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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티션스토리] (상) 농사짓던 중학생 송석준, 3선 의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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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22일 유튜브 채널 뉴스핌TV '폴리티션 스토리'에 출연해 국토교통부 관료를 거쳐 3선 국회의원이 되기까지의 삶을 진솔하게 털어놨다.

경기 이천에서 나고 자란 송 의원은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고 직접 농사를 지으며 학업을 병행한 성장기를 전했다.

그는 서울로 전학 후 도시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형제들의 헌신적인 뒷바라지와 친구들의 응원 덕에 서울대 국제경제학과에 진학하며 꿈을 이어갔다.

공직 생활 중에는 국토부에서 신도시 개발, 부동산 정책, 공간정보 산업 육성 등의 정책을 이끌었으며, 이후 정치에 입문해 수도권 규제 개선과 지역 교통망 확충에 앞장서고 있다.

송 의원은 "불합리한 규제 개선과 서민경제 활성화를 위해 입법과 예산에 힘쓰겠다"며 하반기 정치적 목표를 밝혔다.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 [사진=뉴스핌 DB]

1964년 경기 이천에서 태어난 송 의원은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행정고시에 합격해 1990년 국토부(당시 건설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국토계획·부동산·신도시 정책 등 핵심 업무를 맡으며 25년간 국토교통부 대변인, 건설정책국장, 서울지방국토관리청장 등을 역임했다.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소속으로 이천시 지역구에 출마해 첫 당선된 후, 내리 3선에 성공했다. 오랜 관료 경험을 바탕으로 국회에서 국토교통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수도권 규제 완화, 지역 균형 발전, 부동산 정책 개선 등에 주력하고 있다.

다음은 송 의원과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일문일답. 자세한 이야기는 뉴스핌TV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신정인 기자, 이하 신 기자)
지금 지역구인 경기 이천에서 나고 자라셨는데 학창 시절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송석준 의원, 이하 송 의원)
학창시절을 아주 좀 남달리 보냈던 것 같아요. 어릴 때 과학자가 되고 싶은 꿈도 있었고 그래서 이렇게 좀 책 읽기를 좋아했는데 중학교 1학년 초에 아버님을 일찍 여의고 또 직접 아버지 대신에 이제 농기계 없이 농사를 짓는 그런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일과 또 공부를 같이 병행할 수밖에 없는 좀 독특한 경험을 좀 했습니다.

-(신 기자)
의원님께서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출신이시잖아요. 농업과 학업을 병행하시면서 서울대 입학하시기까지 고난도 많으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이겨내셨는지

▲(송 의원)
중학교 고등학교 시골에서 다닐 때는 공부 환경도 그렇게 좋지 않았을뿐더러 일을 농기계 없이 육체 노동으로 하다 보니까 공부를 몇 번을 포기하고 싶은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받은 이제 강한 정신력을 기반으로 해서 육체적인 고통은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열악한 공부 환경이지만 그래도 농사 일을 하면서 공부하면서 제가 하고 싶었던 건 다 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정말 힘들었던 것은 서울의 인창고라고 도시 학교로 전학을 와서, 오히려 공부 시간이 3배로 더 많아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성적이 거꾸로 곤두박질 치고 제가 뜻대로 되지 않는 그런 게 너무 많았습니다.
선생님들도 훌륭하시고 공부 시간도 많고 그런 좋은 환경 속에서 오히려 더 성적이 곤두박질 치는 걸 보고 많이 방황하고 좌절하고 힘든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사실 몇 번을 때려치고 검정고시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이겨내고 보니까 그래도 세상에 어떤 힘든 일도 참고 이 방향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은 가고자 하는 종착지에 도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참 그래도 친구들의 도움이 컸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많이 방황하고 힘들 때 이제 물론 이제 어머님이나 형제들의 도움이 컸지만 특히 친구들이 이런저런 것으로 많이 힘이 되어 준 게 빨리 도시 생활에 적응을 하고 제가 이제 목표로 한 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힘이 됐던 것 같습니다.

