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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정치분석] ⑥민주주의 의회 토론의 산실, 영국 웨스트민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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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의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의회로 평가된다. 그 기원은 1215년 러니미드에서 체결된 마그나 카르타로 거슬러 올라간다. 통상 63개 조항으로 구성된 이 문서에는 왕의 과세와 구금 권한을 제한하는 내용과 함께 25명의 남작이 합의 이행을 감시하도록 하는 보증 장치가 포함되어 있었다. 권력은 무제한적 권위가 아니라 조건부 권위로 정의되었다. 대립하던 두 세력 간의 계약은 이후 의회 발전의 토대가 된다.

그러나 이 원칙이 곧바로 안정된 정치 질서를 낳은 것은 아니었다. 17세기 초 찰스 1세는 의회의 동의 없이 세금을 부과하고, 의회를 해산하며, 왕권 중심 통치를 시도했다. 1628년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을 수용하고도 이를 실질적으로 무력화하려 했던 행보는 의회와의 신뢰를 훼손했다. 갈등은 결국 내전으로 이어졌고, 1649년 찰스 1세는 재판을 거쳐 처형된다.

현직 국왕이 법정 판결에 의해 단두대에 오른 사건은 유럽 정치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려웠다.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가 이 사건을 목격하며 출판한 '리바이던(Leviathan, 1651)'에서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강한 군주제를 옹호한 것이 우연이 아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권력 투쟁의 결과가 아니었다. 의회와의 협약을 반복적으로 무시한 결과, 왕권의 정당성이 붕괴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1660년 왕정복고 이후에도 긴장은 지속되었지만, 1688년 명예혁명은 국왕과 의회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립했다. 권리장전(Bill of Rights, 1689)은 국왕이 의회의 동의 없이 법을 정지하거나 세금을 부과할 수 없음을 명문화했다. 이 시기에 토리(Tory)와 휘그(Whig)라는 정치적 집단이 초기 정당 형태를 띠며 각자의 정치 세력을 형성했고, 반대는 반역이 아니라 제도적 역할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진=Wikimedia Commons / Library of Congress (Public Domain)]

영국식 의회 토론 제도의 성장

조지 1세가 1714년 즉위했을 때, 영국은 이미 1688년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을 거치며 왕권과 의회의 관계를 재정립한 상태였다. 그러나 하노버 왕조의 출범은 또 다른 변화를 촉발했다. 새 국왕은 독일 출신이었고 영어에 능숙하지 않았다. 그는 국내 정당 정치의 세부에 깊이 개입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국정 운영의 중심은 의회 다수파와 그 지도자들에게로 이동했다. 왕이 직접 정치를 통제하던 구조는 점차 내각 중심 체제로 바뀌었고, 의회 안에서 다수의 지지를 확보한 인물이 정부를 이끄는 관행이 강화되었다. 권력은 여전히 군사력과 왕권이라는 상징을 지녔지만, 실제 정책 결정의 무게는 토론과 표결의 장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이 시기 로버트 월폴(Robert Walpole)은 흔히 영국 정치사에서 '최초의 총리'로 불린다. 추밀원 위원(Privy Councillor)이기도 했던 그에게 The Right Honourable Sir Robert Walpole이라는 타이틀이 붙기 시작했다. 월폴은 1721년 이후 21년간 정부를 이끌며 사실상 최초의 총리로 평가받지만, 당시에는 "Prime Minister"라는 공식 직함이 제도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의 정치 방식은 의회 다수의 지지를 유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는 공개 토론을 피하지 않았고, 세금과 재정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설득과 타협을 통해 지지를 모았다. 웨스트민스터는 점점 더 단순한 입법 기관이 아니라, 정책을 설명하고 반대 의견을 조정하는 공간으로 기능했다. 권력의 정당성은 점차 무력 충돌이 아니라 토론을 통과한 표결에서 비롯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전통은 18세기 후반 미국 독립전쟁이라는 거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1776년 7월 4일, 북아메리카 13개 식민지는 독립을 선언하며 영국에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영국 의회 내부의 논쟁은 7년 전쟁(1756-1763) 이후 이미 시작되었다. 전쟁 이후 약화된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으로 제기된 영 식민지 세금 부과 권한, 식민지 대표권, 군사적 대응의 범위를 둘러싸고 하원은 분열되어 있었다. 일부 의원들은 식민지의 반발을 단호하게 제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른 이들은 과도한 세금과 강경 조치가 오히려 제국을 분열시킨다고 비판했다.

