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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정치분석] ⑨미국 의회언어의 질과 민주주의의 향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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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핵심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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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7년 10월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로 미국은 과학기술·교육·안보 위기를 인식하고 NASA 창설과 국방교육법 제정 등 국가전략을 추진했다.
  • 냉전기 의회는 우주개발·베트남전쟁을 둘러싸고 과학기술 투자와 대통령의 전쟁권한을 공개적으로 검증하며 전쟁권결의안 등 견제장치를 마련했다.
  • 미국의 초강대국화는 대통령 연설을 통한 비전 제시와 의회의 법률·예산·청문회를 통한 토론과 제도화가 결합된 민주주의 축적의 결과였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민주주의의 무기고에서 교육·문화·국방·과학기술 초강대국으로(1933–1992)

스푸트니크 충격과 과학기술의 정치

1957년 10월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자 미국은 군사적·과학적·교육적 충격을 동시에 받았다.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는 로켓 기술은 장거리 미사일 기술과 연결되어 있었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우주개발을 과학자들의 개별 연구가 아니라 국가안보와 교육, 산업정책을 결합한 사업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958년 미국항공우주국이 창설되고 과학교육과 대학 연구지원이 확대되었다. 과학기술은 냉전의 군사적 수단인 동시에 자유사회가 지식과 자본, 장기적 국가목표를 조직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상징으로 제시되었다.

1961년 5월 25일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의회 합동회의에서 달 착륙 목표를 발표했다.

달 탐사 비전을 선언하는 케네디 대통령. [사진=Heritage Images / Heritage Images via Getty Images]

"I believe that this nation should commit itself to achieving the goal, before this decade is out, of landing a man on the moon and returning him safely to the earth. No single space project in this period will be more impressive to mankind, or more important for the long-range exploration of space. And none will be so difficult or expensive to accomplish."

"나는 이 나라가 1960년대가 끝나기 전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고 그를 지구로 안전하게 귀환시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 기간에 추진할 수 있는 어떤 우주계획도 인류에게 이보다 더 깊은 인상을 주거나 장기적인 우주탐사에 더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이보다 더 어렵거나 많은 비용이 드는 사업도 없을 것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은 단순한 우주탐사가 아니라 소련과의 냉전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과학과 기술, 교육과 산업의 역량을 통해 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하겠다는 국가전략의 내용을 담고 있다.

냉전기의 의회토론은 우주경쟁을 단순한 미·소 간의 체면 경쟁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Sputnik)를 발사하자, 미국 의회는 이를 군사력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기술과 교육 경쟁력의 위기로 받아들였다. 하원 과학우주위원회(House Committee on Science and Astronautics)와 교육노동위원회는 미국이 과학자와 공학자를 충분히 양성하지 못하면 국가안보와 산업경쟁력 모두에서 뒤처질 것이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논의하였다.

그 결과 의회는 1958년 「국방교육법(National Defense Education Act)」을 제정하여 수학·과학·외국어 교육과 대학 장학금, 대학원 연구를 대폭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같은 해 「국가항공우주법(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ct)」을 통과시켜 NASA를 설립하고, 연방정부가 대학과 연구소, 민간기업을 연결하는 국가 연구개발체계를 구축하도록 하였다.

미국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 [사진=위키미디어 공용]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법안에 서명하면서 "이 법은 미국 교육체계를 강화하여 국가안보가 요구하는 새로운 필요에 부응하도록 할 것(This Act … will do much to strengthen our American system of education … to meet the broad and increasing demands imposed upon it by considerations of basic national security.)"이라고 밝혔다. 『Congressional Record』(85th Congress, 2nd Session, 1958)에서도 의원들은 스푸트니크 충격 이후 과학교육과 기초연구에 대한 연방 투자가 국가안보와 산업경쟁력의 기반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였다.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이 의회 합동회의에서 아폴로 계획을 제안한 이후에도 의회의 논쟁은 계속되었다. 하원 과학우주위원회와 세출위원회는 NASA 예산을 심의하면서 막대한 재정 부담을 우려하는 의견과, 우주개발이 반도체·컴퓨터·항공우주·통신기술을 발전시키고 대학 연구와 산업혁신을 촉진하는 국가적 투자라는 의견을 함께 검토하였다.