-(신 기자)
친구분들하고도 굉장히 잘 지내셨던 것 같은데 별명도 따로 있으셨나요

▲(송 의원)
제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생활하다 보니 원래도 형제들 중에서도 검은 편인데 얼굴이 그을려서 더 까맸습니다.
서울로 전학을 왔을 때 대뜸 제가 반에 쑥 얼굴을 드밀자마자 애들이 한결같이 합창하듯이 저한테 부른 별명이 있었거든요. '또잡토'라고. 당시에 인창고 2학년 4반에서 얼굴이 제일 좀 검은 편에 속했던 연탄이라는 애가 있었는데 걔보다 더 검은 애가 아잡토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소위 아프리카에서 잡아온 토인 약자로 '아잡토'였는데 제가 반에 가니까 저보고 '또 잡아온 토인' 해서 '또잡토'. 그래서 제가 고등학교 때 또잡토라는 별명을 들으면서 서울 학창 시절을 보낸 적도 있었습니다.

-(신 기자) 7남매 중 넷째이시잖아요. 아까도 좀 형제분들의 도움 많이 받으셨다고 했는데 어떤 식으로 서로 의지하면서 지내셨었는지

▲(송 의원)
저는 사실은 7남매 중에 딱 가운데 넷째라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는 제가 좀 찬밥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좀 형제 중에 가운데 낀 형제라 조금 제가 외톨이 되고 소외받을 때도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제 제가 성장하고 학창시절을 보내다 보니까 형제들 모두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큰누님이나 둘째 누님이 사실 학교를 많이 못 다니셨습니다. 최저학력으로 이렇게 사회생활을 시작하셨는데 우리 큰누님이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서울의 양장점에서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하셔서 저한테 매월 당시에 그래도 소년중앙이라는 거를 사서 손편지하고 함께 보내주신 그때 그 책을 통해서 제가 시골 생활을 하지만 도회지 친구들의 그런 의식 세계를 같이 좀 간접 경험할 수가 있는 게 큰 힘이 됐었습니다

특히 거기에 매년 1월로 부록으로 일기장이 딸려 나왔는데 그 책이 너무 귀하고 그 일기장이 소중해서 제가 하루도 거름없이 그 일기장을 채워 놓는 게 습관이 돼서 초등학교 3학년서부터 정치하는 그날까지 매일 일기 쓰는 습관을 갖게 됐습니다.

둘째 누님은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저랑 같이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셨는데 많은 일을 같이 하면서 힘이 되어주셨던 기억이 있고. 결혼하셔서도 많이 챙겨주셨고.

형님은 정말 누구보다 본인이 희생을 하셨습니다.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형님이 고등학교 갈 형편이 안 돼서 직업훈련원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이후 형님이 기능공으로 취직을 해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그 퇴직금으로 저를 전학시켜준 겁니다.

형님이 지금도 고향을 지키고 어머님 모시고 농사를 짓고 있지만 저를 위해 본인의 미래를 희생한 것이 컸습니다. 여동생은 그 당시에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밥 해주고 빨래해 주면서 저를 뒷바라지해 줬습니다. 제가 서울대에 가는데 굉장히 정신적으로 큰 힘을 얻는 계기가 됐죠.

-(신 기자)
공직 생활을 쭉 줄곧 하시다가 직후에 바로 새누리당에 입당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처음으로 당선되시고. 그때 의원님을 정치권으로 끌어주시거나 좀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많이 준 분이 누군지 궁금한데요.

▲(송 의원)
정치인이 되고자 할 때는 많은 분들은 상식적으로 그렇게 얘기하세요.
누가 좀 기존 정치권에서 이렇게 추천하거나 끌어주지 않았느냐. 그런데 사실은 저는 그게 없었거든요.

저는 소년 농군 가장으로 농사지으면서도 과학자의 꿈을 키우다가 2학년 때 이천군 과학경시대회 나갔다는데 예선 탈락을 하면서 노벨 물리학상을 타겠다는 과학자의 꿈이 산산이 깨지고 결국 포기를 해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가 고민하다가 우연히 읽은 책이 존 메어나드 케인즈의 전기문이었는데 그 책을 읽고 제가 '아 과학자가 아니어도 이렇게 경제학자 기반의 행정가나 정치가가 돼서 세상과 경제를 살리고 넉넉하게 할 수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 하도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 아버지가 형제를 많이 낳아놓고 너무 무능하게 자녀들을 키우는 것 같아서 이 다음에 크면 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 제 인생 목표였습니다.