당시 야당 소속이었던 찰스 제임스 폭스(Charles James Fox)는 북미 식민지 정책을 비판한 대표적 인물이었다. 1770년대 후반 의회 토론 기록(Cobbett's Parliamentary History, vol. XIX 등)에 따르면 그는 정부의 조치가 "영국의 자유의 원칙에 배치된다"고 주장하며, 무력에 의존한 통치는 식민지를 더욱 멀어지게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는 전쟁의 확대가 재정 부담을 심화시키고, 장기적으로 국가 신용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었다.

이에 맞서 윌리엄 핏 주니어(William Pitt the Younger)는 국가 재정과 전략적 이해를 중심에 두고 논리를 전개했다. 그는 의회에서 영국의 공공신용(public credit) 유지와 해군력 강화가 국제적 위상을 유지하는 핵심 조건임을 강조하였다. 이 논쟁은 단순한 전쟁 수행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제국의 정체성과 재정 운영의 원칙을 둘러싼 정책 철학의 충돌로 전개되었다.

당시 기록은 오늘날의 완전 속기록과 달리 편집적 성격을 지니지만, 발언 중간에 'Hear him!' 혹은 'No!'와 같은 반응 표기가 등장하는 장면도 확인된다. 이는 논쟁이 단순한 독백이 아니라 즉각적인 반응 속에서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다만 18세기 기록은 현대 Hansard와 달리 회의장 분위기를 체계적으로 서술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토론은 공개된 절차 속에서 이루어졌고, 정책의 방향은 결국 표결을 통해 결정되었다.

이 시기 논쟁은 영국 정치 문화에 장기적 영향을 남겼다. 미국 독립을 막지 못했지만, 의회는 전쟁의 경과와 재정 문제를 지속적으로 점검했다. 전쟁 수행의 실패는 정부 교체로 이어졌고, 정책 책임은 공개적으로 논의되었다. 이는 웨스트민스터 모델의 핵심 원리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권력은 여전히 군사적 수단을 동원했지만, 그 정당성은 의회의 토론과 표결을 통해 확인되어야 했다.

폭스와 핏의 대립은 이후 영국 정당 정치의 형식에도 영향을 주었다. 정부와 야당이 단순히 반대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다른 국가 운영 철학을 경쟁적으로 제시하는 구조가 자리 잡았다. 재정, 외교, 제국 문제는 개인의 충성심이나 왕의 의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의회 안에서 논증과 반론을 거쳐 결정되는 사안이 되었다. 이러한 전통은 훗날 그림자 내각 제도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정부–야당의 정책 경쟁을 제도화하는 기반이 되었다.

영국 한사드(Hansard) [사진=© UK Parliament (Open Parliament Licence)]

한사드, 영국 의회 토론의 기록

오늘날 우리는 Hansard라는 방대한 속기록을 통해 수 세기의 영국 의회 토론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초기 의회 토론은 공개 기록의 대상이 아니었다. 17세기와 18세기 초반까지 의회 토론은 사실상 국가 비밀이었다. 의원들이 발언한 내용은 공식적으로 출판이 금지되었고, 이를 보도하는 것은 특권 침해로 간주되었다. 의회는 외부의 간섭 없이 토론할 권리를 보호하려 했기 때문에 국가의 비밀로 보호했다.