『Congressional Record』(87th Congress, 1st Session, 1961년 5~6월)와 「House Committee on Science and Astronautics Hearings on NASA Authorization」에는 우주개발이 군사력뿐 아니라 교육과 연구, 산업을 동시에 발전시키는 국가전략이라는 인식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결국 의회는 우주개발을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라 미래 국가역량에 대한 투자로 선택하였다. 과학기술에 대한 지속적인 예산심사와 교육투자는 대학과 정부 연구소, 민간기업의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이후 미국이 반도체와 컴퓨터, 항공우주, 바이오, 인공지능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유지하는 중요한 제도적 기반이 되었다. 미국의 과학기술 초강대국화는 대통령의 비전만이 아니라, 이를 장기간 법률과 예산으로 뒷받침한 의회의 지속적인 토론과 정책결정의 결과이기도 했다.

1973년 전쟁권결의안(War Powers Resolution) 첫 페이지 원본. [사진=Nixon Library]

냉전의 위기관리와 베트남전쟁의 성찰

1962년 10월 22일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소련이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고 있다고 공개하며, 쿠바에 대한 해상봉쇄(공식 명칭은 quarantine, 격리)를 선언하였다. 그는 군사력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분명히 하면서도 소련이 평화적으로 철수할 수 있는 외교적 출구를 남겨 두었다. 냉전기의 대통령 연설은 국민을 안심시키는 동시에 동맹국과 소련을 향한 전략적 신호라는 성격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전쟁에서 확대된 대통령의 군사행동 권한은 베트남전쟁에서 더욱 큰 헌법적 논쟁을 낳았다. 의회는 1964년 8월 7일 통킹만결의(Gulf of Tonkin Resolution)를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시켜 대통령에게 동남아시아에서 필요한 군사조치를 취할 권한을 부여하였다.

당시 하원은 찬성 416표, 반대 0표로 결의안을 가결하였으며, 『Congressional Record』(88th Congress, 2nd Session, August 6–7, 1964)에는 북한과 한국전쟁의 경험을 언급하며 공산주의 팽창을 초기에 저지해야 한다는 의원들의 발언이 반복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의회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1966~1971년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 J. 윌리엄 풀브라이트(J. William Fulbright)가 주재한 「Hearings on U.S. Policy in Vietnam」에서는 행정부가 제시한 통킹만 사건의 정보가 충분했는지, 군사력만으로 남베트남의 정치질서를 안정시킬 수 있는지, 자유세계의 방어라는 명분만으로 막대한 인명과 재정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가 집중적으로 검증되었다. 미국 의회는 처음으로 대통령의 전쟁수행 권한과 정보의 신뢰성을 공개적으로 재평가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성찰은 결국 1973년 「전쟁권결의(War Powers Resolution)」로 이어졌다. 『Congressional Record』(93rd Congress, October–November 1973)에서 의회는 대통령이 미군을 전투에 투입할 경우 48시간 안에 의회에 보고하고, 의회의 승인 없이 장기간 전쟁을 지속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이는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거치며 확대된 행정부의 군사권한을 헌법상 권력분립의 원칙 속으로 다시 되돌리려는 의회의 대응이었다.

이처럼 냉전 후반기의 의회토론은 단순히 공산주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넘어, 초강대국이 군사력을 언제, 어디까지, 어떤 민주적 통제 아래 사용할 것인가를 묻는 과정이었다. 미국은 군사력의 우위뿐 아니라 대통령의 리더십과 의회의 견제, 공개토론과 법률을 통해 초강대국의 권한을 스스로 통제하려 했으며, 이러한 논의는 오늘날 미국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중요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미국 의회에서 '트루먼 독트린'을 선언하는 트루먼 대통령 [사진=위키미디어 공용]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초강대국

1933년부터 냉전 종결기까지 미국은 경제와 군사뿐 아니라 과학기술, 교육, 문화와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세계 초강대국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그 변화는 대통령의 결단이나 군사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루스벨트의 노변담화(Fireside Chats)에서 시작된 국민과의 직접 소통은 트루먼의 「트루먼 독트린」 연설(1947), 케네디의 「긴급한 국가적 필요에 관한 특별교서」(1961), 존슨의 민권 관련 연설로 이어졌고, 대통령은 국가의 비전과 정책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민주적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그 비전이 국가정책으로 완성된 곳은 의회였다. 『Congressional Record』에는 1941년 진주만 공격 직후의 선전포고 토론, 1947년 트루먼 독트린과 마셜 플랜 심의, 1950년 한국전쟁 대응, 1964~1965년 민권법과 투표권법 논쟁, 1961년 이후 우주개발과 NASA 예산 심의, 1964년 통킹만결의와 1973년 전쟁권결의에 이르기까지 미국이 직면했던 거의 모든 중대한 선택의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대통령이 방향을 제시했다면, 의회는 이를 법률과 예산, 청문회와 공개토론을 통해 검증하고 수정하며 지속 가능한 국가정책으로 제도화하였다.