그러고 새롭게 잡은 꿈이 경제학자 기반의 행정가 내지 정치학자였습니다. 그래서 행정 공무원을 하면서도 언젠가는 (정치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우리 지역구에 제 전임 국회의원님이 지방선거 때 무슨 사건 때문에 출당이 되는 사고가 생겼습니다. 당시 제가 정치인의 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지역의 많은 분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면 '이제는 때가 된 것 같다'고 생각해서 나왔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이웃 동네 형님들이 "너 인마 정치를 하려면 진작부터 나한테 와서 부탁을 해야지" 그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분들한테 혼나면서 제가 시작을 했고 그때 같이 저랑 경쟁했던 분들은 다 벌써 중앙당에 '친박'이네 '친이'네 하면서 줄이 있었는데 저는 사실 그런 거 없이 그냥 오로지 시민들만 믿고 '시대적인 상황이 내가 이제 움직일 때가 됐구나' 해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정치 활동을 하면서 많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또 제가 많이 참고를 하는 분이 이경재 의원님이십니다. 강화군 지역구였지만 원래 고향이 이천이세요. 어릴 때 저처럼 일찍 아버님을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고생을 많이 하시면서 크셨고 그래서 저랑 인생 역정이 비슷하십니다. 그분하고 의정 활동을 하면서 많이 도움도 받고 배우면서 정치 활동을 해왔습니다.

-(신 기자)
요즘도 종종 만나 뵙거나 소통하세요?

▲(송 의원)
지금도 '품앗이'라는 활동을 하시는데 국회에서 '동심 한마당'이라고, 매년 어린이날을 전후해서 열리는 행사도 같이 제가 도와서 하고 있고요. 이제 지역 행사할 때도 같이 또 뵙습니다.

-(신 기자)
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90년도에 국토부처 관료로 입직하셔서 서울지방국토관리청장까지 역임을 하셨습니다. 사실 정치인으로서의 생활과 공무원으로서의 생활은 많이 다를 것 같은데 좀 어떤 부분이 가장 크게 다르다고 느끼셨는지

▲(송 의원)
많이 다르죠. 제가 그것 때문에 사실 정치인의 길을 택한 거거든요. 제가 행정 고시 재경직을 합격 해서 당시 건설부 처음에 들어왔고, 건설교통부 나중에는 국토해양부 국토교통부 이렇게 이름이 바뀌었지만 그 부서에서 25년 공직생활을 하면서 많은 보람이 있는 일도 했었죠.

5기 신도시 1기 신도시도 만드는 일로 시작을 해서 우리나라의 국토이용계획법제로 회사를 정비하는 일도 하고 또 IMF 직후에 부동산 경기 활성화 제도, 그때 토지공개념을 과감하게 손을 대고.

부동산 경기 활성화 시책도 한 기억도 있고 청와대에도 파견 나와서 우측보행 제도를 도입한다든가, 총리실로 파견 나가서 국장 시절에 새만금 마스터플랜을 만든 기억도 있고요.

제가 공간 정보 산업이라는 거를 처음 우리나라 11번째 특수산업으로 분류 독립 시킨 기억도 있고. 그런데 행정부는 기본적으로 이렇게 할 수 있는 한계가 명확하더라고요.
그러니까 편하긴 하죠. 또 파워도 있죠. 예산을 집행하고 법률을 집행하니까 파워도 있고 이렇게 또 안온한 철밥통에 그런 건 있지만 또 한계 국회가 정해준 그 한계를 넘을 수 없다라는 거. 그래서 저는 특히 우리나라가 아직도 불합리한 제도가 많다고 봅니다. 대표적인 것이 이제 시대적 소명을 다한 수도권 규제 같은 거죠.
이미 수도권 규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계속 늘어났고 이미 수도권이 거의 다 포화 상태가 왔단 말이에요.
지금 서부 쪽으로는 평택 화성까지 다 이미 개발이 됐고 수도권의 자연 보전 권역이라고, 그나마 동남부권에 이천 여주 양평 일부하고 안성 용인 광주 일부만 남았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이쪽은 급속히 난개발로 가고 있단 말이에요.