18세기 초, 일부 인쇄업자와 언론인들이 의회 토론을 간접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종종 가명을 사용하거나 "가상의 토론" 형식으로 내용을 전달했다. 당시 인쇄업을 운영한 사무엘 존슨(Samuel Johnson)조차 의회 토론을 문학적 재구성 형태로 작성한 적이 있다. 이는 공식 기록이 아니라 비공식적 재현이었다.

당시의 의회는 기록을 남기기보다 자율성을 유지하는 데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18세기 중반 인쇄 기술과 신문의 발전은 상황을 바꾸었다. 대중은 의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싶어 했고, 언론은 이를 보도하려 했다. 초기에는 가명이나 우회적 표현을 사용해 의회 토론을 재구성하는 방식이 등장했다.

1771년 런던의 인쇄업자와 의회 사이에서 벌어진 충돌은 전환점이 되었다. 의회가 언론 보도를 강하게 제지하려 하자, 여론은 오히려 기록 공개를 요구했다. 결국 의회는 토론 보도를 사실상 묵인하는 방향으로 움직였고, 이는 공개 기록 문화의 출발점이 되었다.

Hansard라는 이름은 19세기 초 Thomas Curson Hansard라는 인쇄업자에서 유래한다. 그는 1803년부터 의회 토론을 체계적으로 수집해 출판하기 시작했다. 이 초기 Hansard는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공식 속기록과는 달랐다. 발언은 완전한 속기라기보다 편집과 요약을 거친 형태였고, 정부 기관이 아니라 민간 출판사가 발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ansard는 점차 의회 토론의 사실상 표준 기록으로 자리 잡았다. 의회는 이를 공식적으로 승인하지는 않았지만, 점차 이 기록에 의존하게 되었다.

Hansard는 여러 시리즈로 구분된다. 1803년부터 시작된 First Series(1803-1820)를 시작으로, Second Series(1820-1830), Third Series(1830-1891), Fourth Series(1892-1908)를 거쳐 1909년부터는 현재까지 기록된 Fifth Series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시리즈 구분은 단순한 연대 구획이 아니라, 기록 체계와 제도적 위상의 변화를 반영한다. 특히 1909년부터는 'Official Report'로서 정부가 출판을 맡으며 현대적 의미의 공식 속기록으로 자리 잡았고, 이때부터 상·하원 기록이 분리되는 전환도 함께 진행된다.

19세기 영국 의회 논의 내용이 인쇄된 한사드(Hansard) 회의록 [사진=Wikimedia Commons / Hansard Parliamentary Debates Archive (Public Domain)]

19세기 Third Series는 연구 측면에서 특히 중요한 시기로 간주된다. 산업혁명, 선거개혁, 곡물법 폐지, 아일랜드 문제, 제국 팽창, 두 차례의 아편전쟁 등 근대 영국 정치의 핵심 논쟁이 이 시기에 집중되어 있다. 이 시기의 Hansard는 아직 완전 속기록은 아니지만, 발언의 재현 수준은 상당히 높다. 로버트 필(Robert Peel)의 곡물법 폐지 연설, 팔머스턴의 외교정책 방어, 글래드스톤과 디즈레일리의 재정 논쟁 등은 모두 이 기록 속에 남아 있다. 이를 통해 당시 정치인들이 어떤 논증 구조를 사용했는지, 반론이 어떻게 제시되었는지를 분석할 수 있다.

Fourth Series와 Fifth Series로 넘어가면서 기록의 정밀도는 더욱 높아진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 논쟁, 제2차 세계대전 초기의 불신임 토론, 수에즈 위기, 유럽 통합 논쟁, 브렉시트에 이르기까지 주요 역사적 순간들이 Hansard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특히 20세기 이후의 기록은 발언자의 이름, 직함, 발언 전문, 의장의 개입, 청중 반응, 표결 결과까지 체계적으로 남긴다. 이는 단순한 정치 기록을 넘어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을 분석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Hansard의 구조적 특징은 민주주의 연구에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발언의 길이와 논증 구조, 반론의 존재 여부, 상대를 지칭하는 언어, 의장의 질서 개입 빈도 등은 모두 토론의 질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된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속기록이 괄호 안 분위기 묘사를 통해 언어적 붕괴를 드러냈다면, Hansard는 발언의 구조 자체를 통해 설득의 지속성을 보여준다. 기록이 남는다는 사실은 정치인에게 설명의 의무를 부과하고, 반대 의견을 역사 속에 보존한다.