그 과정에서 민주당은 대체로 연방정부의 적극적인 역할과 사회개혁, 교육·과학기술 투자를 강조했고, 공화당은 재정건전성과 시장경제, 주정부의 권한과 행정부에 대한 견제를 중시하였다. 그러나 두 정당은 자유민주주의와 국가안보라는 국가적 목표를 공유하면서도, 그 목표를 어떤 정책과 비용으로 실현할 것인지를 놓고 치열하게 논쟁하였다. 미국 의회의 힘은 만장일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철학을 공개적으로 경쟁시키고, 수정안과 청문회, 예산심사와 표결을 통해 정책으로 완성하는 데 있었다.

라디오 노변담화(Fireside Chat)를 진행 중인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사진=위키미디어 공용]

영국 웨스트민스터 의회가 내각과 야당의 정치적 공방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면, 미국 의회는 대통령제 아래 권력분립을 전제로 장기간의 정책 검증과 행정부 견제를 제도화하였다. 특히 상원의 필리버스터는 소수 의견을 보호하는 동시에 다수결을 지연시키는 양면성을 지녔으며, 1964년 민권법을 둘러싼 장기간의 필리버스터와 토론종결 표결은 미국 민주주의가 갈등을 제도 안에서 해결해 나간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오늘날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 Address)은 미국 국내정치를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정치행사가 되었다. 대통령의 연설과 이어지는 의회의 토론은 미국의 외교와 안보, 경제와 교육, 과학기술과 인권정책의 방향을 보여주는 신호로 받아들여지며 세계 언론의 주요 뉴스가 된다. 미국이 '민주주의의 무기고'를 넘어 과학·교육·문화·국방을 선도하는 세계 초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통령의 설득력 있는 리더십과 이를 끊임없이 검증하고 기록한 의회의 공개토론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결국 미국 대통령 기록물과 『Congressional Record』는 단순한 연설문과 회의록이 아니다. 그것은 한 국가가 전쟁과 평화, 자유와 평등, 시장과 정부, 과학과 교육, 국내정치와 세계질서를 둘러싼 문제를 어떻게 토론하고 결정했는지를 보여주는 민주주의의 기록이다. 초강대국 미국의 힘은 군사력이나 경제력만이 아니라, 대통령의 비전과 의회의 공개적 검증, 그리고 국민의 동의를 통해 국가정책을 만들어 온 이러한 민주주의의 축적 속에서 형성되었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교수 [사진=뉴스핌 DB]