난개발 아니면 그냥 모든 개발이 사실상 막지 못하면서 결국은 난개발만 초래하는 이 잘못된 제도를 좀 손을 대겠다.
그래서 수도권 규제를 막연하게 규모로 제한하는 것을 계획적 개발과 관리가 가능하게끔 풀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들어왔는데 와보니까 아직도 이 지방의 논리에 의해서 그 형해화된 수도권 규제가 그대로 있다는 게 너무 안타깝고요.

그런 거를 국회에 가서 직접 한번 바꿔봐야겠다라고 들어왔는데 쉽지는 않아요. 그래도 이제 여기서 뛰니까 좀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보이고 특히 재원 법인에 있어서도 예비 타당성 제도라는 것 때문에 꼭 해야 될 사업도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것도 지금 제가 예산 참여할 때 적극적으로 관여해서 해결할 수 있고. 국회로 오면 행정부와 달리 무한 책임이기 때문에 힘들고 보다 더 고달픈 건 있지만 소위 법도 만들 수 있고 또 예산도 정부 편성안을 뜯어고칠 수 있는 그런 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보람이 있는 일은 확실히 정치권이 더 많이 할 수 있구나 하는 점이 있습니다.

-(신 기자)
올 하반기 목표나 아까 말씀하신 규제 완화 이런 거 관련해서 좀 어느 정도까지 하겠다 이런 목표가 따로 있으실까요?

▲(송 의원)
사실은 그 수도권 규제 문제는 좀 더 지방 의원님들의 공감대를 더 많이 형성을 해야 되기 때문에 굉장히 어렵고도 지난한 과제입니다.
그렇지만 계속 좀 설득을 해서 올해도 일부 규모 면에서 이제 그동안에 산업단지 2만 평으로 제한돼 있던 것을 이제는 연접해서 10만 평까지 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 해서 불합리한 규모 제한을 없애고 계획적으로 개발할 수 있게끔 할 계획이고요.

이천이 교통의 요충지 도시인데 거기 철도망이 별자형으로 중심 축이 형성이 되도록 돼 있습니다. 이천에서 그런 시대를 빨리 당길 수 있도록 좀 노력하고 있고요.

그 외에 지금 부동산 시장도 대부분 지역이 너무 침체되어 있고 건설 시장이에 건설업계가 너무 좀 어려웠고 그것이 결국은 지방 경제와 바닥 경제를 굉장히 어렵게 하기 때문에 그런 경제 활성화라든가 특히 중소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의 애로를 해결하는 데 각종 입법, 예산을 통해서 서민 경제의 온기와 활력을 높이는 데 역점을 두고자 합니다.