Hansard는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다. 그것은 책임 정치의 기반이다. 정치인은 자신의 발언이 영구적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알고 발언한다. 반대파의 주장은 삭제되지 않고, 다수결에 의해 패배하더라도 기록 속에 보존된다. 이 기록은 후대의 평가와 비교를 가능하게 하며, 민주주의의 언어 규범을 축적한다. 또한 Hansard는 공개성의 상징이다. 의회 토론이 비밀에서 출발해 공개 기록으로 제도화되었다는 사실은 민주주의가 단지 선거 제도만으로 유지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말은 기록되고, 기록은 책임을 낳는다. 기록은 갈등을 투명하게 만들고, 투명성은 제도적 신뢰를 강화한다.

오늘날 디지털 Hansard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 특정 날짜의 토론, 특정 의원의 발언, 특정 정책 논쟁을 손쉽게 검색할 수 있다. 이는 의회가 더 이상 폐쇄적 공간이 아니라 공적 토론의 장임을 의미한다. 동시에 일정 기준으로 추출해낸 코퍼스(corpus) 자료는 설득 구조와 민주주의 건강성을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Hansard의 역사는 곧 민주주의 언어의 제도화 과정으로 간주된다. 처음에는 기록이 금기였으나, 이후 비공식 기록이 등장했으며, 마침내 공식 속기록으로 자리 잡았다. 이 발전 과정은 의회가 자신이 하는 말을 역사 앞에 남기겠다는 선택을 했음을 의미한다. 그 선택이야말로 웨스트민스터 모델의 지속성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다.

Hansard 1차 시리즈(1803–1820)는 나폴레옹 전쟁기와 전후 재정 및 국가 운영의 문제들이 겹친 시기다. 2차 시리즈(1820–1830)는 선거권과 종교·시민권 문제를 둘러싼 긴장이 커진 시기다. 가령 1829년 가톨릭 해방법(Catholic Emancipation) 같은 쟁점은 국가 정체성과 권리 확대가 충돌하는 토론을 촉발했고, 토론은 더 대중적 관심을 받게 된다. 3차 시리즈(1830–1891)는 웨스트민스터 토론의 성숙을 논할 때 핵심 창고에 해당한다.

산업혁명, 선거개혁, 자유무역 전환, 제국 확장, 아일랜드 문제 등 근대 영국의 가장 격렬한 정책 충돌이 이 시기에 집중돼 있고, 그만큼 설득의 기술과 인식적 편향, 논리적 오류가 함께 드러난다. 4차 시리즈(1892–1908)는 제국주의 경쟁과 사회개혁 논쟁, 노동 정치의 부상이 겹치는 시기다. 설득의 기술은 더 세련되어지지만, 그만큼 대중 동원형 언어와 계급적 도식도 함께 유입된다. 토론의 논점이 복잡해지는 만큼, 상대를 단순한 유형으로 환원하는 인식적 편향이 작동하는 장면도 늘어난다. 동시에 의장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기록은 오늘날의 완전 속기와는 거리가 있고 편집적 성격이 강하지만, 이미 정책 선택의 근거를 설명하고 반론에 답하는 의회적 화법이 핵심 장르로 자리 잡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디지털 아카이브는 1차 시리즈가 1803년 11월 개시되어 1820년 2월까지 이어진다고 명시하고, 각 권마다 개시·종료 날짜를 붙여 토론이 '연속된 공적 기록'으로 정리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이 시기 설득의 질은 종종 계급적 전제와 제국적 편향을 내포했지만, 결정의 정당성을 명백한 근거로 제시해야 한다는 규범이 정치의 언어로 자리 잡는 단계였다고 말할 수 있다. 5차 시리즈(1909–하원 기준 1981)는 Hansard가 'Official Report'로 제도화된 뒤의 시대다. 즉, 기록의 정밀도와 공적 책임성이 이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높아진다.

