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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정치분석] ⑧미국 의회언어의 질과 민주주의의 향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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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루먼은 1947일 그리스·터키 원조를 요청했다
  • 의회는 원조 범위와 민주성, 군사한계를 따졌다
  • 1948일 마셜 플랜을 수정해 유럽 자립을 도왔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민주주의의 무기고에서 교육·문화·국방·과학기술 초강대국으로(1933–1992)

승전국에서 자유세계의 지도국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정치언어는 승리와 동원의 언어에서 경제재건, 공산주의 봉쇄, 집단안보의 언어로 이동했다. 유럽의 경제적 붕괴가 정치적 급진화와 공산주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미국은 마셜 플랜을 추진했고, 1949년 북대서양조약기구를 창설했다.

1947년 3월 12일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의회 합동연설에서 그리스와 터키에 대한 원조를 요청하며 냉전을 두 정치적 생활양식의 대립으로 설명했다.

"At the present moment in world history nearly every nation must choose between alternative ways of life. The choice is too often not a free one. One way of life is based upon the will of the majority, and is distinguished by free institutions, representative government, free elections, guarantees of individual liberty, freedom of speech and religion, and freedom from political oppression."

"세계사의 현시점에서 거의 모든 국가는 서로 다른 생활양식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선택은 너무나 자주 자유로운 선택이 되지 못합니다. 한 가지 생활양식은 다수의 의사에 기초하며, 자유로운 제도와 대의정부, 자유선거, 개인의 자유에 대한 보장, 언론과 종교의 자유, 정치적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특징으로 합니다."

미국 해리 트루먼 대통령 [사진=위키미디어 공용]

트루먼은 이어 미국이 "무장한 소수집단이나 외부의 압력에 의한 예속 시도에 저항하는 자유로운 국민"을 지원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리스와 터키에 대한 개별 원조는 이 연설을 통해 자유로운 정치질서를 방어하는 일반적 원칙으로 확대되었다.

대통령이 새로운 냉전시대의 해법을 제시했다면, 의회는 그 원칙이 실제 국가정책으로 지속될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헌법적 심의기관의 역할을 맡았다.

트루먼은 자유로운 국민을 지원하는 것이 미국의 책임이라고 선언했지만, 의원들은 해외 원조의 규모와 기간, 행정부의 재량권, 원조를 받는 정부의 정치적 성격, 미국 납세자가 감당해야 할 부담을 구체적으로 따졌다. 대통령의 연설이 위기의 의미와 국가적 방향을 제시하는 언어였다면, 의회의 토론은 그 방향을 법률·예산·감독의 기준으로 전환하는 언어였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47년 5월 9일 하원의 그리스·터키 원조법안 심의였다. 이날 하원은 두 나라에 모두 4억 달러의 경제·군사 원조를 제공하고 미국의 민간·군사 고문단을 파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심의했다.

찬성 의원들은 영국이 더 이상 그리스와 터키를 지원할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미국마저 물러서면 동부 지중해 지역의 정치적 공백이 소련의 영향력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대 의원들은 미국이 개별 국가의 내전과 권위주의 정부를 지원하면서 세계의 모든 분쟁에 개입하는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법안은 이날 찬성 287표, 반대 107표로 하원을 통과했다.

이 토론에서 특히 중요한 쟁점은 원조의 범위와 군사개입의 한계였다. 월터 저드(Walter Judd) 의원은 미국이 그리스와 터키에 파견할 군사요원이 점령군이나 전투병으로 복무할 수 없다는 제한을 법문에 명시하자는 수정안을 제출했다.

이는 경제·군사 원조가 미군의 직접 참전으로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시도였지만, 수정안은 70대 122로 부결되었다. 원조액을 4억 달러에서 2억 달러로 줄이자는 수정안과, 미국이 행동하기 전에 이 문제를 60일 동안 유엔에 맡기자는 수정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원은 원조를 받는 그리스 정부의 정치적 성격도 따졌다. 헬렌 개해건 더글러스(Helen Gahagan Douglas) 의원은 그리스 정부가 정치범을 사면하고 1년 안에 선거를 실시하도록 요구하는 수정안을 제안했다. 마이크 맨스필드(Mike Mansfield) 의원은 그리스의 조세제도를 재검토하도록 의무화하려 했다. 두 수정안은 채택되지 않았지만, 이 논의는 공산주의 봉쇄라는 명분이 수원국 정부의 인권침해와 경제적 불평등을 묵인하는 백지위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보여주었다.