다음편「대전환과 갈등의 고조기(1993–2016): 탈냉전의 독점적 지위와 균열하는 공화국의 토론」에서는 냉전 이후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과정과, 클린턴·조지 W. 부시·오바마 행정부를 거치며 세계화, 9·11 테러와 이라크전, 금융위기, 의료개혁, 이민정책, 인종갈등과 정치적 양극화를 둘러싸고 대통령의 연설과 『Congressional Record』에는 어떤 새로운 논쟁이 기록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미국 민주주의가 어떤 새로운 도전과 균열에 직면했는지를 대통령 기록물과 의회 속기록을 통해 추적해 보고자 한다.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달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kims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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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레노, 벼랑에 선 한국축구 구할까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2026 북중미 월드컵 이후 '난파선'이 된 한국 축구가 로베르토 모레노(48·스페인)에게 반등의 첫 단추를 맡겼다. 대한축구협회는 1일 천안 코리아풋볼파크에서 2026년도 제7차 이사회를 열고 모레노 감독을 포함한 6명의 코칭스태프 선임을 승인했다. 계약기간은 오는 11월 27일까지다. 9월부터 11월까지 6차례 A매치를 지휘한다. 이후 평가를 거쳐 2027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리는 아시안컵까지 지휘봉을 맡을 가능성도 열어뒀다. 이번 선임은 단순한 '임시 감독 카드'로 보기 어렵다. 한국 축구가 모레노에게 기대하는 것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다. 대표팀 축구가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신호탄을 쏘아 올려야한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2021-2022시즌 스페인 그라나다 CF 감독 재임 시절 로베르토 모레노. [사진=게티이미지]2026.09.01 psoq1337@newspim.com 모레노는 전술과 데이터 분석에 강점을 가진 지도자다. FC바르셀로나와 스페인 대표팀에서 루이스 엔리케 감독의 수석코치를 맡았다. 엔리케 사단의 핵심으로 스페인 대표팀과 세계 정상급 클럽의 전술 시스템을 경험했다. 선수 역할 설정과 상대 분석에도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짧은 기간 선수들을 파악하고 전술적 색깔을 입혀야 하는 임시 감독의 조건과 맞아떨어진다. 코칭스태프도 사실상 '모레노 사단'으로 꾸려졌다. 에두아르도 도캄포 수석코치를 비롯해 하신트 마그리냐, 빅토르 브라보 데 소토 코치가 합류한다. 하비에로 초카로 피지컬 코치와 니코 보쉬 골키퍼 코치까지 모두 스페인 출신이다. 다만 모레노의 감독 경력에는 분명한 약점도 있다. 수석코치로 쌓은 경력에 비해 독립적인 감독으로서의 성과는 미미하다. AS모나코에서는 6개월 만에 지휘봉을 내려놨다. 그라나다에서도 성적 부진으로 경질됐다. 러시아 소치에서는 2부리그 팀의 승격을 이끌었지만 다음 시즌 초반 7경기에서 1승에 그치며 경질됐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2021-2022시즌 스페인 그라나다 CF 감독 재임 시절 로베르토 모레노. [사진=게티이미지] 2026.09.01 psoq1337@newspim.com 따라서 모레노에게도 임시 한국 사령탑 자리는 중요한 승부처다. 한국에서 성과를 낸다면 하락세였던 감독 경력을 반전시킬 수 있다. 아시안컵까지 지휘봉을 이어갈 경우 국제무대에서 자신의 능력을 다시 증명할 기회도 얻는다. 한국 축구 역시 마찬가지다. 모레노의 성공은 곧 대표팀의 재출발을 의미한다. 전술이 정착되고 경기력이 개선되며 젊은 선수들의 경쟁력이 확인된다면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최소한의 기반을 만들 수 있다. 모레노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 6경기 동안 대표팀의 새로운 정체성을 보여줘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과와 내용이다. 단순히 승수를 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선수 선발의 기준을 세우고 포지션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 전술적 일관성을 확보해야 한다. 월드컵에서 드러난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경기장에서 보여줘야 한다. psoq1337@newspim.com 2026-09-01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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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총 10배 증가' 팀 쿡 시대의 종언 이 기사는 8월 31일 오후 4시56분 '해외 주식 투자의 도우미' GAM(Global Asset Management)에 출고된 프리미엄 기사입니다. GAM에서 회원 가입을 하면 9000여 해외 종목의 프리미엄 기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뉴스핌] 김현영 기자 = 2026년 8월 31일은 팀 쿡이 애플(종목코드: AAPL) 최고경영자(CEO)로서 보내는 마지막 근무일이다. 2011년 스티브 잡스 사망 이후 15년간 애플을 이끌어온 그는 다음 날인 9월 1일부로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나고, 오랜 기간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부문을 총괄해온 존 터너스 수석부사장이 새로운 수장 자리에 오른다. 