앞으로 네 번에 걸쳐 영국 의회 토론의 특징, 그리고 세계 의회 민주주의의 모델을 구축한 캐비닛(Cabinet)-그림자 캐비닛(Shadow Cabinet)의 발전 과정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교수 [사진=뉴스핌 DB]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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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법무장관에 민변 출신 이용철 '성남라인' [서울=뉴스핌] 박찬제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은 6일 새 법무부 장관에 이용철(66·순창) 현 방위사업청장, 국세청장에 안덕수(55·부산) 서울지방국세청장을 후보로 지명했다. 청와대 새 정무수석으로는 최인호(60·창녕) 더불어민주당 재선 의원 출신인 주택도시보증공사 사장을 임명했다. 임광현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인사 발표 브리핑을 했다. 임 실장은 "국민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듣고 소통하겠다는 의지이며 국민 삶 속에 정책 변화와 효능감이 체감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이번 인사 방향을 설명했다. 임 실장은 이 법무장관 후보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출신으로 인권 보호와 민주 가치 증진에 힘써 온 변호사"라며 "참여정부 민정수석실 민정2비서관과 법무비서관을 역임하며 반부패와 제도개혁을 주도한 바 있다"고 소개했다. 임 실장은 "법조인이면서도 구조개혁 등 다양한 행정 경험을 갖춘 만큼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를 안착시키고 누구도 소외되거나 억울한 일을 겪지 않는 법무 행정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이번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임 실장은 이 후보가 과거 대장동 사건에 연루됐다는 언론 질문에 "그 부분은 검증 때 감안됐고 자세한 건 국회 인사청문회 때 본인이 소명할 걸로 기대한다"며 "적임자를 뽑기 위해 다양한 많은 분에 대한 검증이 있었다"고 밝혔다.  안 국세청장 후보에 대해 임 실장은 "국세청 1조사국장과 징세법무국장, 납세자보호담당관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세무 행정 전문가"라며 소개했다. 임 실장은 "성실하게 세금을 내는 국민이 손해 보지 않도록 악의적 탈세와 숨긴 재산은 끝까지 추적해 조세 정의를 실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인선 이유를 설명했다. 최 정무수석 내정자에 대해 임 실장은 "부산 지역 재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민주당 최고위원과 수석대변인을 역임하며 소통과 통합의 가치를 실천해 온 정치인"이라고 소개했다. 임 실장은 "우리 사회의 통합과 성장을 위해 더 낮은 자세로 여야, 국민과 소통하며 국민이 하나 되는 정치를 뒷받침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임 실장은 "청와대 내부 인사는 검토가 되는 대로 업무의 연속성과 개혁 성과, 국민 체감을 위해서 필요한 경우에는 적당한 시점에 인사를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pcjay@newspim.com 2026-11-0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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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칼 최대주주 오른 호반건설…항공업 진출? [서울=뉴스핌] 송현도 기자 = 호반그룹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을 0.11%p(포인트) 차로 제치고 한진칼 최대주주(지분율 20.69%)에 오르면서 호반건설의 지분 매입 의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단순 투자라는 공식 입장과 달리, 건설업 불황 속 한진칼 지분이 그룹의 재무적 가치를 뒷받침하는 핵심 