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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티션스토리] (상) 농사짓던 중학생 송석준, 3선 의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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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22일 유튜브 채널 뉴스핌TV '폴리티션 스토리'에 출연해 국토교통부 관료를 거쳐 3선 국회의원이 되기까지의 삶을 진솔하게 털어놨다.

경기 이천에서 나고 자란 송 의원은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여의고 직접 농사를 지으며 학업을 병행한 성장기를 전했다.

그는 서울로 전학 후 도시 환경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형제들의 헌신적인 뒷바라지와 친구들의 응원 덕에 서울대 국제경제학과에 진학하며 꿈을 이어갔다.

공직 생활 중에는 국토부에서 신도시 개발, 부동산 정책, 공간정보 산업 육성 등의 정책을 이끌었으며, 이후 정치에 입문해 수도권 규제 개선과 지역 교통망 확충에 앞장서고 있다.

송 의원은 "불합리한 규제 개선과 서민경제 활성화를 위해 입법과 예산에 힘쓰겠다"며 하반기 정치적 목표를 밝혔다.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 [사진=뉴스핌 DB]

1964년 경기 이천에서 태어난 송 의원은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행정고시에 합격해 1990년 국토부(당시 건설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국토계획·부동산·신도시 정책 등 핵심 업무를 맡으며 25년간 국토교통부 대변인, 건설정책국장, 서울지방국토관리청장 등을 역임했다.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소속으로 이천시 지역구에 출마해 첫 당선된 후, 내리 3선에 성공했다. 오랜 관료 경험을 바탕으로 국회에서 국토교통위원회 등에서 활동하며 수도권 규제 완화, 지역 균형 발전, 부동산 정책 개선 등에 주력하고 있다.

다음은 송 의원과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일문일답. 자세한 이야기는 뉴스핌TV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신정인 기자, 이하 신 기자)
지금 지역구인 경기 이천에서 나고 자라셨는데 학창 시절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송석준 의원, 이하 송 의원)
학창시절을 아주 좀 남달리 보냈던 것 같아요. 어릴 때 과학자가 되고 싶은 꿈도 있었고 그래서 이렇게 좀 책 읽기를 좋아했는데 중학교 1학년 초에 아버님을 일찍 여의고 또 직접 아버지 대신에 이제 농기계 없이 농사를 짓는 그런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일과 또 공부를 같이 병행할 수밖에 없는 좀 독특한 경험을 좀 했습니다.

-(신 기자)
의원님께서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출신이시잖아요. 농업과 학업을 병행하시면서 서울대 입학하시기까지 고난도 많으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이겨내셨는지

▲(송 의원)
중학교 고등학교 시골에서 다닐 때는 공부 환경도 그렇게 좋지 않았을뿐더러 일을 농기계 없이 육체 노동으로 하다 보니까 공부를 몇 번을 포기하고 싶은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받은 이제 강한 정신력을 기반으로 해서 육체적인 고통은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열악한 공부 환경이지만 그래도 농사 일을 하면서 공부하면서 제가 하고 싶었던 건 다 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정말 힘들었던 것은 서울의 인창고라고 도시 학교로 전학을 와서, 오히려 공부 시간이 3배로 더 많아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성적이 거꾸로 곤두박질 치고 제가 뜻대로 되지 않는 그런 게 너무 많았습니다.
선생님들도 훌륭하시고 공부 시간도 많고 그런 좋은 환경 속에서 오히려 더 성적이 곤두박질 치는 걸 보고 많이 방황하고 좌절하고 힘든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사실 몇 번을 때려치고 검정고시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이겨내고 보니까 그래도 세상에 어떤 힘든 일도 참고 이 방향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포기하지 않으면 결국은 가고자 하는 종착지에 도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참 그래도 친구들의 도움이 컸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많이 방황하고 힘들 때 이제 물론 이제 어머님이나 형제들의 도움이 컸지만 특히 친구들이 이런저런 것으로 많이 힘이 되어 준 게 빨리 도시 생활에 적응을 하고 제가 이제 목표로 한 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힘이 됐던 것 같습니다.