취임 8일 만에 신제품 발표회라는 첫 시험대에 오르는 터너스의 데뷔 무대는 9월 9일로 예정돼 있으며, 이 자리에서 애플의 첫 폴더블 아이폰이 공개될 가능성이 유력하게 점쳐지면서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시총 10배 키운 팀 쿡, 그가 남긴 유산 쿡이 재임하는 동안 애플의 시가총액은 약 3,500억 달러에서 4조 6000억달러 이상으로 불어났다. 지난 7월에는 잠시 5조 달러 선을 넘기도 했다. 전설적인 창업자의 뒤를 이어받는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부담을 수반하는 과제임에도, 쿡은 재임 기간 주주가치를 10배 넘게 끌어올렸다. 시장에서는 지난 15년간 전 세계에서 주주가치를 견인한 CEO들 가운데서도 가장 성공적인 축에 속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사진=애플] 쿡의 가장 큰 공로로 꼽히는 것은 2007년 처음 출시된 아이폰 사업을 애플의 지속적인 성장을 견인하는 엔진으로 완전히 변모시켰다는 점이다. 아이폰은 2025년 애플 전체 매출 4,161억 달러 가운데 2,095억 달러를 차지하며 단일 사업 부문이 전체 매출의 약 50%를 책임졌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글로벌리서치의 왐시 모한 애널리스트는 아이폰 제품군을 다양한 가격대에 걸쳐 폭넓게 확장시키고, 이와 연동된 공급망의 복잡성을 관리해낸 것이 전적으로 쿡의 공로라고 평가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쿡은 애플뮤직플러스, 애플TV플러스, 애플피트니스플러스, 애플워치, 에어팟 등 아이폰과 연계된 폭넓은 제품·서비스 생태계를 구축했다. 그 결과 서비스 부문은 이제 애플의 두 번째로 큰 사업으로 자리 잡아 지난해 1,091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세 번째로 큰 부문인 웨어러블 기기 역시 356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만약 쿡이 아이폰 프랜차이즈를 서비스 부문으로까지 확장하지 못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규모와 위상의 애플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2007년 아이폰을 공개한 故 스티브 잡스 [사진=블룸버그] 재임 기간 내내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각의 비판론자들은 아이폰의 뒤를 이을 만한 후속 제품이 부재하다는 점을 회사의 혁신 동력 약화를 보여주는 신호로 지적해왔다. 이에 대해 모한 애널리스트는 쿡이 물려받은 포트폴리오를 고려할 때 그가 각 사업 부문을 엄청나게 성장시켰으나, 아이폰이 워낙 크고 성공적이다 보니 다른 성과들을 가려버리는 측면이 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수년 만에 처음 선보인 신규 제품군이었던 비전 프로는 다소 아쉬운 성과에 그쳤지만, 애플은 이 헤드셋을 위해 개발한 일부 기술을 향후 출시할 스마트글라스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들어서는 생성형 AI(인공지능) 도입이 더디다는 비판에 직면하며 차세대 개선판 시리(Siri)의 출시가 지연된 상태다. 그럼에도 AI 칩과 데이터센터에 수천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는 경쟁사들과 달리, 애플은 월가를 뒤흔들고 있는 AI발 밸류에이션 충격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 완벽주의자 터너스는 누구인가 바통을 이어받는 존 터너스는 2001년 애플 제품 디자인팀의 일원으로 입사한 뒤 2013년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부문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2021년에는 수석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으며 애플 입사 전에는 버추얼 리서치 시스템스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지난 3월 맥북 네오 공개 행사 등 주요 제품 발표 무대에 여러 차례 등장하며 존재감을 넓혀왔지만, 최근 몇 년간 회사를 유심히 지켜본 이들이 아니고서는 여전히 대중에게는 낯선 인물이라는 평가가 많다. 애플 팀 쿡 최고경영자(CEO, 좌)와 차기 CEO로 취임 예정인 존 터너스 [사진=블룸버그] 터너스는 애플이 추구하는 완벽주의적 성향을 그대로 체현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2024년 펜실베이니아대 공대 졸업식 축사에서, 자신이 맡았던 첫 애플 제품인 애플 시네마 디스플레이의 후면 나사 홈 개수를 두고 협력업체와 벌였던 실랑이를 소개한 바 있다. 협력업체가 제시한 나사는 홈이 35개였지만 터너스는 애플이 원하는 25개를 끝내 고수했다는 일화로, 사소해 보이는 부분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품을 대하는 자신의 원칙이라는 취지였다. 