미국 의회에서 '트루먼 독트린'을 선언하는 트루먼 대통령 [사진=위키미디어 공용]

두 번째 대표 사례는 1948년 3월 31일 하원의 유럽부흥계획, 곧 마셜 플랜 심의였다. 트루먼 행정부는 전쟁으로 파괴된 유럽의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16개국에 장기적인 원조를 제공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하원 외교위원회는 행정부가 처음 제안한 약 68억 달러의 15개월 계획을 그대로 승인하지 않고, 원조 규모와 기간, 유럽 국가들의 자구노력, 행정부에 대한 의회 감독 조항을 수정했다. 최종 법안은 첫해 약 53억 달러를 승인하는 내용으로 조정되었으며, 하원은 3월 31일 이를 찬성 329표, 반대 74표로 가결했다.

이날의 핵심 의제는 유럽을 단순히 구호할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존립할 수 있는 경제공동체로 재건할 것인가였다. 찬성 의원들은 유럽의 공장과 농업, 통화와 무역체제가 회복되지 않으면 빈곤과 정치적 혼란이 공산주의의 확산을 촉진하고, 결국 미국의 수출시장과 안보에도 위협이 된다고 주장했다.

반대 의원들은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미국 납세자가 장기간 유럽의 부담을 떠맡는 것은 과도하며, 대규모 원조권한이 행정부와 새로운 대외원조 관료기구에 집중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의회가 확정한 법률의 목적조항에는 이러한 토론의 결과가 반영되었다. 유럽의 경제혼란은 국경 안에 머무는 문제가 아니며, 자유로운 제도와 진정한 독립은 건전한 경제조건 위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고 의회는 선언했다. 동시에 원조의 최종 목적을 영구적인 미국 의존이 아니라 유럽 국가들이 생산과 무역을 확대하고 재정안정을 회복해 특별한 외부지원 없이 자립하는 데 두었다.

이 두 차례의 하원 토론은 초기 냉전기 미국 의회의 역할을 잘 보여준다. 1947년 그리스·터키 원조안에서는 공산주의 팽창을 저지해야 한다는 전략적 필요와 대통령의 군사개입 권한, 수원국 정부의 민주성 사이의 긴장이 논의되었다. 1948년 마셜 플랜에서는 유럽의 재건을 미국의 안보와 경제에 연결하면서도, 원조가 자립을 촉진하는지, 비용과 행정권한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가 심의되었다.

이 과정에서 의회가 물은 것은 단순히 대통령의 정책에 찬성할 것인가 반대할 것인가에 그치지 않았다. 미국이 세계의 모든 분쟁을 책임져야 하는가, 경제 원조가 수원국의 자립을 촉진할 것인가 아니면 장기적인 의존을 낳을 것인가, 공산주의를 저지한다는 명분이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원으로 변질될 위험은 없는가를 구체적인 수정안과 예산, 보고의무와 감독조항으로 검토했다.

이는 초강대국의 힘도 공개토론과 권력분립, 도덕적 조건과 재정적 책임 아래 행사되어야 한다는 미국 민주주의의 방향을 보여주었다.

6·25 전쟁 관련 법안 및 문서에 서명하는 트루먼 대통령. [사진= Keystone-France / Gamma-Keystone via Getty Images]

한국전쟁과 냉전 질서의 고착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권의 무력팽창이 실제 전쟁으로 나타난 첫 사례였다. 트루먼 대통령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근거로 6월 27일 공군과 해군의 지원을 명령하고, 6월 30일에는 지상군 투입을 승인했다. 침공에서 지상군 투입까지 불과 닷새가 걸릴 만큼 결정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의회는 트루먼 대통령의 군사조치를 대체로 지지하였다. 1950년 6월 27일 하원 본회의(『Congressional Record』, vol. 96, pp. 9261–9305)에서는 북한의 남침을 유엔 집단안보체제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규정하며 대통령의 조치를 지지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동시에 대통령이 의회의 선전포고 없이 군사행동을 개시할 수 있는지에 대한 헌법적 논쟁은 비토 마르칸토니오(Vito Marcantonio) 의원의 문제 제기와 이후 상원의 로버트 태프트(Robert A. Taft)의 토론을 거치며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이날 오전 하원의장 샘 레이번(Sam Rayburn), 하원 다수당 원내대표 존 W. 매코맥(John W. McCormack), 하원 외교위원장 존 키(John Kee), 하원 군사위원장 칼 빈슨(Carl Vinson), 공화당 중진 찰스 이턴(Charles A. Eaton)과 듀이 쇼트(Dewey Short) 등 양당 지도자들을 백악관으로 불러 한국에서 취한 군사조치를 설명하였다. 존 키의 역할은 우선 이 행정부·의회 지도부 협의 과정에서 확인된다.