-(신 기자)
친구분들하고도 굉장히 잘 지내셨던 것 같은데 별명도 따로 있으셨나요

▲(송 의원)
제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생활하다 보니 원래도 형제들 중에서도 검은 편인데 얼굴이 그을려서 더 까맸습니다.
서울로 전학을 왔을 때 대뜸 제가 반에 쑥 얼굴을 드밀자마자 애들이 한결같이 합창하듯이 저한테 부른 별명이 있었거든요. '또잡토'라고. 당시에 인창고 2학년 4반에서 얼굴이 제일 좀 검은 편에 속했던 연탄이라는 애가 있었는데 걔보다 더 검은 애가 아잡토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소위 아프리카에서 잡아온 토인 약자로 '아잡토'였는데 제가 반에 가니까 저보고 '또 잡아온 토인' 해서 '또잡토'. 그래서 제가 고등학교 때 또잡토라는 별명을 들으면서 서울 학창 시절을 보낸 적도 있었습니다.

-(신 기자) 7남매 중 넷째이시잖아요. 아까도 좀 형제분들의 도움 많이 받으셨다고 했는데 어떤 식으로 서로 의지하면서 지내셨었는지

▲(송 의원)
저는 사실은 7남매 중에 딱 가운데 넷째라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는 제가 좀 찬밥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좀 형제 중에 가운데 낀 형제라 조금 제가 외톨이 되고 소외받을 때도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제 제가 성장하고 학창시절을 보내다 보니까 형제들 모두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큰누님이나 둘째 누님이 사실 학교를 많이 못 다니셨습니다. 최저학력으로 이렇게 사회생활을 시작하셨는데 우리 큰누님이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서울의 양장점에서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하셔서 저한테 매월 당시에 그래도 소년중앙이라는 거를 사서 손편지하고 함께 보내주신 그때 그 책을 통해서 제가 시골 생활을 하지만 도회지 친구들의 그런 의식 세계를 같이 좀 간접 경험할 수가 있는 게 큰 힘이 됐었습니다

특히 거기에 매년 1월로 부록으로 일기장이 딸려 나왔는데 그 책이 너무 귀하고 그 일기장이 소중해서 제가 하루도 거름없이 그 일기장을 채워 놓는 게 습관이 돼서 초등학교 3학년서부터 정치하는 그날까지 매일 일기 쓰는 습관을 갖게 됐습니다.

둘째 누님은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저랑 같이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셨는데 많은 일을 같이 하면서 힘이 되어주셨던 기억이 있고. 결혼하셔서도 많이 챙겨주셨고.

형님은 정말 누구보다 본인이 희생을 하셨습니다.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형님이 고등학교 갈 형편이 안 돼서 직업훈련원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이후 형님이 기능공으로 취직을 해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그 퇴직금으로 저를 전학시켜준 겁니다.

형님이 지금도 고향을 지키고 어머님 모시고 농사를 짓고 있지만 저를 위해 본인의 미래를 희생한 것이 컸습니다. 여동생은 그 당시에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밥 해주고 빨래해 주면서 저를 뒷바라지해 줬습니다. 제가 서울대에 가는데 굉장히 정신적으로 큰 힘을 얻는 계기가 됐죠.

-(신 기자)
공직 생활을 쭉 줄곧 하시다가 직후에 바로 새누리당에 입당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처음으로 당선되시고. 그때 의원님을 정치권으로 끌어주시거나 좀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많이 준 분이 누군지 궁금한데요.

▲(송 의원)
정치인이 되고자 할 때는 많은 분들은 상식적으로 그렇게 얘기하세요.
누가 좀 기존 정치권에서 이렇게 추천하거나 끌어주지 않았느냐. 그런데 사실은 저는 그게 없었거든요.