자산으로 자리 잡은 데다 과거 금호산업 인수전부터 이어진 항공업 진출 구상에도 다시 힘이 실릴 수 있기 때문이다. ◆ 분양 반토막·PF 대위변제 덮은 6152억 평가차익… 호반의 '손익 방어막' [AI그래픽=송현도 기자] 6일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호반건설이 주택·건설 경기 침체 속에서도 수천억원을 투입해 한진칼 지분을 확보한 배경에는 재무적 실익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진칼 주가 상승에 따른 대규모 평가이익이 건설업 불황으로 악화한 그룹의 실적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호반건설의 2025년 연결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연결 매출액은 1조2326억원, 영업이익은 1361억원으로 전년(매출 2조3706억원, 영업이익 2716억원) 대비 각각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주력 사업인 분양수익이 1조1476억원에서 2531억원으로 급감한 영향이 컸다. 영업활동 현금흐름도 4728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 의무에 따라 4395억원을 대위변제하면서 2381억원의 기타대손상각비를 인식하는 등 재무 부담도 커졌다. 올해 2월에는 대위변제에 따른 구상채권과 상계하는 방식으로 대구 황금동 주상복합 용지를 2750억원에 취득하기도 했다. 이 같은 본업 부진을 상쇄한 것은 한진칼 지분에서 발생한 평가이익이다. 취득원가가 6966억원인 한진칼 지분의 장부가액은 지난해 말 1조5544억원으로 늘었다. 호반건설은 이를 통해 한 해 동안 6152억원의 금융자산 평가이익을 인식했다.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감소했음에도 당기순이익은 4752억원으로 전년(2657억원)보다 78.8% 증가했다. 100% 자회사인 호반호텔앤리조트도 비슷한 구조다. 본업 영업이익은 182억원에 그쳤지만, 보유 중인 한진칼 주식(장부가액 5902억원)에서 2267억원의 평가이익이 발생하면서 당기순이익 1872억원을 기록했다. 호반호텔앤리조트는 이를 바탕으로 모회사 호반건설에 1000억원의 현금배당을 결의하며 자금 공급 역할도 했다. 결국 한진칼 지분은 호반그룹의 실적 방어와 현금 확보에 기여하는 핵심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향후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이어지면서 한진칼 주가가 추가 상승할 경우 평가이익 확대는 물론 그룹의 순이익과 배당 여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집중투표제' 무기 쥔 호반… 이사회 진입 시 한진 경영권 영향 호반이 내년 3월 정기주총에서 이사회 진입에 성공할 경우, 단순 주주를 넘어 한진그룹 지배구조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한진칼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한진칼은 올해 3월 정기주총에서 상법 개정에 맞춰 정관 제30조의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을 삭제했다. 집중투표제란 주주총회에서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주주가 1주당 선임할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받고 이를 특정 후보 1명에게 몰아주거나 나누어 투표할 수 있는 제도로, 내년 3월 주총이 한진칼에 집중투표제가 의무 적용되는 첫 무대가 된다. 내년 3월 20일 임기가 만료되는 사외이사는 배성례(ESG경영위원회·보상위원회 위원장), 송백훈(분리선출 감사위원 겸 감사위원장), 홍동표(감사위원 겸 독립이사후보추천위원장) 위원 등 3명이다. 특히나 분리선출 감사위원 표결에서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하는 강화된 '3% 룰'이 적용된다. 오는 12월 31일 주주명부 폐쇄일 기준 최대주주가 되는 쪽이 의결권에서 불리해지는 구조다. 조원태 회장이 예고대로 12월 중 지분 0.49%를 추가 매수해 최대주주를 탈환하면 조 회장 측 전체 의결권은 3%로 묶이는 반면, 2대 주주가 되는 호반 측은 계열사별로 나눠 총 6.32%를 행사할 수 있다. 