하원 다수 의원은 북한의 남침을 유엔 집단안보체제에 대한 첫 중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한국을 방어하지 않는다면 유엔의 권위가 약화되고, 공산주의 세력이 다른 지역에서도 무력을 이용해 국경과 정치질서를 변경하려 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대통령의 군사조치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뉴욕주의 미국노동당 소속 비토 마르칸토니오(Vito Marcantonio) 의원은 같은 날 하원 본회의에서 의회의 전쟁권을 문제 삼았다. 그의 발언은 『Congressional Record』 제96권 9268쪽에 기록되어 있다.

"When we agreed to the United Nations Charter, we never agreed to supplant our Constitution with the United Nations Charter."

"우리가 유엔헌장에 동의했을 때, 유엔헌장으로 미국 헌법을 대체하는 데 동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공군 개입 이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는 트루먼 대통령 (1950년 12월 16일). [사진=Photo 12 / Universal Images Group via Getty Images]

마르칸토니오는 이어 전쟁을 결정할 권한이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에 있다는 취지로 주장하였다. 그의 핵심 문제 제기는 유엔의 결의나 대통령의 군 통수권이 헌법상 의회의 선전포고권을 대신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매우 소수의 반대였지만, 한국 방어의 필요성과 전쟁개시 절차의 합헌성은 서로 구분해 심의해야 한다는 점을 제기한 발언이었다.

따라서 한국전쟁 초기의 의회논쟁은 단순한 찬전과 반전의 대립이 아니었다. 다수 의원은 공산주의의 무력팽창을 저지하고 유엔의 집단안보체제를 지켜야 한다는 국제적 책임을 강조했고, 마르칸토니오를 비롯한 소수는 그러한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대통령이 의회의 명시적 승인 없이 전쟁을 시작하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은 이후 베트남전쟁을 거쳐 1973년 「전쟁권결의」로 이어지는 미국 헌정사의 장기적 쟁점이 되었다.

전쟁이 장기화하고 중국군이 참전한 뒤 미국 의회의 논점은 침략 저지에서 확전 방지와 전후 질서의 설계로 이동했다. 의회는 대한민국을 방어하고 유엔의 권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중국 본토나 소련과의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제한전 원칙은 1951년 맥아더 해임 논쟁과 휴전 논의를 거치며 더욱 분명해졌다.

정전 이후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강력한 안보 보장 요구와 미국의 협상이 맞물리면서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고, 미국 의회는 군사원조와 경제원조 예산을 지속적으로 승인하였다. 이는 전후 대한민국의 안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한편, 사회기반시설 복구와 산업 재건, 교육 확대를 가능하게 하는 재정적 기반이 되었다.

한국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은 한국 국민의 노력과 정부의 정책이 결정적 역할을 하였지만, 그 출발점에는 미국 의회의 지속적인 군사·경제 지원과 한미동맹이라는 국제적 안전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책은 대통령의 일방적 결정이 아니라 의회의 공개토론과 예산심사를 거쳐 제도화되었다. 특히 하원은 ▲1950년 6월 27일 북한의 침략과 유엔의 대응을 둘러싼 긴급토론(『Congressional Record』, House Proceedings, Vol. 96, 81st Congress), ▲1951년 맥아더 해임 이후 확전 여부와 문민통수를 둘러싼 합동청문회(Senate Committees on Armed Services and Foreign Relations Hearings, Military Situation in the Far East),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한국 원조 예산 심의를 통해 미국의 대한정책을 지속적인 국가정책으로 발전시켰다.