저는 소년 농군 가장으로 농사지으면서도 과학자의 꿈을 키우다가 2학년 때 이천군 과학경시대회 나갔다는데 예선 탈락을 하면서 노벨 물리학상을 타겠다는 과학자의 꿈이 산산이 깨지고 결국 포기를 해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가 고민하다가 우연히 읽은 책이 존 메어나드 케인즈의 전기문이었는데 그 책을 읽고 제가 '아 과학자가 아니어도 이렇게 경제학자 기반의 행정가나 정치가가 돼서 세상과 경제를 살리고 넉넉하게 할 수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 하도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 아버지가 형제를 많이 낳아놓고 너무 무능하게 자녀들을 키우는 것 같아서 이 다음에 크면 좀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 제 인생 목표였습니다.

그러고 새롭게 잡은 꿈이 경제학자 기반의 행정가 내지 정치학자였습니다. 그래서 행정 공무원을 하면서도 언젠가는 (정치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우리 지역구에 제 전임 국회의원님이 지방선거 때 무슨 사건 때문에 출당이 되는 사고가 생겼습니다. 당시 제가 정치인의 꿈을 갖고 있다는 것을 지역의 많은 분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면 '이제는 때가 된 것 같다'고 생각해서 나왔습니다.
그랬더니 이제 이웃 동네 형님들이 "너 인마 정치를 하려면 진작부터 나한테 와서 부탁을 해야지" 그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분들한테 혼나면서 제가 시작을 했고 그때 같이 저랑 경쟁했던 분들은 다 벌써 중앙당에 '친박'이네 '친이'네 하면서 줄이 있었는데 저는 사실 그런 거 없이 그냥 오로지 시민들만 믿고 '시대적인 상황이 내가 이제 움직일 때가 됐구나' 해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정치 활동을 하면서 많이 저에게 도움을 주고 또 제가 많이 참고를 하는 분이 이경재 의원님이십니다. 강화군 지역구였지만 원래 고향이 이천이세요. 어릴 때 저처럼 일찍 아버님을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고생을 많이 하시면서 크셨고 그래서 저랑 인생 역정이 비슷하십니다. 그분하고 의정 활동을 하면서 많이 도움도 받고 배우면서 정치 활동을 해왔습니다.

-(신 기자)
요즘도 종종 만나 뵙거나 소통하세요?

▲(송 의원)
지금도 '품앗이'라는 활동을 하시는데 국회에서 '동심 한마당'이라고, 매년 어린이날을 전후해서 열리는 행사도 같이 제가 도와서 하고 있고요. 이제 지역 행사할 때도 같이 또 뵙습니다.

-(신 기자)
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90년도에 국토부처 관료로 입직하셔서 서울지방국토관리청장까지 역임을 하셨습니다. 사실 정치인으로서의 생활과 공무원으로서의 생활은 많이 다를 것 같은데 좀 어떤 부분이 가장 크게 다르다고 느끼셨는지

▲(송 의원)
많이 다르죠. 제가 그것 때문에 사실 정치인의 길을 택한 거거든요. 제가 행정 고시 재경직을 합격 해서 당시 건설부 처음에 들어왔고, 건설교통부 나중에는 국토해양부 국토교통부 이렇게 이름이 바뀌었지만 그 부서에서 25년 공직생활을 하면서 많은 보람이 있는 일도 했었죠.

5기 신도시 1기 신도시도 만드는 일로 시작을 해서 우리나라의 국토이용계획법제로 회사를 정비하는 일도 하고 또 IMF 직후에 부동산 경기 활성화 제도, 그때 토지공개념을 과감하게 손을 대고.

부동산 경기 활성화 시책도 한 기억도 있고 청와대에도 파견 나와서 우측보행 제도를 도입한다든가, 총리실로 파견 나가서 국장 시절에 새만금 마스터플랜을 만든 기억도 있고요.

