 있으며, 유사시 조 회장 지분까지 묶어 제3자에게 팔 수 있는 동반매각요구권과 동반매도참여권을 보유하고 있다. 호반이 20%대 지분을 바탕으로 이사회에 진입해 경영에 관여하다가 향후 산은 지분 10.58% 인수전에 참여해 이를 확보할 경우, 지분율을 31%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산은 지분 인수나 경영권 확보가 여의치 않더라도, 과거 대우건설·금호산업 사례에서 보듯 지분 가치를 높인 뒤 조 회장 측 우호 세력에게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블록딜로 넘기는 출구 전략을 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dosong@newspim.com 2026-11-0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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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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