이러한 의회의 토론은 냉전기 미국이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지도국으로서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를 논의한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교수 [사진=뉴스핌 DB]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달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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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레노, 벼랑에 선 한국축구 구할까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2026 북중미 월드컵 이후 '난파선'이 된 한국 축구가 로베르토 모레노(48·스페인)에게 반등의 첫 단추를 맡겼다. 대한축구협회는 1일 천안 코리아풋볼파크에서 2026년도 제7차 이사회를 열고 모레노 감독을 포함한 6명의 코칭스태프 선임을 승인했다. 계약기간은 오는 11월 27일까지다. 9월부터 11월까지 6차례 A매치를 지휘한다. 이후 평가를 거쳐 2027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리는 아시안컵까지 지휘봉을 맡을 가능성도 열어뒀다. 이번 선임은 단순한 '임시 감독 카드'로 보기 어렵다. 한국 축구가 모레노에게 기대하는 것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다. 대표팀 축구가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신호탄을 쏘아 올려야한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2021-2022시즌 스페인 그라나다 CF 감독 재임 시절 로베르토 모레노. [사진=게티이미지]2026.09.01 psoq1337@newspim.com 모레노는 전술과 데이터 분석에 강점을 가진 지도자다. FC바르셀로나와 스페인 대표팀에서 루이스 엔리케 감독의 수석코치를 맡았다. 엔리케 사단의 핵심으로 스페인 대표팀과 세계 정상급 클럽의 전술 시스템을 경험했다. 선수 역할 설정과 상대 분석에도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짧은 기간 선수들을 파악하고 전술적 색깔을 입혀야 하는 임시 감독의 조건과 맞아떨어진다. 코칭스태프도 사실상 '모레노 사단'으로 꾸려졌다. 에두아르도 도캄포 수석코치를 비롯해 하신트 마그리냐, 빅토르 브라보 데 소토 코치가 합류한다. 하비에로 초카로 피지컬 코치와 니코 보쉬 골키퍼 코치까지 모두 스페인 출신이다. 다만 모레노의 감독 경력에는 분명한 약점도 있다. 수석코치로 쌓은 경력에 비해 독립적인 감독으로서의 성과는 미미하다. AS모나코에서는 6개월 만에 지휘봉을 내려놨다. 그라나다에서도 성적 부진으로 경질됐다. 러시아 소치에서는 2부리그 팀의 승격을 이끌었지만 다음 시즌 초반 7경기에서 1승에 그치며 경질됐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2021-2022시즌 스페인 그라나다 CF 감독 재임 시절 로베르토 모레노. [사진=게티이미지] 2026.09.01 psoq1337@newspim.com 따라서 모레노에게도 임시 한국 사령탑 자리는 중요한 승부처다. 한국에서 성과를 낸다면 하락세였던 감독 경력을 반전시킬 수 있다. 아시안컵까지 지휘봉을 이어갈 경우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능력을 다시 증명할 기회도 얻는다. 한국 축구 역시 마찬가지다. 모레노의 성공은 곧 대표팀의 재출발을 의미한다. 전술이 정착되고 경기력이 개선되며 젊은 선수들의 경쟁력이 확인된다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최소한의 기반을 만들 수 있다. 모레노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 6경기 동안 대표팀의 새로운 정체성을 보여줘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과와 내용이다. 단순히 승수를 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선수 선발의 기준을 세우고 포지션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 전술적 일관성을 확보해야 한다. 월드컵에서 드러난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경기장에서 보여줘야 한다. psoq1337@newspim.com 2026-09-01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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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총 10배 증가' 팀 쿡 시대의 종언 이 기사는 8월 31일 오후 4시56분 '해외 주식 투자의 도우미' GAM(Global Asset Management)에 출고된 프리미엄 기사입니다. GAM에서 회원 가입을 하면 9000여 해외 종목의 프리미엄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뉴스핌] 김현영 기자 = 2026년 8월 31일은 팀 쿡이 애플(종목코드: AAPL) 최고경영자(CEO)로서 보내는 마지막 근무일이다. 2011년 스티브 잡스 사망 이후 15년간 애플을 이끌어온 그는 다음 날인 9월 1일부로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나고, 오랜 기간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부문을 총괄해온 존 터너스 수석부사장이 새로운 수장 자리에 오른다. 