애플 측은 맥 라인업을 역대 최고 인기 제품군으로 끌어올리고 아이폰17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선보였으며 에어팟을 개선하는 데 터너스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여러 제품에 사용되는 재활용 알루미늄 합금 개발을 주도했고, 애플워치 울트라3에 적용된 3D 프린팅 티타늄 소재 작업에도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이폰 17 프로 [사진=블룸버그] 지난 4월 발표된 이번 경영권 승계는 애플이 기기 사업이라는 본업에 다시 힘을 싣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공급망과 영업, 재무에 밝았던 쿡과 달리 터너스는 하드웨어 엔지니어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가 외부 영입 인사가 아니라 회사 내부를 25년 가까이 깊이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은 경영권 교체기에 흔히 발생하는 운영·전략적 실수의 위험을 낮춰주는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그만큼 더딘 전환기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터너스는 AI가 촉발한 기술업계의 대격변 한복판에서 애플을 이끌게 됐다. 아이폰을 뒤이을 차세대 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 스마트글라스나 AI 핀 등 AI 기반 신제품에 사활을 건 경쟁사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애플 역시 소비자 전자업계에서의 지배력을 이어가려면 이 분야에서 자체적인 답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투자자들은 정교한 가격 전략과 흠잡을 데 없는 실행력, 실질적인 파급력을 갖춘 제품 로드맵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 9월 9일 데뷔 무대, 관전 포인트는 '폴더블 아이폰' 터너스 신임 CEO에게 주어진 첫 시험대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찾아온다. 애플은 9월 9일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파크 내 스티브 잡스 극장에서 신제품 발표 행사를 연다. 이미 "서프라이즈 앤드 샤인(Surprise and Shine)"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눈길을 끌 만한 제품 공개를 예고한 상태다. 애플은 구체적인 제품 라인업을 아직 밝히지 않았지만, 신형 아이폰과 업그레이드된 애플워치는 물론 스마트홈 시장을 겨냥한 여러 제품을 포함해 최대 8종에 달하는 기기가 공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애플이 8월 26일(현지시간) 내달 9일 행사 계획을 발표했다.[사진=애플 웹사이트] 가장 유력한 라인업은 아이폰18 프로와 아이폰18 프로맥스를 포함한 아이폰18 시리즈다. 더 낮은 발열과 긴 사용 시간을 구현할 것으로 기대되는 신형 2나노미터(nm) A20 프로 칩과 배터리 효율 개선·프라이버시 강화·혼잡한 데이터 네트워크 환경에서의 성능 향상을 가능케 할 C2 칩이 함께 탑재될 전망이다. 더 빠른 칩과 개선된 배터리, 카메라 성능이 적용되며 최소한 대형 모델에는 기계식 조리개가 들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아이폰 에어 2세대와 일반형 아이폰18은 이번 행사에서 빠질 것으로 보인다. 애플이 연중 판매를 고르게 분산하기 위해 이들 제품과 보급형 아이폰18e, 신형 맥, 아이패드의 출시를 내년 봄으로 미룰 것이라는 관측이다. 시장의 진짜 관심은 애플의 첫 폴더블 스마트폰에 쏠려 있다. '아이폰 폴드' 혹은 '아이폰 울트라'로 불릴 가능성이 있는 이 제품이 현실화된다면, 아이폰X(아이폰 텐)과 3D 안면인식 도입 이후 최대 변화로 꼽힐 만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터너스가 이 제품 개발을 직접 주도해왔으며, 그의 취임 시점 자체가 출시에 맞춰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접었을 때는 여권 크기의 일반 스마트폰처럼 작동하다가 펼치면 책처럼 바깥쪽으로 열리며 태블릿 크기의 화면이 드러나는 구조로, 일반 스마트폰처럼 쓸 수 있는 5.3인치 외부 화면과 펼치면 나타나는 7.8인치 내부 화면 등 두 개의 화면을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유출 정보에 따르면 페이스 ID 대신 터치 ID를 탑재하고, 멀티태스킹에 최적화된 초박형 디자인으로 데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가격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여러 매체 보도와 시장조사업체 IDC의 나빌라 포팔 수석 리서치 디렉터에 따르면 예상 소비자가격은 2,000~2,500달러 수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포팔 디렉터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 제품이 상당한 성공을 거둘 것으로 내다봤는데, 최상위층 소비자를 겨냥한 제품인 만큼 이들이 구매를 위해 줄을 설 것이라는 설명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 프리미엄 폴더블 기기가 판매가를 끌어올리는 동시에 애플에 새로운 마진 성장 동력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IDC는 애플이 출시 첫해에만 1,000만 대 이상을 출하하며 침체가 예상되던 폴더블 시장 전체를 구해낼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힘입어 올해 폴더블 부문이 12.6% 성장하고 내년에는 성장률이 18%로 가속화될 것으로 IDC는 전망했으며, 2027년까지 애플이 전 세계 폴더블폰 출하량의 40%, 1,700만 대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②편에서 계속됨 kimhyun01@newspim.com 2026-09-0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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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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