제가 공간 정보 산업이라는 거를 처음 우리나라 11번째 특수산업으로 분류 독립 시킨 기억도 있고. 그런데 행정부는 기본적으로 이렇게 할 수 있는 한계가 명확하더라고요.
그러니까 편하긴 하죠. 또 파워도 있죠. 예산을 집행하고 법률을 집행하니까 파워도 있고 이렇게 또 안온한 철밥통에 그런 건 있지만 또 한계 국회가 정해준 그 한계를 넘을 수 없다라는 거. 그래서 저는 특히 우리나라가 아직도 불합리한 제도가 많다고 봅니다. 대표적인 것이 이제 시대적 소명을 다한 수도권 규제 같은 거죠.
이미 수도권 규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계속 늘어났고 이미 수도권이 거의 다 포화 상태가 왔단 말이에요.
지금 서부 쪽으로는 평택 화성까지 다 이미 개발이 됐고 수도권의 자연 보전 권역이라고, 그나마 동남부권에 이천 여주 양평 일부하고 안성 용인 광주 일부만 남았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이쪽은 급속히 난개발로 가고 있단 말이에요.

난개발 아니면 그냥 모든 개발이 사실상 막지 못하면서 결국은 난개발만 초래하는 이 잘못된 제도를 좀 손을 대겠다.
그래서 수도권 규제를 막연하게 규모로 제한하는 것을 계획적 개발과 관리가 가능하게끔 풀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들어왔는데 와보니까 아직도 이 지방의 논리에 의해서 그 형해화된 수도권 규제가 그대로 있다는 게 너무 안타깝고요.

그런 거를 국회에 가서 직접 한번 바꿔봐야겠다라고 들어왔는데 쉽지는 않아요. 그래도 이제 여기서 뛰니까 좀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다고 보이고 특히 재원 법인에 있어서도 예비 타당성 제도라는 것 때문에 꼭 해야 될 사업도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것도 지금 제가 예산 참여할 때 적극적으로 관여해서 해결할 수 있고. 국회로 오면 행정부와 달리 무한 책임이기 때문에 힘들고 보다 더 고달픈 건 있지만 소위 법도 만들 수 있고 또 예산도 정부 편성안을 뜯어고칠 수 있는 그런 힘도 있습니다. 그래서 보람이 있는 일은 확실히 정치권이 더 많이 할 수 있구나 하는 점이 있습니다.

-(신 기자)
올 하반기 목표나 아까 말씀하신 규제 완화 이런 거 관련해서 좀 어느 정도까지 하겠다 이런 목표가 따로 있으실까요?

▲(송 의원)
사실은 그 수도권 규제 문제는 좀 더 지방 의원님들의 공감대를 더 많이 형성을 해야 되기 때문에 굉장히 어렵고도 지난한 과제입니다.
그렇지만 계속 좀 설득을 해서 올해도 일부 규모 면에서 이제 그동안에 산업단지 2만 평으로 제한돼 있던 것을 이제는 연접해서 10만 평까지 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 해서 불합리한 규모 제한을 없애고 계획적으로 개발할 수 있게끔 할 계획이고요.

이천이 교통의 요충지 도시인데 거기 철도망이 별자형으로 중심 축이 형성이 되도록 돼 있습니다. 이천에서 그런 시대를 빨리 당길 수 있도록 좀 노력하고 있고요.

그 외에 지금 부동산 시장도 대부분 지역이 너무 침체되어 있고 건설 시장이에 건설업계가 너무 좀 어려웠고 그것이 결국은 지방 경제와 바닥 경제를 굉장히 어렵게 하기 때문에 그런 경제 활성화라든가 특히 중소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의 애로를 해결하는 데 각종 입법, 예산을 통해서 서민 경제의 온기와 활력을 높이는 데 역점을 두고자 합니다.