allpas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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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총 10배 증가' 팀 쿡 시대의 종언 이 기사는 8월 31일 오후 4시56분 '해외 주식 투자의 도우미' GAM(Global Asset Management)에 출고된 프리미엄 기사입니다. GAM에서 회원 가입을 하면 9000여 해외 종목의 프리미엄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뉴스핌] 김현영 기자 = 2026년 8월 31일은 팀 쿡이 애플(종목코드: AAPL) 최고경영자(CEO)로서 보내는 마지막 근무일이다. 2011년 스티브 잡스 사망 이후 15년간 애플을 이끌어온 그는 다음 날인 9월 1일부로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나고, 오랜 기간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부문을 총괄해온 존 터너스 수석부사장이 새로운 수장 자리에 오른다. 취임 8일 만에 신제품 발표회라는 첫 시험대에 오르는 터너스의 데뷔 무대는 9월 9일로 예정돼 있으며, 이 자리에서 애플의 첫 폴더블 아이폰이 공개될 가능성이 유력하게 점쳐지면서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시총 10배 키운 팀 쿡, 그가 남긴 유산 쿡이 재임하는 동안 애플의 시가총액은 약 3,500억 달러에서 4조 6000억달러 이상으로 불어났다. 지난 7월에는 잠시 5조 달러 선을 넘기도 했다. 전설적인 창업자의 뒤를 이어받는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부담을 수반하는 과제임에도, 쿡은 재임 기간 주주가치를 10배 넘게 끌어올렸다. 시장에서는 지난 15년간 전 세계에서 주주가치를 견인한 CEO들 가운데서도 가장 성공적인 축에 속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사진=애플] 쿡의 가장 큰 공로로 꼽히는 것은 2007년 처음 출시된 아이폰 사업을 애플의 지속적인 성장을 견인하는 엔진으로 완전히 변모시켰다는 점이다. 아이폰은 2025년 애플 전체 매출 4,161억 달러 가운데 2,095억 달러를 차지하며 단일 사업 부문이 전체 매출의 약 50%를 책임졌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글로벌리서치의 왐시 모한 애널리스트는 아이폰 제품군을 다양한 가격대에 걸쳐 폭넓게 확장시키고, 이와 연동된 공급망의 복잡성을 관리해낸 것이 전적으로 쿡의 공로라고 평가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쿡은 애플뮤직플러스, 애플TV플러스, 애플피트니스플러스, 애플워치, 에어팟 등 아이폰과 연계된 폭넓은 제품·서비스 생태계를 구축했다. 그 결과 서비스 부문은 이제 애플의 두 번째로 큰 사업으로 자리 잡아 지난해 1,091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세 번째로 큰 부문인 웨어러블 기기 역시 356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만약 쿡이 아이폰 프랜차이즈를 서비스 부문으로까지 확장하지 못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규모와 위상의 애플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2007년 아이폰을 공개한 故 스티브 잡스 [사진=블룸버그] 재임 기간 내내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각의 비판론자들은 아이폰의 뒤를 이을 만한 후속 제품이 부재하다는 점을 회사의 혁신 동력 약화를 보여주는 신호로 지적해왔다. 이에 대해 모한 애널리스트는 쿡이 물려받은 포트폴리오를 고려할 때 그가 각 사업 부문을 엄청나게 성장시켰으나, 아이폰이 워낙 크고 성공적이다 보니 다른 성과들을 가려버리는 측면이 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수년 만에 처음 선보인 신규 제품군이었던 비전 프로는 다소 아쉬운 성과에 그쳤지만, 애플은 이 헤드셋을 위해 개발한 일부 기술을 향후 출시할 스마트글라스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들어서는 생성형 AI(인공지능) 도입이 더디다는 비판에 직면하며 차세대 개선판 시리(Siri)의 출시가 지연된 상태다. 그럼에도 AI 칩과 데이터센터에 수천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는 경쟁사들과 달리, 애플은 월가를 뒤흔들고 있는 AI발 밸류에이션 충격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 완벽주의자 터너스는 누구인가 바통을 이어받는 존 터너스는 2001년 애플 제품 디자인팀의 일원으로 입사한 뒤 2013년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부문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2021년에는 수석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으며 애플 입사 전에는 버추얼 리서치 시스템스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지난 3월 맥북 네오 공개 행사 등 주요 제품 발표 무대에 여러 차례 등장하며 존재감을 넓혀왔지만, 최근 몇 년간 회사를 유심히 지켜본 이들이 아니고서는 여전히 대중에게는 낯선 인물이라는 평가가 많다. 애플 팀 쿡 최고경영자(CEO, 좌)와 차기 CEO로 취임 예정인 존 터너스 [사진=블룸버그] 터너스는 애플이 추구하는 완벽주의적 성향을 그대로 체현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2024년 펜실베이니아대 공대 졸업식 축사에서, 자신이 맡았던 첫 애플 제품인 애플 시네마 디스플레이의 후면 나사 홈 개수를 두고 협력업체와 벌였던 실랑이를 소개한 바 있다. 협력업체가 제시한 나사는 홈이 35개였지만 터너스는 애플이 원하는 25개를 끝내 고수했다는 일화로, 사소해 보이는 부분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품을 대하는 자신의 원칙이라는 취지였다. 