취임 8일 만에 신제품 발표회라는 첫 시험대에 오르는 터너스의 데뷔 무대는 9월 9일로 예정돼 있으며, 이 자리에서 애플의 첫 폴더블 아이폰이 공개될 가능성이 유력하게 점쳐지면서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시총 10배 키운 팀 쿡, 그가 남긴 유산 쿡이 재임하는 동안 애플의 시가총액은 약 3,500억 달러에서 4조 6000억달러 이상으로 불어났다. 지난 7월에는 잠시 5조 달러 선을 넘기도 했다. 전설적인 창업자의 뒤를 이어받는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부담을 수반하는 과제임에도, 쿡은 재임 기간 주주가치를 10배 넘게 끌어올렸다. 시장에서는 지난 15년간 전 세계에서 주주가치를 견인한 CEO들 가운데서도 가장 성공적인 축에 속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사진=애플] 쿡의 가장 큰 공로로 꼽히는 것은 2007년 처음 출시된 아이폰 사업을 애플의 지속적인 성장을 견인하는 엔진으로 완전히 변모시켰다는 점이다. 아이폰은 2025년 애플 전체 매출 4,161억 달러 가운데 2,095억 달러를 차지하며 단일 사업 부문이 전체 매출의 약 50%를 책임졌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글로벌리서치의 왐시 모한 애널리스트는 아이폰 제품군을 다양한 가격대에 걸쳐 폭넓게 확장시키고, 이와 연동된 공급망의 복잡성을 관리해낸 것이 전적으로 쿡의 공로라고 평가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쿡은 애플뮤직플러스, 애플TV플러스, 애플피트니스플러스, 애플워치, 에어팟 등 아이폰과 연계된 폭넓은 제품·서비스 생태계를 구축했다. 그 결과 서비스 부문은 이제 애플의 두 번째로 큰 사업으로 자리 잡아 지난해 1,091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세 번째로 큰 부문인 웨어러블 기기 역시 356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만약 쿡이 아이폰 프랜차이즈를 서비스 부문으로까지 확장하지 못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규모와 위상의 애플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2007년 아이폰을 공개한 故 스티브 잡스 [사진=블룸버그] 재임 기간 내내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각의 비판론자들은 아이폰의 뒤를 이을 만한 후속 제품이 부재하다는 점을 회사의 혁신 동력 약화를 보여주는 신호로 지적해왔다. 이에 대해 모한 애널리스트는 쿡이 물려받은 포트폴리오를 고려할 때 그가 각 사업 부문을 엄청나게 성장시켰으나, 아이폰이 워낙 크고 성공적이다 보니 다른 성과들을 가려버리는 측면이 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수년 만에 처음 선보인 신규 제품군이었던 비전 프로는 다소 아쉬운 성과에 그쳤지만, 애플은 이 헤드셋을 위해 개발한 일부 기술을 향후 출시할 스마트글라스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들어서는 생성형 AI(인공지능) 도입이 더디다는 비판에 직면하며 차세대 개선판 시리(Siri)의 출시가 지연된 상태다. 그럼에도 AI 칩과 데이터센터에 수천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는 경쟁사들과 달리, 애플은 월가를 뒤흔들고 있는 AI발 밸류에이션 충격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 완벽주의자 터너스는 누구인가 바통을 이어받는 존 터너스는 2001년 애플 제품 디자인팀의 일원으로 입사한 뒤 2013년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부문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2021년에는 수석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으며 애플 입사 전에는 버추얼 리서치 시스템스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지난 3월 맥북 네오 공개 행사 등 주요 제품 발표 무대에 여러 차례 등장하며 존재감을 넓혀왔지만, 최근 몇 년간 회사를 유심히 지켜본 이들이 아니고서는 여전히 대중에게는 낯선 인물이라는 평가가 많다. 애플 팀 쿡 최고경영자(CEO, 좌)와 차기 CEO로 취임 예정인 존 터너스 [사진=블룸버그] 터너스는 애플이 추구하는 완벽주의적 성향을 그대로 체현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2024년 펜실베이니아대 공대 졸업식 축사에서, 자신이 맡았던 첫 애플 제품인 애플 시네마 디스플레이의 후면 나사 홈 개수를 두고 협력업체와 벌였던 실랑이를 소개한 바 있다. 협력업체가 제시한 나사는 홈이 35개였지만 터너스는 애플이 원하는 25개를 끝내 고수했다는 일화로, 사소해 보이는 부분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품을 대하는 자신의 원칙이라는 취지였다. 애플 측은 맥 라인업을 역대 최고 인기 제품군으로 끌어올리고 아이폰17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선보였으며 에어팟을 개선하는 데 터너스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여러 제품에 사용되는 재활용 알루미늄 합금 개발을 주도했고, 애플워치 울트라3에 적용된 3D 프린팅 티타늄 소재 작업에도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이폰 17 프로 [사진=블룸버그] 지난 4월 발표된 이번 경영권 승계는 애플이 기기 사업이라는 본업에 다시 힘을 싣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공급망과 영업, 재무에 밝았던 쿡과 달리 터너스는 하드웨어 엔지니어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가 외부 영입 인사가 아니라 회사 내부를 25년 가까이 깊이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은 경영권 교체기에 흔히 발생하는 운영·전략적 실수의 위험을 낮춰주는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그만큼 더딘 전환기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터너스는 AI가 촉발한 기술업계의 대격변 한복판에서 애플을 이끌게 됐다. 