allpas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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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듀오 내년 1월까지 배송 지연 [서울=뉴스핌] 서영욱 기자, 심재민 인턴기자 = 애플의 첫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 듀오'가 사전예약 직후 품귀 현상을 빚으며 배송 일정이 내년 1월까지 밀렸다. 이례적인 수요에 따른 흥행 신호로 해석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생산 수율 저하와 핵심 부품 공급 차질이 물량 부족을 심화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생산이 안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70여개국 동시 출시를 추진한 애플의 전략적 판단도 공급난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애플의 첫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 듀오' [사진=로이터 뉴스핌] ◆ 10대 중 4대 품질 기준 미달…증산에도 공급난 지속 21일 정보기술(IT)업계에 따르면 아이폰 듀오는 지난 16일 사전예약을 시작한 지 30분 만에 일부 모델의 배송 예정일이 내년 1월로 미뤄졌다. 오는 23일 정식 출시를 앞두고 있지만, 지금 주문하면 제품을 받기까지 약 3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애플은 사전예약 수요가 이례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실제 예약 건수와 초기 공급량이 공개되지 않은 만큼 장기간의 배송 지연을 수요 폭증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핵심은 생산 수율이다. 중국 경제매체 지몐신문은 지난달 21일 폭스콘 공급망 관계자를 인용해 아이폰 듀오의 완제품 조립 수율이 9월 17일 기준 60%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생산된 제품 10대 중 4대 가까이가 품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당시 공급망 관계자는 애플의 품질 기준을 유지할 경우 생산라인이 안정적인 수율에 도달하기까지 6개월에서 1년이 걸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수율 문제는 최근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메리츠증권은 지난 19일 보고서에서 외장 힌지와 초박형유리(UTG) 등 핵심 부품뿐 아니라 최종 조립 단계에서도 수율 부진이 발생해 생산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애플이 공급망 주문량을 늘리고 있지만 단기간에 물량 부족을 해소하기 어려운 이유다. 중국 증권시보는 지난 10일 애플이 아이폰 듀오의 부품 주문량을 기존보다 30% 늘렸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부품 확보량을 늘리더라도 최종 조립 수율이 개선되지 않으면 실제 출하량을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 애플의 폴더블 스마트폰 '아이폰듀오' [사진=블룸버그통신] ◆ 70여개국 동시 출시 강행…국내 초기 물량 3만대 공급 부족을 예상하고도 글로벌 동시 출시를 선택한 판단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블룸버그는 지난 18일 애플이 당초 미국과 중국에 먼저 출시한 뒤 판매 국가를 확대하려던 계획을 바꿔 70여 개 국에서 동시에 사전예약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제한된 초기 생산 물량을 여러 국가에 배분하면서 공급 부담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국내에서도 물량 부족이 현실화하고 있다. 통신업계가 파악한 아이폰 듀오의 한국 초기 공급 물량은 약 3만대 수준이다. 통신 3사의 일평균 스마트폰 개통량인 약 2만대와 비교하면 이틀 치에도 못 미친다. 통신사들은 첫 폴더블 아이폰 출시를 앞두고 고객 유치에 나섰지만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품 수령 지연에 따른 고객 문의와 불만까지 유통 현장에 집중되면서 정식 출시 이후에도 혼란이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IT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품귀 현상을 폭발적인 수요에 따른 흥행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생산 차질이 장기화하면 출하 목표 달성이 어려워지고 삼성전자 등 경쟁사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flurry327@newspim.com 2026-10-2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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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사망설, 왜?