애플 측은 맥 라인업을 역대 최고 인기 제품군으로 끌어올리고 아이폰17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선보였으며 에어팟을 개선하는 데 터너스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여러 제품에 사용되는 재활용 알루미늄 합금 개발을 주도했고, 애플워치 울트라3에 적용된 3D 프린팅 티타늄 소재 작업에도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이폰 17 프로 [사진=블룸버그] 지난 4월 발표된 이번 경영권 승계는 애플이 기기 사업이라는 본업에 다시 힘을 싣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공급망과 영업, 재무에 밝았던 쿡과 달리 터너스는 하드웨어 엔지니어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가 외부 영입 인사가 아니라 회사 내부를 25년 가까이 깊이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은 경영권 교체기에 흔히 발생하는 운영·전략적 실수의 위험을 낮춰주는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그만큼 더딘 전환기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터너스는 AI가 촉발한 기술업계의 대격변 한복판에서 애플을 이끌게 됐다. 아이폰을 뒤이을 차세대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 스마트글라스나 AI 핀 등 AI 기반 신제품에 사활을 건 경쟁사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애플 역시 소비자 전자업계에서의 지배력을 이어가려면 이 분야에서 자체적인 답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투자자들은 정교한 가격 전략과 흠잡을 데 없는 실행력, 실질적인 파급력을 갖춘 제품 로드맵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 9월 9일 데뷔 무대, 관전 포인트는 '폴더블 아이폰' 터너스 신임 CEO에게 주어진 첫 시험대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찾아온다. 애플은 9월 9일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파크 내 스티브 잡스 극장에서 신제품 발표 행사를 연다. 이미 "서프라이즈 앤드 샤인(Surprise and Shine)"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눈길을 끌 만한 제품 공개를 예고한 상태다. 애플은 구체적인 제품 라인업을 아직 밝히지 않았지만, 신형 아이폰과 업그레이드된 애플워치는 물론 스마트홈 시장을 겨냥한 여러 제품을 포함해 최대 8종에 달하는 기기가 공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애플이 8월 26일(현지시간) 내달 9일 행사 계획을 발표했다.[사진=애플 웹사이트] 가장 유력한 라인업은 아이폰18 프로와 아이폰18 프로맥스를 포함한 아이폰18 시리즈다. 더 낮은 발열과 긴 사용 시간을 구현할 것으로 기대되는 신형 2나노미터(nm) A20 프로 칩과 배터리 효율 개선·프라이버시 강화·혼잡한 데이터 네트워크 환경에서의 성능 향상을 가능케 할 C2 칩이 함께 탑재될 전망이다. 더 빠른 칩과 개선된 배터리, 카메라 성능이 적용되며 최소한 대형 모델에는 기계식 조리개가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아이폰 에어 2세대와 일반형 아이폰18은 이번 행사에서 빠질 것으로 보인다. 애플이 연중 판매를 고르게 분산하기 위해 이들 제품과 보급형 아이폰18e, 신형 맥, 아이패드의 출시를 내년 봄으로 미룰 것이라는 관측이다. 시장의 진짜 관심은 애플의 첫 폴더블 스마트폰에 쏠려 있다. '아이폰 폴드' 혹은 '아이폰 울트라'로 불릴 가능성이 있는 이 제품이 현실화된다면, 아이폰X(아이폰 텐)과 3D 안면인식 도입 이후 최대 변화로 꼽힐 만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터너스가 이 제품 개발을 직접 주도해왔으며, 그의 취임 시점 자체가 출시에 맞춰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접었을 때는 여권 크기의 일반 스마트폰처럼 작동하다가 펼치면 책처럼 바깥쪽으로 열리며 태블릿 크기의 화면이 드러나는 구조로, 일반 스마트폰처럼 쓸 수 있는 5.3인치 외부 화면과 펼치면 나타나는 7.8인치 내부 화면 등 두 개의 화면을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유출 정보에 따르면 페이스 ID 대신 터치 ID를 탑재하고, 멀티태스킹에 최적화된 초박형 디자인으로 데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가격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여러 매체 보도와 시장조사업체 IDC의 나빌라 포팔 수석 리서치 디렉터에 따르면 예상 소비자가격은 2,000~2,500달러 수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포팔 디렉터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 제품이 상당한 성공을 거둘 것으로 내다봤는데, 최상위층 소비자를 겨냥한 제품인 만큼 이들이 구매를 위해 줄을 설 것이라는 설명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 프리미엄 폴더블 기기가 판매가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애플에 새로운 마진 성장 동력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IDC는 애플이 출시 첫해에만 1,000만 대 이상을 출하하며 침체가 예상되던 폴더블 시장 전체를 구해낼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힘입어 올해 폴더블 부문이 12.6% 성장하고 내년에는 성장률이 18%로 가속화될 것으로 IDC는 전망했으며, 2027년까지 애플이 전 세계 폴더블폰 출하량의 40%, 1,700만 