아이폰을 뒤이을 차세대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 스마트글라스나 AI 핀 등 AI 기반 신제품에 사활을 건 경쟁사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애플 역시 소비자 전자업계에서의 지배력을 이어가려면 이 분야에서 자체적인 답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투자자들은 정교한 가격 전략과 흠잡을 데 없는 실행력, 실질적인 파급력을 갖춘 제품 로드맵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 9월 9일 데뷔 무대, 관전 포인트는 '폴더블 아이폰' 터너스 신임 CEO에게 주어진 첫 시험대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찾아온다. 애플은 9월 9일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파크 내 스티브 잡스 극장에서 신제품 발표 행사를 연다. 이미 "서프라이즈 앤드 샤인(Surprise and Shine)"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눈길을 끌 만한 제품 공개를 예고한 상태다. 애플은 구체적인 제품 라인업을 아직 밝히지 않았지만, 신형 아이폰과 업그레이드된 애플워치는 물론 스마트홈 시장을 겨냥한 여러 제품을 포함해 최대 8종에 달하는 기기가 공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애플이 8월 26일(현지시간) 내달 9일 행사 계획을 발표했다.[사진=애플 웹사이트] 가장 유력한 라인업은 아이폰18 프로와 아이폰18 프로맥스를 포함한 아이폰18 시리즈다. 더 낮은 발열과 긴 사용 시간을 구현할 것으로 기대되는 신형 2나노미터(nm) A20 프로 칩과 배터리 효율 개선·프라이버시 강화·혼잡한 데이터 네트워크 환경에서의 성능 향상을 가능케 할 C2 칩이 함께 탑재될 전망이다. 더 빠른 칩과 개선된 배터리, 카메라 성능이 적용되며 최소한 대형 모델에는 기계식 조리개가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아이폰 에어 2세대와 일반형 아이폰18은 이번 행사에서 빠질 것으로 보인다. 애플이 연중 판매를 고르게 분산하기 위해 이들 제품과 보급형 아이폰18e, 신형 맥, 아이패드의 출시를 내년 봄으로 미룰 것이라는 관측이다. 시장의 진짜 관심은 애플의 첫 폴더블 스마트폰에 쏠려 있다. '아이폰 폴드' 혹은 '아이폰 울트라'로 불릴 가능성이 있는 이 제품이 현실화된다면, 아이폰X(아이폰 텐)과 3D 안면인식 도입 이후 최대 변화로 꼽힐 만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터너스가 이 제품 개발을 직접 주도해왔으며, 그의 취임 시점 자체가 출시에 맞춰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접었을 때는 여권 크기의 일반 스마트폰처럼 작동하다가 펼치면 책처럼 바깥쪽으로 열리며 태블릿 크기의 화면이 드러나는 구조로, 일반 스마트폰처럼 쓸 수 있는 5.3인치 외부 화면과 펼치면 나타나는 7.8인치 내부 화면 등 두 개의 화면을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유출 정보에 따르면 페이스 ID 대신 터치 ID를 탑재하고, 멀티태스킹에 최적화된 초박형 디자인으로 데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가격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여러 매체 보도와 시장조사업체 IDC의 나빌라 포팔 수석 리서치 디렉터에 따르면 예상 소비자가격은 2,000~2,500달러 수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포팔 디렉터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 제품이 상당한 성공을 거둘 것으로 내다봤는데, 최상위층 소비자를 겨냥한 제품인 만큼 이들이 구매를 위해 줄을 설 것이라는 설명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 프리미엄 폴더블 기기가 판매가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애플에 새로운 마진 성장 동력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IDC는 애플이 출시 첫해에만 1,000만 대 이상을 출하하며 침체가 예상되던 폴더블 시장 전체를 구해낼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힘입어 올해 폴더블 부문이 12.6% 성장하고 내년에는 성장률이 18%로 가속화될 것으로 IDC는 전망했으며, 2027년까지 애플이 전 세계 폴더블폰 출하량의 40%, 1,700만 대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②편에서 계속됨 kimhyun01@newspim.com 2026-09-0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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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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