…"독재 체제가 불러온 고질병"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42)이 뇌출혈로 쓰러져 중국 병원에서 숨졌다는 소문이 한반도를 넘어 지구촌을 뒤흔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사망설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가짜뉴스다. 의료기록이나 목격자, 하다못해 정황을 뒷받침할 만한 최소한의 방증이나 전언도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도 소문은 외신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는 물론 국내 언론과 증권가까지 순식간에 번졌다. 사망설 자체보다 이 소문 앞에서 우리 사회가 보인 허술한 대응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뉴스핌]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지난 19일 '전국 피복·신발전시회-2026' 전시장을 찾아 간부들에게 뭔가를 지시하고 있다. 김정은의 오른쪽은 딸 주애. [사진=북한매체 종합] 2026.10.20 ◆'중국 반체제 인사의 X 글'에 휘둘려 메가톤급 소문의 진원지는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반체제 인사 셰완진(謝萬軍)이다. 그는 19일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전해지기로 김정은과 시진핑이 같은 병에 걸렸다. 김정은은 죽었고 시진핑은 죽음이 아직 멀었을까"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어 김정은이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의식을 잃었고 북한의 열악한 의료 여건 때문에 중국에 도움을 요청해 중국 의료진이 급파됐다고 주장했다. 베이징의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았으나 골든타임을 놓쳐 결국 사망했다는 얘기다 시신은 북한으로 비밀리에 운구됐고 북한은 이를 숨기고 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던지면서도 그는 어떤 출처나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셰완진이 중국에서 불법단체로 규정된 '중국민주당 주석'을 자처하며 시진핑 주석 사망설이나 대역설 같은 허위·날조 사실을 SNS에 올려온 인물이란 점에서 신빙성은 떨어진다.  그런데도 영국 더선 등 해외 매체들이 이를 받아 전하면서 소문은 증폭됐고 여기에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장의 권력 장악설이나 중국군 파병설까지 얹혔다. 근거 없는 이야기에 그럴싸한 살이 덧붙여지면서 가짜뉴스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사실 사망설이 한창 번지기 시작한 19일 김정은은 부인 이설주, 딸 주애와 함께 평양에서 열린 '전국 피복·신발 전시회-2026'을 참관했다. 이튿날 북한 관영매체들은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이를 보도했다. 하지만 집요한 가짜뉴스는 이를 견강부회식으로 해석했다. '사망 사실'이 퍼지니 북한 당국이 이를 은폐하고 기만하기 위해 거짓으로 김정은과 가족의 일정을 공개한 것이란 주장까지 내놓으면서 그럴듯하게 포장을 했다. ◆'뇌졸중 쓰러져 中병원 이송'…뻔하고 반복된 레퍼토리 눈여겨볼 대목은 김정은 사망설에서 드러나는 클리셰(Cliché)다. 뇌출혈로 쓰러졌다거나 북한 의료진이 속수무책이라 중국 병원으로 옮겼다, 혹은 시신은 몰래 평양으로 반입했다는 등의 레퍼토리는 과거 북한 지도자의 신변 이상설이 나올 때마다 되풀이된 판박이다. 과거 북한 최고지도자의 사망설 확산 사례를 돌아보면 그 패턴이 드러난다. 1986년 11월 김일성 주석 피격 사망설이 나왔다. 당시 외신과 국내에서 소문이 크게 부풀렸고 최전방 북측 지역에 조기가 걸렸다는 말까지 나왔다. 결국 김일성이 얼마 뒤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오보로 판명됐다. [서울=뉴스핌] 지난 2011년 12월 28일 평양 금수산태양궁전 앞에서 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 장례식에서 아들이자 후계 최고권력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당시 직책은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운구차 옆을 걷고 있다. [사진=북한매체 종합] 2026.10.20 2008년 9월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권수립 60주년 행사에 불참하면서 와병설이 퍼졌다. 이 경우는 뇌졸중으로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망설과는 별개였고 김정일은 이후에도 3년 넘게 통치했다. 정작 2011년 12월 김정일의 실제 사망은 이틀 가까이 지난 뒤에야 공식 발표됐다. 김일성 주석 때도 1994년 7월 사망 후 하루 이상 지나서 발표됐다. 소문은 엄청나게 번지고 정작 진짜 사망 때는 깜깜무소식으로 있다가 북한 발표가 나오고서야 알게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이런 양상은 이어졌다. 2014년 9~10월 김정은이 약 40일간 공개 활동을 하지 않아 유고설이 불거졌지만 지팡이를 짚고 다시 나타났다. 과체중으로 추정되는 다리 혹은 관절 수술 때문으로 파악됐다. 2020년 4월에는 김일성 생일 참배 불참을 계기로 심혈관 수술 후 위중설, 사망설이 퍼졌다. 