호반 입장에서는 감사위원 표결의 실리를 챙기기 위해 연말까지 조 회장의 최대주주 복귀를 용인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일반 사외이사 선임에서도 호반이 주총 6주 전(내년 2월 중순)까지 보유 목적을 경영참여로 바꾼 뒤 집중투표제를 신청해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면 이사회 진입 가능성이 높아진다. 호반 측 인사가 이사회와 감사위원회에 1석이라도 진입하면 상법상 회계장부 열람권과 주요 안건 의결권을 바탕으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 자금 지원, 자회사 부동산 매각, 배당 정책 등에 관여할 수 있다. 나아가 호반호텔앤리조트(리솜리조트)와 한진칼 산하 호텔·관광 계열사(칼호텔네트워크, 한진트래블) 간의 사업 시너지나 자산 매각 협상을 요구할 기반도 확보하게 된다. 반면 한진칼은 지난해 8월 보유 자사주 44만44주(0.66%)를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전량 출연해 현재 방어에 쓸 수 있는 보통주 자사주가 3주뿐이다. 올해 1월 자회사 칼호텔네트워크가 그랜드하얏트인천 웨스트타워를 2100억원에 매각해 한진칼 본사 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 3201억원)은 늘어났지만, 회사 자금으로 자사주를 사들여 방어에 나설 수는 없어 조 회장 개인과 우호 세력의 자금 부담이 커지는 상황이다. ◆ 금호산업 인수전부터 이어진 항공업 진출 시도… 산은 지분 매각이 승부처 재계와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호반의 목표가 단순 차익 실현을 넘어 한진그룹 경영권 인수에 맞춰져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김상열 호반그룹 창업주는 지난 2015년 아시아나항공의 모회사였던 금호산업 인수전에 단독 응찰하며 항공업 진출을 시도한 바 있다. 당시 채권단과의 가격 이견으로 무산됐지만, 이후 리솜리조트와 퍼시픽랜드를 인수해 레저 사업을 확장했고 2022년 사모펀드 KCGI로부터 한진칼 지분을 사들이며 항공·레저 수직계열화를 추진했다. 주택 사업에 편중된 그룹의 포트폴리오를 바꿀 카드로 한진칼을 낙점했다는 평가다. 내년 3월 주총에서는 조 회장 측과 델타항공, 한국산업은행(10.58%) 등 우호 지분이 과반에 육박해 당장 경영권 확보가 쉽지 않다. 한진칼 시가총액이 적정 가치(3조3000억원 추산)를 웃도는 12조3000억원대까지 올라, 장내에서 지분 1%를 추가 확보하는 데 1230억원이 드는 점도 부담이다. 호반건설의 지난해 말 연결 현금 및 단기유동성 금융자산이 1조1916억원 수준이지만, 단기금융부채 역시 1년 새 679억원에서 5172억원으로 늘어 장내 매수를 지속하긴 어렵다. 결국 향후 승부처는 항공 산업 구조 개편이 끝난 뒤 시장에 나올 산업은행의 한진칼 지분 10.58%다. 대한항공은 올해 5월 아시아나항공 흡수합병을 결의한 데 이어 8월 12일 소규모합병 승인 이사회 결의를 완료하며 연말 통합 항공사 출범을 앞두고 있다. 내년 3월 저비용항공사(LCC) 3사 통합까지 마무리되면 산은이 지분을 보유할 정책적 명분은 사라지고 공적자금 회수 절차가 진행된다. 산은은 2020년 11월 체결한 투자합의서에 따라 의무 위반 시 5000억원의 위약벌을 부과할 담보로 조원태 회장의 한진칼 주식 385만8869주(약 5.78%)에 근질권을 설정해 두고 있으며, 유사시 조 회장 지분까지 묶어 제3자에게 팔 수 있는 동반매각요구권과 동반매도참여권을 보유하고 있다. 호반이 20%대 지분을 바탕으로 이사회에 진입해 경영에 관여하다가 향후 산은 지분 10.58% 인수전에 참여해 이를 확보할 경우, 지분율을 31%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산은 지분 인수나 경영권 확보가 여의치 않더라도, 과거 대우건설·금호산업 사례에서 보듯 지분 가치를 높인 뒤 조 회장 측 우호 세력에게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블록딜로 넘기는 출구 전략을 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dosong@newspim.com 2026-11-0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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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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