대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②편에서 계속됨 kimhyun01@newspim.com 2026-09-0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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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유착' 한학자 1심 징역 2년 선고 [서울=뉴스핌] 백승은 기자 = 윤석열 정부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의 정교유착 사건의 정점으로 알려진 한학자 통일교 총재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1심 재판에서 총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우인성)는 31일 오후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한 총재와 정원주 전 비서실장(천무원 부원장),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 윤 전 본부장의 배우자이자 전 통일교 재정국장 이모 씨에 대한 선고기일을 열었다. [서울=뉴스핌] 사진공동취재단 = '정교 유착' 의혹에 연루된 한학자 통일교 총재가 3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2026.08.31 photo@newspim.com 이날 재판부는 한 총재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와 청탁금지법 위반·업무상 횡령에 대해 각각 징역 1년씩, 총 징역 2년을 선고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정 전 비서실장은 정치자금법 위반은 징역 8개월, 업무상 횡령은 징역 8개월을 선고하면서도 각 형에 대해 집행유예 2년을 결정했다. 윤 전 본부장은 징역 6개월, 이씨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내렸다. 이 사건에 대해 재판부는 "자금력을 앞세워 제20대 대선을 교세 확장 기회로 보고, 해당 후보(윤석열 전 대통령)가 당선돼 새 정권 출범 후 통일교 정책에 국가 지원을 받아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하기 위해 저질러진 범행"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 정치의 건전한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공직자 공무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을 신뢰하기 위해 제정된 청탁금지법 입법취지 훼손했다"라며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 재판부 "한학자, 통일교 정점…실형 선고 불가피" 한 총재는 2022년 1월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게 통일교 지원을 청탁할 목적으로 '윤핵관' 권성동 전 국민의힘 의원에게 통일교 내부 자금을 활용해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전달했다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는다. 같은 해 3~4월 통일교 자금 1억4400만원을 국민의힘 소속 의원 등에게 쪼개기 후원했다는 혐의(정치자금법 위반), 그해 7월 건진법사 전성배 씨를 통해 김건희 여사에게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가방 등 75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했다는 혐의(청탁금지법 위반), 이를 통해 통일교 자금을 횡령했다는 횡령 혐의도 있다. 같은 해 10월 수사기관이 한 총재와 정 전 실장의 카지노 원정도박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윤 전 본부장에게 회계자료를 없애도록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증거인멸교사)도 받고 있다. 재판부는 한 총재가 "통일교의 정점인 사람"이라며 "제20대 대선후보였던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접근하기 위해 권성동 의원과 접촉해 정치자금 1억원을 제공하고, 그 이후 특별집회 형태로 지지를 표명했다. 이후 김건희에게 명품 가방과 목걸이를 제공했다"고 봤다. 아울러 재판부는 "한 총재의 통일교 내 지위, 윤 전 본부장에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 등을 볼 때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전반적으로 윤 전 본부장이 (범행을) 계획하고 한 총재의 승인을 받아 실행한 것으로 보이고, 한 총재의 개인적 이익보다 통일교 교세나 정치적 영향력 확장 목적으로 보인다"는 점은 유리한 양형 사유로 참작했다. 또 재판부는 '쪼개기 후원' 업무상 횡령에 대해서는 무죄를, 증거인멸 교사에 대해서는 특검법상 수사대상이 아니라며 공소기각을 선고했다. 한 총재는 구속기소 된 상태에서 재판에 넘겨졌지만 현재 건강 악화를 이유로 일시 석방됐다. 지난달 30일 법원은 한 총재의 구속집행정지 기간을 오는 9월 2일 오후 6시로 연장했다. 이날 한 총재는 선고를 마친 후 '입장 한 말씀 부탁드린다', '항소하실 거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며 법정을 빠져나갔다.  한편 권 전 의원은 통일교 측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지난달 16일 징역 2년과 추징금 1억원을 대법원에 확정받았다. 이에 대한변호사협회는 권 전 의원의 변호사 등록을 취소했다. 100wins@newspim.com 2026-08-31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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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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