일부 정치인이 "99% 확신한다"고까지 단언했지만, 김정은은 20일 만인 같은 해 5월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5월에도 원산에서 현지지도 중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는 소문이 외교가와 증권가를 중심으로 돌았다. 번번이 오보로 끝났지만 가짜뉴스와 소문은 '죽지 않는 각설이'처럼 주기적으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일단 베껴 쓰고 보자'…줏대 없이 흔들린 언론 이번 사태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은 언론의 대응이다. 유력 외신뿐 아니라 우리 언론도 줏대 없이 흔들렸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확산일로를 걸으니 '일단 베끼거나 받아쓰고 보자'는 심리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남이 쓰니 나도 쓰고, 안 쓰면 낙종이 될까 불안해 쓰는 식이다. 그 결과 독자와 시청자, 국민은 전례 없는 혼란을 겪었다. 소문이 가장 먼저 들이닥친 주식시장은 출렁였고, 포털과 SNS에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넘쳐났다. 유튜브 일부 채널과 콘텐츠는 한술 더 떴다. 자극적인 제목과 섬네일을 앞세워 사망설을 기정사실처럼 다루며 혼란을 부채질했다. 조회수와 수익이라는 상업적 계산 앞에서 최소한의 사실 확인 의무는 실종됐다. 필자 또한 이번 사태의 한복판에서 적지 않은 시달림을 겪었다. 수많은 지인과 독자들로부터 '정말 사망한 것이냐', '평양이 지금 난리라는 데 파악해 볼 수 있냐'는 문의 전화와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지난 34년간 북한 취재 현장에서 여러번의 '사망·유고설'을 겪었지만 이번은 유독 파장이 크다. 최근의 남북관계와 북한 김정은과 김여정 남매의 비정상적이고 호전적인 도발 상황이 국민이 불안감을 키운 것이란 생각도 든다. ◆'강 건너 불구경'식 정부 대응도 문제 정부 대북부처의 대처도 비판받을 소지가 많다. '가짜뉴스 엄정 대응'을 공언해 왔지만 이번엔 사실상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달 30일 국회에 김정은의 체중이 약 140kg에 이르러 심혈관계 질환 위험이 높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소문이 돌 때 더욱 신속하고 구체적인 사실관계 설명이 필요했다. 책임 있는 당국자가 직접 나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설명하고 소문을 일찍 진화했어야 했다. 국회 정보위원회의 대응도 도마에 오른다. 정보위가 국정원 긴급보고를 받아 사망설이 가짜라는 점을 확인하고, 즉각 공개했더라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란을 차단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일수록 정보위가 정치적 계산을 앞세우지 않고 사실을 확인해 국민에게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본부 청사와 원훈석 [뉴스핌 자료사진] ◆전문성 키우지 못한 언론도 책임 느껴야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은 북한 체제의 폐쇄성에 있다. 더구나 김정은 한 사람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수령 유일지배 독재체제다. 김정은이 유고상황에 빠지면 대책이 없어진다. 이런 사정에 있다보니 '사망설'을 비롯한 소문의 파괴력은 클 수밖에 없고, 거짓인 줄 알면서도 시장과 사회가 뒤흔들리는 기형적인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정보의 불투명성과 체제의 취약성이 만나 만든 구조적 고질병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우리 언론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북한 보도가 지라시 수준의 글에 휘둘리는 이유는 전문성을 갖춘 저널리스트를 제대로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때 언론사들이 전문기자를 두고 연구소 등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경영 논리와 남북관계 경색에 밀려 유명무실해졌다. 북한 정보의 진위를 가려낼 안목과 취재 네트워크를 갖춘 기자가 줄어들면서 확인되지 않은 SNS 글 한 줄에 증시와 언론, 여론이 함께 휘청이는 모습이 연출됐다. '김정은 사망' 같은 민감한 대북 정보는 우리의 안보와 남북관계, 한반도 정세에 미칠 파장이 크다. 이번 일을 일과성의 해프닝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제대로 된 진단과 대책마련이 없으면 김정은은 앞으로도 몇 번이고 죽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때마다 우리는 휘둘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정부 대북 부처와 유관기관, 언론, 학계 등이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yjlee@newspim.com 2026-10-21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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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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